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힐링 인문학 제72-84회는 <행복나무심리상담원> 메뉴에 있어요!
<<힐링 인문학 제53회/2022.11.29>>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싯다르타」(1)_「데미안」을 거쳐 「싯다르타」로 가다
-. 도저(到底)한 이름 헤르만 헤세(1877~1962)
-. 개인사적으로도 질곡이 많았고(어린 시절 자살 시도, 두 번의 이혼, 세 번의 결혼, 부인과 아들의 정신질환, 헤세도 정신과 치료 받음 등), 반전 평화주의자로서 모국 독일로부터는 매국노로 저주받아 고통을 겪고 스위스로 가서 살았음
-. 이 모든 고통은 그의 빛나는 문학적 성취의 자양이 됨
-. 그는 문학을 통해 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가 되었음
-. 「유리알 유희」(1943)로 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
-. 「유리알 유희」의 서곡이 서번트 리더십의 원전인 「동방순례」(1932)이며, 이 두 작품은 동서합일을 주제로 함
-. 「싯다르트」(1922)의 서곡은 「데미안」(1919)이며, 이 두 작품은 자기실현을 주제로 함
-. 이들 네 작품 외 「수레바퀴 아래서」(1906), 「크눌프」(1915), 「황야의 이리」(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 등이 이름 높음
-. 장편 「게르트루트」(1910)와 「로스할데」(1914)는 자전적 소설임
-. 헤세의 문학은 자신에 이르는 길, 자기자신의 실현을 한결같이 지향하였음
-. 선과 악의 대극성을 합일한 전일성(全一性, Einheit)을 탈이원적으로 추구하였음
-. 「데미안」(1919)의 줄거리와 빛나는 구절들을 살피고 「싯다르타」로 들어감
<<힐링 인문학 제54회/2022.12.6>>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싯다르타」(2)_인간의 진정한 사명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
-. 「데미안」에 보이는 고독의 의미는 「싯다르타」에로 이어짐
-. 나는 정말 나 자신으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온 인생을 살아가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데미안」 제5장)
-. 숱한 고독을 나는 이미 맛보았다. 이제 나는 보다 더 깊은 고독이 존재하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음을 예감했다. 인간에겐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자기 자신에게로 통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데미안」 제6장)
-. 그 모든 것은 다만 복수적으로 생겨난 것일 뿐이다. 인간의 진정한 사명이란 오로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뿐이다. (「데미안」 제6장)
-. 고독을 통해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사명이며, 이것은 대극성을 넘어선 전일성의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이고, 새가 알에서 나오는 비유로 표현됨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고 한다. (「데미안」 제5장)
-. 이 비유는 불교 5부 니까야 중의 하나인 「맛지마니까야」 중 「쩨또킬라경 – 마음의 황무지에 대한 경」에서 헤세가 영감받은 것임
-. 헤세는 20대에 동양학자인 삼촌의 집에서 「맛지마니까야」를 읽고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썼음
-. 고독을 통해 자기 자신에 도달하고서는 사랑이 남으며,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과 사랑은 분리된 것이 아님
<<힐링 인문학 제55회/2022.12.13>>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싯다르타」(3)_모든 것을 비우는 일
-. 석가모니의 성은 고타마이고, 이름은 싯다르타임
-. 그런데 헤세는 소설 「싯다르타」에서 고타마와 싯다르타를 다른 인물로 등장시키고 있음
-. 헤세가 지향하는 삶의 전일성(全一性)이 고타마 싯다르타라면, 이 안에 대극성(對極性)으로 고타마와 싯다르타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임
-. 대극성인 고타마와 싯다르타를 합일하는 것이 이 작품의 지향임
-. 주인공인 싯다르타를 통해 대극성을 합일해 내지만, 실제 석가모니의 삶에 준하는 고타마의 길도 있으며, 그 중간에 바주데바의 길도 헤세는 제시함
-. 고타마의 길은 세간을 떠나 수행하여 깨달음을 성취한 출세간적 각자(覺者)의 길임
