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20세에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Apple)를 개발하고 25세에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랐으나 30세에 자신이 만든 회사인 애플에서 밀려나야 했지만 「토이스토 리」와 아이맥, 아이포드로 화려하게 재기해서 성공 신화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지 난 6월 12일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그가 한 연설문의 일부를 바탕으로 재 작성한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생모는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미혼모였습니다.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입양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잡스의 생모는 양부모가 그를 꼭 대학에 보낸다는 조건으로 양모에게 입양을 허락했습니다.
잡스는 17세가 되던 해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리드 칼리지(Reed College)의 등록금은 너무나 비 싸 근로자였던 양부모가 저축한 모든 돈이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 잡스는 대학교 에 다닌다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그 대학에서 자퇴를 했습니다. 그러나 청강생으로 일년 반 정도 그 학교에서 생활했습니다.
잡스는 당시에는 자퇴가 꽤 두려웠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 가운 데 하나였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자퇴 후 관심 없었던 필수과목 대신 듣고 싶었던 강의를 청 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식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숙사에 방을 얻을 수 없어 친구네 집 거실에서 잠을 잤고, 콜라 빈병을 모아 재활용센터에 갖다 주고 병당 5센트를 받아서 먹을 것을 샀고, 그리고 일주일 에 한번은 양질의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하레 크리슈나 (Hare Krishna) 사원의 일요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서체(書體) 교육이 뛰어났습니다. 잡스는 자퇴를 했기 때문에 정규과목 을 들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는 세리프와 산세리프 서체를 배웠습 니다. 서로 다른 자모의 결합에 따라서 자간을 달리 둠으로써 훌륭한 서체를 그리는 것이었습니 다. 그것은 아름다웠고, 역사적으로 유명했으며, 과학은 따라 갈 수 없는 섬세한 예술이었습니 다. 그는 여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도움이 될 것이란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십 년 후 그것은 잡스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의미가 와 닿았습니다. 그가 매킨토시와 서체를 접 목을 시키자 미려한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잡스는 말합니다.“제 가 만약에 그때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는 다중 서체나 비례적으로 자간을 조 정하는 글꼴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윈도우즈는 매킨토시를 그대로 따라 했으니까 매 킨토시뿐만 아니라 그 어떤 퍼스널 컴퓨터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겠죠. 자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을 테니, 퍼스널 컴퓨터는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인쇄술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다는 것은 절망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보이지 않는 어 두운 시절에 그가 취미삼아 배운 서체가 퍼스널 컴퓨터가 그렇게 아름다운 인쇄술로 발전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은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예측하지 못 할 신비로 둘러싸여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배움이 중요하고 배운 사람에게 만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배움이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 을 알고 이를 개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 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마 25:20]
출처 : 남산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