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1.
문재인 후보가 대선 교육공약을 발표했다. 줄곧 여론 조사 1위를 달리는 분이 내놓은 교육공약이다.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전반적으로 괜찮다는 느낌이다.
더 좋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이 정도면 무난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몇 번에 걸쳐서 따져볼 것은 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첫 순서로 먼저 발표된 공약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이런저런 내용 전부 생략하고 공약(정책)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번호를 붙이고 내용을 압축해 해보았다.
간단하게 정리하느라 표현을 조금 바꾼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원래의 표현을 그대로 유지했다.
<문재인 교육공약 2017.03.22>
“교육을 통해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교육이라는 희망의 사다리를 다시 놓겠습니다.”
1. GDP 대비 정부부담 공교육비의 비중을 임기 내에 OECD 평균이 되도록 증액.
2. 누리과정 예산 중앙정부가 책임.
3.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
4. 대학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춤.
5.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
6. 대학입시를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수능전형, 세 가지로 단순화.
7. 수시 비중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모든 대학에서 기회균등전형을 의무화.
8. 서울주요사립대 수준으로 거점국립대의 교육비 지원 인상. (1인당 1,500만원⇒2,200만원)
9. 장기적으로 발전가능성이 높은 사립대학은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 육성.
10. 기업의 블라인드 인재채용을 확대
11. 초등학교에 ‘1:1 맞춤형 성장발달시스템’과 기초학력보장제를 도입.
12. 중학교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절대평가를 단계적으로 도입.
13.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확대 발전.
14. 고교 학점제 실시.
15. 초중고 예체능 교육 활성화하고 대학입시에 반영, 학생선수들 공부 병행하게 함.
16. 입시, 학사비리를 일으킨 대학에 정부 지원 금지.
17. 로스쿨 입시를 100% 블라인드 테스트로 개선, 가난한 학생 지원.
18.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를 설치.
19. 학제개편과 국립대연합체제 개편 등을 논의, 4차 산업혁명을 대비.
20. 초중등 교육은 시도교육청에 완전히 넘기고 학교단위의 자치기구도 제도화.
21. 혁신교육지구를 활성화, 대한민국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되도록 지원.
“앞서가는 아이도 조금 뒤처진 아이도 살뜰히 보살피겠습니다.”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2.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 - 공약에 대한 단상
이것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대단히 흥미로운 공약이어서가 아니다. 이것은 진보 쪽 후보들이 선거 때 단골로 내놓는 아주 익숙하고 낯익은 공약이다. 그런 공약을 여기서 제일 먼저 언급하는 이것이 이번엔 실제로 실현될 것 같아서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 공약을 보수 쪽 대선 주자들이 오히려 더 세게 내세우고 있다. 자사고·외고 폐지는 유승민 의원의 대표 교육공약이다. 특목고·자사고 폐지는 남경필 지사의 중요 교육공약이다. 결국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정당의 후보들이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찬성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유한국당은 아직 잘 모름)
보수 성향 후보들까지 찬성하는 이 정책을 차기 정부에서 실현하지 못 한다면 ~ 정말 탄핵에 버금가는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이다.
이 공약은 실행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무조건 그 성공이 100% 보장된 정책이다.
첫째. 법의 개정이 필요 없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대통령령)만 고치면 된다. 설사 자유한국당이 반대해도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다.
둘째,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예산 부담이 없다.
셋째, 국민적 합의 수준이 매우 높다.
특목고 중 과학고, 예고, 체고 등은 그것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외고와 자사고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때 한나라당에서 외고를 없애겠다고 잠시나마 분위기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넷째, 일의 과정이 단순하고 성격이 명확해서 교육 관료들이 잘 할 수 있다.
이것은 교육청이 매년 1학년 신입생을 일반계 고등학교와 똑같이 배정하면 되는 일이다. 과정이 단순하다.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사실상 만 2년이면 완결되는 일이다. (3년이 아니라 2년이다. 3번째 해에 신입생이 배정되면 일이 완성된다.) 일의 성격이 분명하다. 이루어지는 것과 이루어지지 않는 것 사이에 중간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류로만 그럴싸하게 꾸민다든지, 형식적으로만 그럴싸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의 진척 여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일은 교육 관료들이 상당히 잘한다.