-. 바주데바의 길은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터득한 자연론적 현자(賢者)의 길임
-. 싯다르타의 길은 세간 속에서 갖은 만행(萬行)을 통하여 완성에 이르른 세간적 각자(覺者)의 길임
-. 삶의 번민 속에 출가한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음
-. 자기 자신을 멸각(滅却)시키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을 말함
<<힐링 인문학 제56회/2022.12.20>>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싯다르타」(4)_바라문 사문들을 떠나 고타마를 만나다
-. 싯다르타는 바라문 사문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자기초탈의 길을 가려 했음
-. 이 수행과정을 통해 앎은 바라문 사문들의 공동체에만 있지 않고 도처에 있고 자신의 내면에 있음을 알게 됨
-. 싯다르타는 친구이자 출가도반 고빈다와 함께 바라문 사문들을 떠나 완성자 고타마 붓다를 만나게 됨
-. 고타마의 설법은 “인생은 번뇌이며, 이 세상은 온통 번뇌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번뇌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길이 발견되었으니, 부처의 길을 가는 자는 해탈을 얻게 된다”는 열린 가르침임
-. 고빈다는 환희하게 고타마에게 귀의하고 싯다르타는 다시 자기 길을 떠남
-.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해탈의 가르침에 일단 이의를 제기하였음
<<힐링 인문학 제57회/2022.12.27>>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싯다르타」(5)_시각(始覺)의 단계에 접어든 싯다르타
-. 해탈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싯다르타를 수용하는 고타마 붓다
-. 다만 지식욕에 불타 덤불처럼 무성한 의견들 속에서 미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충고함
-. 싯다르타의 길은 해탈의 길을 우리 자신이 직접 체험하여 체득하라는 것임
-. 싯다르타는 자아를 극복하고자 하면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림
-. 싯다르타는 자신한테서 배우고, 자신의 제자가 되며, 자신의 비밀을 알아내기로 함
-. 이때 싯다르타는 ‘어느 누구도 자신만큼 외로운 사람은 없다’고 절절히 느낌
-. 싯다르타는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응집시킨 채 나아간 것이기에 자신에 집착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나, 무명(無明, 不覺)을 걷어내려는 수행이라는 점에서 보면 시각(始覺)이라 할 수 있음(대승기신론)
-. 시각의 단계에서 예전보다는 분명 삶을 새롭게 대함(피안보다는 차안, 본질보다는 현상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음)
-. 수행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상으로 뱃사공 바주데바와 기녀 카밀라를 만남
-.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뱃사공 바시라(스물 두 번째), 창녀 바수밀다(스물 다섯 번째)를 만난 것을 연상시킴
<<힐링 인문학 제58회/2023.1.3>>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싯다르타」(6)_현재와 영원성, 전일성과 ‘옴’
-. 뱃사공 바주데바의 길 : 태어나고 죽는 번뇌의 한가운데서도 자연의 계절의 변화와도 같이, 저 강물이 머물지 않고 언제나 흘러가는 것과 같이 집착하지 않는 자연론적 현자의 길
-. 강물은 언제나 현재를 흐른다 = 현재만 있다 =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 삶의 무게가 커도 오직 지금을,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야 함 = 단일성(전일성)의 사상
-. 현존, 본질, 현재, 동시성, 영원성, 불멸성은 동질적이면서도 이질적이기도 한데,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단일성(전일성)의 사상과 맥락에서 그러하고, 이것이 헤세 작품의 매력임
-. 말 중의 말인 ‘옴’도 단일성(전일성)을 나타내는 것임
-. 고타마의 길과 바주데바의 길도 고상하지만, 현실의 모든 선과 악, 번뇌와 쾌락이라는 대극성을 넘어서서 합일한 전일성의 길인 싯다르타의 길을 헤세는 구현하여 보여 주려고 함
-. 싯다르타의 상처에서는 꽃이 피어나고 고통이 빛을 발함
