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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시대의 정치 · 사회적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 유가는 인의도덕을, 도가는 무위자연을, 묵가는 겸애절용을 제창했으나, 세상은 자꾸 어지러워져 갔다. 여기에서 실제 나라를 통치하는 면에 주목하여 철학을 펴고자 한 학파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법가(法家)다. 이들의 특징은 오직 정치사상에만 집중하되 모든 이론을 군주의 관점에서 펼친다는 점에 있다. 법가의 직업은 대부분 군주의 참모들이었고, 따라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나라를 부하게 하며 군대를 강화시키는 일(富國强兵)이었다. 그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극단적인 수단도 가리지 않았는데, 맹자가 공격한 패도정치(覇道政治)1)
관중2)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려주고자 하면, 먼저 반드시 그 마음을 괴롭히고, 뼛골을 수고롭게 하며, 배를 곯리고, 몸을 텅 비게 하여 행위를 어지럽히고, 심성을 억눌러 불가능한 일을 더욱 불가능하게 만든다.”
관중은 어려서부터 포숙과 친했다. 포숙은 그를 매우 잘 이해해줬을 뿐만 아니라, 아끼고 사랑하며 나아가 존경하기까지 했다. 일찍이 둘은 남양에서 장사를 하여 목돈을 벌었다. 마땅히 똑같이 나눠가져야 하지만, 포숙은 관중이 자기보다 형편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더 많은 몫을 주었다. 물론 관중 역시 포숙을 위해 여러 차례 일을 도모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하는 일마다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포숙은 “자네에게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세.”라고 위로하곤 했다.
또 관중은 세 차례 벼슬을 했으나 모두 좌천되다시피 했고, 전쟁에 세 차례 참가했으나 모두 패배해 도망쳐야 했다. 이런 치욕적인 일로 인해 그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거의 버림받다시피 했다. 그러나 포숙만은 그의 가슴속에 품은 큰 뜻과 웅대한 포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이처럼 극진한 우정에 대해 관중은 이후 이렇게 회고하며 감탄했다.
“일찍이 내가 가난할 적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몫을 더 많이 가졌지만, 포숙은 나를 욕심 많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언젠가는 내가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해 매우 어렵게 되었는데,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일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임금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시대적 운을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세 번을 싸워 세 번 모두 패하여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으신 어머니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를 낳아준 이는 비록 부모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친구를 한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대단한 행운이라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작은 일에는 곳곳에서 실패했을망정, 큰일에 대해서 관중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깊은 책략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당시 제나라의 양공(襄公)이 방약무도하게 행동하자 “장차 언젠가 이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측하고는, 포숙과 함께 뒷날을 도모하고자 했다. 즉 두 사람은 공자(公子)5)
과연 그 뒤 양공이 죽임을 당하고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지면서 “새로운 임금을 모시자!”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이때 두 공자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귀국했는데, 그때부터 서로 왕위 자리를 놓고 다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에 관중은 규 공자 편에 서서 군대를 이끌고 전격적으로 소백 공자를 공격했다. 드디어 관중의 화살이 소백을 겨냥해 힘차게 날아갔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소백의 혁대를 맞추게 되었고, 이로써 소백은 천우신조(天佑神助)6)7)
환공은 그 즉시 정치적 라이벌인 규를 죽이고, 관중을 감옥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자기를 도운 포숙을 재상(宰相)8)
“비록 적의 편에 서서 이번 전쟁에서 패하긴 했지만, 관중이야말로 뛰어난 재주를 지닌 인물입니다. 제발 왕께서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 이번 일을 참으셔야 합니다. 화살 하나 때문에 맺어진 원수의 악감정을 씻어버리시고, 그를 재상으로 등용해주십시오.”
결국 포숙의 도움으로 관중은 오히려 재상이 되었고, 이후 관중은 사십여 년 동안이나 환공을 극진히 도와 그가 대군주로 설 수 있도록 했다. 말하자면, 관중의 보좌 덕택에 환공은 제나라의 군주가 된 지 7년 만에 이름뿐인 주나라 왕실을 대신하여 중국 안에 있는 모든 제후들을 실질적으로 통솔하는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늙은 말과 개미에게서 배우다
어느 해 봄, 관중과 습붕(濕朋)이 환공을 따라 고죽국 정벌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질질 끌던 전쟁은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끝났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큰 군대는 사막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때 관중이 말했다.
“늙은 말은 지혜가 많은 동물입니다. 늙은 말을 앞장세우십시오.”
그래서 환공은 늙은 말 몇 필을 앞세우고 귀로에 올랐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 이번에는 황량한 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산에 나무가 없어서 물도 나지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나도록 사람과 말이 마실 만한 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병사들은 목이 말라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습붕이 환공에게 말했다.
“개미의 경우 겨울에는 양달에 언덕을 쌓고, 여름에는 응달에 언덕을 쌓습니다. 그리고 개미의 굴은 언제나 물길 위에 있는 법입니다.”
