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상반기호(제37호) {부산시조- 아름다운 우리시조}
서운암/ 성파
서운암 햇살 퍼져 오색구름 영롱한데
들꽃 사람꽃 떨기떨기 주저앉아
무우과(無憂果) 나누어 먹고 히히 호호, 호호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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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기와/ 서관호
담벼락에 그려놓은
이지러진 얼굴 하나
옛 도읍 찾는 손님
반겨주며 웃습니다
신라의 아주머니가
여태까지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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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새순/ 권상원
땅 쪽의 가지들은 눈치보고 있는데
하늘로 솟은 가지 은근슬쩍 싹 틔운다
새순은 싱숭생숭하고 봄바람은 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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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저울/ 박권숙
꽃씨 다 날려 보낸
빈 주머니 말아 쥐고
들꽃은 바람무게를
바람은 들꽃무게를
지그시
견디고 있는
목숨값 얹힌 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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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그리고 주상절리/ 박노기
새소리 커져가는 산복도로 올라가면
한 세상 말도 없이 굽이치는 길이 있다
이 골목 이고 선 마루 닻별* 아래 포롱댄다
밥 짓던 연기들이 눈처럼 내리는 밤
손수레 굽은 바퀴 폐지 실어 끄는 노파
허기진 공기 속에다 굵은 차오른 숨 토한다
도시의 발아래로 별 그림자 스멀대도
달동네 어귀에선 새 풀들이 돋아나고
잠을 깬 봄 햇살 위로 사람 소리 쏟아진다
*닻별: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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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 박옥위
꽃 피어 흐드러지고 새 울어 자지러지고
글 한 줄 쓰렸더니 꽃 유혹에 잡힌 발목
꽃 아래 시 쓰지 말라, 온 천지가 시 밭이다
겨우내 지친 설움 뼈마디가 저리도록
견뎌온 날숨까지 터뜨리는 봄이라고
새봄을 시제로 잡아 목석까지 시를 쓴다
풀꽃도 꽃나무도 땅도 하늘도 시 밭이네
간절하면 쓰리라 가슴으로 읽히는 시
시낭송 퍼포먼스까지 통점들이 확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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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심성보
좀 더 독해지라고
옷을 벗기는 삭풍
결코 독해지지 않는
천성이 순한 나무
동토의 얼음을 녹여
춘산에다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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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저편/ 윤원영
어떤 나무들은 상처를 위해 태어난다
고통이 예물이 되는 눈물의 이 단단함
맨발의 어린 가장들
뒤꿈치의 피같은
거룩함에 올려지는 눈의 향기처럼
지상의 가장 낮은 곳 그들의 간절한 꿈
눈빛들 너무 맑아서
천국 문이 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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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봄날은 간다/ 이옥진
침몰된 진실은 여전히 뻘속에 있고
금품수수 미세먼지 나라를 뒤덮었다
산 아래 오동나무는 보라꽃등 켜는데
아프리카 난민들은 지중해가 무덤이 되고
네팔은 요동쳐서 산과 골이 아비규환
씀바귀 노란 얼굴은 봄볕 아래 해맑은데
북녘은 장난처럼 미사일을 쏘고 있고
위안부 시린 역사는 아직 비를 맞고 있다
푸르른 오월 하늘에 이팝꽃은 누부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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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 장정애
아프지 않다시는
어머니 거짓말을
알고도 속아 넘고
할 바 몰라 건성 듣고
새벽녘, 핼쑥해진 달만
글썽이며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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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뗏사공/ 정종수
바지 저고리에 질끈 맨 수건
아우라지 뗏사공들
여울여울 여울목을
내리닫고 굽이 돌아
한보름
밤낮 흘러야 마포나루 갔다네!
뗏목 팔아 받은 그 돈
탐욕(貪慾)으로 다 날리고,
돌아오지 못할 낭군
기다리다 지친 아낙
그 가슴
아리랑되어 흘러흘러 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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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안개/ 정해원
서천의 붉은 노을 강물에 잠길 쯤에
강심을 응시하며 강에서 배우는데
아픔을 붉게 풀어내는 저녁 강은 슬프다.
어둠이 바람결에 날아와서 앉는 강섶
초승달과 별빛들이 미루나무에 돋아나고
뜸부기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가른다.
