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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년 9월 30일 무슬림 철학자이자 시인인 루미가 태어났다.
“오라, 오라! 당신이 누구든 오라! /
방황하는 자든 불을 섬기는 자든 우상 숭배자든 오라 /
우리 학교는 희망 없는 학교가 아니다. /
맹세를 100번이나 깨뜨린 사람도 좋다. 오라!”
시에 나오는 “불을 섬기는 자”는 조로아스터교 신도를 가리킨다. 조로아스터교는 사산왕조 페르시아(226∼651)의 국교였다. 무함마드가 610년에 이슬람교를 열었으니 조로아스터교 몰락 시점과 연도가 엇비슷하다. 이는 두 종교의 사이가 나빴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도 루미는 4행시에서 “불을 섬기는 자든 우상 숭배자든” 좋다고 했다. 이슬람 지도층이 루미를 이단시한 까닭이 가늠된다. 하지만 대중은 그를 아주 좋아했다. “당신이 누구든 오라!”는 것이 이슬람의 본래 교리 아닌가!
시 ‘여인숙’은 루미 철학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인간은 여인숙과 같다 /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찾아온다 //
기쁨, 절망, 슬픔 /
그리고 약간의 깨달음 /
다들 뜻밖의 손님이다 //
모두 받아들이라 (하략)”
사람을 구분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이다. 루미의 시는 조로아스터교가 다른 민족들로 번져나가지 못한 까닭을 역설적으로 증언해준다. 사산왕조는 여타 종교들을 탄압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는 정복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했다. 덕분에 두 나라는 세계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같은 중동의 아시리아는 오리엔트를 최초로 통일하지만 잔혹 정치 끝에 59년 만에 멸망했다.
진나라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지만 분서갱유 등을 저지르다가 15년 만에 문을 닫았다. 사산왕조의 조로아스터교 강요는 타 민족의 반발을 낳았고, 결국 조로아스터교는 국내 종교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힌두교와 유교가 보편종교로 발돋움하지 못한 것은 차별을 인정하는 교리 탓이다. 종교든 정치든 사업이든 문화든, 크게 되려면 “모두 오라!”는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김메리 동요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도 그런 정신을 잘 말해준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기다리신다. 공부 잘하는 아이나 부잣집 아이를 특별히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희망 없는 학교가 아니다!”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