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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여행 (37) 분수경제의 현장, 강동구 암사동 종합시장
한강 남단 자전거도로를 따라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 공원과 카페 촌까지 자전거 여행하고서 돌아올 땐 한강변에서 가까운 전철 8호선 암사역으로 가곤 한다. 암사역(1번 출구 방면)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암사종합시장이 있어서다. 사람구경, 시장 통 구경을 하며 주전부리를 하고 저녁밥을 먹으며 자전거 여행을 배부르게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 두부를 직접 만드는 두부가게에서 파는 고소하고 진한 ‘콩국물’은 몇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달려온 자전거족에게 이 시장에 꼭 들려야 하는 이유가 된다.
서울에선 보기 드문 암사동 선사시대 유적지가 가까이에 있어선지 시장 통 입구 간판에 선사시대 복장을 한 꼬마들 마스코트가 재미있다.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쇼핑을 해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널찍한 시장 통에 들어섰다. 암사시장은 시끌시끌하고 젊은 활기가 느껴지는 시장이다. 몇 걸음 옮기자마자 해산물 가게와 어묵 가게에서 일하는 이십대로 보이는 청년들이 알이 밴 통통한 주꾸미와, 주꾸미 못지않게 통통한 어묵을 시식하고 가라며 소리 높이 외치고 있었다.
보통 ‘호객행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암사종합시장의 호객행위는 청년들의 응원가 같아 듣기 좋고, 들녘의 농부들이 부르는 노동요처럼 애틋하고 흥겹게 들려온다. 바나나 반 송이에 2천원, 딸기 한 꾸러미에 2500원에 판다는 과일 가게 아저씨의 노련한 목청도 만만치 않다. 주전부리와 밥만 먹고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시장이다. 가게마다 땅바닥에 그려있는 그림들도 재미있다. 정육점 앞엔 소·돼지 그림이, 채소가게 앞엔 과일과 야채그림이 풍성하다.
시장 안에 있는 추억 돋는 이름의 ‘럭키 슈퍼’도 손님들로 북적이는 인기 있는 마트다. 전에 우연히 마주친 슈퍼 사장님에게 시장 안에 마트가 있으면 상인들이 싫어하진 않는지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다행히 미소 띤 얼굴로 시장에서 파는 물품들과 겹치지 않게 최대한 노력을 한단다. 마트 안에도 정육코너가 있는데 시장에서 파는 고기와 가격대가 다른 고기를 취급한다고. 몇 십년간 암사동 종합시장에서 자리하고 있는 토박이가 될 만 했다.
암사종합시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주거지역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형적인 재래시장으로 건물 26개동에 120개의 점포와 250여 명의 상인들이 일하고 있다. 종합시장이라는 이름답게 채소 및 식자재, 과일, 의류, 생활용품 등을 취급해 암사·천호동 일대 서민들의 알뜰장터로 사랑을 받아왔다. 20대 젊은 층에서부터 30~40대 가정주부, 50대 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주민들로 북적이는 게 참 보기 좋다 했더니, 공공기관과 상인연합회의 많은 노력이 숨어 있음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시장 안에 있는 상인회 사무실 겸 고객지원센터 사무실에 가면 ‘시장 매니저’라 불리는 직원이 상근하면서 손님의 민원을 상담하거나, 상인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암사종합시장은 지난 2009년 강동구 내 총 7개의 전통시장 중에서 처음으로 전통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이 완공된 시장이라고 한다. 덕분에 눈이나 비가 내려도 안전하고 깨끗하게 쇼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을 했다. 깔깔한 아스팔트에서 화강석으로 시공해 쾌적한 분위기를 내는 바닥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서울시와 중소기업청의 많은 예산(30억 원)을 들여 이렇게 대대적인 변신을 한 이유는 1990년대 지하철 5·8호선이 개통된 이후 역세권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인근에 백화점, 대형마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암사종합시장의 상권이 하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암사시장 현대화 사업 가운데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마실’이라 이름 지은 시장 내 쉼터였다. 이름대로 시장에 온 손님이나 상인들이 편안히 쉬어가라고 만든 카페형 휴게실이다. 이곳에도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깨끗한 화장실, 아이들 보호시설의 기능 외에 서고에 책들이 가득한 작은 도서관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날도 만화책에 푹 빠진 개구쟁이 아이들이 있어 함께 책을 읽게 되었다. 저렴한 가격에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시장 상인들에게 도서 대여도 한다. 만화책 외에 소설, 에세이 등 볼만한 신간 책들도 많았다. 아이들과 장보러 시장에 왔다가 들리기 좋겠다.
전통재래시장에서 식료품 몇 가지만 사면 양손이 금세 무거워져서 더 돌아다니기 힘들다. 감자나 바나나 한 꾸러미만 사도 돌덩이 무게로 팔 길이를 늘인다. 이럴 때 유용한 곳이 시장 통 중간쯤에 있는 배송센터다. 시장에서 구입한 식료품이나 물건들을 강동구에 한해 집까지 무료로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하는 곳인데, 구입한 물품을 잠시 보관 할 수도 있다. 이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또한, 도시 전통재래시장의 가장 큰 숙원이자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주차장 문제는 주변 도로를 이용한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운영구간은 암사역 1번 출구 수협에서 신협까지의 거리를 잇는 20m의 1차선 구간이며, 2시부터 7시까지 운영하고 2시간은 무료다. 강동구청에서는 공공근로 1명을 파견하여 주차관리를 하고 있다. 고객센터, 쉼터, 도서관, 배송센터 등 시장 내에 자리한 유용한 시설들의 위치는 상인들에게 물어보면 잘 알려준다.
고객센터 직원에게서 흥미로운 얘기도 들었다. 얼마 전 암사종합시장 상인들과 장 보러 나온 주민들이 직접 배우가 돼 전통시장 애환을 담은 장편영화 ‘노래하는 시장’을 제작했단다. 상인들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건 최근 암사종합시장이 ‘문화관광형 육성시장’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이름의 전통시장 살리기 사업 대상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시장진흥공단, 중소기업청, 서울시, 강동구 등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란다. 영화 상영을 하게 되면 시장상인과 시장을 찾는 주민들에게 즐거운 관람과 추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서울시와 강동구청, 중소기업청 등의 공공기관이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이며 발 벗고 전통재래시장을 지원하며 살리려 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았다. 도시의 다양성 추구와 재생, 단체장의 치적 쌓기를 넘어서는 이유와 가치가 있지 않나 싶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학파에서 비롯된 낙수효과(落水效果)이론은 지난 10여 년 간 우리나라 경제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낙수효과란 대기업, 재벌, 고소득층 등이 먼저 성과를 올리고 성장을 하면, 연관 산업을 통해 후발 또는 낙후부문에 유입되는 효과를 의미한다. 2000년대부터 대도시는 물론 소도시의 주거지역에도 대형할인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편의점 등이 무차별 들어서고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미미했고, 많은 상점들과 도시 서민들을 품고 있었던 동네시장들만 사라져갔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사회문제들이 뉴스를 통해 속속 터져 나왔다. 분배보다는 성장을,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정책의 결과로 어쩌면 당연하지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래 대안으로 나온 것이 분수효과’(噴水效果) 경제정책이다. 정부가 국내경제의 모세혈관이라 할 도시 서민들을 직접 지원해 소득과 소비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분수효과 경제정책의 실천을 꾸준히 견지했으면 좋겠다.
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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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세히도 알려 주셨네요.
암사시장을 저절로 찾게 해 줄 것같아요
멀어서 못가요~~
짧은 시간이라도 볼수 있어서 좋아요
눈요기도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