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士農工商은 조선조 시대의 신분 서열이었다. 글을 아는 선비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농민들이 대다수인 백성들을 다스렸다.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와 장사나 무역을 하는 상인들은 賤視의 대상이었다. 군인들도 文官들에 비해 차별을 많이 받았다. 선비와 양반들은 군대 복무를 면제 받았다. 기술자, 商人, 군인들이 천시 받는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富國强兵이 불가능한 나라가 된다. 생산력이 약하고 自主 국방이 불가능한 허약한 나라, 그것이 바로 조선조 후반기의 모습이었다. 그 결과는 日帝의 식민지가 되는 길이었다.
2. 朝鮮朝의 對外정책은 사대주의였다. 큰 나라 明과 凊에 사대함으로써 自主국방의 의지를 접었다. 왜병이 쳐들어오면 明軍을 청해 나라를 지킨다는 발상이었다. 상비군을 많이 둘 필요가 없어졌으니, 즉 군사비 지출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기가 막힌 정책이라고 할지 모른다. 세상 일은 그러나 공짜가 없다. 자주국방을 포기한 대가는 너무나 비싸게 치러졌다.
3. 明이나 凊만 쳐다보는 사대외교로 해서 우리는 국가 안보를 大國에 맡겨버리는 안일에 빠지게 되었다. 자기 나라, 자기 왕조, 자기 집안의 안보를 외국에 의존해버린다는 것은 좋은 꾀 같지만 이는 지도층을 타락시킨다. 자신의 안전을 他人에게 맡기는 자의 무책임 그것이다. 정치의 핵심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것, 즉 안보를 놓고 벌이는 게임이어야 한다. 그 중요한 제1주제가 빠진 정치는 밑도 끝도 없는 정쟁과 당파싸움에 함몰한다.
4. 조선조의 당파싸움 정도는 어느 나라에도 있는 것이란, 옹호론이 있다. 일견 그럴 듯해보인다. 권력투쟁은 정치의 본질이니까. 조선조의 당파싸움이 무슨 주제를 놓고 벌어졌느냐가 평가의 기준이다. 정치인들이 노선을 달리하여 고귀한, 절실한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싸웠다면 그나름대로의 美學이 있다. 정치에서 안보와 외교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사소한 것들만 남는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건 死鬪를 벌이면서 치사한 모함과 음모를 마다하지 않은 데서 조선조 정치의 저질성이 있다. 조선조의 당파싸움에 우리가 절망하는 것은 거기에 동원된 숫법의 저질성과 主題의 사소함이다.
5. 안보를 외면한 정치는 치사해지고 저질스러워진다. 안보를 주한미군에 맡겨놓은 우리 정치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자주국방을 하는 이스라엘 정치가 시끄럽긴 하지만 우리 정치보다 훨씬 정직하고 활력이 넘치며 책임이 있는 것은 정치의 제1주제인 안보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사대주의로 자주국방을 포기하면 얻는 것은 안일과 퇴폐이고 잃는 것은 경제와 과학이다. 상비군을 강하게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 경제력을 발전시켜야 할 動機도 없어진다. 경제력은 기술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학을 발전시킬 동기도 사라진다. 군사력과 과학기술력과 경제력은 항상 동반 발전한다. 조선조의 경우는 동반 낙후한 경우였다.
7. 조선조는 왜 망했나.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가장 중요한 하나의 이유만 든다면 자주국방이 안되어 망한 것이다. 凊軍이 대원군을 납치해가고 日軍이 명성황후를 참살해도 조선의 군대는 自衛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이런 나라가 제국주의 시대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한반도 주위에 자선단체 같은 나라만 모여 있다면 모르겠지만.
