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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알게 된 우리의 대화는 늘 존댓말입니다. 그리고 이젠 일적으로 엮일 거리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집을 오갈 정도로, 그렇게 우린 편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새로 발견한 맛있는 조각 케익, 배스킨라빈스보다 더 맛있는 젤라또 아이스크림, 목장주가 직접 만든 요거트나 치즈, 향 좋은 발사믹 비네거 같은 먹거리 정보 공유부터 직장 상사나 애기 이야기,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추억이나 때론 삶에 대한 진중한 고민까지 꺼내놓을 정도로요. 뭘 깡그리 잘 잊어버리는 건망증쟁이 저인데도 참 이상하죠. 그녀와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제법 선명한 편이니. 그 날의 온도와 나누었던 대화 주제를 쉽게 떠올릴 수가 있거든요. 이를테면..
높은 천장 아래 행복 가득 머금은 화사한 햇살이 들어 찼던 파크하얏트 코너스톤에서의 늦은 점심, 그리고 고시생 옛남친 뒷바라지로 아프다기에 신림동에 죽까지 싸들고 다녔으나 돌아온 건 배신, 다신 그런 바보 같은 연애는 하지 말자 싶었다는 그녀의 각오와 유사한 시절을 지내본 나의 폭풍공감..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에 온 것마냥 매우 침침했지만 감미로웠던 조명 아래 와인을 즐겼던 삼청동 가회헌에서의 늦은 저녁, 그리고 때로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더라며 드라마에서나 보던 당황스러웠던 유혹과 금기의 상황을 겪어본 우리들의 대처법 공유.. 논현동 좁은 골목 코너에 자리한 좁고 소박한 운치의 패티 & 베지스에서 즐겼던 육즙 주릅주릅 수제 버거와 바삭한 짭조름함으로 크림 모자를 쓴 맥주를 떠올리게 한 웨지 감자, 그리고 스카우트되어 간 근사한 직장에서 겪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 토로.. 오래 전 가을이 깊어지던 어느 밤 대학로에서 함께 공연 보기 전 들렸던 벨지안 초콜릿 카페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감탄했던 초콜릿 음료(지금이야 고디바가 생겼지만^-^;), 그리고 맛있는 걸 먹다 보면 애기 봐주시느라 맛있는 바깥 음식 자주 못 드시는 우리 시어머니 생각난다며 예쁜 초콜릿을 주문하던 그녀의 뒷모습.. 갑자기 붕뜬 시간에 가진 서울숲에서의 급만남, 그리고 “우리 사촌오빠 이제 정말 좋은 사람 만나야 하는데.. 윤주님! 우리 사촌 오빠 한번 만나볼래요? 추진해볼까요?” 훗.
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건 참으로 신경 쓰이고 몹시 귀찮은 일인데도 그녀는 내게 좋은 사람이 생기길 바라며 주위의 근사한 분들을 많이도 소개해줬더라고요. 아마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시어머니를 떠올리는 바른 심성의 그녀이기에, 아직 싱글인 좋은 어른남자를 보면 저를 떠올렸던 게 아닐까 해요. 그런 건 주위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자주 통화하고 자주 보는 친군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서로의 바쁜 일상 속 가끔 연락해서 드문드문 만날 뿐인데도, 집에서나 입는 옷을 입고도 편히 볼 수 있는 사이니까요. 서로 존대하면서도 친밀하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면 초대한 이나 초대 받은 이나 너무 배려한다고 신경 쓰면서 긴장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거 하나 느끼지 못하니까요. 생각할수록 참 이상해요 그녀와의 시간은. 몇 년 전인가 그녀의 집에 가서는 그녀도 잘 안 쓴다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제가 요리를 했던 기억도 있는 걸요. 과감하게도 생전 처음 만들어 본 아삭이고추 피클을 싸가지고 가선 그녀의 냉장고에 넣었던 기억도 스물스물..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친해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때론 함께 나눈 시간을 다 합쳐봐야 얼마 되지 않는데도 코드가 맞아 긴밀해지는 친구가 있잖아요? 제겐 그녀가, 바로 그런 친구입니다.
