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강의실에 상규가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는 장난삼아 살금살금 그에게로 다가가 머리를 '툭'치며 말했다.
"야, 임마! 뭐해? 수업이 끝났으면 집에나 가지."
상규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뒤로 돌며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아, 형민이구나. 너는 오늘 수업이 없을 텐데 왠일로 강의실에 다..."
"하하하. 그냥 복도를 지나가다가 네가 멍청하게 앉아 있는게 보이길래
들어와 봤다."
"응, 그렇구나."
너무나도 힘없는 심드렁한 대답에 나는 상규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
다.
"너... 어디 아프니? 아니면..."
"아냐, 그저..."
상규는 책상 아래 놓아 두었던 가방과 노트북을 집으며 일어섰다.
"집에 가게?"
"응... 이제 수업도 없으니..."
상규의 노트북을 보니 갑자기 다음날 제출할 레포트가 생각나 일어서는
상규의 소매를 붙잡고 물었다.
"아참, 상규야. 내일 심리학 레포트 다 썼니? 다 했으면 좀 빌려주라.
마침 네 노트북도 있으니... 혹시 거기 들어 있으면 이 디스켓에...
카피를 좀..."
상규는 멀거니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노트북을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응, 다 하기는 했는데... 알았어. 카피해 줄께. 잠시만..."
"때앵큐~ 역시 넌 내 가장 친한 친구다. 헤헤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껏 아양을 떨었지만 상규는 아무말 없이 느린 손
짓으로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올렸다. 잠시후 하드가 구동되는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초기 화면이 떴다.
그런데 초기의 바탕 화면을 보고 상규가 잠시 움찔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디밀고 모니터를 바라 보았다.
"흠... 아직도... 윤미 사진을 바탕 화면으로 깔아 놨구나."
야릇한 표정으로 바탕 화면에 깔린 윤미의 사진을 바라보던 상규가 힘
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중얼거렸다.
"으... 응... 휴~ 어쨌든... 디스켓이나 줘. 카피해 줄테니."
상규는 내가 건네주는 디스켓을 받아들고 레포트를 재빨리 카피해 주고
는 노트북을 챙기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나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가 몇걸음 앞서 강의실 문을 나서는 상규를 향해 조용하게 얘기했다.
"상규야... 이제는 그만... 윤미를 잊어라. 벌써 반년이나 지났는데...
노트북에 깔린 사진도 다른 걸로 새로 갈고 말이야."
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상규는 손을 흔들고는 강의실 밖으로 쓸쓸
히 걸어나갔다.
윤미...... 상규의 노트북에 깔려 있는 윤미의 사진이 다시 머리속에
스쳐가며 상규와 윤미가 다정히 사귀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일년 전쯤 상규는 나와 수업시간에 전산실에서 교수의 눈을 피해 채팅
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둘다 통신 초보였기에 한창 채팅의 재미에 푹
빠져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상규는 나보다 컴퓨터 쪽에 관심이 많아 몇가지 간단한 프로그램
도 만들고는 하던터라 타자치는 속도가 빨랐기에 채팅할 때는 누구도
초보라고 여기지를 않았다.
물론 나의 말솜씨와 상규의 타자치는 속도가 조화를 이루어 괜찮은 여자
다 싶으면 번갈아 가며 하루만에 번개도 하고 만나기도 했는데 상규는
이상하게도 한번 만남을 가지면 여자친구 단계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그 날은 우연찮게 채팅방에서 윤미를 알게 되었고 당일날
저녁에 약속까지 잡게 되었는데 그당시 나는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던
터라 인심을 쓰는 척하며 상규에게 양보를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윤미를 만난 상규는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도 드디어
여자 친구가 생겼다며 신나게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평소 상규의 여자
고르는 눈이 조금 높은 것을 알던 나로서는 괜히 양보했다는 기분도 들
었지만 그래도 친한 친구인 상규였기에 둘이 잘되기를 빌었다.
그후로 상규와 윤미는 누가봐도 영원히 계속될 연인같이 보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 만나는 건 물론이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곁에
서 지켜보는 나로서도 셈이 날 지경이었다.