그 말에 개미굴을 파보았더니 정말로 물이 솟아나는 것이었다. 동물이나 하찮은 미물들의 살아가는 방법에서 지혜를 배울 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어떻든 관중은 포숙의 도움으로 어려운 나날을 극복하고 왕을 잘 모심으로써 후대 사람들의 찬사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환공의 경우, 자신의 힘으로 천하의 패자(覇者)9)
사람은 무엇으로 평가되는가
관중의 사람됨이나 사상에 대해서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았던 공자마저도 그가 정치적으로 이룩한 업적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논어》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자공이 공자에게 말하기를, ‘관중은 인의(仁義)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모시던 군주를 위해 순사(殉死)10)11)
이 장면에서 우리는 과연 “사람이 무엇으로 평가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은 도덕성으로 평가되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이룬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할까?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던 관중이 드디어 병으로 쓰러졌다. 환공 41년 때의 일이다. 이에 환공이 급히 문병을 갔는데, 이 자리에서도 그는 관중과 나랏일을 상의하고자 했다.
“만일 그대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장차 누구를 재상으로 삼는 것이 좋겠소?”
“그것은 폐하께서 더 잘 아실 줄 아옵니다만···.”
그러자 환공이 미리 마음속에 점찍어둔 사람의 이름을 댔다.
“역아(易牙)가 어떻겠소?”
역아라는 사람은 원래 궁중에 머물며 환공에게 바칠 음식을 요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환공이 사람 고기를 먹어본 일이 없다고 말하자, 끔찍하게도 자기 아들을 죽여 국을 끓인 다음, 환공에게 바쳤던 인물이다. 관중은 당연히 그를 반대했다.
“폐하! 그건 안 될 일이옵니다. 역아란 자는 자기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폐하께 아첨한 인물이 아닙니까? 그것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재상으로 삼으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 말에 환공은 또 다른 인물의 이름을 꺼냈다.
“그럼 개방(開方)은 어떻소?”
“개방이란 자는 원래 위나라 공자면서도 자기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족을 버렸지 않습니까? 이는 인간으로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을 줄 아옵니다.”
“그렇다면 수조는 어떻겠소?”
수조는 호색가였던 환공의 마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여 후궁의 환관(宦官)이 되었던 인물이다.
“수조는 스스로 거세하여 폐하께 아부한 인물입니다. 이 또한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못 됩니다. 그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드디어 관중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환공은 관중의 충고를 무시한 채 그 세 사람을 높은 자리에 등용했으며, 결국 그들 셋은 자기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렀다. 임금을 무시하고 백성을 깔아뭉개며 자기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기다 보니, 나라의 기강은 어지러워지고 사회는 혼란스러워져만 갔다.
어느 시대나 충신과 간신은 있게 마련이고, 어느 사회나 유익을 주는 자와 해를 끼치는 자가 나타나기 일쑤며, 어느 집안이나 효자와 불효자가 태어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으로 그의 사람됨을 판단할 수 있을까?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사람의 중심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의 타고난 성품을 꿰뚫어볼 줄 아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을 제대로 판단할 줄 알았던 명재상 관중이 죽자, 환공은 급속히 총기(聰氣)를 잃어갔으며, 이에 따라 제나라의 국력도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공은 관중이 죽은 지 2년 만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아들들인 다섯 명의 공자(公子)가 왕위 계승권을 놓고 서로 치고 박고 싸우기 시작했다. 싸움에 눈이 벌게진 공자들은 아버지의 시체를 67일 동안이나 내버려두었고, 이러한 모습을 《사기》는 “구더기가 우글거려 시체를 문밖으로 팽개쳤다.”라고 기록했다.
관중은 나라의 전매사업인 어업과 염업을 통해 큰 이익을 얻게 하고, 그 이익으로 부국강병을 꾀했을 뿐만 아니라 “왕을 받들어 오랑캐를 쳐부수자(尊王攘夷)!”라는 구호를 높이 들어 군주인 환공의 위엄을 세우고자 했다. 당시 중국은 주나라가 수도를 뤄양으로 옮긴 후에 점점 쇠퇴함으로써 암흑과 같은 혼란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관중의 정치 역량에 힘입어 민족끼리의 전쟁은 그쳐갔고, 오히려 서로 힘을 합쳐 야만족의 침입을 공동으로 막아내기에 이르렀다.
관중은 또한 “백성이란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족해야 영욕(榮辱)12)
Q. 다음을 읽고 곰곰이 고민해보자.
1. 열심히 훈련을 했다는 전제하에, 경기장에서의 행운이 뒤따라 금메달을 목에 건 올림픽 출전 선수와 열심히 훈련했음에도 심판이 잘못 판정하여 메달을 놓친 선수 가운데 우리는 어느 쪽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할까?
2. 국민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지만 경제나 국방에 실패한 대통령과 독재정치를 하면서도 경제를 살려내고 국방을 튼튼히 한 대통령 가운데 어느 쪽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할까?
3. 스스로 청렴결백했지만 나라 경제 역시 너무나 ‘청렴’하여 가난을 못 벗어난 지도자와 부정부패를 저질렀지만 경제를 일으킨 지도자가 있다면 국민은 과연 누구를 참된 지도자라 말할까?
4. 양심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평생을 살았지만 자녀에게 재산 한 푼 물려주지 못한 가장과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으리만치 부도덕했지만 자기 자식들에게 엄청난 돈을 상속받게 한 가장 가운데 우리는 누구를 ‘아름다운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까?
첫댓글 귀감이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