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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기대했던 작품을 드디어 감상하게 됨
스팩타클한 액션과 장엄한 역사적 서사물에 두각을 보이던 감독 리들리 스콧과 전작 조커에서 소름끼치는 연기를 시전한 연기파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합을 맞쳐 인류사에서 가장 존재감이 강한 인물 중 하나인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생애를 스크린에 그려나 가는 작품이니 영화팬이라면 기대충만함을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은 대서사극을 그가 주인공이 된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 별로 표시하고 그 사건을 묘사한 여러거장들이 남긴 유산을 조합시키는 형식으로 서술해 보겠다.
1789년 시민사회를 위한 민중의 열망 프랑스 대혁명 그리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 외젠 들라크 루아의 유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사실 이작품이 의미하는 혁명은 1889년의 대혁명이 아닌 1830년 7월 혁명이다)
이영화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도입부에 "프랑스 민중은 혁명을 일으키지만 혁명 때문에 더욱 고통을 받게 된다" 라는 글귀가 나온다. 즉 시대적 요구 민중의 강한 열망에 의해 혁명을 결행하여 성공하지만 이상과 다르게 세상을 더 큰 혼란과 고통을 초래하게 되고 역사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요동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1793년 단두대로 향하는 마리앙투아네트 부르봉 왕가의 종말
영화의 시작 시점은 대혁명 이후 4년이 흐른 1893년 나이에 비해 연로한 외모(당시 37세)로 묘사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앙투아 네트가 형장으로 걸어나가는 장면으로 서사는 시작된다. 죽음을 앞둔이의 공포와 심리적 동요는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고개를 추겨들고 자신의 떳떳함을 항변하 듯 당당히 단두대로 향한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는 역대급 무 개념 어록으로 유명하지만 이는 근거없는 낭설이다. 사실은 혁명의 명분과 추동력을 위해 악역이 필요했던 혁명정부와 언론은 온갖 음해성 혐의를 뒤집어 씌워 그녀를 마녀사냥 했으며 심지 어는 8살의 어린아들과 근친상간까지 했다는 죄도 뒤집어 쓴다) 그리고 이런 비극적 역사적 현장을 묘사한 장면에 역설적이게 가볍고 빠르게 경쾌한 역설적인 배경음악을 사용하여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도 준다. 그리고 그녀의 단두대에서 그녀의 머리가 잘리는 순간 군중들 속에서 만감이 교차되는 듯 한 표정으로 생 각에 잠긴 24살의 청년장교 나폴레옹의 모습이 클로즈 업된다. 부르봉 왕가의 구체제가 완전 종식되고 격변의 풍량이 몰아치기 시작했음 을 암시하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고 관객은 이역사적 사건이 주인공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음 유추할 수 있다.
1793년 반프랑스 연합 툴롱전투 그리고 영웅의 출정
대혁명 성공 후 혁명의 불길이 외부로 확산될 것을 극도로 우려한 주변 유럽의 왕정국가들(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네덜란드 스 페인 러시아 사르데냐 왕국 파르마 공국 토스카나 대공국 베네치 아 공화국 스웨덴 포르투갈) 반프랑스 연합군을 결성하여 프랑스 내의 왕당파와 손잡고 혁명을 와해시켜려는 무력시도를 하고 반 프랑스 연합의 핵심이었던 영국과 스페인 연합군이 지중해의 항 구도시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툴롱의 요새를 점령한다. 이에 화들짝 놀란 프랑스는 당장 탈환을 시도하지만 혁명의 여파로 유능한 장교는 숙청되거나 외국으로 망명한 상태라 탈환작전에 번번히 실
패하자 20대 청년장교 나폴레옹에게도 기회가 오고 지휘봉을 잡 는다. 포병장교출신으로 전술적 이해도가 높았던 나폴레옹은 포 병전력을 극대화 시키는 창의적 전술과 함께 적을 허를 찌르는 야허간기습으로 전투에 승리하고 국가적 영웅이 됨과 동시에 대중은 그에게 열광한다.(이를 계기로 고속승진의길이 열리게 된다)
1793년~1794년 불완전한 혁명 그리고 국민공회 피에 굶주린 공포정치
공안위원회를 이끌며 숙청의 피바람을 주도했던 자코뱅파(오늘날 좌파진영의 원류) 출신 로베스피에르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의 편집적 광기에 의해 혁명의 본질은 흐려지기 시작하고 여러혼란 을 야기한 채 그 역시 본인의 휘두르던 숙청의 칼날에 역공당해 (테르미도르의 반동)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 후 정치의 중 심에는 혁명적 이상에 불타는 혁명파와 급진적 개혁을 반대하는 왕당파가 대립 하게 된다. 그런 대립과 갈등을 겪고 탄생한 체제가 총재정부다. 하지만 이역시 훗날 주인공 나폴레옹의 쿠테타로 전복된다.
