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이것은,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큰 사랑으로 희생하실 것을 가리킨 말슴이다. 그는, 자기의 사랑이 얼마나 큰 사실을 설명하여, 윗절의 내용과 같이 신자들로 하여금 남들을 사랑하게 하려 하신다. 그리스도의 무한히 큰 사랑을 받은 우리들로서, 어찌 남들을 사랑할 마음이 없으랴?
요일 4:11 참조. 예수님게서 신자들을 "친구"라고 하신 것은, 그 앞에 죄인이요 원수 되었던 자들을 속죄의 사망으로 사랑해 주신다는 뜻이다. 롬 5:6-10 참조. 우리를 사랑하심은, 다만 우리의 보통 유익을 위한 일반적인 적선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여 죽기까지 하셨으니, 다시 사신 뒤에 우리에게 대한 그의 사랑은 또 얼마나 클 것이가? 이렇게 신자들은 예수님의 친구 되는 큰 축복을 받았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친구였다.
[욥 19:21]"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 이것은 풍자적인 언사가 아니고 겸손한 욥의 진지한 요청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에게 대하여 원망함도 아니다. 이 말은 자기의 심각한 고난에 대하여 표현한 그의 자연스러운 애가이다. 시문학이란 것은 때로는 자연 현상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것을 족하게 여긴다.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한 것은 그저 그 때 사태의 외모를 그대로 묘사한 것 뿐이다. 그 때에 욥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저런 고난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사실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슬피 호소한 것 뿐이다. 기도와 호소는 원망이 아니고 신앙이다. 여기 "핍박"이란 말이 은근히 하나님게 대한 원망을 함축하는가? 하나님께서 욥을 핍박하셨다는 말이 순조로운 말일까?
여기 "핍박"이란 말은 불의하게 압제한다는 뜻을 반드시 내포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저 괴롭게 하려고 쫓아다님을 말함이다. 욥이 이렇게 말함은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자세한 간섭을 염두에 둔 것이고 원망함은 아니다. 욥이 하나님을 거스려 원망하였다는 말은 본장에 한 마디도 없다. 욥이 여기서 표현한 것은 이렇다. 곧, 하나님은 그의 주권으로 욥을 "핍박"하실 수 있겠으나 그의 친구들은 하나님이 아니니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여기 "살을 먹는다"는 말은 아람어에 보통 나오는 표현으로서 맹수가 물듯이 사람이 남을 거짓말로 비방함을 가리킨다.
[요 15:14]"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여기 이른바 "나의 명하는대로 행함"은, 그가 그 제자들더러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을 순종함이다. 믿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랑을 받은 증표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믿는 형제를 참으로 사랑할 수 없다.이 귀절 뜻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순종하는자가 그리스도의 친구 된 자격, 곧, 그 속죄의 사랑을 받은 자격을 발휘한다는 의미이다.
[요삼 1: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요한은 본절에서 별개의 세 가지 인사로 마감한다.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축복으로 바울의 서신에서는 서두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아마도 본서의 시작 인사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는 듯하다.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 요한은 지역 교회에 속한 자신의 친구들이 가이오에게 문안 인사를 보낸다고 전한다.
이는 요한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요한의 주장이 정당하며 이로 인해 가이오의 행위가 올바름을 입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 본문의 '친구'는 가이오가 속한 교회에서 요한의 생각에 공감하고 가이오를 지원하는 회원들이다. 즉 본문은 가이오가 본서를 자신이 속한 교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돌려보기를 요한이 원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요삼 1:15]"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요한은 본절에서 별개의 세 가지 인사로 마감한다.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축복으로 바울의 서신에서는 서두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아마도 본서의 시작 인사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는 듯하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 요한은 지역 교회에 속한 자신의 친구들이 가이오에게 문안 인사를 보낸다고 전한다.
이는 요한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요한의 주장이 정당하며 이로 인해 가이오의 행위가 올바름을 입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Marshall, Smalley).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 본문의 '친구'는 가이오가 속한 교회에서 요한의 생각에 공감하고 가이오를 지원하는 회원들이다. 즉 본문은 가이오가 본서를 자신이 속한 교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돌려보기를 요한이 원하고 있음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