8. 조선조의 저질정치를 주도한 계층은 선비들이었다. 조선조 선비들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킨 사람들인가. 그들은 경제에 정통하여 산업과 상업을 발전시켰던가. 그들은 대전략가로서 전쟁에서 連勝했는가. 불행하게도 조선조 선비들은 그럴 능력이 없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주자학도였다. 관념철학의 도사들이었다. 오늘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을 읽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 중국의 선현들이 쓴 책을 달달 외우고 당위론을 교조적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이 알고 배운 것은 낡은 교과서의 반복 暗記였다. 물질세계에서 실천될 수 없는 지식,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고 편하게 잠들게 하는 데 소용이 되지 않는 지식, 과학과 경제와 군대에 대해서는 대책과 代案이 없는 지식, 인간이 지킬 수 없는 규범을 정해놓고 거기에 미달하면 사정 없이 공격해들어가는 위선적 명분론의 지식이었다. 머리만 큰 이런 화성인들이 조선조를 지배했다.
9. 대한민국이 민족사에서 이룩한 네 가지 재발견이 있다. 해양정신의 재발견, 기업가정신의 재발견, 尙武정신의 재발견, 自主의지의 재발견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우리 민족사에서 두번째 황금기이다. 첫번째 황금기는 통일신라이다. 7-9세기의 통일신라는 세계 최선진 문명국이던 唐과 공존하면서 세계 1류 국가의 생활수준과 자존심을 지켜갔다. 文武의 이상적인 조화, 자주정신과 상무정신의 뒷받침, 예술과 정치의 활력, 신라인의 당당한 국제진출. 이런 모습들이 고려와 조선조를 건너뛰어 지금 대한민국에서 재현된 것이다.
10. 민족사의 제2 황금기를 연 대한민국, 그 4대 재발견의 主役들은 조선조에서 가장 천시받던 계층이었다. 군인, 상인(기업인), 과학기술자. 대한민국 55년의 가장 큰 공로자는 교수도, 기자도, 정치인도 아닌 군인, 기업인, 과학 기술자이다. 조선조의 피압박 계층이 가장 위대한 일들을 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혁명이다. 즉 한국의 근대화 혁명은 士農工商의 계급서열을 파괴해감으로써 이룩된 것이다. 근대화 혁명의 騎手 박정희는 “근대화의 핵심은 士農工商을 商工農士로 만드는 것이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11. 그러면 조선조의 선비들은 대한민국에서 사려졌는가. 그렇지 않다. 그럴 수도 없다. 선비 계층은 사라졌지만 그 면면한 정신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계층이 있다. 사회과학과 인문계 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거의가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과학, 인문계 교수들은 국제경쟁력이 있는가. 소총 한 자루 없던 조선조 군대에서 세계 제4위의 강군을 만들어낸 한국의 군인들처럼, 불모지에서 세계10위권의 경제규모를 만들어낸 한국의 기업인들처럼, 반도체·원자력발전·조선·정보기술 분야에서 세계 頂上 수준에 이른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처럼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국제경쟁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12. 교수들을 싸잡아 경쟁력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인을 싸잡아 진실을 모른다고 비판하는 것처럼 위험한 집단적 裁斷이다. 여기서는 대체적인 경향만 지적할 뿐이지 개별적인 학자 교수 비판이 아님을 밝혀둔다. 사회과학 인문계 교수들을 한국처럼 많이 높게 관직에 등용하는 나라는 달리 없다. 이것은 士農工商의 신분서열을 뒷받침했던 조선조의 정치풍토와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조선조의 선비들은 우리 민족사 最惡의 지배계급이었다. 능력면에서나 도덕면에서. 나라를 외국에게 넘긴 점에서도 그러하다(그 전의 흥망은 王朝의 흥망이었지 민족국가의 흥망은 아니었다. 고려가 망했다고 민족과 나라가 망한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교수들이 이런 점에서도 선비들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없다.
