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의 흐름Ⅲ
POP ART
들어가며
최근 팝아트가 놀라울 정도의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주로 2000년대 이후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팝아트 계열의 작품들은 이제 미술계에서는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팝아트 계열의 전시는 수없이 많이 개최되었지만 학술적인 논의를 불러일으키거나 정연한 개념을 제시하는 전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감각적인 큐레이팅으로 전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데는 일정정도 성공하였지만 학술적인 의미를 가지는 전시는 드물었다. 물론 이번전시의 한계도 자명하다. 사실 한국 팝아트의 원형(?)을 살펴보려는 강한 의지로 출발했지만 많은 작품들이 유실되었고 국공립미술관에서 작품을 임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국팝아트의 유입이라는 파트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최근의 경향을 나열하고 대중적인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그 의미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팝아트의 유입
<part1. 한국 POPART의 유입>
박불똥, 신학철, 한운성, 김정명, 김정헌
한국에서 팝아트의 도입은 아직 미술사적으로 그 정확한 연원이 확인되고 있진 않다. 다만 1967년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청년작가전에 심선희, 정강자, 김영자 등의 작가들에 의해 팝적인 설치작품들이 출품되었다고 전해지며 이후 1972년에 하인두의 작품이 미국의 팝아티스트 제스퍼 존스의 작품을 모방했다는 오광수의 문제제기로 촉발된 논쟁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는 않았지만 한만영과 김용철이 이미 70년대부터 팝적인 경향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고, 80년대에 들어서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팝아트의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김정명과 한운성은 독자적으로 팝적인 경향성을 보여준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변종곤, 예유근, 임봉규 등의 작가들이 활동하였다. 그리고 가장 널리 팝아트가 인용된 것은 민중미술 작가군에서이다. 김정헌, 오윤, 임옥상, 이태호, 신학철, 박뿔똥 등의 작품에서 대중매체의 광고전략을 차용한 팝적인 요소들이 전면에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현실을 비판하는 유효하면서도 임팩트 강한 하나의 기제로 활용되었다. 예를들어 오윤은 광고의 카피를 연상시키는 텍스트를 등장시켰으며, 이태호는 광고 그 자체를 패러디 하였다. 김정헌은 산동네에 펼쳐진 광고판들을 통해 자연과 개발의 부조화를 고발하였으며 박불똥은 포토콜라주라는 방식으로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번전시에는 박뿔똥, 신학철, 김정헌 등의 작품을 확인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의 팝아트
오세권1)은 자신의 논문2)에서 2000년대 이후 한국 팝아트의 경향을 민화의 재해석(홍지연, 김근중), 창의적인 캐릭터의 표현(이동기, 권기수), 영화, 만화 캐릭터의 표현(손동현, 신창용), 대중적인 인물의 표현(김동유), 키치 등 기타(최정화, 홍경택)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은 80년대 리얼리즘작가들이 접근해 들어갔던 방식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시장에 대한 유연한 인식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급격히 중성화3)’ 되어갔다. 대중문화의 주인공이나 헐리웃 스타가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시장의 싸구려 아이템을 전시장으로 호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팝아티스트들이 일상용품과 광고, 영화스타나 인스턴트 음식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한국의 젊은 세대들의 작품에서 소비사회 대한 패티쉬적인(Fetishim) 몰입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있으며 이는 한국 팝아트의 주요한 특징으로 규정 될 수 있다. 이들은 순수와 대중문화, 미학적 입장과 시장, 작가와 엔터테이너, 예술과 상품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며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감행하고 있다.