"응! 내 베프야!"라고 소개할 정도가 아닌데도 그녀가 참 깊고도 편하게 느껴지는 건, 그녀가 참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냥 좋은 사람 말고, ‘참’ 좋은 사람요. 문득 문득 떠오르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두산중공업 기업 캠페인 광고가 떠오릅니다. 너무도 따뜻하고 포근한 친구이며, 무척이나 성실하고 지혜로우며 아는 게 많아 닮고 싶고 때론 존경스럽기까지 한 친구. 그래서 두산중공업 광고 속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그녀의 모습 위로 오버랩됩니다. 모든 사람에게서는 빛이 나지만 그녀에게서 좀 더 영롱한 빛깔을 제가 보는 건, 그 종알거리는 목소리와 동그란 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건 그래서겠죠. 그런 친구 여러분도 있으시죠?
거실에서 한강이 보이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거실에서 보냅니다. 잘 때만 빼고! 그래서 노트북도 다른 방이 아닌 거실 식탁에 두고 쓰는 걸요. 한강이 보이는 방향으로 놓고서는. 그리고 때론 그렇게 동쪽 하늘에 핑크빛이 피어오르는 새벽을 목도하고, 밤이면 마치 거대한 거울연못처럼 변하는 한강을 바라봅니다. 보석처럼 까만 한강에 비치며 곱절 이상의 반짝임으로 밤을 밝히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용비교길과 한강 다리들에 달린 수 천 개의 가로등은 특히 장관이죠. 언제 봐도 아름다워 질리지 않으니.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 여러분을 다 제 거실로 초대하고 싶을 정도라니까요(마음만). 그렇게 한강 방향으로 난 거실창으로 눈을 향하면, 왼쪽 벽면엔 항상 그녀를 떠오르게 하는 게 있습니다. 어느 집 벽이 다 그렇듯 그냥 실크 벽지의 평범한 좁은 벽이지만 선물이란 건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물건을 볼 때마다 선물해준 사람을 떠올리게 되니까요. 자주 보지 않아도 잊지 않도록 만드니까. 그렇게 그 작은 벽엔 그녀가 있습니다.
여행을 가면 저는, 혼자 규모가 큰 뮤지엄에 가는 걸 되게 좋아해요. 냉랭한 공기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제게도 예외가 있죠. 뮤지엄 특유의 냉랭함 만큼은 참으로 매력적이라고 느끼니까요. 다른 실내 공간과 달리 대개의 뮤지엄은 (여러 이유가 있어) 서늘하고 건조하고 어두운 편이죠. 게다가 구두 소리를 내거나 기침 한번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스스로 단속하게 되는 특유의 정적, 그 감정적인 서늘함까지 더해지기에 뮤지엄 내부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바로 그런 조건 때문에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되고, 낯선 타인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지만 고요히 나 홀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요. DSLR로 사진을 찍을 때 아웃포커싱으로 피사체 외의 배경을 뿌옇고 흐리게 만들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거죠. 그렇게 그 시간 거기엔 마치 저 혼자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은.