1796년 동반자이자 운명공동체 조제핀과의 결혼
혁명군에 가담한 남편이 처형되고 미망인이 된 그녀는 사교계의큰손이 된 그녀는 승승장구하며 출세가도를 달리던 나폴레옹에게 매력을 느껴게 되고 나폴레옹 역시 그녀에게 맹목적으로 빠 져들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그녀는 남편의 출세를 돕는 조력자 역할도 했지만 그를 자기족과 목적의 도구를 이용하는 듯 한 인상을 자주남겼고 이집트 원정 중 불 륜을 서슴없이 저지르며 남편의 대한 애정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이에 복수 하 듯 나폴레옹 역시 맞바람을 핀다. 하지만 여전히 조제핀에 대한 집착과 애정은 식지 않았다)
1798년 이집트 원정 알렉산더와 시저의 발자취를 따라 꿈틀대는 정복자의 욕망 그리고 동방제국의 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럽의 거의 모든나라들을 굴복시키고 단 하나 남은 숙적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를 목적으로 이집트를 침공한다. 영화는 이 집트의 상징이자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상이 보이는 전장(엠바베 전투)을 비추고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의 강력한 위엄과 포병의 화력앞에 이집트의 맘루크 군대는 기가눌려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하고 있다. 나폴레옹을은 그들을 비웃 듯 피라미드 상단에 포격을 지시한다. 지역을 완전 장악 후 과거에 같은 곳을 정복한 알렉산더 그리고 시저와 교감하는 듯 한 독백을 하며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잠시 후 파라오의 미이라로 추정되는 관속시신을 바라 보며 승리에 도 도취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1779년 브뤼메르 반란 제1통령 권력의 심장부로
전제정치의 서막을 알리고 민중의 피를 뿌려 이룩한 혁명이 종말을 고했다고 평가받는 시점이다. 5인체제인 총재정부의 무능과 프랑스의 내외부적 혼란과 위기로 민중들은 이집트 원정을 실패한 나폴레옹을 소환하고 이를 명분으로 그는 무력을 동원하여 의회개념의 500인 위원회 해체 시킴과 동시에 총재정부를전복시키고 3인 합의체인 통령정부에서 제1통령자리에 오른다.
1804년 제1제정 탄생 시민군의 선두에 선 그가 절대자가 되다.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과 영화에 묘사된 황제대관식 장면 원래 관습대로하면 신의 대리인 개념인 교 황이 직접 군주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는데 주인공 나폴레옹은 직접 왕관을 자신에게 씌운 후 황후 조세핀에게도 왕관을 씌운다. 마치 스스로가 신이자 절대자라고 선언하는 듯 하다. 이를 통해 나폴레옹이 얼마나 권력에 집착하는 제왕적 성격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황제의 절대권력과 권 위를 공유하는 듯 한 모습도 보여준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 천재전략가 전장의 신
프랑수아 제라르가 1810년에 그린 유채화 아우스터리츠의 나폴 레옹
나폴레옹이 지휘한 전투 중 가장 큰 승리이자 천재전력가적 기질 이 가장 돋보인 전투다. 이전투에서 그는 적을 기만하기 위해 우익 에약해 보이는 부대를 배치하고 좌익을 주력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적군이 주력을 오판해 우익을 공격하게 만들어 혼란에 빠뜨리게 만드려는 계산이다. 즉 그는 연합군을 기만하기 위해 치명적인 덫을 놓았다 예상대로 러시아군은 주력부대가 프랑스군의 우익을 향하고 연합군은 별 의심없이 적진 깊숙이 들어 와 덫에 걸린다. 그들은 매복해 있던 기병대의 파상공세와 포병의 화력공세에 맥 없이 무너진다. 이로 인해 오스트리아 러시아 중심의 3차 반프랑 스 동맹은 와해되고 거의 모든 적들이 나폴레옹에 대항할 전의를 상실한다.(영화에서는 가장 진화된 테크놀러지로 몰입도 높고 실 감나게 표현했다. 과거 글라디에이터 도입부의 게르마니아 숲속 전투 만큼의 신선한 충격은 아니지만 리들리 스콧의 농염한 액션 연출과 기교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중 가장 백미는 포 집중사격 으로 얼음을 깨뜨려 연합군을 수장시키는 장면이다 물에 빠져 필 사적으로 허우적거리고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 도입부 오마하비치 상륙을 연상시킨다)
전투 직 후 실제 나폴레옹이 남긴 훈시
"병사들이여, 짐의 민중들은 그대들을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그대들이 나는 아우스터리츠의 전장에 있었다. 고 말하기만 하면 프랑스의 민중들은 '보라, 여기 진정한 용사가 있다 라고 말하리라"
1812년 욕망에 지배당한 나폴레옹 평생의 반려자 조제핀을 버 리다.