<<힐링 인문학 제59회/2023.1.10>>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싯다르타」(7)_상처에서 꽃이 피어나고, 고통이 빛을 발하다
-. 싯다르타의 상처에서 꽃이 피어나고, 고통이 빛을 발하고, 자아가 전일성 안으로 흘러들어갔음
-. 싯다르타는 운명과 싸우는 일을 그만두었으며, 고민하는 일도 그만두었음
-.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뻐하는 동고동락의 마음으로 가득 찬 채, 도도한 강물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채, 그 전일성(全一性)의 일부, 전일성 자체가 된 것임
-. 우리 인생도 상처가 군데군데 가득하나 그 상처가 다 아물어 온전해진 그런 한몸의 단일성, 전일성이 될 수 있음
-. 기녀 카말라를 만나 사랑을 배우는 것과 깨달음의 길은 분리된 것이 아님을 체득함
-. 깨달음의 여로(旅路)에서 어린아이나 짐승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소인(小人)들을 만나서도 경멸로 끝내지 않고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 주었음
-. 지혜로운 것은 좋은 일이고, 참는 것은 더 좋은 일이라고 알아차림
-. 이러한 시각(始覺)의 단계에서 싯다르타는 쾌락과 속세의 시간을 거치며 성급하게 화를 내고, 불만스러워 하며, 기분 나빠하고, 우울해 하는 등 영혼의 병에 걸려 무의미한 악순환을 계속하는 윤회에 빠짐
-. 내면의 소리, 마음의 소리를 듣고 회심(回心)하여 육신의 죽음이 아닌 자아의 죽음을 깨닫게 됨
-. 새롭게 태어난 싯다르타는 카말라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싯다르타를 만나 애욕과 애착의 번뇌 또한 전일성의 ‘옴’으로 치유함
-. 바주데바를 대신하여 뱃사공이 되며 찾아온 고빈다를 만남
-. 고빈다에게 진리는 일면이 아닌 전체이기에 세존 고타마도 이 세상을 설할 때 윤회와 열반, 미혹과 진리, 번뇌와 해탈 등의 이원상대(二元相對, 연기)로 설하셨다고 말해 주는데,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임
<<힐링 인문학 제60회/2023.1.17>>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_설에 생각해보는 정체성의 인문학 그리고 릴케
-. 설은 ‘서다[立]’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함
-. 새해에 바로 서겠다는 다짐이 세시풍속으로 정착된 설임
-. 작은 설=아세(亞歲)=동지=벽사(辟邪, 팥죽의 붉은 기운으로 나쁜 귀신을 물리침)와 재생(再生, 동지를 기점으로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함)의 의미
-. 설에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확인하기 위함
-. ‘차례[茶禮]’라는 말에서 보듯이 원래는 차로 지내는 불교식 제사였으며, 유교의 고루한 유산으로 보는 것은 단견임
-. 성경 구약 「창세기」와 「역대기」 등에는 아담 이래의 족보, 신약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등에는 예수까지의 족보가 보이는데, 이것도 정체성을 확인하는 관념임
-. 자신이 어디서 왔고 누구인지 모른다면 자신의 생명은 영성, 얼, 혼이 깃든 생명이라 할 수 없으며 그야말로 몸덩어리, 육신, 육체에 지나지 않는 것임
-. US 뉴스 & 월드 리포트지가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등과 공동조사해 발표한 ‘2022년 최고의 국가’조사에서 한국이 6위에 랭크됨
-. 이 성과도 우리의 분명한 정체성에서 나온 것임(우리가 힘써 달린 결과인데, 그 바탕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
-. 서던 캘리포니아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소장 데이비드강(강찬웅) 교수는 신천 강씨 제39대손으로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지 않음
-. 정체성의 위기를 겪은 릴케는 그것을 승화시켜 독일 시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나’를 탐구대상으로 삼아 시를 씀
-. 릴케의 마지막 시의 뒷부분 또한 정체성에 관한 내용임
아주 순수하게,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자유로이
나는 고통의 그 어지러운 장작더미 위로 올라갔다,
속에 든 모든 것이 이미 침묵해버린 이 심장을 위해
그토록 빤한 어떤 미래의 것도 사지 않기 위함이다.
저기 알아볼 수 없이 타고 있는 것이 아직도 나인가?
불꽃 속으로 추억을 끌어들이지는 않겠다.
오 생명, 생명이여, 저 바깥에 있음이여.
그리고 불꽃 속의 나여, 나를 알아보는 이 아무도 없구나.
