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저는 신에 대해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만 모든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신에 대해 정말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은 생명에 도움이 됩니다.
제게 얼마 전 놀라운 어떤 것이 떠올랐습니다.
곧 신은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불완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이 불완전해야 하는데도, 우리 부모가 완전해야 합니까?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생명, 움직이는 모든 것, 뒤에는 창조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건 명백합니다. 우리는 다르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힘들은 우리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다른 데서 옵니다.
이 창조적인 힘들은, 앞서 간 것이 불완전했기에, 창조적입니다.
창조적인 것은 불완전 한 것을 전제합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적인 움직임인 이 신적인 움직임은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자주 그 움직임은 틀린 방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옳은 방향을 위한 투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한 방법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을 통해, 다음 단계를 위한 통찰이 옵니다.
이 통찰은 우리나 투쟁에서 오지 않습니다.
창조적인 움직임은 스스로 계속 발전하기 위해, 불완전 한 것뿐 아니라 틀린 것도 필요로 합니다.
우리 부모도 과오와 죄를 가진 불완전한 움직임에 연결돼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불완전한 움직임에 함께 진동하며, 였던 움직임에 그대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잘못과 "나쁜 것"에 함께 진동하며 동의합니다.
그 움직임에 동의하여, 함께 움직임에서 더 좋은 새로운 힘이 불완전 한 것에서 옵니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경험한 모든 것에서 새로운 힘이 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전체로서의 창조적인 생명의 움직임으로 받아들여,
우리에게 무엇을 강요했던, 였던 그대로 동의하지마자,
우리는 그 창조적인 움직임과 함께 진동합니다.
그럼, 무엇이 발생했던, 그 모든 것은 마침내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 성장에 봉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쁜 것과 어려웠던 것에도 우리를 세우고, 그에 동의하면서 말합니다:
"예, 그것은 창조적인 움직임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나뻤던 모든 것은 나를 새롭고 더 좋은 것으로 내몹니다."
내가 나뻤던 것에도 동의하기에, 나뻤던 것은 내게 힘으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