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 이색의 여강 사랑은 남 달랐다. 멀리 태백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여주에 이르러 여강이 된다
목은 이색은 생전에 여강을 무척이나 사랑하였으며 그런 인연인지 죽을 때도 여강에서 죽었다.
여주 신륵사에는 그의 고향 경북 영양에서 어릴 때 같이 자란 나옹선사가 있었기에 자주 들렀다.
나옹은 무학 대사의 스승으로 고려 말 지공,무학대사와 함께 3대 선사로 불리는 큰 승려였다.
그도 이 신륵사에서 입적하였고 목은 이색은 글을 지어 비문을 세웠다.나옹선사의 비문과 부도는 지금 회암사에 남아 있다.
목은 이색은 여강을 기리는 시를 이렇게 남겼다.
天地無涯生有涯 천지는 끝이 없고 인생은 유한한데,
浩然歸志欲何之 호연히 돌아갈 마음 어디로 갈 것인가?
驪江一曲山如畵 여강 굽이굽이 산은 그림처럼 아름다워,
半以丹靑半以詩 절반은 단청이고 절반은 시와 같구나.
또한 여강을 술회하기를
천지는 가이없고 인생은 덧 없거늘, 홀연히 돌아갈 뜻 어디로 가야하나.
여강 한 구비 산은 한폭의 그림 같아, 반쯤은 그림인듯 반쯤은 시인인듯,
이 세상 살아 가는 것이, 결국은 떠돌이 삶일진데,
고향 따지고 인연 물을것 없다, 세월은 백대를 지나가는 과객이요,
천지는 만물을 쉬어 가는 여관이다, 내 여기 잠시 쉬었다 가럿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1328년 고려 충숙왕 15년에 태어나서 1396년 조선 태조 5년 까지 생존 하였던 성리학자로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고려 말에 학문과 정치에 거족을 남긴 인물이다. 본관은 한산 이씨로 찬성사(贊成事) 이곡(李穀)의 아들로 총명하여 14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아버지를 따라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에서 3년간 유학을 하였다. 그 후 부친의 喪을 당하여 귀국 공민왕때 향시에 장원으로 다시 합격하여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원나라에 들어가 다시 문과에 급제한 인물이다.
고려말 鄭夢周, 金九容 등과 함께 명륜당에서 학문을 강론하니 처음으로 성리학이 일어났다.
1377년에는 우왕의 師傅가 되고 1392년 정몽주가 피살되자 유배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이성계는 그를 아끼어 1395년 韓山伯으로 봉하고 예를 다하여 출사하기를 바랐으나 끝내 고사하고 망국의 사대부는 오로지 해골을 故山에 파묻을 뿐이라고 하였다. 1396년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여강(驪江)으로 피서를 가던 도중 갑자기 죽어 그 死因에 대해서는 후세에 의혹을 남기고 있다.
목은 이색의 스승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으로 경주 이씨다. 고려 말 원나라의 속국으로 왕이 원나라에서 지낼때 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학문을 한 인물이다.
목은 이색의 제자로는 권근, 변계량, 정도전, 이존오,길재 등 고려 말 조선초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이색이 가르친 그의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먼저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조선 개국 초에 정도전이 조선 개국에 대한 찬표(撰表)를 잘못써 말썽이 일어나자 이 때 명나라에 건너가 이를 잘 해명하여 명황제로 부터 극진한 칭찬을 받고 돌아와 좌명공신의 호를 받고 후일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하였다.
변계량(卞季良)(1369-1430)은 본관은 밀양으로 17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조에 대제학을 역임하였고 1415년 큰 가믐이 들자 축문을 지어 하늘에 고사를 지내고 큰 비가 내리게 하자 태종이 말(馬)을 하사하였다고 전하며 시문에 아주 뛰어 났다.
정도전(鄭道傳)은 고려 말 반원파로 이인임 일파에게 미움을 받아 귀양을 갔으며 위화도 회군 이후 조선의 개국을 주도한 인물이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왕위 계승권을 둘러 싼 싸움에서 방원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나 조선 개국의 공이야 말로 그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존오(李存吾) (1341-1371) 고려 말 계혁을 맡은 승려 신돈의 횡포에 맞서 이를 탄핵하다가 도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 극형을 받을 뻔 하였으나 스승 이색의 도움으로 화를 면하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울화병으로 일찍 죽은 인물이다.
길재(吉再)는 1353에 태어나 1419년 까지 살았던 사람으로 타락한 불교와 巫家에 의해 고려사회가 멸망하였다고 판단하고 성라학에서 새로운 사회질서를 찾았다. 영남학맥의 종장으로 그의 문하에서 김종직 등 동방 5현이 탄생하였으며 구미 금오산에서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인물이다.
신륵사는 나옹선사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그의 법문의 일부이다.
참선하여 해탈함이 대단한 것 아니니,
즉시 한 생각을 돌이킴에 있다.
물 다하고 산 또한 끝난 곳에
물도 없고 산도 없는
산은 산, 물은 물이 로다.
(여강의 저녁 노을)
(나옹선사 비)
첫댓글 목은 이 색은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만사에 달관한 인물인듯 태조 이성계도 태종 이방원도 목은을 끝내 굽히지 않는 모습을 천명으로 보호한 것을 볼 수 있으니까 말릴세. 이곡,이색 부자가 儒,佛,道敎에 심취하여 둥글둥글 살다 가신 대 선각자라고나 할까,야천은 우리 친구들을 유불도로 이끌어 주려나 봐.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