<<힐링 인문학 제61회/2023.1.24>>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_종가문화의 공간의식과 릴케
-. 종가문화는 종법질서(宗法秩序)에 기반해 있는 것인데, 종법은 친족제도의 기본이 되는 관습법임
-. 종법에서는 종가(宗家)와 종손(宗孫)이 중심이 됨
-. 종가는 문중의 맏이로만 이어져 온 큰집으로 사당(祠堂)을 중심으로 구성됨
-. 종손은 적장(嫡長, 정실이 낳은 맏아들과 맏손자) 자손으로 직계 조상의 제사를 봉행하는 문중의 대표자임
-. 종손도 대종손(大宗孫), 파종손(派宗孫), 주손(胄孫)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음
-. 종손의 부인인 종부(宗婦)의 역할이 종가에서 실질적으로 큼
-. 종가나 반가(班家, 양반 집안)의 2대 기능은 봉제사(奉祭祀,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심)와 접빈객(接賓客, 손님을 대접함)임
-. 이 두 기능은 종가의 음식문화와 직결되어 있음
-. 경북지역은 불천위가 있는 종가만 하여도 200종가 이상이 되어 전국 불천위의 절반이 넘음
-. 경북에 종가가 이처럼 많기에 문화재급 전통 음식 조리서도 많이 생산되었음
(1) 「수운잡방」(1540년경, 안동)
(2) 「수민방」(1654년, 영천)
(3) 「음식디미방」(1670년경, 영양)
(4) 「온주법」(1700년대 후반, 안동)
(5) 「음식절조」(1800년대 중반, 안동)
(6) 「시의전서」(1800년대 후반, 상주) 등
-. 불천위(不遷位) 제사는 4대를 지나도 신위(神位)를 옮기지 않고 사당에 길이 모시고 지내는 제사를 일컬음
-. 불천위에는 국불천위, 유림불천위, 문중불천위 등이 있음
-. 사당에서 더 이상 모시지 못하는 체천위(遞遷位, 4대가 지나 제사를 모시지 않지만 4대 이내의 자손[玄孫]이 있을 경우 따로 신주를 모시는 것을 말함)를 따로 모시는 별묘(別廟)를 건립하였음
-. 종가문화의 공간의식은 곧 군자의식임(논어 이인편 제1장의 공자 말씀)
-. 릴케 또한 불멸의 작품들을 공간을 이동하며 창작하였음
-. 대표작 「두이노의 비가」는 이탈리아 동북쪽 끝 두이노성에서 시상(詩想)을 얻어 제1, 2비가와 제10가의 일부를 쓰고, 나머지는 스위스 뮈조트성에서 완성하여 시인의 사명을 다한 기쁨을 느꼈음
-. 릴케는 “행복한 상호작용 가운데 자신을 경험해 가는 사람에게는 생활의 공간이 갖가지의 현실적인 사실로 가득 차 있다(「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제4편지)”고 하였음
<<힐링 인문학 제62회/2023.1.31>>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3)_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1875~1926)는 헤세보다 2년 전에 태어났고 불과 52세에 죽었음
-. 철학자 하이데거는 릴케를 ‘시인 중의 시인’으로 불렀음
-. 릴케가 직접 쓴 짧은 시로 된 묘비명(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
-.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생긴 패혈증으로 죽었다는 것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속설임(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백혈병이었음)
-. 릴케는 로댕의 비서로 일하기도 하였으며, 톨스토이, 로댕, 폴 발레리, 폴 세잔, 로맹 롤랑, 앙드레 지드 등과 교류하였음
-. 14살 연상의 루 살로메(1861~1937)는 릴케의 생애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
-. 릴케가 루 살로메에 바친 헌정시 <내 눈빛을 꺼주소서>는 「기도시집」 제2부에 있음
-. 릴케의 작품들
(1) 내면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 시집 : 「강림절」, 「기도시집」 등
(2) 형상에 대한 관찰로 쓴 시집 : 「형상시집」, 「신시집」 등
(3) 영감과 형상의 통합으로 쓴 시집 :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
(4) 소설집 :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말테의 수기」 등
(5) 편지글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
<<힐링 인문학 제63회/2023.2.7>>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4)_찬란한 고독을 위한 릴케의 문장
-. 문장이 시처럼 아름답고 내용이 우물같이 깊은 릴케의 편지글
-. 가장 적절한 릴케 입문서
-. 젊은 시인의 이름은 시인 지망생 카푸스
-. 1903~1908년에 걸쳐 카푸스에게 열 통의 편지를 쓴 릴케
-. 세 가지 의미(릴케의 작품세계를 인식할 수 있고, 성장해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며,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
-. 릴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 문학과 예술을 지망하는 사람,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음