나로선 어느 정당이 집권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바른정당 후보들까지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차기 정부가 실행하지 못한다면 ~ 정말 기가 찰 일이다.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3
사소한 트집 하나
그냥 슬쩍 웃고 넘어가야 하지만, 사소한 트집하나 잡아 보자. 교육공약 발표문에는 우리교육의 문제점을 질책하는 이런 말이 있다.
“찜통교실 냉골학교, 재래식 화장실을 방치하면서 뒤떨어진 아이들은 포기하고 학교를 서열화해서 경쟁과 차별을 부추겼습니다. 언제나 학생들은 교육정책 순위에서 뒷전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의 눈은 ‘찜통교실 냉골학교, 재래식 화장실’이란 표현에서 잠시 머물렀다. 처음엔 그냥 ‘픽’ 하고 가볍게 웃었다.
에이 학교가 아무리 한심해도 요즘 세상에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학교가 어디 있나? 있기야 있겠지만 얼마나 있다고 저런 말씀을?
냉난방이 충분히 잘 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냉골학교라니 ~
요즘의 학교 현실과 적잖이 어긋나는 느낌을 주는 표현이라 생각됐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얘기가 아닐 수도 있어,
공약 만드신 분들이 자신들이 학교 다닐 때의 학교 모습에 너무 깊이 몰두 했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탓하고 웃어 넘겼다.
그런데 뒤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표현 속에는 결코 사소할 수만은 없는 어떤 문제가 담겼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공약을 만드는 정책담당자들이 공약을 만들 때 학교에서 생활하는 교사-학생의 의견과 생각을 충분히 듣고 반영했다면 과연 저런 표현이 나올 수 있었을까?
대선주자들의 교육공약은 초중고교 교육에 해당하는 내용이 제일 많다. 모든 대선주자들의 교육공약이 다 그렇다. 대학에 해당하는 내용은 적다. 그런데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초중고 교육공약(정책)조차도 주로 대학교수 출신 분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그것은 당연하다. 교수만큼 학식과 견문이 넓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 초중고교 교육문제라고 하더라도 그 해법은 교수들이 제일 잘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의 구체적 상황과 문제를 머리로만 이해할 뿐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문제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현실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현장의 절실한 아픔과 바람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공약들이 현실과 조금씩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비단 교육공약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공약이 그럴 수 있다면?
어쩌면 저런 표현이 들어간 것은 이런 문제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사소한 트집이라고 소제목을 달았지만 어쩌면 사소한 트집만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4
질문
페친 여러분께 질문 하나 드려요.
아래 1번과 2번 중 어느 말에 더 마음이 끌리는지요?
물론 전부 다 좋고 훌륭한 말입니다. 그러나 호감이 가는 정도에 작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교육비전을 국민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1번과 2번 중 어느 것을 중심으로 말씀하시고 싶은지요?
재미삼아 댓글에 답해주세요 ~ ^ ^
댓글을 바탕으로 <이야기 5> 써볼까 합니다.
<1번>
“교육을 통해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교육이라는 희망의 사다리를 다시 놓겠습니다.”
<2번>
“저마다 타고난 소질과 끼를 끌어내고, 열정을 갖고 적성에 맞는 꿈을 찾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기본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 나중 추가 > 괜히 여쭈어 봤다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답하지 마시고 생각만 해주세요.
이미 답하신 분들께는 조금 죄송합니다 ^^
이유는 이야기 5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5
대학입시 공약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려면 이야기 4에 연결된 얘기를 해야 하지만 그것은 나중으로 돌리자. 먼저 대학입시 공약을 좀 살펴보자. 역시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대학입시 공약에 집중된다.
문재인 후보의 대학입시 공약은 이렇다.
