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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마태복음 7:7-12▪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설교작성 노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특권 중 하나가 기도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특권이 오염이 되어 악용하게 된다면 그만큼 해독도 클 것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기도라는 특권을 잘못 사용(使用)하게 될 때 그 병폐는 치명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신앙이 되고 자신의 축복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신앙이 되고 기도를 주술적으로 사용하는 무속적인 신앙이 되어 기독교의 본질이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용되는 성구 중의 하나가 본문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는 무엇이며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강론
4:17절은 산상수훈의 배경과 도입부분이라 할 수가 있는데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전파하셨다 합니다. 그리하여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4:25), 즉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산상수훈 전체를 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런 후에 본문을 접근해야만 참 뜻을 인식하게 됩니다.
산상수훈 한 눈에 바라보기
5장
산상수훈은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5:1-2)하고 시작이 됩니다.
㉠ 산상수훈은 최우선적으로 천국 백성은 어떠한 사람들인가(5:3-12)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이것이 유명한 팔복(八福)의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 긍휼이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이 천국 백성의 특성이라고 말씀합니다.
㉡ 그런 후에 천국 백성들의 세상에서의 역할(5:13-16)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5:13, 14)하십니다.
㉢ 이어서 천국 백성의 윤리를 말씀하는데 천국 백성의 윤리수준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하십니다. 한마디로 천국 백성들이란 “남보다 더 하는”(5:47), 즉 불신자들 보다 월등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중심점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6장
6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하신 “두 주인(主人)”을 만나게 됩니다. 두 주인(主人)이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라”(6:24)하신 한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다른 주인은 이 세상 임금(요 12:31)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 표현이 너무 비약적으로 여겨진다면 자기중심적인 사상이라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하는 물질주의 사상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기를 즐거워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주인으로, 왕으로, 또는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들이란 모든 면에서 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의탁합니다. 이것이 6장의 내용이며 중심 단어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7장
그런 후에 본문이 들어 있는 7장은 주어졌습니다. 7장을 푸는 키워드(Key Word)는 “그 날에”라는 작은 낱말입니다. “그 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결산하시는 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을 보면 바울의 관심은 언제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 1:14),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 2:19)고 “그 날”에 있었습니다.
㉠ 주님은 “그 날”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1)하십니다.
㉡ 두 문, 두 길이 있는데(14) “그 날에” 하나는 영생으로 하나는 멸망으로 갈라지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 “그 날”에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성도)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1)하십니다.
㉣ “그 날”에 많은 목회자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고 말할 것이나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22-23)는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리고 산상수훈의 결론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24, 26)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상 살펴본 대로 산상수훈의 구도는 처음에 천국 백성은 어떠한 사람(무엇을 했는가가 아닌)인가로 시작하여 “그 날에”하고 결산(심판)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맥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주어졌습니다. 이제 자문해보아야만 하겠습니다.
㉠ 나는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있는가?
㉡ 나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
㉢ 나는 “두 주인”을 섬기고 있지는 아니한가?
㉣ 나는 집을 모래 위가 아닌 반석 위에 세우고 있는가?
산상수훈의 결론인 “그 날”은 개인적인 “그 날”과 역사적인 그 날로 다가옵니다. 이제 묻습니다. 이제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무엇을 찾아야 하겠다는 깨달음이 있습니까? 무엇을 열어 달라고 두드릴 마음이 드십니까?
①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하신 말씀을 문맥에서 떼어내어 거두절미하고 무엇이나 구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하다 보니까 사업 잘 되기를 구하고 출세하기를 구하고 병 낫기를 구하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바를 구하라 주시기까지 끈질기게 구하라고 기도를 강조할 때 전가보도처럼 인용되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지금 “병 낫기를 위해서는 안 된다, 축복기도는 잘못이다, 문제를 위해서 간구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하신 바른 의도와 바른 해석이 무엇인가를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라”는 자기중심적인 기복주의 신앙에서 탈피해야함을 역설하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럴 경우 제시해야 할 성경 본문은 산상수훈의 본문이 아니라 야고보서 5:13-16절 등 다른 본문이어야 마땅합니다.
산상수훈의 문맥
“구하라 주실 것이요”하신 본문은 7장에서 하신 말씀인데 주님은 6장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6:31-3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그런 것들을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단 말입니까? 주님을 건망증 환자로 만들지 마십시오. 이 말씀 하나만으로도 이러한 해석을 거절하게 만듭니다.
