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 全鳳健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시집 전봉건 시선, 1985)
전봉건(全鳳健)
1928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평양 숭인중학교 졸업
1950년 문예에 <원(願)>, <4월>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57년 김종삼,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1959년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69년 현대시학 창간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1988년 사망
시집 : 소월시화첩(素月詩畵帖)(1958),신풍토(新風土)(1959),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 춘향연가(1967), 별 하나의 영원을(1968), 속의 바다(1970), 피리(1980), 북(北)의 고향(1982), 새들에게(1983), 돌(1984), 전봉건 시선(1985), 트럼펫 천사(1986), 기다리기(1987)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실험적 기법과 참신한 심상을 중시하는 전봉건의 대표작으로 과감한 비유와 공감각적 심상을 사용하여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에 대한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사용된 심상이 강렬하면서도 돌발적이기 때문에 다소 난해한 느낌을 준다. 시인은 피아노의 생기찬 소리를 시각화하여, 마치 싱싱한 물고기가 연이어 튀는 것으로 묘사했다. 마치 강렬한 감각(빛깔)들의 조형으로 이루어진 추상화 같은 시이다.
‘신선한 물고기’는 신선한 생명력을, ‘바다’는 신선한 생명의 고향을 상징한다.
▶ 성격 : 주지적, 감각적, 상징적
▶ 심상 : 공감각적 심상
▶ 표현 : 과감한 비유
▶ 시상 전개 : 연상작용에 의한 시상 전개
▶ 구성 : ① 피아노 소리의 생동감 넘치는 심상(제1연)
② (화자의 행위로 표출된) 시적화자의 감동(제2연)
▶ 제재 : 피아노
▶ 주제 : 생기 넘치는 피아노 소리가 주는 감동
<연구 문제>
1. 이 시의 이미지 전개 과정을 연상적인 순서를 따라 한 문장으로 쓰라.
☞ 여자의 손가락에서 연상되어진 피아노의 선율(소리)이 물고기, 바다, 파도, 칼날의 순서로 전개된다.
2. 이 시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완결된 문장으로 답하라. 단, ‘이 시는~’을 주어부로 하여 구체적으로 쓰라.
☞ 이 시는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선율)가 주는 감동을 표현하고 있다.
3. ㉠, ㉡ 각각의 상징 의미를 쓰라.
☞ (1) ㉠ : 신선한 생명력
(2) ㉡ : 신선한 생명의 고향
<감상의 길잡이>(1)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시도 있지만, 오직 말의 아름다움, 말의 재미를 캐기에만 열중하는 시도 있다. 이러한 시들은 시의 내용에 치중하기를 거부하면서 말장난에 집착한다. 그리하여 지능 검사를 연상시키는 말장난, 형식미의 재간 놀음, 이미지의 공중잡이 같은 것이 현대시의 한 경향을 이루게 된다.
이 시 피아노에도 그런 경향이 짙다. 특히, 이 작품은 감각적인 시어의 구사를 통하여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다른 이미지로 비약하는 연상 작용이 돋보인다. 연상 작용이란, 원래 한 관념이 그와 관련된 다른 관념을 생각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것인데, 피아노에서는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의 비약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이미지는 ‘(피아노의) 선율→물고기→바다→파도→칼날’의 순서로 전개된다.
이 시의 연상(聯想)의 궤적(軌跡)을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제1연은 피아노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다. 건반을 두드리는 희고 긴 손가락은 마치 신선한 물고기 같다. 그 피아노의 건반에서 흘러 나오는 선율 또한 붉은 햇살에 지느러미를 빛내며 펄펄 뛰는 열 마리 스무 마리의 물고기 같다. 피아노의 선율은 청각적 이미지인 소리에서 시각적 이미지인 물고기로 전이(轉移)되어 공감각적 이미지를 빚어낸다.
제2연은 오르내리는 손가락과 건반, 그리고 선율에 의해 연상되는 물고기는 바다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시퍼렇게 파도가 일고 있다. 파도에서는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의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이 시퍼런 칼날은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적인 피아노의 선율로 이해될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2)
이 시는 초현실주의 경향의 실험적 기법과 참신한 이미지 구사를 중시한 전봉건의 대표작으로, 피아노 치는 여자와 그 소리를 듣는 화자의 모습이 독특한 이미지의 전개에 따라 구성된 작품이다. 과감한 비유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에 대한 감동을 보여 주고 있으나, 그 이미지들이 강렬하고도 돌발적으로 표현된 탓으로 다소 난해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 시는 감각적 시어를 구사하여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비약하는 연상 작용이 두드러진다. 연상 작용이란 하나의 관념에서 그와 관련된 다른 관념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이 시에서는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약을 보여 주고 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여인의 손에서 ‘신선한 물고기’를, 피아노의 선율에서 ‘튀는 빛’을 떠올린 화자의 연상이 바다로 확산되어 ‘파도의 칼날’을 발견함으로써 피아노 연주를 단순히 감상하던 입장에 있던 화자는 마침내 피아노 선율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여 준다.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피아노’ ― ‘물고기’ ― ‘바다’ ― ‘파도’로 펼쳐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창조되는 순간, 화자는 벌써 피아노와 함께 바다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가 눈부신 ‘파도의 칼날’을 꺼내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