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청량산 읽기[1]
1. 봉화 청량산
예전에 이 나라에서 오지 중의 오지라면 경상도의 BYC 트라이앵글(B-봉화, Y-영양, C-청송)과 전라도의 무진장(무-무주, 진-진안, 장-장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통팔달하는 도로망의 개설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 동네는 산간오지의 맛과 멋이 남아 있는 이 나라의 청정지대이다. BYC 트라이앵글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험준한 산세로 둘러싸인 곳으로 나는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이 일대의 산 맛을 본 적이 있다.
청량산이라고 하면 남한산성 수어장대가 있는 봉우리도 청량산이고, 서울 동대문구에 청량리가 있어 이름처럼 청량(淸凉)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지 모르나(청량리라면 588로 잘 알려진 선수들의 집결지가 있었으나 이른바 성매매법의 시행 이후로 지금은 거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봉화의 청량산에서 비로소 淸凉이라는 이름값을 찾을 수 있다.
청량산(淸凉山)은 바로 이 일대 봉화를 대표하는 산이다. 퇴계 이황이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했던 산이기도 하고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노국공주와 함께 이 산에 들렸다가 그만 반해버린 산이기도 하다. 이 산줄기 곳곳에 퇴계와 공민왕, 최치원과 김생, 주세붕, 의상과 원효의 채취가 남아있다. 청량산은 설악과 지리와 같은 큰 산은 아니지만 이 산이 내뿜고 있는 향취는 어느 산에도 뒤지지 않는다.
청량산은 ‘6·6봉(峰), 12대(臺), 3굴(屈)’로 표현되는 바위산으로 최고봉은 장인봉(해발 870.4m)이다.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외장인봉, 선학봉, 탁필봉, 자소봉 등 12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는 형세를 취하고 있으며, 청량산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산세가 수려해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던 산이다. 물론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들어있고 도립공원으로도 지정돼 있다.
최근(2008. 5. 31) 청량산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잇는 국내에서 제일 긴 하늘다리(현수교)가 놓여짐으로써 청량산에 또 하나의 명물이 생겼다.
[조선일보 2004. 11. 19.자에서]
2. 청량산 찾아가기
나는 백두대간을 종주하기 전에 한국의 100대명산을 대부분 찾아보았는데 봉화의 청량산만은 찾아보지 못하고 백두대간길에 들어섰다. 2004년 말 백두대간종주를 마치고 그 후로 줄줄이 이어지는 정맥일정 때문에 청량산은 마음에만 묻어두고 있었다. 작년(2007년) 가을에는 사다리팀들과 청량산을 일주하기로 하였다가 그만 학교일 때문에 가지 못하고 청량산만은 미답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퇴계 이황이 청량산에 오르고 “讀書人說遊山似 今見遊山似讀書”(사람들 말하기를 독서는 산을 유람함과 같다 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독서와 비슷하구나)라는 시를 남겼는데 이제 비로소 책을 읽는 것처럼 청량산을 읽어보기로 한다.
[작년에 계획했던 청량산 종주 코스]
2008. 10. 31. 시월의 마지막 밤 9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집에 들어오니 밤 12시가 넘었다. 잠을 자는둥 마는둥 11월 1일 토요일 아침 깨어나자 마자 잠실역으로 향한다. 마침 아침 7시 40분에 잠실역을 경유하는 산악회의 버스가 있다. 이 산악회에 묻어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청량산을 찾아가 보는 것이다.
[롯데월드 너구리상 앞]
롯데월드 너구리상 앞은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로 떠나는 행락인파로 도때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주로 중년 아줌마들로 산행이라기보다는 놀고 마시러 행락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내장산, 주왕산, 대둔산 등 전국의 단풍명산으로 가는 여행사 버스들이 어지럽게 도로를 점령하고 있고, 여행사 담당자들이 현수막을 걸고 회원들을 찾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산악회 버스들은 주로 잠실역 1번출구 송파구청 방향에 집결하는데 오늘 내가 타는 산악회의 버스는 3번출구 너구리상 앞에서 정차한다고 하여 타고 갈 버스를 찾느라고 애를 먹었다. 간신히 산악회 대장과 총무를 만나 석촌호수변에서 버스를 탄다. 시간은 오전 7시 55분. 내가 제일 나중에 버스를 탔고 45인승 버스는 만땅이다. 이렇게들 새벽부터 놀러다니는 사람들이 많은가?
