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조 진 희 25세 (서울)
갓 태어난 발 하나를 떠올린다. 발은 붉고 따뜻했다. 준비해 놓은 붉은 인주를 촘촘히 잘먹었고, 발은 자신의 출생카드에 발도장을 남겼다. 막내동생이 태어나던 날이었다.
몇해 전, 나는 문득 잊혀진 서랍에서 막내의 출생카드를 찾았다. 그리고 붉은 발을 보았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작은 발이었다. 그 작은 발을 가로지르던 홈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치 식물의 잎맥같던, 혹은 자잘한 뿌리 같던 그것을 말이다. 굴곡진데다 원으로 수렴하기까지 하는 지문과는 달리 발바닥의 홈은 끊임없이 퍼져나갈 것처럼 뻗쳐 있었다. 홈은 길이었고, 미래였으며, 숙명이었다.
막내의 발바닥을 들여다 보고 곧장 엄마의 것을 찾았다. 거실 한 쪽에 앉아 마늘을 까던 엄마의 발바닥은 보란듯이 들려 있었다. 엄마의 발바닥을 가만 보았다. 수없이 많은 길이 뒤얽혀있었다. 길은 굵은 맥에서 갈라지고 갈라지며 엄마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허투루 새겨진 것이 없었다. 이 중 몇십 개의 홈이 막내에게 물려졌으리라. 또 내게도 물려졌으리라. 엄마의 가장 아래편이 기억하는 삶의 길이 어쩐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서른 일곱 노산이라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둘째 때문이었다. 둘재는 얼마 전 정신지체 1급을 받았다. 20년간 정신지체 2급으로 살던 동생은 더 나아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것을 비단 동생의 퇴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동생이 어떤 등급으로 분류되건 그가 우리의 일부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고, 우리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동생은 우리 가족에게 종종 주어지는 갈림길에서 선택을 망설이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엄마는 동생을 함께 지켜줄 새 가족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나는 사춘기 내내 단 한 번도 방황의 길에 서지 않았다. 글을 쓰고자한 나의 진로도 어찌보면 동생이 선택하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막내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둘째도 더디게나마 커갔다. 얼마 전 엄마는 내게 전화로 둘째가 숫자를 거꾸로 셀수 있게 되었다며 즐거워했다. 스물 셋의 덩치 큰 아들이 십,구,팔,칠을 할 때마다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 가슴이 아리다.
엄마는 요새 부쩍 미용실에 자주 다닌다. 엄마의 머리칼 사이에 갈림길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머리칼은 흑백으로 갈린다. 어느덧 흑백으로 엄마를 이해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쉰 하나. 엄마는 폐경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몸이 점점 전후로 갈리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자꾸만 엄마를 과거 속의 '여자'가 되라고 한다. 생리가 보름도 넘게 쏟아지고, 그도 모자란지 이후에도 질금질금 누런 분비물이 새어 나온다. 몸이 최후라고, 이제 끝이라고 악을 쓴다. 발바닥 중심에서 시작한 홈이 점점 가장자리로 뻗쳐 종국에는 더 나아갈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시간이 매섭게 엄마의 몸에 길을 내며 지나간다. 예기된 일이다. 발바닥에 새겨진, 이미 타고나버린 길들, 숙명들이다. 몸의 모든 홈들은 너무나도 진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사는 동안 엄마 스스로 예기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 살 것인지, 어떤 자식을 얻을 것인지, 어떤 인생을 꾸려갈 것인지 가보기 전에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때문에 엄마에게 폐경이 오는 날, 나는 그 예기치 않음으로 엄마를 다시 데려가고 싶다. 시간에 수긍하며, 앞이 훤히 내다보이는 단순하고 재미없는 노년의 길 대신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 짐작할 수 없음이 매력적인 길로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예전처럼 막막하지는 않으리라 얘기하고 싶다. 엄마의 홈을 물려받은 엄마의 아이들이 셋이나 되기에.
아직도 집 욕실에는 두 병의 올드 스파이스 로션병이 놓여있다. 노랗게 바랜 그 병에는 범선이 그려져 있다. 엄마가 일부러 버리지 않고 놓아둔 엄마의 마지막 낭만이다. 낭만이 깃든 범선을 타고 갈림길이 너무도 잦아 더 낭만적인 그길을 언젠가 엄마가 가게될 날이 올까. 나는 기대한다. 나의 어머니가 새로운 갈림의 순간에, 제2의 삶이 시작되는 때에 거침없이 그 세계에 붉은발도장을 찍을 수 있기를. 그리고 당신만의 새로운 길을 가기를.
첫댓글 조진희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공간이 폐쇄되는 시기가 오면 여자로서의 모든 기능을 상실하는 것처럼 철렁 여자에 더욱 집착하게 되기도 하겠지요. 평소에 그저 어머니로 아내로 살아왔던 날들을 되돌아보다가 문득 여자인 나를 확인하면서 새로운 갈림길에 혼돈할때 옆에 든든한 딸이 있어 어머니는 참 좋으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