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시민
강남규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아주 뜨끔한 소제목이다. 난 냉소적인편이다. 조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여긴 안돼’ 혹은 ‘내가 더 실력을 쌓아 여길 뜨자’ 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소위 모든 것은 좀 더 자기계발에 매진하지 않은 나태한 개인의 탓이며, 사회탓을 하는 사람들은 실력없고 게으른 개인의 자기 합리화라고 치부했다. 나름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조금만 잘못되도 다 내 탓이고, 뒤처지지 않으려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온 피곤한 인생이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책을 읽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내가 개인의 탓이라며 생각한 것이 사실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사회 탓이란 걸 알았다. 사회적인 안전망이 있다면 실패를 한다고 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들의 합의를 도출해야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수다. 또한 냉소를 거두고 서로 연대하는 것 또한 필수다.
대한민국은 소위 산재공화국이다. 제주도에서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사망한 18세의 이민호학생,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사망한 19세의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컨베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24세의 김용균씨, 반죽기에 끼어 사망한 SPC 의 제빵사등 그나마 여기에 열거한 산재는 정치인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매일 일어나는 대부분의 산재로 인한 죽음은 아무 이슈도 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같이 분노하고 책임지지 않는 기업의 제품 불매운동 정도다. 그나마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미명으로 지속적으로 하지도 못하고 있지만.
이번 정권들어 “국민을 개, 돼지로 본다.” 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수준 이하의 정치로 인해 시민들이 정치혐오로 정치에 무관심을 보이니깐 권력자들이 보인 행태를 꼬집은 말이다. 시민이 무력할 때 정치는 방만해진다. 시민이 정치를 혐오할 때 제도정치 행위자들은 간편하게 그 위에 올라타곤 한다. 따라서 우리는 깨어있는 시민으로 있어야 한다. 냉소하지 않고 따뜻하게 연대하는 시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