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리아노(스키토폴리스) St.Severian of Scythopolis 452년경 순교자
451년의 제 4차 칼체돈 공의회는 에우띠치안 이단과 그리스도 단성론자 등을 처단했으나,
이들 이단들은 동방 교회에서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었다.
따라서 교구마다 이단과 정통 교회간의 싸움이 치열하고,
서로를 단죄하는 등 무질서한 교회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들 이단의 우두머리는 테오도시우스였는데, 그는 비타협적이고 잔인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주교 유베날을 추방하고,
또 일단의 군대를 파견하여 쉬토폴리스의 세베리아노를 처치한 것이다.
군인들은 그를 잡아 그 도시 밖으로 질질 끌고가서 무참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빠떼리오(브레쉬아) St.Patreius of Brescia 606년 주교
♤성 뻬삔 pepin 평신도 란덴 639 02.21
브라반트의 공작이자 성녀 이따의 남편인 그는 클로테르 2세,
다고버트 1세 그리고 시저버트 3세 등을 도왔고,
크리스챤 신앙을 온 나라에 전파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슬라브족의 침입에서 크리스챤 마을을 사수하였던 것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시성된 사실은 없으나, 옛 순교록에 성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군데베르또(세논느) St.Gundebert of Senones 676년경 주교,베네딕또회
♤제르마노(젤마노) St.Germanus 677년경 순교자,베네딕또회
그는 트리웰의 주교 모도알도에 의하여 보살핌을 받다가,
17세 되던 해에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그가 열렬히 흠모하던 성 아르눌포를 찾아나섰다.
성 아르눌포는 메츠의 주교직을 사임하고 은수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되어 그 위대한 성인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그란펠 수도원에서 살다가 군인들의 습격을 받고 죽었다.
이때 그들은 수도원을 불태우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란도알도 St.Randoald 677년경 순교자,베네딕또회
♤아비또 2세(클레르몽) St.Avitus 2 of Clermont 689년 주교
♤발레리오(아스토르카) St.Valerius of Astorga 695년 원장,베네딕또회
♤베드로 필경가 St.Peter the Scribe 743년 순교자
♤제오르지오(아마스트리스) St.George of Amastris 825년경 주교
그는 흑해 근방의 아마스트리스 교외 크롬나에서 태어났는데,
자식이 없던 그의 부모가 오랜 기도 끝에 하느님이 주셨다 하여 제오르지오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그가 세 살 때에 집이 불타므로써 손과 발에 화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가 장성하자 이제부터 세속에서 철저히 잊혀진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시리크 산의 은둔소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그의 성덕이 알려졌고,
아마스트리스의 주교가 서거했을 때 사람들이 몰려 와 그를 주교로 모셔가려고 하였다.
이때 그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총주교 타라시오의 강압에 못이겨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신자들에게 참 목자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교우들을 직접 다니며 어려운 문제를 풀어 주고, 설교하며 복음을 선포하였다.
♤베드로 다미아노 St.Peter Damian 1072년 추기경,학자,베네딕또회
이탈리아 라벤나의 어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아이 때에 고아가 되어 형의 도움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형은 라벤나의 사제였으므로, 그에게 다미아노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파르마로 보내어 교육받게 하였다.
그는 여기서 교수가 되었으며, 1035년에는 베네딕또 회원이 되었지만,
자신은 성서 연구에 전념하면서 은수자로 생활하였다.
1043년경에 그는 원장이 되었는데, 이때 그는 은둔소를 다섯군데를 더 세웠다.
그는 특히 이 세상을 초탈한 인물로 또 성직매매를 극도로 반대했던 인물로 높이 평가된다.
1057년, 그는 교황 스테파노 9세로부터 오스띠아의 추기경으로 선임되었다.
그후 수도자의 위치로 돌아온 그는 주로 교회의 개혁운동을 주도하였는데,
특히 반교황은 끝가지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는 연옥, 성체에 관한 글을 남겼고,
사제 독신에 옹호를 비롯하여 사제들에 관한 내용이 많다.
1828년, 교황 레오 12세는 그를 교회의 박사로 선언하였다.
세계의 성인 : 성 베드로 다미아노 주교 학자
1007년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태어났다.
학업을 마친 후 잠시 동안 교직 생활을 하다가 이를 포기하고
폰테 아벨리나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 은수처의 원장이 되어 그 곳과 이탈리아의 다른 지방에서
꾸준히 수도 생활을 발전시켰다.
어려운 시기에 살았던 그는 저술로써 로마 교황들을 도왔고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교황 사절로서 활약했다.
스테파노 9세는 그를 추기경에 올려 오스티아 교구장에 임명했다.
