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유성-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에 글을 올렸지만 아직도 방송되지 못한 글 입니다. 그냥 웃자고 올린 글이니 흉보지 마세요.
<지금은 라디오 시대 담당자 앞>
제목: 남편의 가발 사고
안녕하세요?
유라 언니와 유성오빠의 그 통통 튀는 감칠맛 나는 목소리와 구수함이 그 어떤 이야기도 맛갈스런 얘기로 재미가 한층 가미되는 것 같아 말재주가 없지만 용기를 내었습니다.
남편의 이야기라 조심스럽고 또 남편이 시골에서 조그마한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지라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저의 시댁은 유전학적으로 시아버님과 시삼촌께서 이마가 훤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그릴 때 동그란 얼굴을 그리고 양귀 옆에 검은색을 살짝 칠해, 할아버지의 머리 모양을 나타냈고, 그 그림을 보면 누구나
‘아 이분이 우리 할아버지시구나.’ 할 정도였지요.
형제중 남편이 일찍부터 그 조짐을 보이더니 결혼 10년쯤 되니 머리카락 수와 남은 머리카락의 놓이는 위치에 많이 고심을 하게 되더라고요.
머리카락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예민해지고, 아이들이나 제가 머리 근처에 손만 가도 신경질적이던 남편은,
급기야 TV홈쇼핑에서 온갖 머리카락에 좋다는 상품들을 주문하는가 하면 검정깨 검은콩을 사 달라며 식이요법에 들어가기도 했지요.
하여간 아무리 애를 써도 유전학적인 것이 어디 해결이 되어야 말이지요.
결국 친구의 소개로 남편은 기존머리카락위에 부분적으로 씌우는 가발을 맞추었답니다.
완전히 고정시키는 방법과 , 뗐다 붙이는 클립형 고정방법이 있는데
남편은 빠른 적응을 위해 완전 고정방법을 선택하였지요.
처음 얼마간은 너무 어색하고 그 훤한 얼굴이 낯선 머리카락으로 덮혀 답답해 보이기도 했지만 남편은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았고 더 이상 머리 때문에 스트레스도 안 받겠다 싶어 제가 적응을 했답니다.
병원에서는 환자분들이 알아보지 못해 적잖은 해프닝도 있었나 보더라고요.
시골이라 주로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는데,
원장님이 바뀌었다며 아무리 제가 그 원장이라 해도 나가버리시는 분도 계시고, 형은 어디가고 동생이 왔냐며 그때 그 원장님을 찾으시기도 했다네요.
어쨌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잘 적응해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중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과 농구를 하고 들어온 남편이 아들과 같이 샤워를 했지요.
이 중학생 아들이 약간 뜨거운 듯 따뜻한 물에 샤워하기를 좋아해요.
뜨거운 물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걸 깜빡 잊고 남편도 같이 샤워를 했는데 글쎄 그만 그 가발과 두피를 고정시켜주던 강력 접착제가 녹아 가발이 훌렁 벗겨진 거예요.
깜짝 놀란 남편은 벗겨져 나간 가발을 들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밤새 얼마나 걱정했던지 입술이 다 부르텄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저희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 그 가발을 만든 곳까지 갈려면 두 시간은 걸리는데 그 밤에 그곳이 영업을 할리도 없고 내일 당장 출근은 해야 되고..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자니 남편이 어딘가를 급히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안방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어요.
큰 아이들 학교 보낼 시간이 바쁜지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자니 남편이 아주 생기 있는 얼굴로 저를 불렀어요.
“여보 이것 봐.”
돌아보니 남편이 그 가발을 머리에 얹어 놓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어요.
“어때 감쪽같지?”
“에이 그러다 떨어지면 어떻게 해.”
“아이 이사람 ,내가 안 떨어지게 했지, 이것 봐.”
알고 보니 남편은 조금 전 문방구에서 강력 양면 접착테이프를 사와 가발 안쪽으로 둥그렇게 붙이고 자신의 머리에 고정한거예요. 꾹꾹 눌러서.
“그치만 머리 감으면 또 떨어질 텐데?”
“그럼 뗐다가 다시 붙이지.”
남편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의기양양 하더군요.
“뗄 때 따가울 텐데?”
“할 수 없지 뭐.”