-. 문학하는 것이, 예술하는 것이, 고독이, 사랑이, 그리고 인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가르쳐 줌
-. 예술가의 운명의 무게와 위대함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릴케의 언어 들어보기(외부에서 올지도 모르는 보수에 대해서는 절대로 개의치 말며, 그 운명을, 운명의 무게와 위대함을 참고 견디십시오)
<<힐링 인문학 제64회/2023.2.14>>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5)_인내야말로 전부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인내에 대하여 다섯 차례나 권고함(첫 번째 권고는 제1편지에 나오는데, 지난 시간 말미에 말씀드렸음)
-. 인내에 대한 두 번째 권고 : 모든 인상, 모든 감정의 싹을 자신의 오성(悟性)이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완성하여 깊은 겸손과 인내로 새로운 분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예술가의 생활(제3편지)
-. ‘오성’은 사물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으로 ‘지성’과 같은 말임
-. 칸트가 정리한 마음의 네 가지 인식능력 : 감성(직관력) - 상상(도식력) - 오성(지성력) - 이성(추론력) : 「순수이성비판」(1781)
-. 인내에 대한 세 번째 권고 : 수목처럼 성숙하기 위하여 여름을 기다리며, 괴로워하면서도 배우고, 그 괴로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인내야말로 전부입니다(제3편지)
-. 우리 삶의 의미 있는 성과는 대체로 여유 없고 현실을 매일 고민하며 설 곳이 없고 앞이 보이지 않는 간난과 고난 속에서 나오는 법(간난과 고난이 없이 인간은 안주하기 마련이고 분발하기 어려움)
-. 인내에 대한 네 번째 권고 :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에 대한 인내(제4편지)
-.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인데, 이 일 속에서 인내로 물음을 살아가되 아무도 미워해서는 안 됨(이 부분은 헨리 나우웬의 「영성수업」 제1장에도 인용되어 있음)
-. 나우웬은 릴케의 편지글을 두 번 인용하고 있음. 제6편지의 “당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신의 전적인 사랑에 상당하는 것입니다”는 표현도 「영성수업」 제1장에도 인용하고 있음
-. 인내에 대한 다섯 번째 권고 :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운 비탄의 소리를 내며 당신에게 주는 고통을 견디십시오(제4편지)
-. 릴케가 인내를 이렇게 거듭거듭 말하면서 고독을 더불어 거론하는 것은 인내를 고독의 외연으로 보는 까닭에서임
-. 다음 시간에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보이는 고독에 관한 릴케의 집요저음(執拗低音, basso ostinato, ground bass)을 말씀드리겠음
<<힐링 인문학 제65회/2023.2.21>>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6)_황량한 현실의 어딘가에서 고독하고 용감하게 살라
-. 창작하는 이의 운명인 고독, 이 고독의 운명을 사랑하여야 하는 창작자
-. 릴케는 창작하는 이의 사랑이 지닌 고귀성과 탁월성과 미래성은 고독에 기반해 있다고 하였음
-. 아름다운 작품에 어김없이 깃든 고독과 영원을 사랑으로 인식하였음
-. 고독한 자의 특전은 예술작품이 주는 위안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임
-. 한편 너무 고독한 것, 근본적으로 고독한 것은 경계하여야 한다고 하였음
-. 너무, 근본적으로 고독하면 예술작품의 초청에 응할 수 없기 때문임
-. 릴케는 고독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을 구분하였음
-. 가장 행복한 사람은 고독과 행복을 아울러 변주(變奏)할 줄 아는 사람임
-. 가장 행복하기 위해서도 고독이 필수적임
-. 릴케는 행복을 거의 말하지 않고 고독을 깊고 넓게 말함
-. 고독을 어려워하면서도 사랑한 것은 불멸의 작품을 쓰기 위한 용기였음
-. 릴케는 카푸스에게도 “황량한 현실의 어딘가에서 고독하고 용감하게 살라”고 격려함
-. 고독과 더불어 성장해야 하고, 고독 또한 성장한다고 릴케는 말하였음
-. 고독의 성장 위에 고독을 펼쳐 나가라고 권고함
<<힐링 인문학 제66회/2023.2.28>>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7)_인생은 옳은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 고독을 주거(住居)로 삼아 살며 시를 쓴 시인 릴케
-. 고독은 내면으로의 전향, 자기 세계로의 침하를 가능하게 해 줌
-.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실존(현실존재, 현실을 자각하는 존재)의 본질임
-. “가장 깊고 중요한 일에 있어서 그야말로 우리는 말할 수 없이 고독합니다(제2편지).”