작자미상의 작품 "나폴레옹과 조제핀" 두 인물의 표정이 밝지 못하고 미묘한 감정대립과 갈등을 묘사한 듯 한 어두운 색깔로 채 색했다. 아마도 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시점을 묘사한 듯 하다
조제핀을 내치고 새롭게 황후로 맞이한 함스부르크 제국의 황녀마리루이즈(이름에서 알 수 있 듯 도입부에 등장해 처형된 왕비마리앙투아네트의 조카손녀다) 철저한 정략결혼이었지만 그림에서처럼 나폴레옹이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출산한다(나폴레옹 2세)
자신의 이상과 욕망을 완성시켜가던 나폴레옹가장 큰 욕구불만은 후사가 없음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사랑했고 가지려 했고 집착했 던 조세핀을 과감히 버리고 정치적 목적과 세력확장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어린 황녀 마리루이즈를 선택하며 속물적 타락의 정점을 보여준다.(욕망덩어리인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낯 뜨거운 성교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으로 인해 얼마나 주인공이 욕망덩어리인지 보여준다. 어차피 권력의 본질은 무리안에서 최고 강자가 되어 원 하는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의 본능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성이 여
성에 비해 권력욕이 강하고 힘에 논리를 인정하는 정서가 있다 고 함 그 본질은 원하는 여성을 차지하기 위한 성욕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권력자의 욕망으로 투영시키기 위한 장면적 설정이라 고 유추할 수 있다.)
1812년 다가오는 몰락의 그림자 러시아 원정과 보로디노 전투
그 첫번 째 관문인 보로디노 전투를 묘사한 그림, 모스크바 서쪽 110km 지점 보로디노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 결과적으로는 이 겼지만 영화에도 등장하는 코사크족(지금의 카자흐스탄)의 기만 전술과 러시아제국군의 파상공세에 치명타를 입은채 모스크바로 입성하게 된다.폐허가 된 모스크바에 입성하는 나폴레옹
욕망을 들이킬수록 갈증을 느끼고 권력에 중독될수록 이성은 마비된다.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며 자신만의 제국을 완성되어가던 그에게도 몰락의 시기가 도래하기 시작한다. 제국의 절대자 이자 유럽의 패자였던 그도 결국 자기모순과 취약성 그리고 나약 함을 가진 인격체였다. 마지막 남은 숙적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선포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하여 또 한 번 원정에 나선다. 거센 저 항을 제압하고 결과적으로 수도인 모스크바에 점령하는데는 성공하지만 이미 그곳은 텅텅 빈 상태로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지도 이렇다할 전리품도 획득하지 못 한채 승리의 축배를 들자고 외쳤 던 크레믈린에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모스크바 전체가 불 길에 휩싸이고 이를 본 나폴레옹은 충격과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됨과 동시에 비로소 적이 쳐 놓은 덫에 걸렸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장면은 집착의 공허함 그리고 파멸을 암시하는 복선과 같은 느낌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살인적인 러시아의 추 위 보급품의 절대부족등으로 마지 못해 회군을 결정하지만 돌아 오는 과정에서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적군의 집요한 공세로 약60 만명으로 편성된 원정군이 전사 동사 아사 그리고 탈영 및 실종으 로 최후에는 6만명 정도만 남게 되었다 이로 인해 4차 반프랑스 동맹이 결성되고 주력군이 무너진 프랑스는 수도 파리를 연합군에 게 쉽게 내줘 버린다. 동시에 나폴레옹의 제정은 무너지고 본인은 앨바섬에 유배를 가게된다.