상규는 윤미의 사진을 스캔해서 자신의 보물 1호인 노트북의 초기 바탕
화면에 깔아 놓고 매일 같이 들여다 보았고 더 나아가 그녀의 여러 사진
을 조합하여 스크린 세이버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깔아 놓을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여름날 둘은 큰 마음먹고 한적한 바닷가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마치 언약식이라도 하고 돌아올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부럽기까지 했는데...
떠날 때는 둘이었던 것이 돌아올 때는 상규 혼자 뿐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둘이 조그마한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그만 뒤집혀져
윤미가 물에 빠져 익사를 했다는 것이었고...
상규는 그 일이 있은 후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경찰에서는 이틀이 지
나서야 물에 퉁퉁 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윤미의 시신을 발견하였
고... 상규는 오열을 하며 윤미의 장례식 장에서 삼일밤을 지샌 뒤 종적
을 감추어 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원래 어렸을 적에 부모를 여의고 정에 굶주려 있던 상규인지라 윤미의
존재가 훨씬 컸기도 했겠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둘의 진한 사랑의 깊이
를 짐작하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제일 친한 나하고도 넉달이 지나서야 달랑 전화 한통으로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줬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상규는 한달 전에 초췌한 얼굴로 돌아와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하
였고, 힘든 그를 위로하며 곁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안타깝기 그지 없
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정도 윤미와의 추억을 정리한 줄 알았는데 조금 전 노트북
화면에서 여전히 화사하게 웃고 있는 윤미 사진을 보고나니 상규가 아직도
윤미를 잊지 못해 괴로워 한다는 걸 짐작하게 되었다.
나는 노을이 지고 있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터벅, 터벅' 걸어가는 상규의
축 처진 뒷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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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민아, 요새 상규 본 적 있어?"
복도에서 다른 친구들과 잡담을 하며 담배를 뻐끔, 뻐끔 피고 있는데 진
한이가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리고 보니 그간 집안
사정을 핑계로 수업을 몇개 빠지며 시골에 며칠 다녀왔던 터라 상규와
연락을 안 한지가 일주일이 넘었었다.
"아니... 못 봤는데... 왜?"
진한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턱에 손을 가져다 댄 채 웅얼거리듯 말
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상규하고 나하고 듣는 수업이 똑같지 않니?
그런데 일주일째 아무 연락도 없이 나오지를 않는 거야. 더구나 오늘은
시험도 있었는데..."
"그래? 전화는 해 봤어?"
"받지를 않아. 상규 집에 찾아가려 해도 나는 집을 모르니... 음... 맞다.
너는 알지? 상규네 집..."
"응... 저번에 이사 올때 내가 도와 주었으니... 그러면 이따가 수업 끝
나고 내가 한번 가볼께."
"그래라. 만나면 내일은 학교에 꼭 나오라고 전해주고... 알았지?"
"알았어."
진한의 얘기를 듣고나니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상규는 학교 앞에
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싼 방을 찾아 인적이 드문 재개발 지역에
방을 잡았기에 동네에 사람도 별로 없어 누가 어떻게 잘못되도 알지 못
하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일주일전 마지막으로 본 상규의 얼굴에 수심
이 가득했던 것이 생각나서 불길한 마음에 가슴까지 뛰었다.
해야할 일이 있으면 시간이 한층 더디가는 법인가 보다. 마지막 보강 수
업까지 끝나고 나니 이미 해는 져서 그믐달만 을씨년하게 하늘에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이왕 늦은 거 술이나 한잔 하자며 학교를 빠져 나갔지만 나는
상규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들 틈을 빠져 나와 한적한 상규의 동네로
발길을 옮겼다.
동네는 상규가 이사를 처음 올 때보다 더욱 을씨년해져 있었다. 그나마
사람들이 살고 있던 건물들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퇴색해 있었고 상규
의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은 녹이 슬때로 슬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삐걱, 삐걱' 소리만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가 낡은 상규의 방앞에 멈춰섰다. 굳게 잠
긴 창문으로는 어스름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저으기 안
심을 하며 방문을 두들겼다.
"상규야. 상규야, 안에 있니? 나, 형민이야. 문 좀 열어봐."
