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야쿠시마 트래킹
동북아난대숲문화원장 황호림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오래전부터 소망하던 야쿠시마(屋久島) 트래킹의 꿈을 마침내 실현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이루게 되었으니 그만큼 기대가 컸지만, 다행히 울림도 깊었다. 365일 중 366일간 비가 온다는 야쿠시마를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22km, 11시간 트래킹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전남대학교 임학과 대학원 교수님을 비롯한 동문 선후배가 “일본 생태·치유의 숲 학술탐방단”이 되어 함께 했기에 더욱더 빛났다. 더군다나 17명의 대원이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4박 5일 일정을 무사히 마치게 되어 '추진단장' 감투를 썼던 나에게는 더 큰 보람이 되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야쿠시마 풍경
야쿠시마(屋久島)는 가고시마 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섬의 둘레는 132km이며 일본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미야 노후라 산을 비롯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 45여 개로 이루어져 바다로부터 습한 공기가 산을 타고 와 많은 비를 뿌린다. 연 강수량은 평지에서 약 4,000mm, 산지에서 약 8,000mm에 달한다. 일본에서 적설을 관측할 수 있는 최남단 지역이다. 아열대 지역에 있지만, 높이 2,000m 가까운 산들로 인해 아열대에서 아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식물군이 자라고 있다.
▲야쿠시마 임산철도
이곳은 특히 아쿠스기(ヤクスギ)라고 불리는 삼나무와 야쿠시마 고유종인 원숭이, 사슴으로 유명한 곳이다. 야쿠시마를 소개하는 영화 「시간의 숲」에 야쿠시마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 "사슴 2만, 원숭이 2만, 사람 2만"하는 가사가 있는데, 지금은 원숭이 2만 마리와 사슴 2만 마리 그리고 사람 1만 3천 3백여 명(2014년)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고 한다
▲ 야쿠시마 숲
디브이디(DVD)까지 사서 현지정보를 파악한 나에게 야쿠시마는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야쿠시마 식물상은 섬의 규모에 비교해 매우 다양하고 생태 지리학적 가치가 높은 섬이다. 산꼭대기에는 고산식물이 자라고 중턱에는 삼나무숲, 낮은 지대에는 이른바 조엽수림(照葉樹林)이라 불리는 상록수가 우거져 있다. 섬 중심부에는 일본 최남단의 고층습원인 하나 노 에고 등이 있으나 이번에는 일정상 가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나는 이번 야쿠시마와 미야자키 생태·치유의 숲 학술탐방 기간 야쿠시마의 식물상과 미야자키 조엽수림(照葉樹林)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두고 주의 깊게 관찰해보았다. 또한, 야쿠시마 트래킹 동안 이곳 등산안내인의 역할과 탐방객을 위한 편의 시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쿠시마 트레킹 개념도
야쿠시마에는 1,900개 이상의 종과 아종(亞種)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 약 5%에 해당하는 94종이 고유종으로 주로 중앙의 높은 산 속에 자생하며, 200여 종 이상은 야쿠시마가 자연적 분포범위의 남방한계선이라 한다. 식생의 독특한 특징은 착생 생물(着生生物)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가히 이끼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발 600m 부근 이상의 삼림 내에는 습도가 높아서 숲 바닥에서 나무줄기까지 이끼로 조밀하게 덮여 있다.
▲야쿠시마는 이끼 천국이다.
일반적으로 지상에 자라고 있는 식물도 나무에 착생하는 특이한 현상도 볼 수 있었다. 삼나무 고목 위에 자라는 마가목과 삼나무, 노각나무 고목 위에 뿌리를 내린 삼나무, 삼나무 고목 위에 터을 잡은 노각나무가 그런 것이다, 기게스기의 경우 25종 이상의 식물이 기생하고 있다고 하니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착생난초가 많을 것으로 큰 기대를 하였으나 차걸이란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거대한 삼나무들이 햇볕을 차단하고 바위와 수목 하단부까지 융단처럼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이끼들 틈에서 난초가 생육하기에는 악조건으로 판단되었다.
