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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으로 내달리는 기차 차창 밖으로 눈보라는 더 빠르게 시간을 거슬러 흘러갔다.
이미 볼 수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마음이 이렇게도 초조할 수가 있을까?
지난 9월 “양평 두 번째 만남” 행사에서 조금은 야윈 그녀를 보고 살이 많이 빠졌다고 던진 덕담은 이제 더 이상 덕담이 아니다. 그때도 이미 그녀의 병은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우리들만 모르고 있었다.
10월, 11월 그리고, 12월...
그녀가 누워 지내는 사이 에스페란토에는 한국대회, 남강학교, 자멘호프 타고가 있었다.
잠시, 그녀 민정진 이엘라를 추억한다.
그녀가 우리들 곁에 오래 머물기는 어렵겠다는 절망이 다가온 것은 몹시도 심하게 야윈 얼굴을 황달이 덮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 달이면 이것 다 벗겨지겠지?”
“왜요?”
“다음 달에 자멘호프 타고 있잖아, 나 그때 사회 봐야하거든.”
적당히 아픈 사람은 그 아픔을 핑계로 몸을 쉬려할 것이다.
그녀는 이미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가?
왈칵 눈물이 난다.
코토포 회원 몬타로가 장가가는 날, 우리 회원들은 스투데마의 차를 타고 가평 청심병원으로 달려가 이엘라를 만나고, 함께 국수를 먹고, 서울로 와서는 늦은 시간까지 헤어지질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 “어제 잘 가셨는지요? 먼 길 와주시고 웃음주시고 힘주시고 많은 사랑 주시어 잠시 우울했던 하루가 행복했습니다. koran dankon!" -2010.11.08 09:00
= “힘겨울 때 당신 사랑하는 사람 있음을 기억해요. 그러면 힘이 생기고 조금 가벼워질 거예요. 이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당신에게 큰 힘이 되기를..” -2010.11.09 17:04
- "koran dankon! mia amiko Vintro! -2010.11.09 17:11
= “비 개이고 나니 날씨가 조금 포근해지네요. 그곳 날씨는 어떤지요?” -2010.11.12 17:17
- "이곳도 날씨가 따뜻해요, 바람이 불 뿐.“ -2010.11.12 17:32
= “내일은 더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휘익 바람처럼 가보고 싶네요.” -2010.11.12 17:35
- “너무 멀잖아요, 한가하실 때 휘익 오셔요.” -2010.11.12 18:05
부산 Nema가 근처에 출장을 왔다가 연락이 왔다. Iela 문병을 하고 싶어 한다. 천안에서 Studema와 저녁을 먹고, 여관을 잡아 주고, 다음날 아침 부산에서 고속열차로 올라온 Cigno와 Lumo를 만나 가평으로 향한다. 지난 번 그 국수집, 이엘라가 먹고 싶다는 그 국수집으로 가는 네 사람.
= “국수집 도착” -2010.11.13 13:22
더 야위었다. 식사를 전혀 못하고 있다. 국물 몇 숟가락 먹은 것이 전부.
저러고는 살 수 없다. 조용히 웅얼거리며 노래한다. 이엘라가 원해서 네마가 번안한 “개여울”. tion ne komprenas mi, kion faras vi ~ 국수집 유리창 너머로 맑은 개울이 흐른다. 오는 봄에는 저 개울을 함께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아프며 죽어가는 사람, 나와 문병객들은 몸 아프지 않은 채 죽어가는 사람들 아닌가? 교통량 많은 경부고속도로를 피해 중부로 내려온다. 나는 진천에서 내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다. 그래야 부산 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내려갈 것 아닌가? Studema에게 전활 한다. 데리러 온단다.
- “먼 길을 두 번이나, 내가 자기 형편을 잘 아는데 뭐 그것까지 신경 쓰나요? 마음만이라도 과분한 것을...dankon!" -2010.11.13 18:45
병원비 말고는 아무 쓸데도 없는 “돈” 몇 푼 주머니에 넣어 주었더니 건네 온 인사말이다.
깔끔하게 살고 싶은 그녀의 자세는 여전하다. 죽도록 아픈데도.
다시 일상에서 허둥대며 지내는데 도착한 메시지.
회원 폰토가 마음이 아프니까 전화한 모양이다.
- "어제 잘 가셨지요? 폰토 좀 위로해줘요. 지금 혼자 술 마시며 울고 있어요.“ -2010.11.14 20:39
지금 누가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이렇게 오지랖이 넓어서야 원..
폰토에게 전화해서 위로한다. 이제는 방법이 없으니 조용히 기적을 바랄 밖에..
답장을 쓰고 시간을 보니 지금 자고 있겠다. 깨우지 말자.
