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골목길에 작은 식당이 문을 열었다. ‘골목길 냉면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문을 연지는 석달이 조금 넘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바냐삼촌’ 공연팀이 이 집에서 밥을 먹고는 양이 푸짐하고 맛도 괜찮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쉬는 날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월요일이니 공연이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어, 나와 기획팀 후배들은 극장에 나와 일을 했다. 나와 나이가 같은 후배는 배추를 사와 김치를 담갔다. 손이 큰 처녀답게 배추를 많이 사온 느낌이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온 것이 ‘골목길 냉면집’이다. 여자 후배 셋에 남자는 나 하나. 음식을 하나 시키는 데도 수다스럽다. 골고루 시켜서 나누어 먹을 심산들이다. 비빔 냉면이 맛이 네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보통부터 1단계에서 3단계로 되어있다.
-선배, 먼저 번에 먹은 게 몇 단계였어요?
이 집에 온 게 세 번째인데 처음은 내 앞에 앉아있는 후배들과 함께 왔었고, 한번은 나 혼자 왔었다. 첫 번은 냉면을 먹었고 두 번째는 반반이(치즈와 보통 돈까스)를 먹었으니, 첫 번에 먹은 냉면의 맛을 기억해야 했다. 단계를 모르고 시켰으니 보통이 나왔을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입이 얼얼했으니 맵다했다. 그러니 둘이 나누어 보통과 1단계를 시켰다. 난 점심에 라면을 많이 먹은 터라 비빔밥을 시켰고, 한 후배는 돈까스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며 후배들은 매운 음식에 대한 서로의 취향과 체험을 이야기 했다. 나와 나이가 같은 후배는 매운 음식을 좋아했고, 두 후배는 극단에 들어와서 좋아하기 시작했단다. 스트레스가 높은 직장인 일수록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회적(정신적)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서 자극적(육체적) 스트레스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는 문을 닫은 매운 떡볶이집으로 발전을 했고, 강렬한 매운 맛으로 손님을 유치한 체인점들은 매운 맛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결국 문을 닫는 다는 결론을 맺으며 일단락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음식을 먹는 중간에 들어오신 할머니 때문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 어머니 연배일 듯하다. 어느 덧 내가 서른 셋이니,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더 좋겠다. 혼자 가게에 들어오신 어르신은 매운 냉면 1단계를 주문하고 돈까스 하나를 포장으로 주문하셨다. 옷차림이나 화장기나 어디 멀리 다녀오시는 것은 아니지만 밥을 먹으려 나서신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디를 다녀 오신 것일까? 돈까스는 집에서 기다리실 부군의 것 같은 데, 시계를 보니 7시, 이른 시간이 아니었다. 문득 아내가 오지 않으면 저녁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엌에 무엇이 있는 지도 모르고, 점심을 바깥 음식을 먹은 지라 안 음식을 먹고자 부인을 기다린 다는 것이다. 인생 반평생을 바깥 양반에게 안 음식 공양한 부인은 그게 참 귀찮아 황혼 이혼도 많고 싸움도 잦다고 한다. 중재하던 자식들도 뿔뿔이 흩어졌으니 화해의 시간은 산 시간에 비례하지 않겠는 가?
왜 저 매운 냉면이 뒤에 있을 전투를 위한 의식의 음식이고, 돈까스는 타협을 위한 도구로 보이는 것일까? 부군은 돈까스를 입에 대지 않으리라. 굶는 모습이 가엾어 가스레인지에 올라갈 작은 뚝배기가 떠오르는 것은 나의 바람일 뿐일까?
첫댓글 돈가스 먹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