산악회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전국의 명산을 찾을 수 있다. 돈 3만원 회비만 내면 아침식사용 김밥도 주고 산행을 마치면 식사와 술까지 제공해준다. 혼자 차를 몰고 현지로 이동하는 것도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머리가 어지러운 초짜들의 경우 산악회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들머리로 이동할 수 있고, 서울로 돌아오는 것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 돈 3만원으로 그럭저럭 하루를 잘 놀다가 올 수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산을 좀 알게 되면 끼리끼리 아니면 홀로 다니게 된다.
버스 차창으로 내비치는 산야는 노오랗게 채색되어 있다. 이렇게 세월이 연연세세 세월은 흘러가는가. 개스가 걷히기를 기대하면서 버스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버스는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달리다 휴식을 위해 문막휴게소에서 선다. 역시 휴게소마다 행락인파로 어지럽다.
[주유소 화장실]
휴게소 화장실은 대만원, 이런 경우에는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하면 기다리는 사람들도 없고 편하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자연공원, 도시공원, 관광단지, 터미널, 백화점, 시장, 전문상가, 고속도로 휴게소, (도시)철도역, 항만터미널, 공항, 주유소, LPG충전소, 체육관이나 운동장, 공연장 등에는 공중화장실설치를 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공중화장실"이라 함은 공중의 이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국가·지방자치단체·법인 또는 개인이 설치하는 화장실을 말하고, 화장실의 설치·관리자가 이용자에게 이용료를 받을 수 있는 유료화장실과 구별된다.
위 법에 의하면 유료화장실을 설치·운영하고자 하는 법인 또는 개인은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하고, 유료화장실의 설치·운영자는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신고를 한 후 15일 이내에 공중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유료화장실을 나타내는 표지를 부착하여야 한다. 이 규정을 위반하여 유료화장실을 설치·운영한 자는 6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제 우리나라에 유료화장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래 전(1994년경)에 EU 연수 중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들렸다가 동전을 넣어야 화장실문이 열리는 공중화장실을 보고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복지국가라는 나라가 시민의 돈을 받으면서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런 복지국가는 싫다고 항변했더니 화장실 관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료화장실이 아닌 공중화장실은 누구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주유소에 기름을 넣은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아니다. 길을 다니다 급한 상황이 오면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당당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공중화장실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하고 1,000명 이상의 다중이용시설의 경우에는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 대·소변기 수의 1. 5배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하도록 되어 있다.
종래 휴게소 화장실앞을 보면 여성화장실은 남성화장실에 비해 긴 줄이었다. 남성화장실에는 변기가 대변기와 소변기나 나누어지나 여성화장실에는 하나로 되어 있고, 신체구조상 여성들의 경우 남성들에 비해 일을 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제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를 대폭 늘렸으므로 종래와 같은 불편은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법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
버스는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내리 달리다가 풍기톨게이트로 들어선 다음 영주를 거쳐 봉화로 진입한다. 오전 11시가 넘어 청량산도립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3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3. 청량산 경일봉
청량산 12봉우리 중 중심인 자소봉과 최고봉인 장인봉을 가기 위해서는 청량폭포입구, 정자, 입석 등 3개의 기점에서 좌측의 오르막 등산로로 접어들면 된다.
[정자 기점]
주차장에서 버스를 세우고 내리니 이미 전국의 여러 산악회에서 몰고 온 버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산행대장의 선도하에 스트레칭을 마치고 모정 기점에서 청량사 방향으로 오른다.
오전 11시 45분 산행시작.
[청량사 일주문]
청량사로 오르는 포장도로는 꽤 가파르다. 청량사 입구까지 10여분을 깔딱거리며 올라야 한다.
[청량사로 가는 도로]
도로변은 완연히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다. 단풍나무는 많이 볼 수 없으나 노란색의 물결이 만추의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가을의 빛]
가을의 빛이 너무나 곱다. 편안하다. 봄처럼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는 계절의 진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만추 속으로]
길은 오르막에서 잠시 내리막으로 바뀌며 흙길이 나타났다가 다시 포장길로 바뀐다.
[갈림길]
좌측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청량사이고 우리는 경일봉부터 오륵기 위해 오른쪽 산꾼의 집 방향으로 길의 방향을 튼다. 청량사는 나중에 둘러볼 생각을 한다.
[산꾼의 집]
우측 산길을 조금만 걸어 올라가니 청량정사와 산꾼이 집이 나타난다.
[달마원]
산꾼의 집은 달마도의 명장인 이대실님의 공간이기도 하다.
산꾼의 집 좌측에 청량정사가 있다.
[청량정사]
청량정사는 퇴계 선생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호는 오산당이다.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에 퇴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청량산에서 안동으로 가는 퇴계오솔길이 있고 이 동네에 퇴계종택, 퇴계묘소, 퇴계공원, 도산서원뿐만 아니라 이육사문학관도 있다. 그만큼 이 동네에는 퇴계의 얼과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청량정사 안내]
[옛것을 위하여]
산꾼의 집 우측에 온갖 옛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공간이 있다.
