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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엿보기
우물 속에서 뜨는 달(작가마을)
이나열 중등학교 과학교사를 역임한 시인은 1996년 《한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우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잎새들의 소요』, 『나무는 불꽃이다』 등이 있다.
「한밤중에」 연작 두 편은 ‘시작에 관한 시’(meta-poem)라고 할 수 있다. 각각 시작의 과정과 의도를 제시한다. 「한밤중에 1」에서 “시를 쓴다/캄캄한 한밤중에 홀로 앉아/나비처럼 하늘하늘 날아오는 시를 쓴다”라고 진술함으로써 시인은, 일상을 이격하고 자기와 대면하면서 비상을 꿈꾸는 과정에서 시를 만난다. ‘한밤중’이라는 정황은 단독자의 위치를 조성하며 「한밤중에 2」가 말하고 있듯이 물상들이 지워진 허공에서 존재와 세계의 진실을 찾으려는 시인의 의도를 드러나게 한다.
침묵이다/나무들도 새들도 꽃들도 말이 없다/귀뚜리마저 소리를 삼킨 적막한 밤/홀로 가부좌로 어둠과 대면한다/나의 신경은 모두 하나로 모여든다/한 점으로 모여들어 드디어 불붙는다/책 속의 글자들이 공중에 연기로 사라진다/나의 의식도 정점으로 모여들어/허공에 흔적 없이 사라진다/내가 텅 빈다//비어가는 시간과 공간/나의 모든 경계도 허물어지고/캄캄한 한밤중에 나는 나를 떠난다/수없이 떠나고 떠난다/텅 비어버린 뒤/저 깊은 우물 속에서 참된 나가 드러난다/진아(眞我)가 보이고/네가 보이기 시작한다/세상이 보인다/태평소, 북, 장구 소리 들린다/어우러진 축제의 밤이다 (「한밤중에 2」 전문)
이 시에서 두드러진 시어는 “참된 나” 혹은 “진아”(眞我)이다. 시인의 의도를 집약하고 있는 이 말을 통하여 시인이 시를 쓰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 함을 알 수 있다. 두 가지 길이 있다. 그 하나는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떠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지워진 밤의 통찰을 얻는 길이다. 밤의 통찰은 낮의 사회적 자아를 지우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침묵과 어둠의 대면, 의식의 집중과 비움으로 경계를 허문다. 이를 통하여 은폐되었던 내밀한 가능성이나 본연의 자신에 접근한다. 이같이 현상학적 환원을 닮은 수행으로 페르소나를 벗고 관계를 해체하여 “참된 나”와 만난다. 이는 고통을 동반하는 의지적 행위이기도 하지만 심연의 환희를 불러오는 “축제”이기도 하다. 물론 진아와의 만남은 단속적(斷續的)이다. 텅 빈 허공과 만나는 일은 힘겹고 위험하다. 내면의 “깊은 우물 속에서 참된 나”를 건져내는 일은 마치 볼 수 없는 달의 이면에 도달하려는 갈망처럼 요원하다. 반복되는 도로(徒勞)에 그칠 공산도 크며 또 다른 환상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우물 속에서 뜨는 달」이 말하고 있듯이 초월을 향한 길을 지우고 다시 길을 내는 행위를 거듭하고 심연을 향한 “수많은 길”을 다 걷어내면서 “우물 바닥에서 커다란 달이 떠오른” 사건과 접한다. 초월의 원심력과 심연의 구심력이 상호작용하는 광경이다. 여닫는 합벽(闔闢)의 긴장된 변증법을 지속한다. “먹구름이 다 걷히고 나면/내 마음 속 깊은 곳/비밀스레 가려져 있던 달이 뜬다/마음 속 우물 바닥에서 둥근 달이 떠오른다/둥글고 밝은 달/구름을 헤치고 천천히 하늘 길을 간다.” 또 다른 시편인 「열린 문 뒤에는 닫힌 문이 있다」의 전언처럼 심연과 초월이 순환하는 경로인데 주체의 입장에서 볼 때 지난한 수행의 표현이 아닌가 한다. 밤을 거슬러 심연에 이르는 길과 더불어, 시인은 시적 자아를 찾아가는 여러 가지 지향을 모색한다. 현재의 자아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심연을 지향하는 시적 궤적과 같다. 대개 나르시시즘적 표현 주체를 극복하는 일은 기억을 소환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나열도 고향과 유년, 기억 속의 원초적 자아, 기원의 생명과 어머니 등을 회억하는 과정을 통하여 현재의 자아를 반성한다.
-구모룡, 시집해설 「참된 자기를 찾는 둥근 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