한동안 문을 두들겨도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부시고라도 들어갈 셈으로 힘차게 문을 걷어찼다. 생각외로 자물쇠가 약
했던지 안에서 잠겨진 고리가 떨어지며 문이 열렸다. 나는 천천히 방으
로 들어갔다.
컴컴한 방은 싸늘한 냉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낯설은 남의 집이라 그런
지는 몰라도 등에서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벽을 더듬어 형광등
의 스위치를 올려봤지만 정전이라도 된 듯 불이 들어오지를 않았다.
잠시 방안에서 멀뚱히 서있다 보니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며 방안
에 있는 가구들의 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방안을 살펴보다가
책상 위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물건이 눈에 띄었다. 조금전 창문
으로 비친 불빛이 저기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며 다가가서 손으로 만져
보았다.
"아... 상규의 노트북... 이구나..."
반쯤 접혀 있던 상규의 노트북을 열어 젖히자 스크린 세이버의 작동이
중지되며 모니터의 환한 빛이 내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나마 어둠 속에
서 보이는 환한 빛이라 내심 반가워하며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엇? 이게 뭐야?"
모니터에는 문서 화일 한개가 열려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내용을 읽
기 시작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형민이일 가능성이 제일 높겠
지. 내 집을 알고... 또 찾아 올 사람은 형민이 뿐일테니... 형민아...
너라고 생각하고 그간 내가 겪은 끔찍한 경험을 여기에 적는다.
사실 그동안 나는 너무나도 희한한 일을 겪었어. 형민아... 기억나지?
윤미와 내가 얼마나 가깝게 지냈던가를... 그리고 또 내가 얼마나 윤미를
사랑했었던가를 말이야...
엔간한 건 네가 내 곁에서 지켜 보았으니 다 알거고... 다만 잘 모르는
일은 윤미와 바닷가로 여행갔을 때의 일일거야. 그러니까 윤미가 죽은
정확한 이유말이지.
반년전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나와 윤미는 여행의 흥분을
한껏 만끽하며 바다로 놀러 나갔어. 나는 어릴때 바닷가에서 자라서 그
런지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더구나...
윤미는 물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도 있다고 했는데... 아무튼 우리는
조그마한 보트를 빌려 타고 바다로 나가게 되었지.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보트장 주인이 건네준 구명조끼를 입지도 않고
말이야.
아마도 수영에 자신이 있던 나로서는 꽉끼는 구명조끼가 오히려 거북스러
웠는 지도 몰라. 또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운 윤미 앞에서 남자 다운 모습
-그런 걸 안 입으면 괜히 잘나 보인다는 어린 생각에...- 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고...
하여간 우리는 보트를 저으며 바다로 나갔지. 안전선이 있었지만 물을
무서워 하는 윤미의 표정이 재미있어 꽤나 깊은 곳까지 일부러 저어갔
어. 그런데 갑자기 파도가 심하게 치는 거야.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라
나도 약간 당황했어. 윤미의 재촉이 없었더라도 파도가 더 심해지기 전
에 해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노를 젓기 시작했지.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더니만 우리가 탄 보트를 단숨에
덮쳐 버리는 거야. 순식간에 보트는 뒤집어졌고... 윤미는 너무 놀라 비
명을 지르더구나. 그래도 윤미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으니 빠지지는 않
을 것이고 또한 나는 바다라면 몇시간이라도 떠 있을 자신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구하러 올때 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나는 거야. 나는 기겁을 했지. 내 앞에서 죽
음에 대한 공포로 바닷물에 허우적대는 윤미는 이미 실신상태에까지 이르
러 있었고...
윤미를 진정시키기는 커녕 내 목숨이 위태롭다는 생각에 윤미를 꽉붙잡고
말았어. 그와 동시에 우리 둘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지.
구명조끼라는게.. 사람 둘을 지탱하지는 못하더구나...
물속으로 한참을 빠져 들어가는데... 두려움에 가득찬 윤미는 무서운 눈
초리로 나를 쳐다 보고 있는 거야. 서로의 입속에서는 다급하게 물방울
만 샘솟았고... 그때 문득 내 머리 속에서는 이러다가 둘다 죽고 말겠다
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순간 윤미의 구명조끼가 '우드득'하고 뜯어져 버렸는데... 내가 계속
그녀의 구명 조끼를 잡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았지...