▲ 삼나무 고목위에서 자라는 마가목
삼나무숲을 걸으며 만나는 장대한 거목은 모진 풍파 속에서도 수천 년을 견디어낸 위엄이 드러나고 압도하는 풍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경외심이 일어나도록 했다. 야쿠시마에서는 적어도 1000년 이상을 살아온 삼나무를 아쿠스기(屋久杉)라고 부르며 신목(神木)으로서 경배의 대상으로 여기며 신성시한다. 1000년 미만의 삼나무는 고스기(小杉)라 부른다.
대표적인 야쿠스기는 조몬스기(縄文杉), 대왕스기(大王杉), 기원스기(紀元杉) 등이다. 일반적인 삼나무의 수명은 약 500년 남짓한데 영양분이 부족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야쿠시마의 수목 생장 환경에서는 나무가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히려 장수의 비결이라고 한다. 느린 성장은 재질을 치밀하게 하고 수지의 성분이 많아서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느림의 미학인 셈이다.
야쿠시마 트래킹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조몬스기(繩文衫)는 수령이 최대 7200년으로 추정되는 야쿠시마 대표 삼나무이다, 야쿠시마에서는 “조몬스기를 보지 않고서는 야쿠시마를 다녀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절대적 가치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의 과학적 계측으로는 2170년 정도라고 하지만 둘레 16.4m, 높이 25m의 거대한 조몬스기 앞에서 서서 느끼는 전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야쿠시마의 상징 조몬스기(繩文衫, 왼쪽)와 대표적인 야쿠스기 대왕스기(大王杉, 오른쪽)
하늘을 찌를 듯이 장엄한 모습으로 인간 앞에 서 있는 거목은 커봐야 200cm, 길어봐야 100년 세월도 장담할 수 없는 인간이 얼마나 초라하고 덧없는 존재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에도시대의 대규모 벌채에도 조몬스기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나무가 울퉁불퉁 휘어져 목재로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우리네 속담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여럿이 걸으면서 식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트레킹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는 죽절초와 매화오리나무를 야쿠시마에서, 개가시나무를 미야자키 아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야쿠시마 고유종인 야쿠시마동백(Camellia japonica var. macrocarpa), 야쿠타네고요우(Pinus amamiana), 야쿠시마백일홍(Lagerstroemia subcostata var. fauriei (Koehne) Hatus. ex Yahara), 야쿠시마장미딸기(Rubus illecebrosus var. yakushimensis HATUSIMA), 야쿠시마오나단풍(Acer capillipes var. morifolium) 야쿠시마산철쭉(Rhododendron yakuinsulare Masamune), 야쿠시마수국 (Hydrangea grosseserrata)등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소귀나무가 많이 보였는데 소귀나무 열매는 야쿠시마 원숭이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도 산행 중 바닥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소귀나무 열매를 주어서 입맛을 다셨다.
▲ 야쿠시마산철쭉(왼쪽)과 야쿠시마동백(오른쪽)
야쿠시마 트래킹 중 삼나무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노각나무를 비롯한 차나무과 식물들이었다. 이들은 대표적인 조엽수림(照葉樹林)에 속한다. 조엽수림이란 표피(表皮)에 큐티클층이 발달하여 광택이 강한 심록색(深綠色)의 잎이 있으며 추위와 건조에 견딜 수 있는 겨울눈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야쿠시마에 분포하는 한국 멸종위기종(2급) 개가시나무(왼쪽)와 매화오리나무(오른쪽)
야쿠시마와 미야자키 아야정이 일본의 대표적인 조엽수림이다. 야쿠시마 하단부에는 사스레피나무, 비쭈기나무가 널리 분포하고 있었다. 특히 비쭈기나무는 숲길 주변에 넓게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야쿠시마에 흔한 노각나무 거목(왼쪽)과 아야정에서 본 거대한 육박나무(오른쪽)