별똥별 떨어지면 내 안의 그리움은
물 분자로 분해되어 승천을 하고 있고
내 영혼 부서진 입자(粒子) 육신을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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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시세/ 최연무
딸 둘이면
부엌에서
아들이면 길거리서
산다든가
하필이면
그리 산다 죽도록
하르르
에멜무지로 말고
가스처럼
연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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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전국시조백일장 고등부 장원>
의자/ 서준호(부산 금성고 3학년)
한 편의 시를 쓰네 대공원 넓은 광장
누우런 노약자석 앉아서 편히 갈 적
의자 옆 홀로 서있는 할아버지 보았네
새하얀 마음 안에 왠지 모를 이기심이
하나 툭 튀어나와 가지 말라 속삭이고
새까만 밤하늘처럼 가라앉은 속마음
그 마음 창피하여 고개 숙인 그 한순간
떠올려 쉽게 쓰인 시 한편 생각하니
가슴이 부끄러워져 또 한편의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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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전국시조백일장 고등부 장원>
가족/ 유소정(부산 금강초등 4학년)
어머니 손등에는
주름이 출렁출렁
아버지 발등에서
갈매기 날아가네
엄마랑 아빠에게는
푸른 바다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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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하반기호(제38호) {부산시조- 아름다운 우리시조}
시작(詩作)/ 박옥위
나 가끔 오밤중
그믐달 아래 홀로 앉아
오려내고픈 내 아픔
만장을 펼쳐놓고
젤 아픈
갈피를 들춰내
꽃 댕기를
물린다
*옮기면서: 원문은 ‘그믐달아래’ ‘홀로앉아’인데 옮기면서 띄어쓰기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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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 김영
길목에서 마주친 검은 털 들고양이
금방에 다가올 듯 목울대 가르릉대며
낯선 손 기웃거리다 소스라쳐 숨는다
바람지붕 햇살 뒤엔 오슬한 그늘이 있어
제 이야기 품어줄 따뜻한 귀 아쉬울 땐
나뭇잎 부스럭거려도 달려가서 울고 싶은
자유란 그 무거움 버거울 때 많아도
제 몫의 외로운 짐 소리없이 지는 것
가끔씩 발이 저려도 제 향기로 걸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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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와 날개/ 김덕남
결 따라 삭지 못해 돌아앉아 우는구나
곡절을 숨기려다 저토록 불거졌네
뒤틀린 몸속의 길을 나이테가 보듬는다
톱날의 이쪽저쪽 장인의 손끝에서
사포질로 닦은 길이 물결치듯 일어선다
확 펼친 날갯자락이 한 생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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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 마을/ 김소해
다랭이 비탈언덕 삿갓배미 그곳까지
경운기는 못 올라가도 지게는 올라간다
아무나 부를 수 없는 노래도 따라간다
지게길 자갈길을 가뿐하게 걷는 발
세상길 사람살이가 저리 가뿐 하나보다
알맞은 제 밥그릇만 들고 오라 하는 섬
귀향은 알고 보면 사랑에 닿는 마음
꽃내 마을 화전이란 하늘 뜻을 알겠다
가파른 길 없는 길도 함께 걸어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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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타기/ 김용태
아래 쪽서 번진 불은 솔숲에 와 멈칫 한다
한 번도 제 몸빛을 갈아입어 본 적 없는
외고집 소나무 사이로 억새꽃, 흐드러졌다.
바람 무척 쌀쌀한데 불은 번져 산을 넘는다
색소를 풀다 말고 넋을 잃고 바라보던
태양도 죽을 맛이다, 저 불은 누가 끌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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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김호길
부질없다 부질없다 모두 다 부질없다
날 잡아 보아라 잡아 보아 부질없다
뜬구름 스르르 몸 풀어 허공중에 흩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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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일/ 나동광
이 땅에 귀한 꽃은
어디에 있는 걸까
직접 심고 물을 주어
키워야 알 수 있다
오늘도
씨앗 한 톨을
품에 넣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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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삽화- 문풍지/ 박권숙
그리움의 틈새에
귀 하나 묻어놓고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저 혼자 울다 문득,
겨울의
한가운데에
꽂힌 바람 한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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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古木)- 낙동강 476/ 서태수
상처도 곱게 아물면 예술이 되는구나
바람물결 일렁이는 당산목 거친 몸피
겹겹이 제 살을 저며 추상화 한 점 새겼다
여울목 마디마다 세월의 옹이가 맺혀
살점이 패인 둠벙, 혹으로 솟은 둔덕
굽은 등 처진 어깨에 뭉개진 손등 발등
잎잎이 뒤척이며 속울음 삼킨 밤을
푸른 피 버물려서 목각으로 굳은 상징(象徵)
굵다란 속가지들은 휜 등골 뜻을 알까
저 흉터 뒤집어보면 속살은 또 성할까
오래 살다보니 나무도 강을 닮는지
파도를 칭칭 휘감아 허연 물길로 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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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을 따는 여인/ 윤한익
찻잎을 따다 말고
옷섶에 수를 놓아
하늘빛 물빛 닮은
세상을 안으면서
차 한 잔 마실 욕심도
무거운 듯 내려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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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에게/ 장정애
시인이 그리워한
호수 혹은 평화 같은
고향이며 독립이고
축복이며 어머니인
그대의 이니스프리는
동포의 섬이 되고.
가질 수 없을수록
더 빛나는 보석처럼
돌아갈 수 없었기에
시로 다시 태어난 섬
그대의 이니스프리는
사람들의 꿈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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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쓰기/ 전용신
보기에도 지친 시 날마다 쓰노라면
좋은 말 찾으려고 산 숲 바다 헤매었지
언제나 마음속 시는 숨어있길 좋아하니
밖으로 못 나오고 세상을 뜬다 해도
고맙다 행복하다 연습 삼아 말 하는데
어쩐지 눈물이 나네 속 시원히 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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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조} 신인상 당선자
경주 엔젤리너스 커피점/ 공란영
대릉원 도로변에
낯선 느낌 커피점
토함산 오솔길은
소식조차 까마득한데
지켜온
얼 이으려고
기와 이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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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과수원>
거북이/ 이연호(부산 연지초등 3학년)
거북이 느릿느릿 천천히 걸어가네
바쁜 일 없나보네 아니면 느린 건가?
등껍질 벗어던지면 엄청나게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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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과수원>
시인/ 정수안(부산 연지초등 3학년)
시인은 아름답고 멋진 시를 쓰는 사람
시인은 생각하고 고치며 시를 쓰네
시인은 좋은 시 쓰려고 고치고 또 고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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