(1) 대학입시를 학생부교과전형-학생부종합전형-수능전형 셋으로 단순화.
(2) 수시 비중의 단계적 축소
(3) 기회균등전형 의무화.
(1)은 논술전형을 폐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기자전형이나 실기전형까지 폐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으나 논술전형의 폐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2)는 사실상 수능전형인 정시 비중은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폐지되는 논술전형의 비중만큼만 수시 비중을 축소하면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은 그대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수시 축소라 함은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을 축소하고 정시(수능전형)의 비중을 확대함을 의미한다.
이 공약은 학생부종합전형 비중 축소, 정시 수능전형 비중 확대 공약으로 봐야 한다.
(3)은 기회균등전형의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느 쪽인가? 비판적인가? 우호적인가? 무엇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이 입시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고려하는 사항은 여러 가지다.
□ 사교육 문제의 완화(해결)에 기여하는 입시인가?
□ 사고력(창의력) 교육에 기여하는 고차원적 입시인가?
□ 객관성(공정성)이 높은 입시인가?
□ 계층 지역 간의 입시불평등을 완화하는 입시인가?
□ 단순한 입시가 바람직한가, 다양한 입시가 바람직한가?
이외에도 우리가 고려하는 다른 많은 것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해 두자.
여러분은 입시를 판단할 때 무엇을 더 우선적으로 고려하는가? 이에 따라 판단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불행한 것은 이것들은 동시에 만족시키는 대학입시가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서로 상충한다. 입시에는 벗어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
우선 고차원적 입시를 추구할수록 사교육을 더 크게 유발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물론 사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입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사교육을 적게 유발하는 입시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사교육을 상대적으로 적게 유발하는 입시는 모두 저차원적 입시다.
사교육 감소가 목적인 EBS수능연계 정책이 왜 비판받는가? 교육의 퇴행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뜩이나 저차원적인 현재의 수업과 학습을 더 저차원적으로 만들었다.
수능과 함께 도입됐던 대학별본고사는 왜 폐지되었는가? 저차원적 시험이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학교시험은 물론 수능시험보다도 훨씬 차원 높은 시험이다. 본고사가 폐지된 것은 사교육을 크게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부의 비교과 중 소논문(R&E)이 왜 특히 집중적 비난을 받았는가? 저차원적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잘만하면 그것은 매우 고차원 학습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논문이 퇴출된 것은 사교육을 크게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객관성(공정성)이 높은 입시를 추구할수록 저차원적 입시를 도입하게 되는 딜레마도 있다. 선다형시험은 객관성이 높다. 하지만 그것은 저차원적 학습을 유발한다. 논술고사는 차원 높은 시험이지만 객관성이 떨어진다. 학생부의 비교과는 논술고사에 비해서도 객관성이 더 많이 부족하다.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단순한 입시를 추구할수록 교육이 획일화되는 딜레마도 있다. 입시의 다양성을 추구할수록 학생·학부모·교사의 부담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단순함만을 추구하면 교육이 획일화된다.
딜레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공약을 만든 분들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에서 입시공약을 살펴보자.
1. 왜 논술전형을 폐지하는 공약을 제시했을까?
다른 입시 전형에 비해 이것이 사교육을 제일 크게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폐지함으로써 사교육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논술전형을 폐지함으로써 입시를 조금이나마 단순화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2. 왜 학생부종합전형의 축소를 의미하는 공약을 제시했을까?
첫째, 학생부종합이 입시전형 중 객관성이 제일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객관성과 공정성은 서로 다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객관성과 공정성은 서로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그 둘을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는 더 많은 것 같다.
둘째, 학생부종합에 대해 학부모들이 매우 큰 부담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부종합은 하나의 전형이지만 그 자체로서 매우 복잡한 입시다. 학생부종합은 입시종합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이름이라 할 정도로 존재하는 모든 입시가 종합적으로 활용되는 입시다.