트래킹 중 야쿠스기와 경쟁을 하듯 쭉쭉 뻗은 차나무과 낙엽활엽교목인 노각나무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크기는 예전에 보지 못한 규모였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노각나무를 고유종으로 알다가 2012년도 일본 등지에 분포하는 노각나무와 도일종으로 보고 한국특산종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지만 현재는 다시 한국 특산종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조몬스기를 보는 것이 목적인 야쿠시마 트래킹은 왕복 22km에 달하는 긴 거리지만 편도 약 7.8㎞는 과거에 삼나무 목재를 운반하던 협궤를 이용하기 때문에 대체로 쉬운 길이다. 본격적인 산행은 오오카부보도(大株歩道入口)에서 시작되는데 절대 과하지 않지만 걷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잘 닦여져 있었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내딛는 보폭과 각도에 맞춰 두꺼운 천연목을 사용했다. 이용하되 자연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주의를 기울인 관계자들의 정성이 느껴졌다. 탐방객의 편의를 위해서 설치한 우리네 국립공원 숲길의 경사로나 데크는 오히려 사람들이 피해 다닌다. 사용하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숲길조성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탐방객의 무의식적인 보폭과 편안한 등반 각도로 설치된 숲길 계단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야쿠시마 등산 가이드 제도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등산안내인이란 제도가 없지는 않다, 외지인이 야쿠시마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행의 숫자와 관계없이 반드시 등산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2∼3명 가족 단위가 되었든 단체가 되었든 모든 사람이 등산 가이드의 인솔을 따르고 있었다. 17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도 2명의 현지 등산 가이드를 고용했다. 야쿠시마에는 야쿠시마 관광 가이드 160여 명과 야쿠시마지구 에코투어리즘 추진협의회 80여 명 등 240여명이 등산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스스로 정한 가이드 등록 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윌슨그루터기
내가 보기에 등산 가이드는 1석 3조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탐방객이 효율적이고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서 만족도를 높이는 것, 준 산림경찰로서 숲길 확산방지와 산림생태환경 훼손을 방지하는 것과 일자리 창출이 그것이다. 등산 가이드 일당이 조몬스기 40,000엔(약 40만 원), 시라타니운수이교는 35,00엔(약 35만 원)이라고 한다. 이와 별도로 입산비용 즉 환경 부담금을 1인당 1,000엔(약 1만 원)씩 받는다. 우리가 야쿠시마에 오르던 날 적어도 50팀의 탐방객을 만났으니까 그 경제 효과는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년에 야쿠시마를 찾는 사람이 30만 명에 이르고 조몬스기에 오르는 사람이 1만 명이 넘지만, 이 정도의 생태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등산 가이드의 역할이 매우 큰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제주도와 국립공원만이라도 이와 같은 제도를 연구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제도의 도입에 관한 국민적 합의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야쿠시마 숲
야쿠시마 숲과 미야자키 치유의 숲을 둘러본 4박 5일간의 ‘일본 생태 · 치유의 숲 학술탐방’은 천우신조로 화창한 날씨 속에 모든 단원이 별고 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마쳤다. 이끌어 주신 안기완 교수님과 이계한 교수님, 그리고 부족한 추진단장을 아낌없이 도와준 대학원 동문 선후배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꿈에 그리던 야쿠시마 트래킹,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12시간 동안 야쿠시마 숲길을 걸으며 세상의 모든 존재에 감사하였던 그 마음 변치 않고 싶다.
<참고자료>
- 황달기. (2015). 일본 야쿠시마 생태관광의 현황과 과제. 일본문화연구, 54, 331-352.
- 박연재. (2002). 해외보고 1-보전과 개발을 하나로! - 환경부 공무원의 일 본 생태 관광 선진 지역 탐방기. 환경과생명, 206-216.
- 舘脇操. (1957). 屋久島の森林植生: 舘脇操編著: 日本森林植生図譜 (Ⅱ). 北 海道大學農學部演習林研究報告=RESEARCH BULLETINS OF THE COLLEGE EXPERIMENT FORESTS HOKKAIDO UNIVERSITY, 18(2), 53-148.
- 屋久杉自然館 홈페이지 http://www.yakusugi-museum.com
- 九州森林管理局 홈페이지 http://www.rinya.maff.go.jp/kyusyu/index.html
- YNAC(屋久島自然情報) 홈페이지 http://www.yna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