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추워진다는 일기예보에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뭘 입고 가지..통영은 아무리 춥다고 해도 꽁꽁 싸맬 정도는 아닌 따뜻한 곳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얇게 입고 가기엔 바닷바람이 또 녹록치 않은 곳입니다. 털모자와 장갑 목폴라 정도를 기본으로 안에 패딩 조끼를 덧입는 것으로 하고 파카대신 조금 두꺼운 바람막이를 입고 출발. 오늘은 추도입니다.
강원도에 오징어와 황태 덕장이 있다면 우리 통영 추도엔 메기 덕장이 있지요. 물메기라 부르는 곰치 배를 갈라 해풍에 꾸덕꾸덕 말립니다. 그냥 생메기로는 탕과 무침 밖에 못하지만, 말리면 찜을 해도 맛있고 그냥 쫄쫄이 찢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물 자작하게 붓고 파 마늘 땡초 몇 조각 만으로도 시원한 국물맛이 겨울 추위를 날릴 정도입니다.
중화항에서 낚시배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추도 미조마을에 도착합니다. 남해 미조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산다고 미조마을이라 한다는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의 마을입니다.
벌써 집집마다 메기가 걸려 있습니다.
뽀얀 메기 속살. 처음 통영 와서 신기했던 광경이 길가에 널어 놓은 생선들과 겨울이면 집집마다 걸려 있던 대구였는데, 처음 와 본 이 곳 추도엔 메기가 지천으로 걸려 바람에 말라가고 있습니다.
통발을 만드시는 할아버지. 나도 젊었을 땐 메기 잡으러 다녔는데, 이젠 늙어서 이것 밖에 못 해..하시며 껄껄 웃으십니다. 이젠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대나무 통발.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다는데, 아직 추도에선 이 통발로 고기를 잡는답니다. 그물을 일일이 매고 계셨습니다. 바닷가 찬 바람에 손이 곱아도 그물을 매야 하니 장갑을 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오른쪽이 고기가 들어오는 입구인데, 한 번 들어간 고기는 다시 나올 수가 없다지요. 분명 길은 있는데 찾을 수 없어 꼼짝 없이 잡혀버리는 희한한 기구. 그물이 자유자재로 접히니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도 배에 실을 수 있습니다. 대나무는 물에 강하니 오래 사용할 수 있을테고요.
오늘 통섬도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여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장인어른 모시고 온 사위와, 서울서 친구따라 통영의 섬에 가 볼거라고 오신 분도 계십니다. 새로 오신 분들이 그럽니다..오메야 다 통영사람일낀데 아는 사람이 없다야..^^
여기 저기 빈 공터마다 메기 덕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겨울 한 철 쏠쏠한 수입원.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니 천연기념물인 추도 후박나무 옆으로 섬 고유의 옛날 집이 보입니다. 계세요? 불러봐도 인기척이 없습니다. 아마 메기 작업하러 가셨겠지요. 마루 가득 걸린 빛바랜 사진들이 정겹습니다. 가족 단체사진, 결혼사진, 백일사진...이 집 가족의 역사이고 추억이며 그리움일 사진들...
한켠에 있는 부엌 문을 열어 봅니다. 아궁이엔 불이 붙어 있고, 가마솥 대신 양은 솥이 자리한 부뚜막. 빛이 들어오지 않는 옛날 정지라는 부엌은 살림살이는 없이 지금은 난방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듯합니다.
원적외선 뿜어내며 활활 타고 있는 아궁이..예전 저 어렸을 때도 할머니 댁엔 저런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남은 불엔 생선을 구웠더랬습니다. 지금껏 남아 있는 한 컷 그리움...
마당에서 바라본 천연기념물 후박나무. 후박나무 바로 옆엔 커다란 동백나무가 서 있습니다. 수령이 꽤 오래 되었겠던데..
시골 외갓집 분위기 물씬 나는 곳. 왠지 정겹고 왠지 눈물겨운...
길가에도 꾸덕꾸덕 메기는 말라가고..고립된 섬에서 제일 흔한 것이다보니 누가 집어 갈리도 없는 돈 덩어리..
추도만의 겨울 풍경입니다.
길가에 선인장이 자랍니다. 제주 바닷가에서 본 선인장도 생각납니다. 따뜻한 기후 덕에 선인장은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마을 뒷쪽 언덕 위에 서너 그루의 나무들이 엉겨서 자랍니다. 당산목이라는데 자세한 설명이 없어 잘은 모르겠으나 이 또한 수령이 오래 된 듯합니다.
언덕 위에서 바라 본 미조마을. 바람 자는 곳에 자리 잡은 덕에 포근해 보입니다. 마을 앞 자리 잡은 용두바위. 용머리 닮았다고 용두바위라는데, 저기엔 묘자리를 쓰면 안 된답니다. 물이 많은 섬 추도에 어느 해부턴가 가뭄이 들어서 용하다는 분을 모셔다 물어보니, 누가 저 용두바위에 묫자리를 썼다해서 가보니 진짜 무덤이 있더랍니다. 평장을 해서 위장을 했다하나 이장을 하고나서야 물이 다시 샘솟더라는...
마을 뒷길은 바람이 바로 치는 곳이라 다시 마을로 내려갑니다.