-. 고독은 본질적이고 광대함
-. “당신이 앞으로 체험하고 행하는 모든 것 가운데 이 광대한 고독이 익명의 영향으로서 조용히 결정적인 작용을 계속할 것입니다(제10편지).”
-. 릴케는 옆으로의 고독한 사랑을, 고독을 두려워하는 위로의 관대한 사랑을 권고하였음
-. 고독은 모든 길을 찾아냄
-. 인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옳기에 인생으로 하여금 제 길을 가게 할 것임
-. 그렇기에 자신의 과거에 대해 지나치게 질책하지 않으며, 미래가 우리 내부에 들어오지만 고독하게 또 주의 깊게 있을 수 있음
<<힐링 인문학 제67회/2023.3.7>>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8)_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세계가 되려는 숭고한 동기입니다
-. 신분이나 지위를 넘어선 내면 즉 마음을 소중히 하라(제6편지)
-.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한 사람을 위해서 그 자신이 세계가 되려는 숭고한 동기입니다(제7편지)
-. 인습에 젖어서 괴로운 죽음을 맞이하지 말라(제7편지)
-. 여성다워야 한다는 인습을 벗어던지는 여성, 자기발전하는 여성, 남성의 영향을 벗어난 독자적이고 인간적인 여성,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되라(제7편지)
-. 신은 결코 있었던 적이 없었으며, 다가오는 자, 미래의 자, 시작하는 자이다(제6편지)
-. 글을 쓰면서 비평에 연연해 하지 말라(제1, 3편지)
-. 글을 쓰는 방법 세 가지(제1편지) : 모방을 조심하라. 일상의 주제를 중시하라, 지난 감동을 살리라
-. 릴케의 「말테의 수기」(1923)에 나오는 별 헤는 모습이 윤동주의 <별 헤는 밤>(1941)에 영향을 미침(기존에는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이해해 왔음)
-. 릴케의 대표작 「두이노의 비가」(1923) 제5비가에 나오는 파리 곡예사의 비루한 삶
-.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은 기본적으로 비루하다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밤마다 ‘별 하나’를 불러보며 비루한 삶에서 순수한 솜씨를 살리면서 살아가야 함을 릴케는 결코 어둡지 않게, 참신하고 신선하게 말해 주었음
<<힐링 인문학 제68회/2023.3.14>>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_이 사람을 보라
-. 20세기를 바꾼 3대 사상가 :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 20세기를 바꾼 4대 사상가 : 3대 사상가 + 니체
-. 다윈과 니체의 사상은 당시나 지금이나 거부할 수 없는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음
-. 프리드리히 니체 : 선과 악의 이원성 초극, 신과 인간의 이원성 초극 :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초인(超人, Übermensch),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등
-. 니체는 선과 악의 이분법, 신과 인간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스스로 얽매이고 질식해가는 인류에게 숨통을 트여 준 숨길의 사상가
-. 제도의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영성을 선구적으로 말했음
-. 신은 죽었다고 표현할 만큼 용기의 사상가이기도 했고, ‘뱀의 대가리를 과감하게 물어뜯어 버리는’ 용기를 설파함
-. 니체의 사상이 종합된 작품은 거대한 산문시이자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임 : 작품 전체를 개괄하는 머리말과 전4부 전80장으로 구성됨
-. 니체는 자신의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1888)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해 큰 자부심을 드러내 보였음
-. 자서전에서 자신의 저서 10권을 자평하였는데, 대표작은 여섯 번째로 다룸
-. 자서전을 쓰는 세 가지 방식
-. 차라투스트라는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그리스식 표기)를 현대식으로 표기한 것인데, 초인의 상징으로 차용함
<<힐링 인문학 제69회/2023.3.21>>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_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부제 ‘모든 이를 위한, 그러나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책’의 의미
-. 제1부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은 책 전체의 서론 성격을 띰
-. 이 머리말에서 니체가 뜻하는 바를 총괄해서 밝힘 : “그대들에게 초인(超人)을 가르치려 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타인이나 사회를 극복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니체가 영향을 받은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가 영향을 받은 붓다, 그래서 붓다의 영향을 받은 니체의 붓다식 인식임
-. 붓다는 「법구경」 술천품에서 “수천의 적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이다(千千爲敵 一夫勝之 未若自勝 爲戰中上)”고 설하셨음
-.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을 니체는 천민(잡동사니, 왜소한 사람, 말종인간)이라 불렀는데, 계급의 천민이 아닌 인식의 천민임
-. 니체는 인간의 ‘몰락’을 희구하였는데, 새로운 인간의 창조를 갈구한 것임
-. “나는 사랑한다. 인식하기 위해 살며, 언젠가는 초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인식하려는 자를. 이러한 자는 몰락하려고 한다(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제4장).”