1815년 100일천하 워털루 전투 그리고 파멸
비록 앨바섬에 감금된 그지만 그의 권좌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사 그라질리가 없었다. 그리고 당시 무리하게 복고된 루이 18세의 부르봉 왕정은 민중들에게 지지를 잃어가며 원성을 듣고 있는상태였다. 1815년 3월 1일 앨바섬을 탈출한 그는 칸에 상륙했고 공화주의자 농민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그르노블 근처에서는 나폴레옹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온 진압군들은 그의 설득으로 같은편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3월 20일 그의 그를 지지하는 군대를 이끌로 파리로 들어갔으며 이제 몰락한 황제가 아닌 혁명을 이끄 는 지도자로서 다시 권좌에 올랐다. 하지만 이를 용인 할 수 없었 보수왕당파와 반프랑스 동맹은 다시 군대를 편성해 출정하였다. 이에 맞서 벨기에로 진격한 나폴레옹은 1815년 6월 16일에 리니 에서 프로이센군을 대파했다. 이틀 뒤 그는 웰링턴이 지휘하는 영국군과 워털루에서 일전을 맞이하게 되지만 상대 지휘관 웰링턴의 뛰어난 전술적 역량을 과소평가 했는지 전투는 그가 설 계한 대로 풀리지 않는다 특히 프랑스가 자랑하는 기병전술을 무력화 시키는 방진대형으로 고전하며 병력 손실은 늘어난다. 그러다 여러차례 집중공세로 승기를 잡는듯 했지만 리니에서 격파당한 블뤼허가 지휘하는 프로이센 군대가 전열을 정비하여 워털루로 진격하여 영국군과 극적으로 합류하게된다. 이에 매우 당황해 패닉 에 빠진 프랑스군은 수세에 몰리게 되고 결국 대형이 무너져 패배 하게 된다. 패장이 되어 파리에 돌아 온 나폴레옹은 의회의 강력한 요구로 6월 22일에 퇴위하고 빈체제하의 동맹군은 그를 남대서양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할 것을 결정한다.
(영화에서는 이장면이 클라이막스이자 하일라이트라고 생각했는 지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듯 표현했다. 대규모 물량공세와 인원동 원 그리고 뛰어난 기술적 효과로 완성된 사실감 그리고 카메라 앵 글 역시 전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버드아이즈 뷰 앵글부터 와이즈 샷 롱샷 풀샷을 클로즈 샷을 번갈아 가며 속도감있게 사용 하여 역동성을 극대화 시킨 연출을 보여준다.)
1821년 프랑스 군대 조제핀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삶의 종
말
나폴레옹이 유배되어 말년을 보면 세인트 헬레나 섬
워털루에서의 패배 그리고 백일몽이 된 백일천하 세인트헬레나섬의 유배 다시 한 번 절대자를 꿈꿨던 나폴레옹의 광적인 집착과 탐욕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인물이 었을 그는 점점 병약해져 1821년 5월5일 51세로 그의 장대했으 며 기구했던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유언으로 전 해지는 세 마디는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무슨 의중으로 그런 말을 남긴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그토록 집착했고 가지고 싶어했고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궁극에는 모든 것을 잃었고 오히려 자신이 그 존재들에 지배당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이란 인물의 존재적 의미
나폴레옹하면 떠오르는 가장 많이 떠오르는 이미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세계 3대 법전으로 손 꼽히는 나폴레옹 법전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5월 3일 스페인의 왕권을 찬탈한 나폴레옹을 규탄하는 마드리드 시민의 봉기를 무참히 진압했던 사건을 묘사한 그림이다. 나폴레옹의 역사적 과오를 고발한 자료이기도 하다.