“문맥”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7:7)도 7장의 문맥과 산상수훈의 문맥과 마태복음의 문맥과 신약의 문맥과 구약의 문맥, 즉 성경신학적으로 해석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한 주님의 마음을 가진 설교자인 것입니다.
보십시오. 산상수훈의 8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天國)이 그들의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天國)이 그들의 것임이라”(5:3, 10)고 천국으로 시작하여 천국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 전체도 “천국”(5:3)으로 시작하여 “천국”(7:21)으로 마치는 구조입니다.
이처럼 “천국”(天國)이 산상수훈의 중심 주제라면 산상수훈에서 구하라 하심도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의미로 해석을 해야 논리에 맞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6:9),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구하여야 마땅합니까? 무엇을 찾고 무슨 문이 열리도록 두드려야 하겠습니까?
구약 성경의 문맥에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하심은 산상수훈에서 비로소 촉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 말미암아 추방을 당한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촉구하시는 성경의 일관된 간절한 초청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 하와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사탄을 구하다가 에덴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하나님과 분리된 체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엡 2:12)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고역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구하여야만 했습니까? 무엇을 찾아야만 했습니까? 구약교회가 메시아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바벨론에 포수가 되어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단 9:19)하고 부르짖었습니다. 무엇을 구하여야만 했습니까? 무엇을 찾아야만 했습니까?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예표로 주어진 것들입니까?
㉠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 4:29).
㉡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3),
㉢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시 105:3-4).
㉣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시 24:5-6),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하십니다.
유사한 성구의 나열이라 생각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구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찾으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말씀을 성경에서 찾으라면 100번이라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속사라는 맥락에서 볼 때에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당한 인간,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이 구하고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구하고 찾아야 함은 너무나 긴급하고도 당연한 일이며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호소인 것입니다. 이제 누구를 구하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셨습니까?
신약 성경의 문맥에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죄 값에 팔린 인간이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린다고 해서 무조건 얻게 되고 찾게 되고 열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구하고 찾는” 기도만 드리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해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보다 선수적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죄를 해결하는 “구속”이 선행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메시아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에스겔 36:36절을 보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6-37)하십니다.
좀 더 나아가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졌다 하여도, 그리고 그 언약을 붙잡고 구한다 하여도 그 언약이 성취(成就)되기까지는 “약속어음”으로만 주어졌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히 11:13)합니다. “구하여도”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시대가 구약 시대였습니다.
또한 구약 시대란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히브리서 9:8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합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그토록 많은 제물이 드려졌지만 굳게 닫힌 휘장은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
이제 히브리서 10:19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해진 것입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우었다”고 선언하시자 1500년 동안이나 막혔던 휘장이 열려짐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점을 히브리서 10:20절에서는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합니다. “열어 놓으신”, 그래서 주님은 “내가 문이라”하십니다. “새로운 살 길”, 그래서 주님은 “내가 길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하십니다.
이제 분명합니까? 우리는 이미 구한 바를 받았으며 찾던 바를 얻었으며 두드리던 문이 열려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또 무엇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승천하시기 전 주님은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그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적용구인 마태복음 7:11절을 보십시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좋은 것이란 무엇일까요? 병행구인 누가복음 11:13절에서는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오셨기 때문에 “성령을 주시리라”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구하여야만 하겠습니까? 주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9-10)라고 기도하라하십니다. 이것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하신 기도의 우선순위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이 될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엡 1:17)해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골 1:9)해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쳐야만 하겠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천하를 얻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산상수훈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18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누가 우리들의 “아버지”라 하십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아버지라 하지 않고 “너의 아버지, 네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보다 복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너의 아버지요, 네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가르쳐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이 불가해한 축복이 가능하도록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내 아버지 곧 나의 아버지”되심이 분명하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이 또한 분명한 것입니다. 이를 진심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이 하나만으로 족한 것입니다.
묻습니다. 이제부터 무엇을 먼저 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이름과 영예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가 막히거나 좁아짐이 없기 위하여”, 이것을 우선적으로 구하고 더 많이 구하십시다.
그리하면 우리의 문제와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하십니다. 이것이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하신 주님의 마음입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전에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314장)
(일본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첫댓글 목사님. 안녕히 다녀오세요.^^
많이 많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