= “폰토와 통화했어요. 그만하고 들어가라고 했어요. 맘 아파하네요. 이 문자 낼 아침에 전송할 겁니다. 또 만나요.” -2010.11.15 08:42
- “dankon! 밖이 많이 춥다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2010.11.15 10:55
= “감사, 오늘 펠리차도 담낭 제거수술 한 대요.” -2010.11.15 11:51
- “아..그렇구나. 잘 되어야할 텐데..” -2010.11.15 11:55
= “날씨가 점점 추워지네요. 따뜻하게 지내시는 거죠? 여기도 이제 겨울 채비 해야겠어요.” -2010.11.19 10:23
- “따스하게 지내세요, 올 겨울” -2010.11.19 10:29
= “컨디션은 좋은가요? 코토포에 11월이란 글이 떴는데 이엘라 생각나서요.” -2010.11.19 12:11
- “오늘은 좀 피곤해요” -2010.11.19 12:13
남강학교에서 많은 분들이 이엘라를 궁금해 하고 걱정한다.
날씨가 너무 춥다. 남강에서 보낸 날들 중 가장 추웠던 것 같다. 한 사람 공백이 이렇게 크구나 생각한다.
얼마나 오고 싶을까.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이 그녀에게 상처 주지 않아야할 텐데.
부산 회원 몇 분들과 코토포 회원들이 그녀를 위한 마지막 행사를 논의한다. 이엘라를 위한 마지막 행사.
그러나 그녀의 상태는 더욱 더 나빠지고 곁에서 간호하는 코코님이 반대한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구나. 그녀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된 코토포 게시판을 본다. 여덟 해 쌓인 기사들을 추린다. 그녀가 쓴 글들을 편집한다. 코코님이 읽어주며 정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스투데마에게 부탁한다. 당신이 가진 영상자료들 중에서 이엘라 편만 정리해달라고. 시간이 얼마나 무서운 지... 8년의 두께는 장장 200여 페이지 문자 기록과 석 장의 디브이디로 압축된다.
= “눈을 기다리고 있어요. 계신 곳은 여기보다 훨씬 춥겠네요.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되시길‘’” -2010.12.08 08:40
- “dankon, 이곳은 눈이 안 내렸어요. 보고 싶은 우리 코토포 회원들.. 연말연시 잘 보내시기를..” -2010.12.08 08:43
= “눈이 오고 있어요. 함박눈이 바람도 없이 조용히 내려오네요.” -2010.12.08 09:29
자멘호프 타고,
협회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한강 물줄기는 유유하다.
성냥갑처럼 보이는 차량 물결도 바빠 보이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보면 이렇게 모든 것이 평화롭겠구나. 지금 병상에 누운 이엘라는 이 행사 사회를 보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구나. 내년에는 가능하지도 않은 일. 이제 영영 다시는 못하겠구나.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죽고 나면 남은 자들이 어찌 죽은 사람을 알겠는가? 답답하다.
= “1601호에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대가 하려던 사회를 봐야할 것 같아요. 추운가요?” -2010.12.11 16:27
답이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주 혼수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그렇게 원하더니 결국엔 의식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바빠진다.
더 위중해지기 전에 우리들 욕심을 채우자.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우리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추억하며 회한에 젖게 하자. 호두과자 네 봉지, 200 페이지를 압축한 64페이지 기사집과 열 시간도 넘는 동영상/ 사진 자료를 들고, 그녀가 먹고 싶어 한 음식들을 챙긴 디아나, 펠리차와 함께 가평 청심병원으로 간다. 그녀가 아프고 처음으로 포옹한다. 아! 죽겠구나. 이젠 희망도 없구나. 그렇게 야위었다. 점심도 거의 먹지 못했지만, 잠시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했지만, 그래서 중도에 다시 병실로 들어갔지만, 우리들은 저녁에 다시 그 국수집으로 함께 간다. 그녀가 원하므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다른 것이 없으므로. 우리들 배만 채우고 이제 헤어질 시간, 코코 차에 오른 이엘라가 나를 안아 준다.
“잘살아, 고마워”
- “미리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2010.12.16 17:40
휠체어에 겨울옷으로 중무장하고 그렇게 예뻐하던 어그 부츠를 신고 브이 자를 그리며 보내 온 사진엽서. 죽음은 이제 그녀에게 일상처럼 붙어 있다. 죽음과 헤어질 수는 없다.