그래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엄 중 하나인 파리 루브르엔, 그 날의 제 마음과 사색이 남아 있질 않습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작품들을 실제 눈 앞에서 본다는 설렘과 신기함은 물론 있었지만 그런 감흥은 오래 가질 않으니까요.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저, 시장통보다 더 시끌벅쩍해 어지럽기까지 했던 루브르 그 뿐이네요. 루브르를 다녀온 한 동안은 좋았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 최근 근사한 기획전시가 많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역시나 전 제가 좋아하는 뮤지엄 특유의 냉랭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북적북적 바글바글! 제게 뮤지엄은 낯설고 차분할수록, 넓은 공간 속에 사람이 가득 차는 것보단 고요함과 정적이 가득 찰 때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도시로 여행을 떠나 그 곳에서 그런 냉랭한 뮤지엄을 만난다는 건 제 여행 중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렇게 뮤지엄에 들릴 때마다 제가 사는 게 있어요. 뮤지엄마다 꼭 있는 북 스토어에 들려 카드나 포스트카드 세트를 사는 거죠. 때론 작품집이나 포토북을 사기도 하고요. 기획 전시 중인 화가의 작품으로 구성된 카드 세트는 한정판과도 같아서 바로 그 때 꼭 득템해야 할 아이템이며, 그 뮤지엄을 대표하는 상시 전시 작품들로 구성된 세트도 마찬가지에요. 그 곳 아니면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책장에 꽂아두고는 때때로 카드 세트를 꺼내 볼 때마다 그 날, 그 작품 앞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어렴풋하게라도 추억되는 거, 그게 그렇게 카드 세트를 사다 쟁이는 이유입니다. 물론 원래 용도대로 소중한 사람에게 뭔가를 선물할 때 이왕이면 아무데에서나 쉽게 구할 수 없는 카드에 손편지를 적어 마음을 담는 것도 당연히 좋죠. 백화점 선물포장 코너에서 살 수 있는 딱 봐도 예쁜 비싼 카드보다 훨씬 더한 가치가 담겨 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녀에게 작은 선물을 할 때마다, 항상 그렇게 뮤지엄에서 사온 귀한 카드에 짧게나마 제 맘을 적곤 했어요. 그래서 흔하지 않은 카드 세트에 열광하는 저를 그녀가 알고 있었죠. 그래서일 거에요 아마. 이제 막 출시되어 사람들이 잘 몰랐던 비싸고 흔하지 않은 포스트카드 세트를, 작년 그저 평범한 어느 날 이유 없이 제게 선물해준 게. 그게 바로 윤주메일 상단 속에서 빈티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루이 뷔통 호텔 라벨 포스트카드 세트(The Art of Travel Through Hotel Labels, LOUIS VUITTON)입니다. 고이 서랍에 넣어두고 있다가 이 집에 와서 꺼냈어요. 그리곤 거실창 옆의 좁은 왼쪽 벽에 제 멋대로 붙여둔 거죠. 삐뚤빼뚤 다닥다닥. 일부러. 이거 되게 쉬워요. 안쪽 면에 카드가 들뜨지 않고 벽면에 잘 밀착되도록 양면 스카치 테이프를 꼼꼼하게 붙이기만 하면 되요. 그리고 저는 한강을 볼 때마다 그녀를 떠올립니다. 어때요? 괜찮죠? 이 장식 때문에 집이 카페처럼 보인다고 친구들이 한 마디씩 하는데(이런 거 어디서 샀냐, 이걸 붙일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냐 하면서요), 따라 하겠다고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간 친구도 있고, 의외의 인물이 이 벽에 꽂혀선 좋아해서 저를 뿌듯하게 만든 기억도 나네요. 우리 집에 온 가장 나이 어린 친구가 대학생 애기남자였는데(네! 저한텐 이제 애기입니다 ㅋ), 이런 거 그 또래 남자들은 관심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도 이 좁은 벽을 무척이나 맘에 들어했거든요. 센스가 남다르다며. 실은 별 것도 아닌데. ^-^;
참고로 아래는 다른 버전의 호텔 라벨 포스트카드 세트 디자인입니다. 맨 첫줄 왼쪽의 르완다의 그란데 호텔 라벨 참 탐이 나네요(Luanda는 Rwanda의 옛 표기 방식이랍니다).