대학별고사(면접 및 구술고사) + 수능시험 + 교과 성적 + 비교과 스펙 + 자소서 + 추천서 ~ 등이 합쳐진 복잡한 입시다. 이 중 비교과 스펙은 또 여러 개의 활동(독서, 봉사, 수상, 동아리 등등)이 합쳐진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다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3. 왜 기회균등전형의 의무화를 제시했을까?
입시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목적이 컸을 것이다. 입시에서의 불평등을 분명하게 완화하려면 할당제적 성격의 전형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기회균등전형은 할당제적 성격의 입시다. 다른 입시에 비해 입시불평등을 완화하는 정도가 크다.
사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도 일종의 할당제적 입시다. 그것은 학교할당제 성격의 입시라고 봐야 한다.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인한 입시불평등 완화효과는 그것의 할당제적 성격에서 전적으로 기인하는 것이다. 학종의 열렬한 옹호자들이 그것을 학생부종합의 공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타당치 못하다. 사실 최상위권 대학의 기회균형선발전형은 대부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운영된다. 그렇다고 기회균형선발전형의 장점을 학생부종합의 장점으로 볼 것인가?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가진 장점인 입시불평등 완화효과는 할당제적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학생부종합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입시불평등을 뚜렷하게 완화하려면 할당제적 성격의 입시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입시공약은 비중확대라는 표현이 아닌 의무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의무화는 언뜻 용어는 강렬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영양가는 없는 표현이다. 거의 모든 중상위권 대학에서 이미 기회균형선발전형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불평등을 실제적으로 완화하려면 의무화 조치가 아닌 비중확대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왜 비중확대라는 분명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의무화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비중 확대로 인한 부작용을 경계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별 것 아닌 말을 사용했을까? 아니면 의무화란 말을 비중확대라는 의미로 사용했을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세 개의 입시공약을 주로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좀 싱겁게 정리를 해야겠다.
전반적으로 미지근한 느낌이다. 특별히 끌리는 데가 없는 맹탕 공약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것이 꼭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에 혼란을 주지 않는 무난한 공약을 제시했다고 좋게 봐줄 수도 있다.
다른 대선 주자들의 입시공약은 어떠한가?
이재명 후보의 입시 공약은 수능 정시모집의 비중 확대다.
박원순 시장의 입시 공약은 수능 폐지였다.
남경필 후보의 입시 공약은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의 확대다.
안철수 후보의 입시 공약은 수능 폐지에 가깝다. 그는 입시는 단기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생부와 면접 위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결국 수능 폐지(축소),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최선의 입시제도는 없을까?
글쎄다. 추상적이고 애매한 말로 대신한다.
교실에서 수업하는 학생과 교사만을 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결국 학생과 교사가 수업을 통해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할까? 학교의 평가(시험)제도와 교육과정이다. 이것이 시작이고 기본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입시는 오로지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설계되고 배치되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상당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나마 그게 최선의 길이다. 다른 무슨 길이 있겠는가?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6
중학교 절대평가제 도입 (1)
. “ 중학교 ~ 절대평가를 단계적으로 도입 ”
1.
학교 수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학교에서처럼 차원 높은 수업이 이루어지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수많은 조건이 갖춰져야 하겠지만 그 수많은 조건 중, 핵심 중의 핵심은 무엇일까?
교사별평가제와 절대평가제다. 이 둘의 도입 없이 학교수업은 변하지 않는다.
이 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현재의 내신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혁명적이라 했지만 대단한 것 아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교육선진국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교육선진국을 보자. 어떻게 고차원적 수업과 평가가 가능할까? 학년이 올라가면 학생에게 폭넓은 선택권이 부여된다. 자신의 소질과 적성과 학습단계를 고려하여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준다. 교사에게는 온전한 평가권이 있다. 학생의 선택권과 교사의 평가권, 이것 없이 수업의 획기적 발전은 불가능하다.
수업이 발전하려면 결국 학생과 교사가 잘해야 한다. 그 어떤 조건이 갖추어진다 할지라도 학생과 교사가 잘못하면 수업은 죽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하게 할 수 있는가? 학생에게 폭넓은 선택권을 줘야 한다. (초등학교의 경우엔 학생의 처지와 상황을 최대한 고려해 줘야 한다.) 그리고 교사에게는 온전한 평가권을 줘야 한다.
