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년 5월 9일 독일이 낳은 세계적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세상을 떠났다. 실러가 문인이 된 데에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등을 읽고 받은 폭풍 같은 감명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 점에서 실러는 크게 성공했다. 독일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 자신의 우상 괴테와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는 동상을 남겼으니!
실러의 작품 중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 일부가 실려 더욱 유명세를 얻은 희곡이 〈빌헬름 텔〉이다. 시간적 배경은 13세기 중세, 공간적 배경은 오스트리아의 식민지 스위스이다. 당시 스위스 총독 게슬러는 재미삼아 사람을 죽이는 등 학정을 일삼았다. 어느 날, 석궁 전문 명사수 빌헬름 텔이 아들 발터와 함께 장터에 나갔다가 게슬러의 군사들에게 포위된다.
빌헬름 텔과 발터는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위험에 빠졌는지 알지 못한다. 게슬러는 얼마 전부터 장터 한복판 높은 장대 꼭대기에 제 모자를 걸어놓고서 그 아래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인사할 것을 명령했고, 지시를 따르지 않는 자는 엄벌에 처해왔다. 산 아래 외딴집에 살던 빌헬름 텔은 미처 그 소식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게슬러는 80보가량 떨어진 곳에 발터를 세운 뒤 후 머리 위에 사과 한 알을 얹는다. 그리고는 빌헬름 텔에게 “사과를 명중시키면 너희 부자를 풀어주겠다”라고 윽박지른다. 마을사람들이 용서를 빌지만 게슬러는 막무가내일 뿐이다. 이윽고 빌헬름 텔이 화살을 날려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명중시킨다.
교과서에 실린 부분은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사과 일화는 〈빌헬름 텔〉 도입부 중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중심 서사는 결말까지 파도처럼 펼쳐지는 스위스 독립운동이다. 실러는 정복자의 비인간성을 서두에 묘사함으로써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에 깃든 당위성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이다.
중학교 국정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홍길동전〉도 소설의 본 주제가 아닌 사건을 강조한 대표급 사례이다. 중학생들은 길동이 자신을 암살하려 든 자객 특자를 죽이고, 자객을 보낸 (아버지의) 첩도 살해하는 장면을 읽었다.
〈홍길동전〉의 중심 서사는 적서차별 철폐 수준이 아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교과서에 굳이 죽이고 죽는 장면이 필요했을까? 교과서가 교육적 또는 문학적 관점이 아니라 (황제에게 잘 보이려는) 게슬러 같은 인물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빌헬름 텔〉과 〈홍길동전〉은 증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