- “저녁때부터 응급 상황입니다. 밖에 있는데 간호사로부터 빨리 들어오라고 해서 그때부텁니다. 잠시 정신이 있을 때 자기는 갈 것이라고..아픈 이후로 그런 말 처음입니다. 식사 못하고 잠만 자고 눈 뜨면 헛것을 보는지 딴소리만 합니다.” -2010.12.20 23:25 koko
= “밤에 소식 들었습니다. 어떠신지요. 빈트로” -2010.12.21 08:31
- "아침에 캔죽 조금 먹고 살짝 기운 차렸으나 시간관념이 없고 헛소리도 많이 하네.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네. 어제 후배들이 와서 한참 놀다 갔는데 그때 좀 무리 했나봐.“ -2010.12.21 09:50
- “오늘은 병실 정리를 다 하였습니다. 임종하면 옷 다 벗기고 환자복만 입혀서 장례식장으로 운구한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이라 정리해두는 것이 좋겠지요. 이젠 뭐 딱히 필요한 것도 쓸 것도 없으니까요. 내출혈이 있어서 그 피가 속에서 선지처럼 되었다가 토하는데 이틀 밤낮을 토하고 오늘부터는 토한 것을 또 넘기는 것 같습니다. 입속에 잔여물이 있어요. 의식이 안 좋으니까 뱉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2010.12.27 09:12 koko
- "사진가 윤태서의 부인 민정진 여사 12월 28일 별세. 발인 12월30일 오전 8시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장례식장“ -2010.12.28 08:30 koko
지난 23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세상에 넘쳐난다. 미끄러운 길을 뚫고 출근길을 재촉하는데 메시지 도착 음이 울린다. 불안하다. 눈발이 간간히 날리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 불안을 확인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지? 디아나와 통화하고, 펠리차는 받지 않고, 부산에 알리고, 스투데마는 자고 있을 테고, 아니다 먼저 협회 게시판에 올리자. 서둘러 회사에 나와 메시지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아! 회장님께도 전활 드려야지..우리 회원들도 다 연락해야해. 아직 소식을 모르는 마테나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직원들도 있는데 지금 말하면 울음을 터뜨리겠지? 조금 있다가 얘기하자. 연말에 밀린 일들은 많은데 손에 잡히지 않는다. 1층에 있는 은행에 다녀 올라오니, 마테나는 울고 있다.
아래 메시지를 본 모양이다.
- "오늘 이 눈 내리는 밤에 세상인사하고 먼저 갑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사랑합니다. 민정진 이엘라 올림.“ -2010.12.28 11:52
28일 오전 1시 50분 경, 이엘라는 숨을 멈추었단다. 숨을 멈추고도 한동안 심장이 살아 있었단다. 우선 가보자. 열차를 타고 용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코코는 술에 취해 있다. 취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조화를 주문하고, 협회에서 사무국장이 가져 온 조기를 세워 걸고, 술을 마신다. 지독한 병치레를 끝낸 몸이 술을 거부한다. 갔다가 내일 다시 와야지. 그러나 천안행 막차는 끊긴지 오래. 병점 가는 전동차를 내리니 택시밖엔 나를 기다리는 것이 없다. 택시를 타고 천안에 도착하니 새벽 두시로 간다. 폭설이다. 송년회식을 끝낸 수많은 젊은이들 틈에서 나를 데려다 줄 택시는 없다. 왕복 10차로 넓은 길 위에 사람들 뿐, 이 늦은 시각에 스투데마는 깨어있을까? 아마도 이엘라 영상자료 만드느라 깨어있을 거야. 전화를 하고, 눈길을 뚫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러 스투데마가 온다. 고마운 사람! 이것이 에스페란투요에 들어와 내가 얻은 복이리라.
29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곧장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큰 아이 방을 구해주어야 한다. 강서구 염창동에 오피스텔 계약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나는 다시 양평행 전동차에 몸을 싣는다. 부산에서 오시는 세 분, Cigno, Lumo, Lasta 님은 벌써 양수역 도착, 부지런히 달려 함께 장례식장으로 걷는다. 양수리 이 길은 Iela와 함께 자주 다녀본 길이다. 내가 다 기억할 수 있을까? 그 곳에 온 사람들을... 우선 예당 선생님, Diana와 Edzo, Studema, Cigno, Lumo, Lasta, Nema, Felicxa, Matena, Honesta, 양평지회장, 강향임 씨, 강헌구 부회장과 edzino, 김우선 여사, 이중기 문화원장, Popolo, Inda, Ario 부회장, Iela의 절친 최강지 선생, Tagigxo님, Montaro 그리고...박수현 님, 이성우 씨, Ebla님, Libro님, 내 계좌에 조의금으로 인사하신 Junko, Ogawa, Ombro, 나의석, Pauxlo, 마선생님, 김정순 님, 한숙희 님, 정원조 선생님, Juncxo,
스투데마가 밤새워 만든 영상자료 속에서 이엘라는 열정적으로 움직인다.