교사의 온전한 평가권이란 무엇인가? 결국 그것은 교사별평가제와 절대평가제이다. 교사에게 온전한 평가권이 주어지면 그것은 곧 교사별평가제와 절대평가제의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만으로 수업의 획기적 발전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많은 것들이 함께 변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변해도 이것이 도입되지 않고선 수업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 어렵다. 교사별평가제도와 절대평가제도는 수업의 발전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핵심 중의 핵심 제도이다. 예를 좀 들어보자.
예컨대 내가 윤동주와 이육사의 시(詩)를 수업하고 시험 문제를 낼 때 이런 문제를 내고 싶다고 하자.
< 윤동주와 이육사의 시세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10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
또 수업 중에 공부한 논설문을 바탕으로 이런 문제를 출제하고 싶다고 하자.
< 윗글을 5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이런 문제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출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에 맞는 수업도 가능하다. (수능시험으로 인한 제약은 일단 제외하고 얘기한다.) 지금처럼 저차원적 수준의 시험문제 밖에는 출제할 수 없다면 수업도 그 수준에 맞추어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의 평가제도에서 이런 문제 출제할 수 있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교사에게 평가권이 주어져야 한다. 즉 교사별평가제와 절대평가제가 시행돼야 한다.
물론 교사의 역량도 중요하다. 교사별평가제와 절대평가제가 도입되어도 교사의 역량이 부족하면 수업과 평가는 변화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의 역량이란 것도 제도가 시행되어야 개발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지금의 제도 하에선 역량이 있어도 앞에서 예를 든 시험문제를 출제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시험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할 수가 없다.
대학의 논술고사는 상대평가를 아는데 왜 꼭 절대평가제가 도입되어야 하냐고 물을 수 있겠다. 101가지 이유 중 하나만 얘기하자. 교사와 학생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잔인하게 상대평가하면서는 학생과 교사의 주관이 크게 개입하는 고차원적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하기 어렵다. 애들 하고 관계만 나빠진다.
그런데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굳이 말하면 교사별평가제다. 이것이 더 본질적인 것이다. 물론 절대평가의 도입 없이는 교사별평가제의 장점을 충분히 발현시킬 수 없다. 하지만 절대평가만 도입하고 교사별평가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절대평가의 장점은 더더욱 발현될 수 없다. 이 둘은 함께 가야 한다. 함께 가야 선진국에서 이루어진다는 창의적 수업이 가능하다. 하나로는 안 된다. 그러나 굳이 어느 것이 더 본질적인 것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교사별평가제도다. 수업이 발전하려면 교사별평가제를 도입해야 하는 것이고, 교사별평가제를 제대로 하려면 절대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 그 반대가 아니다.
2.
절대평가제와 함께 교사별평가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절름발이 공약이다. 반드시 교사별평가제를 함께 제시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교사별평가제는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을까? 원인은 다음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첫째, 교사별평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이 교육정책 그룹 내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어도 그 수가 적어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교사별평가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손해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원인이 첫째에 있다면 나로선 문재인 후보를 돕는 교육정책 그룹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할 리는 없을 것이니 아마도 원인은 두 번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실 교사별평가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교사들조차도 그것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물며 일반 국민이 그것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일반 국민은 교사에게 너무 과도한 권한을 준다고 싫어할 수도 있다. 즉 교사별평가제를 공약으로 제시하는 것은 정치적으론 마이너스일 수 있다.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7
중학교 절대평가제 도입 (2)
3.
지금의 학교시험 평가제도는 그 기본이 ‘학년별 평가제도’이다. 고교의 경우엔 문-이과 구별이 있고 선택 과목별 구별도 있지만 그 기본 바탕은 학년별 평가다.