인류사 또는 세계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인물이자 그의 존재적 흔적 또한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는 보나파르티즘이란 이념이 생각날 정도로 제왕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역으로 법치주의 능력위주의 실용주의 시민혁명평등사상을 세상에 퍼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영향력으로 인해 철학 이념 가치관 사회제도 시스템이등이 진화했다는 점도 부인할수 없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너무나 유명한 이격언은 불굴의의지의 표상이기도하고 그가 이룬 성과 그가 스스로 개척한 운명 그리고 제왕의 자리 유럽의 패자 이런 요소들은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인물이면 열광할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영웅적인 모습이면에 존재하는 침략자 학살자같은 어 두운면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적 욕구 이상을 위해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다. 그로 인해 그의 조국 프랑스 역시 그와 흥망성쇠의 궤적을 함께했다. 어차피 인간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동물이라 명과 암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보기 드물정도로 입체적인 인격적 성향 가진인물이며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여섯개 달리고 각 머리마다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는 여신 히드라 를 연상시킨다. 어쩔때는 전쟁영 웅이자 국가적 영웅 그리고 시민 혁명의 선두에 선 대중적 영웅 그 리고 혁명적 대의로 짓밟고 프 랑스를 제국으로 만든 탐욕스런 권력자 그리고 침략자 학살자 또 는 인민주권론의 루소에게 열광했던 자유주의자 그리고 한 여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 또는 욕망을 위해 자신의 여자를 버린 속물적 냉혈한 목적을 위해 300만의 목숨을 갈아넣은 극단 적 에고이스트 나열하자면 그의 다중적 인격은 끝이없다. 어쨌든 그는 근대사의 중심에 있었고 역 사를 창조하고 써 나갔던 인물이 다. 그런 그의 드라마틱하고 파란 만장한 삶이 인류의 뇌리속에 깊이 박혀있고 여러문화적 요소에 의해 존재가 투영되는건 당연한 현상이다.
영화적 총평
주인공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만큼 기대가 상당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감독과 주연배우의 이름값까지 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면 장면장면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걸작은 물론이고 수작이라고 평하기는 부족함이 너무 많은 작품이다. 특히 격변기의 프랑스 역사 나폴레옹의 파란만장한 삶을 2시간 38분안에 다 담는것도 무리지만 그 짪은 볼륨안에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이 영화자체가 산만해 지고 몰입도를 떨어 뜨리는 오류를 범했다.(비유하자면 집 평수는 좁은데 식구도 많고 여러 세간살이를 억지로 욱여 넣으려니 집이 엉망이 된 느낌) 그리고 나폴레옹의 입체적인 캐릭터 성을 잘 살리지 못 했고 스 토리 구성은 조제핀과의 관계에 필요이상의 비중을 둬 속도감을 떨어뜨리고 극진행을 정체되게 만들었다. 즉 나폴레옹이란 개인의 삶이 조제핀이라는 족쇄에 채이는 느낌이다. 그리고 시점 변화와 스토리 진행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 하다. 그렇다 보니 개연성과 스토리 진행의 설득력이 부족하고 딱히 필요없는 군더더기가 제법 있어 관객은 지루함을 느낀다. 그리고 주연인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좋았지만 과연 나폴레옹이란 굵직한 역사적 인물에 생동감을 부여했는지는 의문이다. 전작 조커와 같은 강한 캐릭터성과 입체감이 드러나지 않았으며 한국나이로 50줄에 접 어든 그가 20대의 청년 나폴레옹을 소화하기는 무리수가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 역시 그의 명성을 이을만한 진화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고 과거 연출했던 에어리언 글라디에이터 블랙호크 다운 같이 완성도 높은 영화의 맹맥을 잇기는 실패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족함만 넘쳐난다고 일방적으로 폄하할 작품은 아니다. 역사왜곡 논란이 있지만 시대적 고증에 충실했고 나폴레 옹을 재해석하려는 시도와 파노라마적인 삶을 충실히 담으려는 노력은 엿보였다. 그리고 뛰어난 연기자들의 열연 거액의 제작비 와 최고의 스탭이 의기투합한 걸 보여주듯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 짜임새 있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 시퀀스등은 명장은 죽지 않았다 는 느낌을 받게 한다. 아무튼 곧이어 나올 4시간 짜리 감독판이 공개된다면 떨어지는 완성도에 대한 원성을 무마시킬 수 있을지 한번 기대해 본다.
첫댓글 매번 감사히 잘보고 있습니다
아 네 장문의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