30매 한 세트가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예쁜 루이 뷔통 박스에 담겨 있습니다. 한 장 한 장마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 호텔들의 이름과 이를 상징하는 그림이 담겨 있죠. 제법 단단하고 도톰해 톡톡한 느낌을 주는 하드 페이퍼에 인쇄되어 있어요. 특히나 좋은 건 색감이 참 빈티지해서 멋스럽다는 거죠. 그게 루이 뷔통스러워요. 한 장 한 장마다 다른 커팅과 고유의 디자인이 있다는 것도 물론 근사하고요. 올해도 이거 매장에서 파는 걸 보긴 했었는데, 아직도 팔려나 그건 모르겠어요. 보통 이런 건 한정으로 나와서 정해진 수량이 끝나면 또 제작하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아마 9만원쯤 했던 것 같은데.. 건방지도록 비싼 가격이지만 전 선물로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저처럼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그 이상의 가치를 뽐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 생각해보면 나쁘진 않은 가격인 것 같아요. 애초 빈티지한 색감으로 인쇄된 덕분에 시간이 지나 빛과 습도로 인해 종이 표면이 변색되거나 하더라도 역시나 꽤 자연스럽게 보일 것 같거든요. 그건 루이 뷔통 가방의 매력이기도 하죠. 전에요~ 루이 뷔통에서 호텔 라벨 스티커를 만든 적도 있어요. 트렁크나 캐리어 같은 데 붙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호텔 라벨 포스트카드 세트까지 만든 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렇게 규모가 큰 브랜드에서 작은 소품, 그것도 가죽도 아닌 것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인 건 아마도 루이 뷔통은 다른 명품 브랜드와 달리 ‘여행’에서 시작된 헤리티지가 담겨 있어 이를 중요하게 생각해 그런 것일 거라고. 이런 걸로 푼돈(?) 더 벌고자 함이 아니라요. 아시잖아요 루이 뷔통이 얼마나 비싼지.
루이 뷔통은 귀족들에게 커스터마이징 여행용 트렁크를 제작해주며 시작된 브랜드에요. 그 히스토리를 살짝 얘기하자면.. 루이 뷔통의 창시자인 루이(Louis)는 1821년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역시도 목수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죠. 고작 16밖에 안 되는 어린 나이에 일을 하겠다고 고향에서 무려 400km나 떨어진 먼 파리로 떠날 결심을 해요. 당시엔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았던 데다가 가난한 꼬맹이가 어디 좋은 곳에서 자겠어요. 마구간에서나 자고, 주방 허드렛일을 도와 끼니를 떼우며 하루 하루 더 파리로 가깝게 간 거죠. 그렇게 갖은 고생으로 무려 1년 만에 파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목수 집안의 꼬맹이답게 파리로 향하는 긴 여정 중 포퓰러 나무를 가공하는 기술을 배우기도 했대요. 처음에 파리로 떠날 땐 가구를 만드는 멋진 목수가 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으나, 1년 간의 원치 않았던 긴 파리로의 여행 중 그는 가구가 아니라 튼튼하고 멋진 여행용 가방, 트렁크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립니다. 그래서 파리에 도착한 소년은 당시 가장 명성이 높았던 파리의 가방 전문가 마르샬을 찾아가 견습공이 되었고, 특유의 솜씨로 그의 명성도 높아지며 나중엔 자신의 매장과 공방을 열게 되죠. 1853년에는 당시 으제니(Eugenie) 황후가 가장 총애하는 장인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고 해요. 당시 프랑스에서 ‘장인’의 호칭이 부여된다는 건, 글쎄요. 오늘 날 영국에서 ‘훈장’을 주는 것처럼 대단히 사람을 자랑스럽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 루이는 세계 최초로 뚜껑이 평평한 트렁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땐 지금처럼 바퀴 달린 여행용 캐리어가 없던 시절이잖아요? 그래서 귀족들은 여행을 할 때 트렁크에 주렁주렁한 땅바닥을 쓸고 다니는 드레스와 더불어 온갖 것들을 넣어 마차 여러 대에 나눠 싣고 이동했대요. 그런데 당시의 트렁크란 뚜껑이 죄다 돔 형태였던 게죠(사진 참고하세요). 