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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이스라엘 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양치기
♣ 출애굽의 땅 ‖ 고센
브엘세바에서 유목민의 길이 술길을 지나 내려가면 시내반도 북부를 만난다.
시내 반도를 지나 서쪽으로 꺾어져 지중해를 따라 에담광야를 가로지르다 보면 애굽 땅 고센이 나온다.
(시내반도 인공위성 지도: 애굽의 문화를 만들어낸 나일강은 지중해 쪽으로 내려오면서 삼각주를 이룬다.
이 부분이 물이 많아 파랑으로 보인다. 삼각주가 시작하는 바로 앞이 애굽9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다)
고센땅은 나일강의 하류 삼각주지역이다.
도도히 흐르던 나일 강이 수백 개의 지류가 되어 흩어져 지중해로 사그라지는 곳의 동편이다.
도로의 영향도 있지만 워낙 넓은 지역이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현대인이 만든 장벽이 있다.
수에즈운하이다. 1869년 완공된 162.5 km의 수에즈운하는 남북으로는 홍해와 지중해를 이었지만
동서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선을 만들었다.
차량과 함께 뗏목처럼 생긴 배에 몸을 실고 아프리카를 향한다. 몇 분 안되어 도착한 아프리카,
수에즈운하를 왼쪽에 끼고 남쪽으로 달리니 이스말리아가 나오고
이어서 남서쪽 방향의 사막을 통과하여 카이로에 이르렀다.
■ 카이로
카이로는 나일강을 포함하고 있다. 나일강 삼각주의 남쪽 꼭지점에 위치한다.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넓게 펼쳐진 삼각주는 인공위성에서 보아도 그 색깔자체가 다르다.
거의 물에 가까운 색으로 보일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카이로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150km정도를 달리면 삼각형 꼭지점 부근에는
주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세워 고대 무역의 중심지가 된 알렉산드리아가 위치하고 있다.
한편 카이로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고센땅이 나오고 이곳의 대표적인 도시는 라암셋이다.
라암셋은 카이로에서 직선거리로는 110km 정도지만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4시간 이상은 잡고 가야 한다.
■ 소안
현대의 타니스(소안, 라암셋?)를 가는 길은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환경을 고스란히 보는 듯하다.
지금은 나일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여 범람은 없어졌어도 그들의 농사방법이나 삶의 질은 그렇게 좋아지지 않은 것 같다.
(타니스 원경: 소안과 라암셋 부근으로 추정되는 타니스는 고센땅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나일강이 범람하면 농민들이 지대가 놓은 신전으로 올라와 풍요의 신은 소모양의 아톨여신에게 축제를 벌이곤 했다)
타니스에 도착하자 관람객보다는 경비서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급히 둘러본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한라면 ‘크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보던 유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물론 남쪽 룩소로 올라가면 더 큰 규모를 볼 수 있지만
이곳의 신상이나 조형물만 보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북쪽 한 벽을 보자니 아직도 진흙과 짚을 섞어 만든 벽이 보였다.
이스라엘의 피와 땀으로 세운 둔덕이었다.
유적을 둘러보고 출입구에 서서 뒤돌아보자니 람세스성과 그 뒤에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동시에 들어왔다.
과거 이곳에 7월부터 10월까지 물이 들어와 모든 들판이 홍수로 침수될 때면 모든 백성은 타니스 성 신전에 모였으리라.
그리고 얼마동안 이 성에서 축제를 벌인다.
우리와 달리 애굽의 침수는 축복이다.
더 멀리 침수될수록 더 많은 농경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당시 풍요의 여신인 하토르는 송아지모양을 하고 그 두 뿔 사이에 태양을 안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신에게 빌며 온갖 축제를 벌였으리라.
이 풍경에 익숙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에 모세가 시내산에 내려오지 않을 때도
이와 비슷한 축제를 벌이고 있던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야곱의 가족은 람세스 근처에 살면서 번성하였다(창 47:11).