<part2.캐릭터 & POP>
강지만, 김일동, 여동현, 찰스장, 아트놈, 이영수, 변대용 , 마리킴, 위영일, 김민경, 유영운
최윤정, 성태진, 손동현, 송현철
2000년대 이후 한국 팝아트의 특징적인 국면중의 하나가 바로 작가들만의 혹은 대중적인 캐릭터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경향이다. 친숙한 캐릭터를 이용하여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거나 현실의 이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또한 이들이 만들어 내는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 현대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현대미술의 중요한 이슈를 부각시키기도 하고 힘과 권력 혹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캐릭터들은 단순히 흥미유발이나 재미의 차원을 넘어 미술과 현실에 대한 진지한 의미들을 대중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김일동은 흔히 서구사회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넘치는 상황에서 불교에 등장하는 달마를 팝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독립운동가를 등장시킨 작품에서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 이영수는 ‘꼬마영수’라는 캐릭터로 우리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강지만은 스트레스로 머리만 커져버린 현대인을 ‘얼큰이’라는 캐릭터로 표현하고 있다. 가볍고 코믹한 ‘얼큰이’ 라는 캐릭터를 통해 경쟁으로 지쳐가는 허무함 그리고 그로 인한 고독감과 소외감을 그만의 함축적 스타일로 표현하고 있다. 여동헌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써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며 즐거움과 흥분을 동시에 유도한다. 색채 또한 원근법이나 명암법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채도가 높은 원색과 형광색들로 색상을 구사하여 동화책 속 삽화를 보는 듯 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위영일은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자신만의 캐릭터로 표상화 하여 임의적인 가상 행성에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작업하였다. 'planet012-all-star'는 비물질적인 욕망을 물리적 실체로 구상화 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유영운은 종이에 인쇄된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이용하여 캐릭터 조각을 만들어 낸다. 이것들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매스 미디어를 물질적 실체로 표현된다. 그는 일관성 있게 캐릭터 인형의 정체성과 잡지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연관시키고 있다. 손동현은 한국 전통의 초상화 기법과 대중문화의 인기 아이콘을 결합한다. 한국적 양식의 초상화에 배트맨, 로보캅, 슈렉 등의 할리우드 인기 캐릭터를 재현하거나 전통 문자도에 나이키, 버거킹, 스타벅스 등의 유명 브랜드 로고를 대입하여 전통의 방식으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성태진은 자신의 작업에 이제는 한물 간 과거의 영웅 태권V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문화적 코드'를 매우 적절하게 잘 활용한다. 태권V가 가진 '유년의 추억'이라는 대중적 공감대를 작가를 포함한 현 사회의 태권브이세대, 영웅에 대한 꿈이 사라진 청년 백수의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 외에도 아트놈, 마리킴, 변대용, 최윤정의 작품에서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확인 할 수 있다.
<part3. POPART로 현실에 마주보기>
김혜연, 이화백, 윤종석, 이이남, 한 슬, 낸시랭, 윤기원, 이동재, 홍경택, 윤종석,
허동진, 김난영, 강태훈, 곽철, 김민수, 이동기
1980년대 후반부터 국제적인 관심을 환기시켰던 중국의 팝아트는 주로 정치적인 팝아트의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중국의 팝아트가 정치적인 경향을 중심에 두고 있다면 한국의 팝아트는 미학적이거나 미시적인 현실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주제적인 면에서도 전통, 대중문화, 현대문명, 개인적인 서사, 여성 등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형식적으로는 팝아트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1960년대 유행했던 미국의 팝아트나 일본의 J-POP 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하지만 그 이미지를 이용하여 사회적인 풍자, 현실비판 혹은 사회와 소통을 시도한다.
아토마우스라는 캐릭터로 익숙한 이동기의 신작에서는 현대인의 복합적인 삶의 모습을 하나의 캔버스에 나타내고자 하였다. 마치 컴퓨터 스크린 화면과 같이 역동적인 이미지 구성은 빠르게 스쳐가는 수많은 기호들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이동재는 컴퓨터의 픽셀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연출한다. 너무도 정교하게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은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한 작업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리히텐스타인이 추구했던 작업에 대한 중립적인 냉정함 같은 것이 베여있다. 한슬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명품이나 욕망을 자극하는 물신화된 사물을 그린다. 이 사물들의 세계에서 상품의 교환 가치를 미화시키는 유행과도 같은 상품들을 그려내어 또 다른 욕망의 대상으로 재탄생 시켰다. 물신적이고 소비적인 현대인의 삶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민수의 민화의 도상이나 색채는 우리의 감성을 새롭게 자극하고,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민족적 미의식을 환기시킨다. 책가화를 인용한 그의 작품은 민화의 조형성과 예술성을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허동진은 이미 역사화 되어버린 인물들을 패러디하여 그 권위를 무너뜨린다. 그의 작품은 단지 신화화되어버린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와 권력에 대한 모종의 배반으로 다가온다. 김민경은 현실을 부유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위장하고 있는 자아들의 모습을 예쁘게 꾸며진 마네킹 같은 캐릭터로 표현하고 있다. 이이남은 영상작가로서는 드물게 팝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이다. 리히텐스타인의 작품을 차용한 이미지에 움직임을 더해 유머러스하고 대중적인 화면을 연출한다. 그 외에도 윤종석, 김혜연, 윤기원, 이화백, 낸시랭, 강태훈, 김난영, 송현철의 작품에서 현실의 단면들을 확인 할 수 있다.
나오며
생각한 것보다 팝아트의 외연은 무척이나 넓었지만 이번전시는 형식적인 측면으로 접근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들의 작품을 보다 정교하게 유형화하고 맥락화하는 작업들이 시도되어야한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부산 경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 팝아트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실감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의 과제이다. 이번전시를 통해 팝아트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가 보다 확대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1) 미술평론가, 대진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2) 2000년대 한국의 팝아트 연구. 2008. 오세권
3) 심상용, <Korean Pop은 없다>, 월간미술 200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