그럼 이동할 때 수 많은 트렁크를 차곡차곡 쌓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루이는 켜켜이 쌓아 이동이 편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트렁크를 만들어 선보였고 그게 귀족들 사이에 엄청나게 히트를 치면서 루이의 명성이 갈수록 높아져 오늘 날엔 장인이 만든 고급 트렁크의 대명사가 아니라, 명품 가방 브랜드의 대명사로 여겨지게 된 거죠. 튼튼한 재질과 멋진 디자인, 그리고 평평하다는 특징은 귀족들의 여행을 편하고 근사하게 만들어줬지만 생각해보세요. 지금도 물론 비싸지만 당시에도 루이 뷔통 트렁크는 주문 제작을 받아 만드는 굉장히 고가의 트렁크였거든요. 막 만들었을 때도 멋지지만, 여행에 여행이 더해지며 트렁크 모서리가 닳으며 점점 낡아가고, 색이 바래지고, 거기엔 여행의 흔적들이 표가 붙기도 하고 그랬죠. 선편으로 트렁크를 부칠 때, 이 트렁크가 누구 것인지 알아야 하니까. 그리고 어느 호텔로 가는 지도. 그렇게 값비싼 트렁크는 여행의 시간과 함께 점점 고풍스러운 빈티지함이 더해지면서 새 가방일 때보다 오히려 더 멋스러워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루이 뷔통 트렁크를 단지 여행용 가방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여행지에서, 또는 집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는 테이블로 쓰거나 침대 옆에 두고 사이드 테이블로 쓰거나 하게 되죠. 자신의 부를 자랑할 수도 있고, 단지 비싸기만 한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멋져지는 빈티지를 드러내는 트렁크였으니까요. 결국 그렇게.. 루이 뷔통 트렁크는 가방이면서도 동시에 가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담게 됩니다. 그건 루이가 목수일과 가방일을 둘 다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겠죠?
루이 뷔통은 그래서 여행용 가방인 트렁크에서 시작된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브랜드가 탄생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1년씩이나 걸렸던 소년 루이의 험난한 파리 여정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생스럽고 고달팠을 시절이지만, 그 시간은 목수로서의 기본 자질을 더욱 다듬으면서도 가방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귀한 시간이니까요. 노숙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마구간에서 한뎃잠을 자면서도. 평범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고통의 시간은 그저 낙담과 비관으로 점철될 시간이겠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었습니다. 왜냐면.. 그 1년은 가구와 가방이 콜라보레이션되는 시간이었잖아요? 목공일에서 가방으로 관심을 돌리는. 그 시간은 세상을 놀라게 만든 혁신적인 루이 뷔통의 평평한 트렁크가 탄생할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라스베거스에 갔던 작년 봄, 한바탕 재미 있게 봤던 영화 <오션스 일레븐>의 촬영지인 벨라지오 호텔에 묵었었거든요. 어질어질할 정도로 화려한 밤의 라스베거스에 비해 아침은 적막이 흐를 정도로 고요한 거리를 조용히 걷다가요. 제가 있었던 벨라지오 호텔에서 연결된 루이 뷔통 매장 앞에 멈춰 한참을 쳐다 봤던 그 트렁크가 떠올랐어요. 그건 어쩌면 제가 본 가장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은 트렁크였을 겁니다. 1924년에 주문 제작된 거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거든요.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스타벅스 빼고 다른 상점들은 문을 열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쇼윈도에 작품처럼 놓여진 트렁크를 오래 서서 지그시 바라보는 게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어요. 마치 뮤지엄을 걷다 맘에 드는 작품 앞에 사로잡혀 한참 서 있는 것처럼 그랬었거든요. 1924년에 만들어진 가방이라는 건 저 트렁크 왼쪽에 메탈 택이 보이죠? 거기에 써있었던 거에요. 뮤지엄에 가면 작품 옆에 작품을 설명하는 택이 붙어 있듯 저 트렁크 캐비닛도 그랬어요. 그 날 저는, ‘맞다! 그러고 보니 루이 뷔통의 시작이 여행용 트렁크였지?’하고는 그 날 궁금증을 가지게 됐어요. 비싸고 예쁜 가방 루이 뷔통이 제품들이 아니라, 트렁크에 담긴 루이 뷔통의 히스토리에 대해서. 그렇게 알아보게 된 거죠. 제가 위에 기술해둔 루이 뷔통 시작에 대해서.