야곱은 아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굽으로 향하다 브엘세바에서 잠시 멈추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제단을 쌓고 예배하는 곳에서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두려워 말고 내려가면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미이라로 돌아왔고 실제로 돌아온 것은 야곱의 자손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애굽에는 요셉과 히브리인을 지지해 주던 힉소스왕조가 쫓겨나고 애굽 원주민이 중심이 된 신왕조가 일어났다(주전 1570년).
그들은 힉소스 왕조를 밀어 주던 히브리인을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종으로 부리기 시작했다.
결국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께 호소했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물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비는 이스라엘 보다 적게 온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남부 밀림에서 내려오는 6,690km의 나일강이 애굽을 풍요롭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을 가진 애굽은 아프리카 중부고원에 내리는 봄비에 의해 5-7월에 서서히 수위가 올라가다가
10월에 이르러서는 최고치를 이룬다.
그러므로 7월에서 10월까지는 고센지역을 포함하여 삼각주지역이 침수된다.
11월에서 시작한 농사는 2월에까지 이어지다. 3월에서 7월까지 추수를 한다.
모세는 고센지역 한 곳에서 태어나서 하수에 버려졌다.
전통에 의하면 모세를 건진 곳이 카이로에 있는 예수님 피난교회 옆의 벤 에스라 유대인회당 근처라고도 한다.
아기 모세가 구원을 받은 곳에 구원자 아기 예수께서 헤롯의 칼을 피해 오신 것이다.
어쨌든 모세는 애굽 공주의 아들로 키워지면서 애굽의 최고학문인 기하학과 건축학 등 히브리인이 배우지 못하는 학문을 배웠다.
뿐만 아니라 왕자로서 리더십을 배웠다. 이것은 하나님의 치밀한 준비셨다.
나중에 모세의 리더십은 출애굽하는 지도력으로 사용된다.
그가 배운 기하학과 건축술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일러주신 성막의 치수를 정확하게 소화하여 완벽한 성막을 만들게 한다.
또한 그가 배운 법학은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기록하게 하였다.
하나님 편에서는 어떤 인생이던 쓸모없는 것이 없다. 모두 사용하시기 위해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행할 바는 ‘성실’뿐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혈기를 부려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야 했지만 이도 하나님의 계획이셨다.
목자생활 40년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모두 몰살되었을 것이다.
40년의 광야생활은 40년의 광야여행을 위한 준비기였다.
석양에 애굽의 거대한 성도 희미해진다.
다시 삼각주의 동쪽 모서리에 있는 카이로로 향하였다.
고센지방의 남자들은 모두 통자 옷을 입고 여자들은 모두 머리를 가리고 있지만 그들의 인상만은 순수하다.
어린 아이들이 손을 흔들 때면 웃으며 같이 흔들게 된다.
순례객이 거의 없는 지역이어서 우리가 신기한가 보다.
돌아가는 길옆에는 어김없이 나일강 지류인 개천이 흐른다.
그 개천 옆에는 농경지가 있고 또 이곳저곳에서 소와 양, 그리고 나귀를 키운다.
소가 나타날 때마다 요셉의 꿈에 나오는 7마리의 소를 찍어 볼 양 연신 카메라를 찍어 댔지만 내 마음에 맞는 사진이 안 나온다.
경찰차가 앞장서기에 차를 세울 수 없어 계속 찍다가 우시장에서 찍은 수십 마리의 소로 만족했다.
양 일부만을 잘라 자료화면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나일강가로 끝없이 이어진 고센땅을 보자니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저절로 연상이 된다.
▶ 10 재앙
미디안 광야에서 돌아온 모세는 나일강에 다시 서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고 외친다.
그의 외침은 10가지 재앙으로 애굽땅과 그 백성에게 부어졌다.
10재앙의 흥미 있는 점은 그 재앙이 애굽의 농사시기에 맞추어 일어났다는 점이다.
(고센땅의 시내: 고센땅을 흐르는 시내다.
이 시내의 범람과 함께 10재앙을 연관시키면 재앙순서를 쉽게 암기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무조건 외우는 것보다 이해하는 편이 암기하는데 좋다.
애굽의 열 재앙을 이렇게 외워보라.