학년별 평가제도에서는 예컨대 한 학년의 영어수업을 서너 명의 교사가 몇 개 반씩 분담하더라도 시험은 반드시 동일해야 한다. 교사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없다. 그리고 한 명의 교사가 학급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시험을 다르게 출제할 수 없다. 학급의 처지와 상황이 달라도 시험이 동일해야 한다.
이것은 평가권이 교사 개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교사의 온전한 평가권은 교사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한 명의 교사가 학급에 따라 다른 평가를 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즉 교사별평가제(또는 학급별평가제라 불러도 좋다)가 도입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것만 가지곤 미완성이다. 절대평가제가 더 해져야 한다.
교사별평가제 + 절대평가 = 교사의 온전한 평가권.
이렇게 평가권이 보장하면 이제 교사들 중에는 고차원의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그에 따른 고차원적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완전히 자리 잡히기까지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은 이제 시간문제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4.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려면 제대로 된 절대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교육부가 도입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절대평가제는 제대로 된 절대평가제가 아니다. 그것은 성취평가제에서 보여진 것처럼 한계가 뚜렷하다.
지금처럼 0점 ~100점까지 숫자로 정확하게 점수를 낸 다음에 일정 점수대에 A-B-C-D-E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온전한 의미의 절대평가가 아니다. 그것은 느슨한 형태의 등급제 상대평가이다. 이런 식의 평가는 현 학교시험의 기본 틀을 전제로 하는 평가다. 그것은 차원 낮은 객관식 문제 (오지 선다형 문제, 단순 지식을 묻는 서술형 문제)의 출제를 부추긴다. 그래서 결국은 수업의 획기적 변화를 가로 막게 된다.
물론 수능시험에서는 그런 방식의 절대평가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올해부터 수능 영어시험에 절대평가가 도입된다. 등급별 인원수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절대평가이다. 0점 ~100점까지 명확하게 점수를 매긴 다음 90점 이상은 1등급, 80점 이상은 2등급 이런 식으로 등급을 부여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느슨한 형태의 등급제 상대평가라 할 수 있다. 물론 수능에서는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시도다. 수능에서는 온전한 형태로 절대평가제를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학교시험에서도 그런 식의 절대평가를 도입해서는 학교수업과 학교시험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그것은 지금 방식의 시험을 염두에 둔, 지금 방식의 시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불완전한 절대평가다. 그러한 불완전한 절대평가제에서는 학교시험의 모습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어렵다. 과거의 인습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온전한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숫자로 점수를 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교사가 곧바로 A~E라는 점수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하다. 숫자로 점수를 매긴 다음 일정한 점수에 등급을 부여하는 절대평가는 획일적 시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성취평가제는 획일적 시험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절대평가제다. 수능은 시험 자체가 전국 단일 시험이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만 학교시험에서까지 그렇게 하면 수업의 획기적 변화를 꾀할 수 없다.
하려면 선진국처럼 해야 한다. 어차피 중학교에 절대평가제가 도입되면 고교입시 운영을 지금처럼 할 수 없어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대책을 따로 마련하고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려면 제대로 된 온전한 의미의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는 게 좋다.
학교시험에 절대평가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학교시험의 입시변별력을 약화시킨다는 대가를 지불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입시변별력을 약화시키더라도 수업의 발전을 위해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숫자로 점수를 매긴 후에 그것을 토대로 등급을 부여하는 불완전한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입시 변별력만 약화시킬 뿐 수업과 시험의 변화는 미미할 수 있다. 결국 수업과 시험은 크게 변화시키지 못하고 ‘성적 부풀리기’ 논란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때 성적 부풀리기 논란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그게 두려우면 절대평가제는 도입하지 못한다. 모든 학생이 A를 받아도 시비 걸지 말아야 한다. 교육의 목표는 모든 학생이 A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5.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고등학교도 아니고 중학교인데 굳이 단계적이란 말을 붙여야 했나?
공약들에 가끔 등장하는 ‘장기적’ ‘검토’ ‘단계적’ 이런 말은 무슨 의미인가?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실행하겠다는 것으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행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등학교도 아니고 겨우 중학교인데 이런 완곡한 표현을 하다니 좀 실망스럽다.