자, 다시 포스트카드 얘기로 돌아올게요. 그래서 제가 루이 뷔통 포스트카드엔 루이 뷔통의 해리티지가 담겨 있다고 표현한 거에요. 여행용 트렁크에서 시작한 루이 뷔통, 초창기에는 귀족,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부유층이라고 표현해두죠, 그런 사람들에게 여행의 기쁨과 이동의 편리함, 그리고 멋스러움과 추억을 제공했던 그 트렁크, 그리고 그렇게 트렁크에 붙었던 갖가지 표식들을 기념하고자 루이 뷔통은 호텔 라벨 시리즈를 통해 이런 포스트카드를 만들었답니다.
저요. 집 꾸미는 것에도 살짝 관심이 있어요! 매거진이나 블로그 같은 데에서 나오는 것 같은 대단한 센스는 없어요. 하지만 그냥 누구나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정도의 센스, 딱 그 정도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 여름,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집을 꾸며준 경험도 생긴 걸요. 그래서 감히 제안해보건대.. 저처럼 혼자 살거나 또는 신혼살림을 하고 있어 내 맘대로 집을 꾸밀 수 있다면, 또는 부모님과 함께 살더라도 내 방만이라도 젊은 감각으로 꾸미고 싶다면 포스트카드로 벽을 장식해보세요 저처럼. 루이 뷔통처럼 값비싼 포스트카드가 아니면 어때요. 저에게 루이 뷔통 포스트카드는 여행을 꿈꾸게 하고, 루이 뷔통 트렁크를 언젠가는 내 평생에 1개쯤은 가지고 싶다는 로망을 갖게 하며, 명품을 그저 사치품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바라볼 수 있었던 좋은 첫 경험-라스베거스에서의 그 고요한 아침-을 떠올리게 하기에 의미가 있어요. 또 좋은 친구가 사준 선물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고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이렇게 비싼 포스트카드를 활용하라고 권하진 않을래요.
전요 침대 머리맡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인 고흐의 포스트카드를 몇 장 붙여뒀어요. 그건 아마 몇 년 전 파리 오르셰에서 사온 포스트카드일 거에요. 현관 거울 옆 좁은 벽에는 작년 5월-LA에서도 풍광이 아주 좋은 높은 언덕에 자리한 게티 센터, 석유 재벌 폴 게티의 소장품들을 볼 수 있는 게티 뮤지엄이잖아요? 아~ 전 여기 정말이지 너무도 좋았던 뮤지엄이에요. 게티 센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캘리포니아의 파란 하늘과 끈적임 없이 시원한 공기가 떠올라 싱그러움에 사로잡히게 되거든요!-게티 센터 북 스토어에서 사온 포스트카드를 붙여놨어요. 집을 나서기 전, 그리고 집에 들어올 때 제일 먼저 보이는 이 곳에 말이죠.
그리고 조그만 미니 포스트카드 세트를 사다가 옷장 같은 데 노끈과 우드집게를 활용해 그냥 띡띡 매달아두는 것도 괜찮죠? 이건 대충 50장도 넘는 거 고작 1만원쯤에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옷장에 이렇게 붙여두니 색다르더라고요. 또 다른 곳엔 같은 재료로 미니 포스트카드 대신 폴라로이드 사진을 붙여두기도 했어요. 한번 해보실래요? 힛. 전요. 미술 문외환이지만 보는 건 좋아해요. 음악 문외환이지만 좋은 음악, 좋은 공연 좋아하듯. 그래서 집에 작품 몇 가지를 걸어두고 놓아두고 그랬거든요. 이건 왠지 저랑 감성 코드가 너무도 잘 맞는 것 같은 사진작가 라미의 작품,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고흐의 작품도 유화의 질감까지 흉내낸 그런 판넬을 사다가 복도 벽에 걸어뒀어요. 또 그 외에도 몇 개 액자가 더 있지만.. 사실 작품 액자로 걸어두려고 조금 비싸긴 해요. 작품 로열티에 인화비 그리고 액자값까지 한번에 지불해야 하니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포스트카드를 벽에 붙이는 소소한 재미로 빈 벽을 채우는 것도 괜찮다 생각해요. 누구나 시도해볼 만하니까요. 다소 귀찮아도 사진 몇 장 찍어서 소개해야겠다 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네요. 이 원고 역시도 며칠을 붙잡고 있다가 이제 보내요.