만일 내가 손을 놓는다면 그녀는 바다물 위로 떠올라 목숨은 살 수 있을텐
데... 몇초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되더구나.
형민아...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니? 그래... 결과는 네가 짐작하는
것처럼... 나는 끝내 윤미의 구명조끼를 놓지 않았어. 결국 윤미는 내손
에 구명 조끼만 남긴 채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갔고...
나는 이거 저거 생각할 틈도 없이 허겁지겁 그것을 입고 말았지. 마지막,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나를 쳐다보던 윤미의 원망과 실망감이 뒤섞인
야릇한 눈초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지.
자... 이제 거의 내 얘기가 끝나가고 있어. 그렇게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고
살아 남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니. 몇달을 방황하며 숨어 지냈지.
물론 나 자신을 미워하며 자책한 건 물론이고 말이야...
나 때문에 불쌍한 윤미만 비명횡사를 한 셈이니... 더욱이 그렇게도 사랑했
던 나만의 윤미가... 말이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건 바로 한달 전 부터야. 학교에 복학을 하고
오랜만에 노트북을 여는데 바탕 화면에 깔려 있던 그녀 사진의 얼굴 표정이
조금 이상해 보이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원래는 함박 웃음을 웃고 있는
표정이었는데...
매서운 눈초리로 싸늘하게 비웃는 듯 나를 노려보고 있더라고. 물론 처음에
는 내가 착각한 것이라 생각하고 바탕 화면에서 윤미의 사진을 지워 버렸지.
그런데... 다음날 다시 열어본 노트북 화면에는 전날보다 더 무서운 표정의
윤미 사진이 바탕 화면에 그대로 깔려 있는 거야.
가슴이 멎는 것 같았어. 결국 윤미는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것이구
나 하는 생각이 드니 온 몸이 오싹해 지더라고... 몇번을 삭제해 보았지만
매 한가지였고...
후~ 이제는 아예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조용히 나를 노려보는 구나. 네가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는 지는 몰라도 이건 사실이란다. 더욱이 윤미의 귀여운
스냅사진으로 만들어 놓았던 스크린 세이버도 점차 흉칙한 그녀의 모습들로
변해 가더니만...
윤미는... 결국 나를 용서하지 않은 것 같아. 매일같이 꿈속에서 나를 부르
는 것을 참는 것도 이제는... 지쳤고... 지금 같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없어. 사실... 그때 내가 윤미대신 죽었어야
했는데...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도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있는 셈이니...
훗... 재미있군. 지금 그녀가 나를 부르고 있어. 아마 오늘 나를 데려갈
모양인가봐. 나를 원한다면 이제라도 윤미를 따라 가야겠지?
그렇다면 이것이 나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은데...
나 역시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너를 영원히 기억할 거야. 그럼 이만...
1999년 4월 23일 늦은 밤에 상규가...]
나는 너무 놀라 모니터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상규는 노트북을
켠 채로 어디로 간 것인지... 그때 머리 속에서 뭔가 섬뜩한 생각이
들어 노트북의 옆면을 더듬었다.
"역시... 전원 코드가 빠져 있어... 글을 쓴 날짜가 일주일 전으로 되어 있
는데... 그렇다면 이미 노트북의 배터리는 닳아서 꺼져 있어야 하잖아?
아... 아니... 이런... 이럴수가..."
달빛만이 을씨년하게 비추는 어두운 방안에서 넋을 놓고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데 화면이 온통 피빛이 되며 스크린 세이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조각퍼즐처럼 어지럽게 움직이던 화면이 점차 하나씩 맞춰지며 물에 빠져
죽은 윤미의 퉁퉁 불은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더불어 그녀의 옆에는
창백한 상규의 슬픈 얼굴이 보였는데...
갑자기 키보드가 저절로 하나씩 눌러지더니 화면에 글씨가 한자씩 뜨고
있었다.
"엇? 아... 악~!"
[형. 민. 아... 나를 보러 왔구나... 이리 오렴... 우리와 같이 있자꾸나...
우리와... 함께... 말. 이.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