-. 니체는 덕이야말로 몰락하려는 의지로 보았음
-. “나는 사랑한다. 자신의 덕을 사랑하는 자를. 덕이야말로 몰락하려는 의지이며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제4장).”
-. “나는 사랑한다. 상처를 입어도 그 영혼의 깊이를 잃지 않으며 작은 체험만으로도 멸망(몰락)할 수 있는 자를. 그런 자는 이렇게 하여 즐거이 다리를 건너간다(같은 곳).”
<<힐링 인문학 제70회/2023.3.28>>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3)_자신에 이르는 길
-. 말종인간들은 올바른 믿음을 가진 신자로 자처하며, 그들이 존중하는 가치들을 적어놓은 서판(書板)을 부수는 자를 가장 미워함
-. 서판을 부수는 자는 초인임
-. 정신의 세 단계 변화(낙타-사자-아이)
-. 아이는 선입견과 작위(作爲)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세계 너머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궁극적 존재(신)는 인간의 작품이자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받아들임)
-. 궁극적 존재는 이미 죽었으니 차라리 건강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몸철학의 발원지로서의 니체)
-. 세계와 너머의 세계, 마음과 몸, 선과 악 등 모든 이원성의 초극을 말한 니체, 그 발원지에는 붓다가 보임(붓다-쇼펜하우어-니체-릴케-헤세-지브란)
-. “적이라고 부르되 악인이라고 부르지는 마라. 병자라고는 부르되 죄인이라고는 부르지 말라(1-6).”
-. 이원성의 초극을 해내야 하는 자신이 오직 문제가 될 뿐임
-. “나의 자아는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나의 자아는 인간에 대한 커다란 경멸이다(1-6).”
-.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 그대 자신이 그대를 기다리며 동굴과 숲에서 잠복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자신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다(1-17)!”
<<힐링 인문학 제71회/2023.4.4>>
[주파수 103.5 TBN 경북교통방송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30분~45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4)_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
-.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자신이 초인이 되어야 함을 일컬음
-. “초인의 아름다움이 그림자로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2-2).”
-. 자신이 창조하려는 의지를 스스로 희망한다는 것은 ‘힘에의 의지’를 갖는다는 뜻임
-.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 낡은 진리가 아닌 새로운 진리에의 의지
-. 힘에의 의지를 가진 초인은 ‘영원회귀’하게 됨
-. 영원회귀는 초인의 눈으로 본 세계이며, 초인의 영원한 생명력임
-.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 있다(3-13).”
-. “모든 것은 공허하다. 모든 것은 동일하다. 모든 것은 이미 있었던 것이다(2-19).”
-. ‘공허하다’는 것은 불교의 ‘무상(無常)’을 말함
-. 니체는 불교의 무상과 무아(無我)를 영원회귀로 표현해본 것임
-. 무상무아이기에 삶의 이원성이 극복될 수 있고, 그렇다면 모든 것은 절대자의 의지가 아닌 주관[因]과 객관[緣]의 합일로 존재하고 회귀함
-. 밀란 쿤데라가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원회귀로 시작하고 영원회귀로 마치는 구성을 하고 있는데, ‘존재의 가벼움’은 영원회귀라는 ‘존재의 무거움’ 곧 무상의 철칙을 역설적으로 재인식시켜 주는 표현이라 할 것임
-. 니체의 ‘관점의 전환(Perspektiven umzustellen)’과 ‘아모르 파티(Amor fati)’에 관해서도 이해하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됨
-. “참으로, 언젠가 미래의 빛을 밝힐 자는 오랫동안 무거운 뇌우로서 산등이에 걸려 있어야 한다(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