가진 것 없던 루이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나는 왜 귀족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해 이 모양 이 꼴이냐며 부모나 신을 원망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새벽에 일어나 윤주메일을 마저 퇴고하면서 다시금 생각해봤습니다. 아침에 몸을 데우기 위해 차를 끓이고, 동쪽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걸 바라 보면서요. 때론 가진 게 너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지지 못한 것으로 인해 불평이 많은, 좌절의 상황이 찾아올 때 쉽게 낙담해버리고 마는 제 자신을 돌아봤죠. 누군가에게는 원망의 시간으로 소모될 끔찍한 1년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은 물론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던지는 귀한 1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겠죠. 살다가 어려운 시기가 다가왔을 때 그렇게 그 시간을 낙담과 원망으로 보내지 않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 생각했던 내일보다, 오늘 더 열정과 열심으로, 더욱 사랑하며 보내야겠어요. 그리고 가끔 보지만 우린 너무 잘 통하는, 그 친구에게도 모처럼 연락을 해봐야겠어요. 생각으로만 보고 싶어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고, 근사하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들의 비싼 코스 메뉴를 (현대카드의 플래티늄급 카드를 가지고 있다면) 반값에 즐길 수 있는 현대카드 고메위크가 오늘부터 시작이죠. 아~ 정말 반가운 시간! 최대한 이때를 누리려고 일주일 동안 미리 점심, 저녁 약속을 잔뜩 잡고 레스토랑마다 예약해뒀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내 인생에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오글거리는 표현은 생략하겠지만,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그 시간을 행복해하는 제 미소로 표현하려고요. 그렇게 2013년 가을 고메위크의 첫 식사는 가족과 함께입니다. 그럼 윤준 이만 총총~
첫댓글 인테리어 센스.. 윤주님 댁 다른 모습도 궁금할만큼 멋진데요~? 윤주님 옥수동 사세요? 같은 아파트인거 같네요 전 105동이에요^^ 혹시라도 단지 내에서 마주치면 인사 드릴께요!
그러고 싶은데.. ^-^; 옥수동도 제겐 친근하답니다. 바로 옆 금호동이이에요 전. 왠지 래미안 옥수리버젠에 사실 것 같은 예감이~! 저 독립 꿈 꿀 때 한강 보이는 곳에 꼭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몇 군데 가봤는데 그때 고려한 곳이 금호동 서울숲 푸르지오 1차랑 래미안 옥수리버젠이었거든요. 서울숲 푸르지오는 한강과 너무 가까워서 강변북로랑 용비교 소음이 예상보다 너무 큰 데다 새아파트가 아니라 내부가 생각보다 덜 깨끗해서요. 옥수리젠은 한강 보이는 동이 나온 게 없었던 데다 옥수동 언덕 꼭대기에 위치했지만 앞에 아파트들이 너무 많아 한강 보이는 동도 시원하게 잘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금호동이에요~
저 옥수동아파트 살짝(?) 검색해봤어요^^ 이상 여기까지만! 더 묻진 않겠습니다~
읽는내내 맘이 따뜻해지는걸 느꼈어요! 참 좋은 친구분 얘기도 그렇고~ 어쩜 글로 이렇게 예쁘게 표현하실수 있으신지..