탈, 북, 호롱불, 남폿불, 미싱틀, 공중전화기, 솥, 요강단지까지
풍로, 다리미, 아코디언, 사진기, 대패, 고무신 등등
참으로 잘도 모아두었다.
日?山房, 일월산방인가?
산꾼의 집에서 따근한 약차 한 잔을 공짜로 얻어마신다. 이곳으로 올라오느라 땀을 뺏는데 다시 뜨거운 차를 마시니 온몸으로 열을 받는 것 같다. 이 집의 주인장이신 이대실님이 산꾼손님들을 맞고 있다. 넉넉한 모습이다.
[구름처럼 살며 바람처럼 더돌며]
위 액자의 글에 삶을 관조하며 사는 산꾼의 집 주인 이대실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대실님을 보도한 각종 자료들]
[산꾼의 집 마당 석물들] 동자석들이 안경을 쓴 모습
산꾼의 집에서 약차를 마시며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니 선두일행들이 다 떠나버렸다. 서둘러 경일봉 방향으로 길을 떠난다.
[이정표]
길은 낙엽이 쌓여있는 호젓한 길이다. 오랜만에 흙길 오르막을 걸어보는 것 같다. 경일봉 오르막 능선으로 달라붙기 전에 좌측으로 청량사의 모습이 보인다.
[청량사]
청량산에 왔으면 웅진전과 김생굴을 보아두어야 하는데 일단 경일봉에 오르기로 하고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모정입구에서 출발한지 30분만에 경일봉 능선에 진입한다.
[경일봉 능선 이정표]
이정표는 이곳에서 경일봉까지 0.5km에 50분이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500m에 50분은 너무 과장이고 급경사의 오르막이 이어지는 것은 맞다. 오르막이지만 흙길오르막이라 편하다.
[경일봉 오르는 길]
[숲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청량의 봉우리들]
[축융봉 방향]
[경일봉 정상표석]
땀을 뻘뻘 흘리며 50분 걸린다는 경일봉을 15분만에 올랐다. 12시 30분 경일봉 도착.
이 이후부터는 편한 능선길이다.
4. 자소봉
[편안안 능선을 따라]
경일봉을 떠나 직진하던 능선은 탁립봉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면서 나아간다. 낙엽이 쌓인 흙길을 유유자적 걷는다. 역시 너덜길이나 돌길보다 흙길이 좋다.
암산에서 바위의 기운을 받는 것도 좋지만 나는 육산에서 땅의 기운을 받는 것이 더 좋게 느껴진다. 산에 오래 다니다보면 흙길을 걸으면서 땅의 기운이 내 몸으로 전달되어 땅과 아니 이 지구와 한몸으로 육화되는 느낌을 갖는다. 결국 나의 육신은 내가 딛고 서 있는 땅을 떠날 수 없다.
841m 봉에서 좌측에 장인봉, 중간에 자소봉의 모습이 보인다.
[북쪽 백두대간 방향]
[우뚝 솟은 자소봉]
자소봉을 가기 위해서는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우측 오르막을 오르면 자소봉으로 오르는 길 이정표가 나온다.
[퇴색한 단풍]
이제 올 가을 단풍도 수명을 다했다. 완전히 탈색하고 온몸으로 겨울을 기다리야 한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이렇게 변전에 변전을 거듭한다.
[자소봉 갈림길 이정표]
자소봉갈림길에는 선두대장이 기다리고 있다고 자소봉을 갔다 오라고 한다. 자소봉으로 오르는 긴 철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자소봉으로 오르는 철계단]
[축융봉 능선]
[자소봉 정상 표석]
보살봉으로도 불리는 자소봉.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자소봉 암봉 끝까지는 오를 수 없다.
자소봉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을 즐긴다.
[자소봉 암봉]
[북동방향]
가운데 뾰족 솟은 산이 무슨 산일까?
당겨보니 산꼭대기에 어떤 시설물이 있는데 무슨 산인지는 모르겠다. 혹시 영양의 일월산?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창수령에서 일월산 밑에 있는 조지훈 생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문수지맥?]
혹시 좌측으로 흐르는 능선은 문수지맥이 아닐까? 선무당이 사람잡는 식으로 멋대로 찍어본다.
[문명산 줄기]
저 축융봉 능선도 타야 되는데
첫댓글 많이 들어본 산이긴 한데 여태 한 번도 가보진 못했네요. 살다보면 가볼 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