1072년 세상을 떠나자 즉시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성 베드로 다미아노 주교의 편지에서
(Lib. 8,6: PL 144, 473-476)
슬픔 뒤에 따라오는 기쁨을 즐거이 기다리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여, 형제는 많은 시련을 겪고 있는
영혼의 쓴 맛을 달게 해줄 위로의 편지를 써 달라고 나에게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잘 생각해 본다면
형제가 필요로 하는 위로가 목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의 말씀을 보면,
하느님께서 형제를 아들처럼 교훈하시어 유산을 얻게 해 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말씀을 잘 새겨 두십시오.
"아들아, 네가 주님을 섬기려면 정의의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살며
스스로 시련에 대비하여라."
두려움과 정의의 정신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역경의 시련도
종이 받는 책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받는 아버지의 교훈입니다.
욥도 극심한 고통 중에서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면,
그리하여 나를 산산이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죽여 주신다면,
차라리 그 것으로 나는 위로를 받고, 견딜 수 없이 괴롭지만 오히려 기뻐 뛰리라."
하느님께서 치실 때 뽑힌 이들에게는 그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그들은 일시적인 고통으로 말미암아
천상 행복의 영광을 얻게 될 견고한 희망의 길에서 큰 진보를 이룹니다.
금속을 다루는 이는 금의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그것을 망치로 두들깁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금맥을 더 한층 빛나게 하려고 쇠 줄로 부지런히 문지릅니다.
"질그릇이 가마속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시련으로 단련됩니다."
그래서 복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자신의 악행 때문에 이승에서 일시적으로 고통당하고 선행 때문에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을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이런 이유로 형제가 채찍을 느끼게 될 때나
천상 벌의 매로 꾸짖음을 당할 때 실망감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투덜대는 불평이나 또는 우울과 의기 소침에 뻐져 들지 말고 낙심으로 인해
조급한 마음에 기울어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형제의 표정을 평온하게 하고 마음 자세는 명랑하게 하며
입술은 감사의 말로 가득 차게 하십시오.
하느님의 계획은 놀랍습니다.
그분은 당신 자녀들을 영원한 벌에서 구하시기 위해 일시적으로 그들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그분은 일으켜 주시기 위해 누르시고 고쳐 주시기 위해 잘라 내시며
들어 높이시기 위해 내버리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성서가 주는 여러가지 보증으로 인내하는 정신이 되도록
정신을 강하게 하여 슬픔 뒤에 따라오는 기쁨을 즐거이 기다리십시오.
희망이 형제의 기쁨을 일으키고 사랑이 형제의 열성에 불붙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할 때 형제의 마음은 기쁨과 열성으로 가득 차 외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고
내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니콜라오(반가디짜) Bl.Nicholas of Vangadizza 1210년경 증거자,카말돌리회
♤로버트 사우스웰 Bl.Robert Southwell 1595년 순교자,예수회
잉글랜드 노르포구의 호르샴 세인트 출신인 그는 궁중 관리의 아들이었다.
그는 두에로 유학을 떠났는데 파리로 건너갔고,
그 다음에는 또 로마로 가서 예수회원이 되었다.
그는 1584년에 사제로 서품되자 그 길로 영국 선교길에 올랐는데,
런던에 살던 아른델의 앤 백작부인의 도움으로 그의 선교는 성공적이었지만,
크리스챤임이 발각되어 앤의 남편과 더불어 런던 탑에 갇혔다가, 참수치명하였다.
그는 옥중에서 여러 편의 시를 썼는데,
이것은 가톨릭 신자들을 격려하는 목적 외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화합을 노래한 것으로 널리 사랑받는다.
그외에도 그는 "장례식에서 흘린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물",
그리고 "위로의 편지", 그리고 "죽음을 이긴 승리"등의 글을 남겼다.
♤노엘 피노 Bl.Noel Pinot 1794년 순교자
그는 프랑스의 앙제르 출신으로 교구 사제였다.
그는 한 두 본당의 보좌를 거치는 동안에
병자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으로 존경받는 사제로 통하였고,
1788년에는 루루-베코네 주임사제로 활약했는데,
그의 뛰어난 열성과 신심은 영적인 많은 결실을 맺었다.
1790년, 루이 16세에 의하여 반포된 소위 "성직자의 시민헌법"은 가톨릭의 체제를
뿌리부터 흔든 악법이었으므로 많은 성직자들이 반대하고 일어섰다.
물론 노엘 신부도 끝가지 반대하였다.
그는 앙제르 법원에서 2년 간의 자격박탈을 강요당하였으나,
비밀리에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윽고 방데 지방의 봉기가 어느 정도 성공했을 때,
그는 공식적으로 활동을 재개하며 항거하기 시작하던 중,
재차 체포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