물론 이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는 하다. 아직 고교 입시가 존재한다. 특목고·자사고 입시가 존재한다. 특성화고 입시도 있고, 비평준화 지역의 입시도 있다.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고교 진학 단계의 입시를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고교 입시에서는 대부분 학교 내신 성적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성화고 입시는 거의 100% 내신 성적으로 이루어진다. 절대평가제가 급격히 도입되면 고교입시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 ‘단계적’이란 단서를 붙인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에서의 절대평가 도입은 빨리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 고교 입시 운영이 어려워지는 것은 그에 대한 다른 대책을 내놓으면 된다. 중학교에서도 그렇게 어려워하면 고등학교는 어쩔 것인가?
교사별평가제와 절대평가제는 별난 것이 아니다. 선진국이란 나라들의 학교에서는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교육적 관점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평가제도이다.
6.
정리하자.
첫째,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려면 교사별평가와 함께 도입해야 한다. 절대평가 하나만 도입하면 수업의 획기적 발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 제대로 된 온전한 형태의 절대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0점~100점으로 점수 매기지 않고 곧바로 A~E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8
학점제 : 단 하나의 혁명적 공약
.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겠습니다.
교사가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릴 것입니다.”
이거 엄청난 공약이다. 공약에 혁명적이란 말을 붙이려면 이런 공약에나 붙여야 한다. 문재인 후보의 교육공약은 제목이 <문재인의 교육혁명>이다. 공약을 언뜻 훑어보고 느낀 소감은 ‘교육혁명’이란 말을 붙이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점제를 실제로 실행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교육혁명’이란 말을 붙일 자격이 있다. 나는 문재인의 21개 교육공약 중에서 학점제가 불러올 변화가 나머지 20개 공약이 불러올 변화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학점제가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공교육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강한 실현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냥 던져보는 공약은 아닐까? 의심이 간다.
학점제 공약에는 검토라는 단서는 물론 단계적이나 장기적이란 단서도 붙지 않았다. 집권하면 바로 실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공약인 중학교의 절대평가 실시에는 ‘단계적’이란 단서가 달려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중학교에서조차 절대평가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단계적이란 단서를 단 것에 대해 불만은 있지만 그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중학교 절대평가조차도 단계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면서 고등학교 학점제 실시에 아무런 단서를 달지 않고 실시하겠다고? 이게 나로선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게 느껴진다. 나중에 다시 예기하겠지만 학점제 안에는 절대평가제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학점제를 시행하면 절대평가제도 필연적으로 시행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고등학교 절대평가제는 중학교 절대평가제보다 10배 이상 어려운 정책이다. 과장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수십 배는 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학점제 전체는 얼마나 실행이 어렵겠는가? 중학교 절대평가제보다 100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중학교 절대평가에는 단계적이란 단서를 붙여 놓고 고등학교 학점제는 아무런 단서를 달지 않은 것이 나로서는 비논리적으로 생각된다. 학점제 공약, 정말 진지하게 제시한 공약일까? 나로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학점제는 내가 오래전부터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1순위 정책으로 주장해오던 것이다.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2011) '교육 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2012)에서 일관되게 주장한 정책이다. 이것이 대선공약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대선 때부터였다. 여기에는 나의 책이 약간의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점제 공약! 나로선 반가운 공약이다. 두 손 들어 환영한다. 그런데 과연 실행될 수 있을까?
내 판단은 부정적이다. 학점제 공약은 문재인 후보가 집권해도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실행이 어려운 공약이란 얘기다.
학점제의 시행은 필연적으로 다른 많은 변화를 부른다. 그 중의 하나가 대학입시다. 알다시피 대학입시는 답이 없다. 학점제에 맞게 대학입시를 설계한다는 것은 내가 볼 때 (가능하긴 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학점제의 도입 없이 공교육의 획기적 변화는 불가능하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공약도 고등학교 학점제가 시행되지 않으면 크게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공약이다. 고교평준화는 좋은 정책이지만 어두운 그늘도 적지 않다. 물론 어두운 그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교평준화 정책은 시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두운 그늘을 걷어 낼 때 고교평준화는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그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는 핵심 정책이 무엇인가? 학점제다.