10월에 최고치에 이른 물은 점점 빠지기 시작하였다.
이곳저곳에 고인 물이 산재해 있을 때 첫 재앙인 피 재앙이 있었다.
피 재앙이 끝나자 피로 부유물이 많아진 웅덩이와 시내에서는 과거보다 수십 배가 많은 개구리가 부화되었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어 올라왔고 그들은 온 천지를 뒤덮었다.
개구리는 얼마 후에 죽었다. 그러나 죽은 개구리는 불결한 환경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나타난 해충이 ‘이’였다.
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파리 떼가 등장하였다.
이와 파리는 동물들을 병들게 하여 짐승에게 악질이 생겼다.
짐승의 악질은 사람에게 전달되어 사람의 몸에 독종이 났다.
사람은 간사하여 자신 병들어도 희망만 있으면 산다.
그들이 이런 환난을 겪고 있을 때 들에는 삼과 보리가 나와 꽃이 피고 있었다.
애굽인이 땅에 소망을 두자 하나님은 우박으로 그것을 진멸하였다.
우박 이후에 또 밀과 나맥이 자랐다(출 9:32).
그러자 또 메뚜기 떼로 그 소망을 끊어 버렸다.
땅의 소망은 그쳤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신인 태양신을 바라보았다.
그때 하나님은 태양을 가리는 흑암재앙을 보내셨다.
하늘의 소망을 멈춘 하나님은 마지막 소망인 생명의 소망까지 끊으신다.
장자를 침으로 미래의 소망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
결국 하수에서 시작한 재앙은 개구리에 이어지고 개구리가 죽음으로 인한 불결한 환경으로 이와 모기가 생기고 이와 모기로 짐승이 병들고 이어서 사람이 병들었다.
그러자 땅의 곡식에 소망을 두자 우박과 메뚜기로 쓸어버리시고
하늘의 신을 향한 소망은 흑암재앙(아마 일식현상)으로 막으시고 미래 자손을 통한 소망도 장자를 침으로 막으셨다.
재앙은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구체적인 징계였다.
재앙의 순서 이해는 암기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재앙을 암기하게 한다.
마지막 장자를 치는 재앙에 이스라엘은 보호를 받았다. 우리는 이 재앙을 피한 날을 유월절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에 구원을 경험하고 홍해로 향한다.
나도 고센을 빠져나와 카이로로 돌아왔다. 이미 날은 어두웠다. 나일강변에서 배를 타고 그 물결을 느꼈다.
강변에서 차를 마시며 유구한 세월 세상의 상징인 애굽을 생각했다.
나일강은 우리공정관념과는 다르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상류의 북동쪽에서 오는 청나일을 비손강이라 부르고 상류의 북서쪽에서 오는 지류를 백나일이라 부른다.
길이는 6,690km이지만 유역면적은 3백만7만 평방km로 아프리카 대륙의 10분의 1을 차지할 정도이다.
남동쪽 빅토리아 호수를 기점으로 하는 나일강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나일강 문명을 발생케 하였다.
성경에 의하면 함의 두 아들인 구스와 미스라임이 이곳에 정착하여 구스는 남쪽 상류에 미스라임은 북쪽 하류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나라이름은 미스라임으로 애굽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애굽의 가장 유명한 조형물인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6.5m, 무게 6백5십만 톤, 밑변 넓이 230.3m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진 고대 최고의 무덤이자 탑이다.
이 무덤이 주전 2,700년 아브라함 이전에 만들어진 것을 보면
구스의 장남이 니므롯이 주축이 되어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함족속의 건축 기술이
바로 나일강 문명에 전수된 듯하다.
수천 년이 지났지만 석양의 피라미드는 아직도 찬란하다.
이 화려함 한편에 출애굽의 흔적이 남아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 앞에 꿈의 비석이라고 알려진 검은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투트모스4세(BC1400-139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가 바로 출애굽 시기다.
이 비석에 자신은 장자가 아닌데 꿈에 나타난 스핑크스에 의하여 왕이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고대 왕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역사에는 안나와 있지만 이런 글들을 통하여 출애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