13. 기업인, 장교, 공무원, 언론인,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 자주 가는데 나의 오랜 관찰에 의하면 기업인들이 가장 경쟁력이 있고(똑똑하고), 교수들이 가장 떨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교수들의 교과서는 과거의 정리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생동하는 현실, 내일 일어날 불확실한 미래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하는 國政 운영에 필요한 지식이 아니다. 이미 일어났던 것의 논리적 정리 속에서 오늘과 내일을 열어가는 지혜가 숨어 있겠지만 그 지혜를 뽑아 써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교수가 적당한 직업이 아니다. 미국, 일본, 유럽의 경우 교수들을 장관 이상의 고위직에 발탁해서 쓰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있다면 그 학자는 그 분야에서 大家이고 일류인 경우에 한정된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인사이다.
14. 닉슨이 안보보좌관으로 썼던 헨리 키신저, 카터가 안보 보좌관으로 썼던 브레진스키, 부시가 안보 보좌관으로 쓰고 있는 라이스가 교수 출신인데 일류이다. 사뮤엘 헌팅턴, 에즈라 보겔 같은 하버드 대학의 세계적 대학자도 정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국장급이었다. 우리나라처럼 행정경험이 전혀 없는, 학문적 성취도 별로인 교수를 대통령 수석비서관이나 장차관으로 기용하는 경우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교수들의 고위직 기용은 선비들이 정권을 장악하였고 선비들, 즉 학자들에 대한 국가적 대우가 과했던 조선조의 정치전통과 분명히 관련 있다.
15. 한국의 일부 사회과학, 인문학 교수들 속에서 우리는 선비들이 가졌던 관념론, 위선적 명분론, 현실에 대한 몰이해, 행정 및 실천 능력의 허약함, 특히 군대와 기업에 대한 반감과 과학기술에 대한 無知를 발견한다. 이런 특성은 21세기형 국가 경영에는 모두 해가 되고 독이 되는 것들이다.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상당수 교수들은 알게 모르게 전근대적인 士農工商的 신분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군대와 기업에 대한 경멸감과 경계심과 질투심 같은 감정 말이다. 이런 것들이 정부 요직에 앉은 교수 출신자에 의하여 정책화된다면 큰 일이다.
16. 물론 경제부총리를 지낸 南悳祐, 金滿堤씨처럼 어떤 기업인이나 관료들보다 경쟁력이 높았던 교수출신 공직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그 성격이나 스타일이 교수사회에서도 예외적인 존재였고 그런 예외성 때문에 성공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17. 글이나 말로써 먹고사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착각이 있다. 근사한 말과 글을 쓰면 자신도 근사해지고 그것이 당장 실천된다고 생각하는 것. 글과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현실의 정치, 기업, 행정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은 이런 과대망상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상아탑 속에선 모른다. 교수들에게 그곳은 경쟁이 없는 사회, 비판이 없는 사회, 항상 떠받들어지는 사회가 아닌가.
18.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중의 하나는 자기 합리화이다. 선비들은, 현대판 선비들도 자신의 실수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업인은 흑자냐, 적자냐로 승패가 분명하다. 군인들은 승리냐 패전이냐로 승부를 결정짓는다. 정치인은 낙선이냐 당선이냐, 과학자는 실험을 통해서 자신의 지식을 검증받는다. 사회과학과 인문학 학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한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교수들은 전부 성공만 한, 진리에 도달한 聖人들이었나.
19. 이런 자기합리화의 버릇은 반성과 재검토의 과정을 거부한다. 행정에서 가장 필요한 과정이 생략되면 정책의 실수는 막을 수 없다. 그 실수에 대해서 교수 출신들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경향도 있다.
20. 교수 重用 사회는 조선조의 선비 重用 정치로 돌아갈 위험성을 내포한다. 선비는 전근대를 이끈 실패한 지도 그룹이었다. 그 잔재를 이어받은 교수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의 근대를 연 것은 이승만, 박정희 같은 불세출의 지도자들과 기업인, 장교, 과학자들과 같은 실용주의 집단이었다. 미래의 한국을 이끌고 갈 지도그룹을 17세기 정신세계에서 구해선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