그리고 포스트카드로 집 꾸민걸 보면서는 꿈꾸게 된거 같아요~ '윤주님 안목 정말 대단하시다, 나도 이렇게 해볼까..'하구요
원망의 시간으로 소모될 끔찍할 1년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세상을 바꾸는 귀한 1년이 된다! 누구나 아는 말일수 있겠지만,
제 삶엔 이말을 그냥 앎으로만 그치고 싶지않다라는 생각도 잠시.. 윤주님 요번 메일도 너무 감사하네요~
항상 저를 살짝 들뜨게 하는 쩌니 님의 댓글.. 루이뷔통 포스트카드는 매일 봐도 질리지 않고 맘에 쏙 들어요. 셋집이라.. 언젠간 이 뷰 좋은 집에서 이사를 나가야 할 텐데.. 그때 다른 포스트카드는 떼어내다 구겨지고 상하겠지만, 쟤만큼은 재질이 좋아 곱게 잘 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사 갈 때도 떼어 갈 작정이랍니다! ^^
와,, 윤주님 이번 글도 정말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__^* 포스트 카드라 하니 예전에 일했던 뉴욕의 한 미술관에서 데리고 온 포스트 카드가 생각나서 정말 몇 년만에 꺼내봤어요~ 윤주님 아니었다면 제 기억에서 사라졌을 카드들일텐데 이제라도 다시 꺼내어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
루이비통 카드와 따뜻한 친구, 그리고 한강이 보이는 거실까지...! 또 윤주님 덕에 갖고싶은 게 많아져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네요 ^^~ 기쁜 주말 보내세요!!!
우와~ 멋져요! 특히 오른쪽 시리즈 색감 예술인데요? 그리고 왼쪽 시리즈는 저처럼 벽에 붙이면 진짜 예쁠 것 같아요. 작품 하나 하나가 참 흡인력이 있네요. 시선을 빨아들이는.. ^^
앗ㅠㅠ이럴 줄 알았다면 포스트카드를 구매할 걸 그랬어요 전 늘 저런 카드가 과연팔릴까 하고 ....;;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ㅋㅋㅋ 예술 문외한이였네요ㅠㅠㅋㅋㅋ 윤주님께 안목 쫌 배워야겠요 저도 센스쟁이가 되고싶어요ㅋㅋ
다음 여행지, 뮤지엄에 가시면 꼭 구입해보세요!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그런 애들하고 달리 대개는 품질이 뛰어나더라고요. 품질만이 아니라, 그 안에 추억이 담기는 게 더 큰 의미가 있지만요!
윤주님의 주옥같은 메일 잘 보고있습니다ㅋㅋ 늘 느끼는거.. 이분 진짜 부지런하시다~ 저도 혼자서 살아본적 있지만 매일 청소하는것도 보통 피곤한게 아니라서 밥도 한번 안해먹었거든요ㅡㅡ;;;; 은은한 라이트닝까지 더해서 왠지 갤러리 코너에 자리잡은 까페같은데요^^
아니어요.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사옵니다. 그런데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해요. 그리고 전 형광등 조명을 싫어해서요~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는 주광색 형광등 다 빼버리고, 은은하고 노란 전구색 조명으로 바꿨어요. 그래서 밤이면 좀 은은한 조명으로 해놓고 살죠. 조명, 그거.. 집안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밤엔 또 향초도 얼마나 톡톡하게 조명 노릇을 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향초는 낮 말고 항상 밤에 피우는 걸로! ^^;
인트로부분에서 참..윤주님이 글을 잘쓰시구나 하고 느꼈어요ㅎㅎ어느 작가의 일상이 담겼던 에세이 느낌이 제겐 들었거든요^^ 루이비통 얘기도 잘 읽었습니다..ㅎㅎ 포스트카드가 인테리어 소품이 될 수 있었네요ㅎㅎㅎ그저 소장용..정도로만 생각했는데...은은한 촛불조명에 비춰지는 벽면이..멋스럽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습(글)으로 윤주메일을 쓰고자 하는 의욕이 항상 있거든요. 그래서 초창기와 달리 글 하나 쓸 때도 좀 더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이게 되요. 그래서 이런 엄청난 칭찬을 듣게 되는 날이 오네요. 감사합니다 보라색깨순이 님~ : ) 글이란 건 항상 어려운 숙제와 같아요 제겐. 그래도 글을 쓰는 건 참.. 이런 진중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에 큰 매력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말솜씨 없는 제게는, 그래도 말로 하는 것보단 글로 쓰는 게 좀 더 생각을 정리하며 표현하기가 수월하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