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석중에 참석한 소설가 김승옥씨 - 소설가 이호철(맨 오른쪽)씨와 오랜 만에 만난 소설가 김승옥(가운데)씨 부부가 서로 안부를 나누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왼쪽은 시인 김종해씨. |
‘2005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은 그야말로 모든 문인들이 한바탕 흥겹게 어우러진 잔치 마당이었다.
30일 저녁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는 세대와 장르, 출신배경 따위가 모두 의미를 잃었다. 오랫동안 한국문단을 키워온 원로 문인들은 서로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자분자분 정을 나누었고, 한국문학의 오늘을 이끌고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중진 소장 작가들은 너나없이 흥에 취해 떠들썩하게 분위기를 달구었다.
|
가수야? 소설가야? - 소설가 구효서씨가 무대에 올라가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르는 동안 소설가 유정룡씨가 큰 몸집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
○…행사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문인은 소설가 김승옥씨였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는 행사 시작 시각인 오후 7시보다 한시간이나 앞서 부인과 함께 입장해 자리를 잡았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시종 조용한 미소를 잃지 않는 그에게 동년배 문인들은 물론, ‘무진기행’ 등을 통해 그로부터 혁명적 감수성의 세례를 받았던 후학들이 줄줄이 찾아와 인사를 했다.
단편 ‘생명연습’으로 1962년 스물 한살 나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승옥씨는 이날 다시 ‘문청(文靑.문학청년)으로 되돌아 갔다. 소설가 이청준씨는 그를 두고 “아무래도 이 자리에 오면, 승옥이가 꼭 와 있을 것 같았다. 승옥이와 내가 막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60년대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살짝 눈물을 비쳤다.
○…CBS FM ‘김갑수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진행하고 있는 시인 김갑수씨의 사회로 3시간에 걸쳐 진행된 행사에서 ‘성탄제’라는 시로 잘 알려진 김종길 선생은 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신이 손수 뽑은 시인 이근배(65)씨의 인사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근배 시인은 “문학적 영감이 넘치게 해준 한국일보가 다시 문학에 대해 희망과 용기를 준데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진행자의 갑작스런 호명으로 단상에 오른 소설가 박완서씨는 소녀처럼 수줍어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간신히 근황만을 전하고는 얼른 자리로 돌아가 동료들과 어울렸다. 함께 자리한 시인 김남조씨는 “정말 편안한 자리여서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다”고 즐거워했다. 이들은 한 테이블에서 소설가 오정희, 시인 신달자.노향림씨 등과 함께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며 행사장을 지켰다. 이들 외에도 시인 김광규.황금찬.고은, 소설가 조정래, 평론가 유종호.백낙청씨 등 한국문단의 거목들이 거의 대부분 참석해 행사에 중량감을 한껏 더했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이날 참여한 문인들의 숫자에 놀라워 했다. 김광규 시인은 “얼추 200명은 넘게 온 것 같은데 지금껏 문인들이 이렇게 많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처음 본다”며 “정말 잘 한 행사다. 역시 한국일보의 문학적 전통과 무게를 무시할 수 없다”고 평했다. 평론가 정과리씨는 “정말 이런 일은 있기 힘들다. 놀랐다”고 했다. 젊은 소설가 이명랑씨도 “원로 선생님들을 이렇게 많이 한 자리에서 뵌 건 처음”이라며 “문학이 작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문학인들을 이렇게 소중히 여겨주시는 이 자리가 정말 즐겁다”고 기꺼워 했다. 저녁에 불가피한 다른 일정이 겹쳤다는 소설가 최윤씨는 일찌감치 찾아와 방명록에 가장 먼저 이름을 남기는 정성을 보였다.
|
행사장 가득 메운 문인들 - 원로 소장 문인들이 함께 어울려 행사장 가운데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과 술을 들고 있다. |
○…원로 대가들이 진중하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중견 소장 문인들은 그들다운 활력과 흥을 마음껏 드러냈다. 전주부터 서울까지의 먼 길을 밟아 부랴부랴 뒤늦게 도착한 소설가 공선옥씨는 곧바로 예의 걸쭉한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 잡았고 구효서씨는 기타 반주에 맞춰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과시해 환호를 받았다.
취흥에 젖은 시인 이윤학씨는 좌중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니다가도 백낙청 서울대 교수를 보자마자 대뜸 맥주를 따라올리며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고 한국일보에 ‘길 위의 이야기’를 연재하는 소설가 이순원씨도 ‘주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2004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김경욱 작가와 올해 ‘미실엔옘섟窩瞿?문학상을 탄 김별아, 시인 정끝별 강정 소설가 고은주 등 곳곳에서 젊은 문인들끼리 유쾌하게 의기투합했다.
○…밤 10시가 되면서 행사는 마무리됐지만 ‘문학인의 밤’은 장소를 옮겨 이어졌다. 시인 김정환, 소설가 공선옥, 평론가 방민호씨 등 수십 명의 혈기왕성한 젊은 문인들은 한국일보사 인근의 인사동과 청진동 골목을 누비며 행사장에서 미처 다 발산하지 못한 문학과 삶에 대한 열정을 새벽까지 술과 노래에 담아 풀어냈다. 이날 밤 중학동 14번지 한뮌瞿말?주변은 그대로 한국 문단이었다. 시인 신달자씨는 “이처럼 멋진 자리를 마련한 한국일보가 건강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염원을 가슴에 묻고 간다”고 말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
첫댓글 앙꼬 님! 바쁠텐데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문에서 보는 것보다 더 현실감이 있네요. 어제는 잘 들어 가셨겠죠. 어제 바지를 세 벌이나 샀는데 모두 맘에 드네요. 또 사러 가야 할 것 같네요.
덕분에 잘 들어왔습니다. 옷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