생각해 보세요. 아직은 머리 윗부분에 머리카락이 제법 남아 있는데 강력 양면 접착테이프로 붙였다 뗄 때 얼마나 아프겠어요.
어쨌거나 그날 남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했고 퇴근하면 그 아픔을 참아가며 그것을 떼어 막내아이 플라스틱 원형테이블 장난감위에 걸쳐놓고 예쁘게 TV위에 보관하게 되었답니다.
남편은 차라리 더 잘 되었대요.
늘 고정되어 있어 매일 머리를 감고 말릴 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운 날이나 운동 후 땀이 고여도 닦을 수가 없어서 괴로웠는데 이제 자신이 뗐다 붙였다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그날이후 남편은 아침이면 가발을 머리에 붙이고 출근하고, 퇴근하면 떼 내어 TV위에 예쁘게 올려놓고, 가벼운 외출 시엔 모자를 쓰고 생활 했지요.
그것을 보고 저희 유치원 다니는 막내딸은
“우리아빠는 매일 가면을 쓴다.”
고 해서 저희 가족은 한참 웃고 그것을 가면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래야 남들이 들어도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며칠 전 남편 출근시키고 막내아이 깨워 바쁘게 먹이고 입혀 유치원 보내고 집에 들어서자니 전화가 오더라고요. 남편이었어요.
“여보세요?”
“어 당신이야?”
그런데 남편의 목소리가 무슨 큰일이 생긴 듯 아주 긴장되고 불안하더군요.
“왜? 무슨 일 있어?”
“응, 나 오늘 가면 안 쓰고 왔어.”
그제야 TV 위를 보니 남편의 그 가면이 예쁘게 놓여 있더라고요.
“어머, 어떻게 해? 당신 어디야?”
“차..... 빨리 그거 들고 00주유소 앞으로 와. 나도 지금 출발할께.”
“응 알았어 .”
급히 전화를 끊고 남편의 가면을 챙겼지요. 그것은 쇼핑 빽에도 넣을 수도 없고, 그러면 접착테이프가 서로 엉겨 붙어 못쓰게 되잖아요.
원래 올려져 있던 막내아이 장난감위에 그대로 올려 들고 나갔답니다.
그러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과 마주칠까봐 다시 들어와 그것위에 다시 남편 모자를 씌우고 전용 빗을 챙겨 급하게 남편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지요.
이미 남편은 도착해 있었어요.
남편의 얼굴을 보니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제가 웃으니 남편은 좀 멋쩍었나 봐요.
퉁명스럽게.
“야 넌 내 출근할 때 뭘 봤냐?”
“나야 당신 벗은 모습도 익숙해서 몰랐지.”
남편은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기가 막히는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씩 웃더라고요.
“근데 왜 이제 전화 했어? 빨리 하지.”
“진료 좀 하고 왔지, 죽는 줄 알았다 황당해서.. 아이~참.”
차에서 그 가면을 붙이고 남편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나중에 들으니 출근해 병원에 도착해서도 몰랐대요.
그날이 하필이면 월요일에 장날이라 먼저 대기실에 기다리시던 환자분들이 많았는데 남편이 들어서니 모두 어리둥절해 쳐다보더랍니다.
‘왜?’ 하는 듯한 남편 표정에 한 직원이 차마 말을 못하고 손으로 자기 머리를 가르키길래 만져보니 ‘아뿔사~ ’
다 들통이 난거죠.
그날 이후 남편은 출근하면서
“내 머리 있제?” 하며 꼭 물어봐요.
많이 불편할 텐데도 젋어져 보인다며 좋아하는 남편.
시댁에 가면 어버님은 예쁘고 작은 호박하나를 TV위에 올려놓으세요.
남편이 가발을 벗어 올려놓으라고요.
첫댓글 눈물겹기도 하고 우습기도한 사연이군요.제아내도 같은 전철을 밟을까 제머리에 매일 콩기름바르고 머리수건두르고 자던 기억이 새롭군요.머리가 조금은 많은 형이라서 쬐금 미안하기도하구...재미있는글이군요.
이건 바로 방송되어야 되겠네요. 주간 상품받을 후보자로도 뽑혀야 하구요~~ 재미있고 글도 참 잘 쓰셨구 또 형의 모습을 지켜보는 형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 옵니다..
좀 얻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