<문재인의 교육혁명>이란 제목은 학점제 공약이 있기에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획득할 수 있는 제목이다. 문재인 교육공약 중 혁명적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공약은 학점제 공약 이것 하나뿐이다.
그런데 학점제 공약은 안철수 후보의 중요한 교육공약이기도 하다.
아직 안철수 후보는 따로 교육공약을 체계화하여 발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 6일 국회연설에서 안철수 후보는 교육공약을 발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의 20%나 되는 분량을 교육에 할애했다. 그 연설문의 교육부분 제목이 <교육혁명>인데 내용을 잘 보면 학점제가 매우 중요한 공약이다. 학제개편에 얘기가 집중되어 눈에 잘 안들어 올 뿐이다. 학점제란 말 대신 ‘학점이수제도’란 말을 사용했지만 그것은 학점제와 동일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그 후 TV에서 학제개편은 수단이라고 했다. 목적은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다. 학제개편은 6-3-3을 5-5-2로 바꾸는 것인데 이때 현재의 고등학교를 2년제 직업학교와 진로탐색학교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업학교와 진로탐색학교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제도가 무엇인가? 학점이수제도 즉 학점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학점제가 문재인 후보의 (주요) 교육공약이면서 안철수 후보의 (더 중요한) 교육공약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학점제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공통 교육공약이다.
이제부터는 <문재인 교육공약 이야기> 시리즈를 멈추고 <문재인 안철수 공통 교육공약 이야기>란 제목으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학점제-학점이수제도를 깊이 다루어 보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대학입시제도를 깊이 있게 살펴 보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학점제란 무엇인가? 이것은 입시제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학점제를 도입하려면 학교는 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어렵고 어려운 얘기다. 그런데 과연 나에게 그 어려운 얘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과욕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과욕이 분명하다.
* * 작년부터 시행된 무급 휴직제를 올해 1학기에 사용하고 있다. 이거 완전 무급이다. 교육경력 기간에서도 빠진다. 평생 한 번으로 제한돼 있지만 그 이상 사용할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소수의 사람에게만 큰 혜택을 주는 '연구년제' '교원대 파견제' 등의 특혜성 제도에 사용되는 비용을 아껴 이런 제도에 사용하면 좋겠다. 물론 그 특혜성 제도에 나도 욕심을 내긴 했다.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ㅋ ~.
교육정책을 집대성한 책을 쓰겠다는 나름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용기를 냈는데 ~ 나는 과연 휴직을 이용하여 가치 있는 책을 쓸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부정적이다. 포기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아직 약간의 의지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없다.
어찌됐든 휴직까지 하면서 쓰려했던 책을 쓰지 못하고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페이스북에 잡문이나 올리고 있다. 이렇게 올리는 잡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망하다. 존경하는 어느 분이 그러더라. 정책은 허업(虛業)이라고.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는 말이다. 정책을 책으로 써도 허망한 일인데 페북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허업이다. 하지만 뭐 인생 자체가 虛業 아니겠는가?
* 다음은 <문재인 안철수 공통 교육공약 이야기>로 시작한다. 물론 장담은 못한다.
읽고 의견 있으시면 짧게라도 말씀해 주시라. 비판도 좋다. 물론 칭찬은 더욱 좋다~ ^^.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첫댓글 페북에 글 쓰신줄 이제야 알았어요. 조용히 팔로를 누를라 했는데 팔로 아이콘이 없어서 친구추가로 무턱대고 눌렀어요^^;;
전 학점제 가능하다고보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잡문이라니 당치도않습니다!!!!
다들..공약엔 하나두 관심없어보이는데...역시 이기정쌤~문재인후보에게 이 분석글 보여드리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