겨울 땔감 준비를 마친 이 집은 올 겨울을 아주 뜨시게 나겠지요. 주인 어른의 부지런함이 느껴지는 풍경
이 걸 한 마리에 만 원씩만 쳐도 이게 2백만원이 넘을깁니다. 하시네요..보통 큰 거 열 마리 한 축에 20만원 정도 합니다. 중간치 15만원 정도..
마른 메기를 묶는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메기 꼬리 쪽에 구멍을 뚫어 열 마리씩 한 축으로 묶습니다. 작은 놈으로 한 마리 찢어 먹어 보라고 주시네요. 맛있는 메기는 오징어보다 북어보다 명태보다 노가리보다 맛있습니다.
빨래인양 줄에 널려 있는 문어 세 마리. 이 또한 섬이라서 가능한 풍경입니다.
새벽에 나간 배가 들어와 잡아 온 메기를 트럭 가득 실어 보냅니다. 이 메기는 덕장이 있는 자기 집으로 보내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말리는 작업을 또 해야 합니다.
마을 앞 선착장에서도 작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세 분이 메기 배를 따고 계시네요,.
배를 가르고 알과 내장, 아가미를 꺼내 따로 모읍니다. 젓갈을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요 아저씨들이 물 갈아가며 몇 번씩이나 깨끗이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뺍니다. 그리고는 덕장에 한 마리씩 널어 말리는 거지요.
때마침 들어온 배에서 또 잡은 고기를 내립니다. 메기는 메기대로 잡어는 잡어대로 분류하는 작업을 지켜보다가 횟감을 몇 마리 사서 점심에 먹기로 합니다. 점심 먹을 집까지 갖다 달라 하고 돌아서다 밭에서 얻은 무도 같이 갖다 주라 올려 놓았더니 무는 거기 놓으면 안돼 하고 들어올렸지요. 그런데 그새 아귀가 무를 물어버린겁니다. 무에 박힌 아귀 이빨은 빠질리 없고 들어올린 무를 따라 아귀까지 따라 올라왔네요. 신기한 모습에 너도나도 카메라 들이댑니다.
여기를 봐도 메기 저기를 봐도 메기. 추도입니다.
마을 옆길을 따라 대항마을로 넘어갑니다.
굽이 굽이 한참을 돌아가니 대항마을이 보입니다. 이짝에도 집이 몇 채, 반대편 바닷가에도 집이 몇 채 떨어져 있습니다. 이쪽은 미조마을보다 바람이 더 셉니다.
한겨울에도 밭에는 푸른 나물이 자라는 곳. 통영입니다. 방풍과 상추 시금치들이 자라고 있네요.
아, 이 벽돌 좀 보세요. 바닷모래를 그대로 벽돌로 찍어 만든 거랍니다. 자세히 보니 굴 껍데기며 조개 껍데기가 보입니다. 벽돌 뿐 아니라 블록도 바다 모래로 만들어 집을 지었습니다. 사는 사람이 떠나며 자연스레 폐가로 남은 집. 직접 벽돌과 블록을 만들어 집을 지었을텐데 주인은 어디로 가고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이 마을 역시 메기가 널려 있습니다. 미조 마을 보다 황량해 보이는 마을 분위기. 사람이 사는 집 보다는 빈 집이 더 많아 보입니다.
마을 앞 바닷가에서는 낚시하시는 동네 분들이 보입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너울도 좀 있는데..
학꽁치가 올라옵니다. 낚싯대를 넣자마자 바로바로 올라오는 학꽁치들..이 부두 아래가 학꽁치들 집인 모양입니다. 낚시꾼이 바로 이 마을 이장님.,저희 점심 식사 때 바로 몇 마리 썰어 주셨습니다. 아까 배에서 사온 회와, 메기 회무침, 시원한 메기탕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배를 타고 나옵니다.
중화항에서 조금 더 길을 올라 달아에 이릅니다. 일몰을 보기 위함입니다. 섬들 사이 바다로 해가 집니다. 추도에 다녀온 그 바닷길 그 섬들 사이로 해가 떨어집니다.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즐거웠던 오늘 하루를 가져갑니다.
이제 곧 2011년 한 해도 저렇게 질겁니다. 그러나 오늘 지나면 또 다시 내일의 해가 다시 떠오를 것이므로 우리는 또 살아갑니다. 2012년에도 우리는 12개의 섬을 만날겁니다. 통영의 아름다운 섬.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사람들...
첫댓글 덕분에 좋은 구경 많이 합니다. 내년에는 우리도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면 공지를 좀 해주세요. 아님, 정보를 알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주시던지... 올 남은 시간 행복히 보내고 새해에는 더욱 아름다운 시간으로 가득하시길...
올해 남도 구경 잘 했습니다. 내년도 부탁드리며 항시 행복한 나날이길 바랍니다.
통영지역 인터넷신문인 통영인뉴스 대표가 구독회원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어요. 통섬이라고..매달 한 번씩가는데 평일이라서 선배님 참석은 좀 어렵지 싶은데요...다음달엔 두미도라는 섬에 갑니다. 공지는 할게요^^
평일이라면 어렵긴 하겠네. 좋은 곳에 살아서 좋은 구경하는 언수가 부럽네.
한동안 뜸하던 언수후배가 등장하니 나도 자주 들려야겠구만.덕분에 추도와 물메기(곰치) 구경 잘하고,마른 물메기에 갖은 양념얹어 쩌먹는 상상으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