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두 번째 책모임은, 애호박 님이 일하시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사무실에서 했어요. 정확하게는,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구석방에서요. 저는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몸이 좀 힘든 날이어서 바닥이 따뜻하게 데워진 그 구석방이 참 좋았어요.
양근, 애호박, 영숙, 나무 님이 먼저 와서 땅콩 나눠 먹으며 이야기 나누고 있었어요.(벌써 내일이 대보름이네요!) 조금 뒤에 충현 님도 왔고요. 꽤 여러 달 책모임에서 만나온 얼굴들이라, 이제는 책 읽는 것 말고 다른 일들도 함께 해 보고 싶은 정겨운 사람들이 되었지요.
먼저, 그날 오지 못하신 분들 소식을 나누며 잠시 그리워했어요. 또 자신에게는 소용 없어진 물건들을 가져와 나누었고요, 못 만난 동안 각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 나누었어요. 책 이야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게 각자 어떤 일상을 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나는 평화를 희망한다>였어요. 독일 녹색당의 시작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여성운동가 페트라 켈리의 삶 이야기였지요.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그걸 잘 정리해 글로 옮길 재주는 없네요. 마음에 남은 얘기들만 적어 본다면...
페트라 켈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공부나 일에도 열심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열정적인 사랑을 했던 그녀의 모습에 모두들 화들짝 놀란 것 같았어요. 저는 그가 스물다섯 나이에 예순넷의 만스홀트와 만나, 그와의 관계가 깊어짐을 느끼고 기록했다는,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애틋한 관계를 맺고... 정말, 내 생애에 이런 식의 교류가 가능할 줄은 꿈도 꾸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였고, 내가 여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쓴 대목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런데 그의 사랑은, 모트 박사에게 써 보냈다는, "세상에는 유일한 사랑이 아니라 삶은 참으로 살 만하고 사랑할 만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유일한 순간들이 있을 뿐임을 알게 되었다."는 글과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트라가 사랑을(그리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남자를) 자신의 성공의 발판으로 이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녀가 페미니스트인가 하는 의구심을 비친 분도 있었어요.
갖은 찬사와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그의 삶은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는데요, 그 삶과 죽음에 연민이 느껴진다는 분도 있었죠.
독일녹색당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그러나 이 책은 개인의 전기라 독일녹색당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다른 책을 봐야겠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책에는 독일녹색당에 대한 비난도 은근히 많았죠. 독일에 녹색당이 생기기 전에 이미 유럽의회가 존재했고, 페트라가 거기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국제적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죠. 그리고 유럽에서는 각 나라의 녹색당이 힘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데 우리 동북아 녹색당들은 유럽 녹색당들처럼 연합하기는 힘들 거란 얘기도 나왔어요. 페트라가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 된 뒤, 2년 뒤 다른 의원으로 교체하자 했던 애초의 약속을 어기고 4년 임기를 혼자 채우려 했던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어요. 그가 추구했던 이상은, 현실정치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다 했고요.
페트라와 우리나라 여성정치인을 견주어 보기도 하고, 그 미모와 재능과 성실함은 거의 신적이라는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저는, 페트라는 녹색당 틀 안에 가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티벳이나 아일랜드, 아메리카 원주민 등 '쓰러진 나무'의 말을 듣고 또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라코타 족 사람들은 그를 샨테 와시데(착한 마음의 여자)라고 불렀다 하니까요.
아,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한 구절을 꼽자면,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녹색입니다."
책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는 다음 읽을 책을 정하고, 다음 모일 장소를 확인한 뒤 뒤풀이 장소로 갔지요. 불소화 포럼에 참석하고 달려오신 달래 님도 함께요. 평소보다 짧은 듯 여겨졌던 뒤풀이에선 막걸리 잔 부딪치며 못 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전철 팀/ 버스 팀/ 자전거 족 나누어 헤어졌어요. 저는 버스 팀이었는데, 버스 팀은 퓨전주점에서 한 잔 더 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우쿨렐레 반주에 맞춰 노래도 불렀답니다. 그 주점에서 도장 열 번 찍으면 맛있는 거 준다는 도장판을 받아 왔어요. 조만간 그 주점엘 또 가야하나, 애호박 님께 도장판을 넘겨드려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집에 와서는 이 노래를 찾아 들었어요. 우리 읽은 책 31쪽에, 페트라의 장례식 장면에 이 노래 가사와 관련 있는 영시가 세 줄 나와요.
내 영혼 바람되어 / A Thousand Winds - 양준모 김효근
그 곳에서 울지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 곳에서 슬퍼마오
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 게 아니라오.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찬란히 빛나는 눈빛 되어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하늘한 가을비 되어
그대 아침 고요히 깨나면
새가 되어 날아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부드럽게 빛난다오
그곳에서 울지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곳에서 슬퍼마오
나 거기 없소,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오.
A Thousand Winds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s rain.
When you awake in the morning's h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가사 출처 : Daum뮤직
첫댓글 다음 모일 곳은 '사진공간 배다리'에요, 다들 아시죠?^^
(내 머릿속에서 손가락은 마우스 휠을 긁어내리며) 배경음악까지 다 넣다니! 훌륭한 걸 > 잉? 노랫말이 왜 이래? 남겨진 사랑에 대한 영혼의 독백인거야? > 그러고보니 페트라켈리의 추모곡같은 느낌도 드네 > 31쪽에 영시, 오호~ 그나저나 이런 걸 어떻게 찾아낸거지?! > 너무해 늘같은. 이렇게 잘 정리해놓으면 다음번 후기작성할 사람은 진땀깨나 흘리겠네!
형식 없이 마음대로 써도 된다 해서 그렇게 했지! 다음 후기 쓸 사람으로 누굴 찍을지 벌써 정해 뒀어~ㅎㅎ
시의 한 구절이었군요...! :-) 정원님 글을 일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_<
흑! 달래 님 덧글을 보니 제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버스팀의 뒷풀이 재미있었겠다~ 퓨전주점 도장판 9개찍으면 저 주세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