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인 박미영의 20세기 인물읽기 .43] 버지니아 울프

[소봉]

[시인 박미영의 20세기 인물읽기 .43] 버지니아 울프

(1882∼1941)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꿈꾸다
뛰어난 작품세계 일군 여성운동가
심각한 정신병 시달리다 끝내 자살

1910년 영국의 드레드노트선(Dreadnought船)을 아비시니아국의 황제와 신하들이 함장의 엄숙한 영접을 받으며 시찰하고 있었다. 그 신하 중 아주 가냘픈 외모의 젊은이가 있었는데, 바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풍성하게 수염을 붙인 스물여덟의 버지니아 울프였다. 물론 아비시니아는 가상 국가였고, 외무성 전보를 가져온 가짜 관리까지 블름즈베리 그룹의 젊은이들이 벌인 해프닝이었다.

블름즈베리 그룹은 1906년 장티푸스로 죽은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 친구들과 만든 서클로, 버지니아와 언니 바넷사(화가)가 핵심적으로 합류해 나중에 문학과 예술, 보헤미안적 삶의 대명사격으로 인습적 윤리를 경멸하며 런던 지성계를 주도하게 된다. 후에 자매는 둘 다 블름즈베리 회원과 결혼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학자인 아버지와 아름답고 활동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재혼으로 각각 딸 하나와 2남1녀를 두었고, 결혼한 뒤 2남2녀를 더 낳았다. 이들 중 여덟 번째 아이인 버지니아는 아버지의 방대한 서적과 방문객인 당대 일류 문사들의 대화에서 지적 자극을 받아 일찍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망은 그녀에게 일생을 괴롭히게 될 심각한 정신병을 불러왔고 아버지의 사망 직전까지 이어진 의붓오빠들의 폭력에 가까운 성추행은 '마치 야수와 함께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이' 그녀의 영혼을 더없이 피폐하게 만들고 만다. 그로 인한 강박증은 '완벽에 가까운 반려'였던 레너드와의 결혼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올란도'의 모델인 비타 섹크빌 웨스트 등과의 동성애적 염문을 낳기도 한다.

남편 레너드는 버지니아의 집필과 간병을 위해 공무원직을 사퇴하고 아내의 건강일지를 쓰며 집안에 인쇄소인 호거스 프레스를 차린다. 거기서 엘리어트와 릴케, 고리키 등의 초기작품이 출판되었고, 버지니아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착상하여 대표작인 '델러웨이 부인'을 출판한다. 그러나 남편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500파운드의 돈과 나만의 방'을 갈구하는데 아마도 건강 때문에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모성포기 고통과 상실감에서 기인한 강박적 집필욕구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1941년 히틀러의 폭격에 위협을 느낀 부부는 몽크스 하우스로 피신한다. 3월28일 아침, 버지니아는 '사랑하는 이여. 더 이상 당신의 인생을 망칠 순 없습니다'로 시작되는 유서를 남편에게 남기고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간다.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워넣은 그녀의 시신은 2주 후에 떠올랐다.

박미영(시인·대구작가콜로퀴엄·세계문학제 사무국장) /taeguwrit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