이 방 뒤 어딘가에 차갑게 식은 육신을 누인 채 영상 속으로 걸어들어 온 이엘라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죽음은 산자와 격리된 채, 저 혼자 또 다른 존재이다. 밤이 깊어지고, 조문객들이 하나 둘 집으로 간다. 남은 사람들을 위해 모텔 방을 두 칸 잡아둔다. 남은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는 더 이상 죽은 자에 관한 것이 아니다. 모두들 살아 있는 얘기들로 화제가 바뀌고 그렇게 밤은 깊어간다.
가평 병원에 두고 온 코코의 차를 가져와야 한다.
폭설이다. 왕복 70킬로미터, 고갯길, 구비길, 내리막길, 술 취한 운전자는 긴장한다. 새벽 네시! 폭설을 뚫고 가는 한 시간 여의 운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니 다섯 시. 샹하이로 출장을 떠나는 네마가 눈길에 나와 차를 기다린다. 인천공항까지 택시로 이 눈길을 헤쳐가야 한다. 날이 밝아 오고, 이제 발인식.
운구.
성남화장장.
운구.
화로.
기다림.
나는 이제 회사에 가서 2010년을 마감해야 한다.
화장 절차가 모두 끝나고 코코는 유골을 들고 삼척, 두 사람이 살기로 했던 산골로 가야한다. 혼자서...
엘스타라, 호네스타, 스투데마는 갈 모양이다.
나는 힘들다. 코코는 나도 가는 줄 안다.
“빈트로, 강릉 휴게소에서 만나자구.”
“ .... ”
“왜 말이 없어?”
스투데마 차에 나와 박수현, 민현경이 타고 코코는 사륜구동 트럭에 가루된 이엘라를 태우고 출발. 저 양반 벌써 며칠 째 제대로 잠도 못자고, 술만 마셔댔는데, 300킬로미터를 운전할 수 있을까? 나도 누구도 모두 잠 한숨 못 잤는데 어쩌나? 내가 나선다.
“형님,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어, 그래줄래?”
곤지암 나들목으로 진입하고 이윽고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든다.
둔내 쯤 이르렀을 때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금새 고속도로가 하얗게 변한다.
이 길을 어떻게 뚫고 가나?
코코는 이내 잠든다.
삼척시 근덕면 광태리 522번지.
날이 벌써 어두워진다.
여기서 올 해 마지막 날을 맞이해야 하는구나.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회사 식구들에게도 미안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걱정도 일고, 답답하구나.
삼척온천관광호텔에 방 두 개를 예약하고, 며칠 만에 처음으로 편하게 잠을 청한다.
나는 아침 차로 천안으로 가기로 했다.
아침 일곱 시, 007처럼 코코가 방문 앞에 나타난다.
아침식사를 하자한다.
함께 이엘라 유골을 뿌리기로 한다.
산촌 마을에 들어선다.
햇살이 잘 드는 장소에 반 평 쯤, 이엘라가 누울 곳을 만들었다. 기왓장으로 직사각형을 만들어 놓았다. 산길 오다가 세 봉지 퍼온 흙을 쏟아 놓고, 그 위에 이엘라 유골을 붓고, 함께 섞어 네모난 땅 위에 골고루 편다. 하얀 이엘라 유골은 고운 흙과 섞여 네모나고 납작하게 누워 있다. 추울세라 낙엽들을 긁어모아 덮어준다. 이별노래를 부른다. 박수현의 기도를 듣는다. 이제 끝났구나.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끝난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 보이차를 몇 잔 마시고, 이엘라가 담가 놓은 약초 술을 몇 잔 마신다.
이것도 이별이구나.
아쉬운 작별 시간, 산촌에 덩그마니 혼자 남을 코코를 생각하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이렇게 혹은 2박3일, 혹은 3박4일을 보낸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작별의 악수를 하고, 차를 탄다. 이제 우리는 고속도로를 피해 울진으로 내달린다. 엊저녁 술 한 잔 나눈 임원항을 지나 울진, 영주로 가는 길목 불영사 계곡 길을 달린다. 여러 번 다녀 본 길이라 낯설지 않다. 아름다운 길이다. 영주에서 풍기로, 풍기에서 죽령을 넘어 단양으로, 단양에서 충주, 증평을 거쳐 오창, 오창에서 천안으로, 서울 분들은 또 어찌 갈까?
천안에서 카페 Cenacle에 들러 차 한 잔 나눈다.
2010년 12월 31일 오후 8시.
3박 4일의 이별여행이 비로소 끝났다. Gxis I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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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Gxis Ie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