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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신'을 하나님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들만의 신인줄 알면 큰 코 다친다.
기독교가 창조주신에게 하나님아버지나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라고 이름을 부여해주고 자기종교만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 이름의 신이 성경에 나오는 하늘의 신(창조주신)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하려면 창세기부터 시작된 온갖
부족 신들의 이름도 같은 분이라고 주장해줘야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각 부족들의 신들의 이름=그들의 창조주신의 이름
*여호와= 유대인이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나님=기독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느님=천주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알라=이스람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늘의신=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라, 예레미야
등의 인물이 기도드렸던 대상
옛날에는 '유대인'만 사랑했을 것 같고,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인'만 사랑할 것 같이
착각하면 정말 큰 코 다친다.
'성경'을 자신들이 썼다는 우월감과, 창조주 신을
여호와, 야훼, 엘로힘 등으로 부르면서 자기들만의
신인줄 알고 떵떵거렸다가 큰 코 다친게 유대인이다.
성경은 사람이 쓴 것으로 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고,
성경 그때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사건
이라고 생각하고, 현대에 와서는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말고 다른 나라들은 적용이 안 된다고 떵떵거렸다가는
큰 코 다친다.
'창조주 신'은 온 우주와 온갖 피조물들과 전 인류의
창조주 신이시며, '성경'은 온 우주와 온갖 피조물들,
특히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앞으로 태어나 죽을 전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창조주 신의 법전이시다.
◆ '선악과'는 '욕심의 열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창세기 1장에 천지창조가 이루어진다.
이 창조는 지구를 만드시면서 다른 별들도 만드셨다.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다.
현대에 와서야 과학으로 밝혀진 은하계라는 것이
끝도 없이 무한으로 펼쳐져있다.
별에서 별로 이동하는 시간은 몇천년 몇만년
몇 억년이란다.
그러면 도대체 창조주라는 분은 얼마나 크신건가.
계시록에 보면 한 천사가 한 발은 바다를, 한 발은 땅을
밟고 서 있다고 하던데 창조주 신은 얼마나 크신건가.
(계시록 10:6)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아멘.
◆ 창조 궁금?… 너나 잘해라!
이 창조 사건이 창조주 신의 전부가 아니다.
이 창조 이전에는 어떻게 존재하셨는지 어디서
사시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약간 알려주신 것이 에스겔서 1장이다.
지구를 존재케 하시고 피조물들을 창조하시고
스스로 충만하게 되라고 명하셨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아멘.
(창세기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아멘.
지구는 흙으로 조성되었는데, 그 흙을 지금의 진흙처럼
찰흙처럼 비벼서 만드셨는지, 아니면 그 흙성분으로
만드셨는지 모르지만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다른 창조물들을 관리하라고 하셨다.
(창세기 1: 26) "창조주 신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아멘.
창조과정은 우리는 모른다.
그런건 신경쓰지 말라고 간략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도 그런다.
"너는 그런건 신경쓰지 말고 너 할 도리나 잘해!"
나한테 어느날 하나님아버지가 물어보셨다.
"너는 왜 성경공부를 하느라고 그러니?"
"저도 많이 아는 것이 좋구요. 남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어서요~" 그랬더니
"너나 잘해라" 그러셔서 "모지?" 하고
멘붕왔었다.
◆ 창조 당시는 뇌기능 100% 사용
창조당시 아담이 얼마나 똑똑한지 창조주신께서
창조하신 동물 새 가축 물고기들 땅에 기는 모든 것의
이름을 다 지어주었다.
머리가 지금의 천재 정도가 아니라 신만큼이나
똑똑했던 것이다.
뇌를 100% 다 사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동물이 한두개인가. 짐승도 있고, 새도 있고
물고기도 있고 곤충도 있고 땅에 기는 것도 있고.
현재까지 과학자들이나 생태계 학자들이 발견해서
이름도 지어놓고 관리하고 있지만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피조세계가
무한히 많을 것이다.
지구에 갇혀서-우물안에 갇혀서-창조주신이
무엇 무엇을 창조하셨나 살피려고 하니 보이니!
그런 주제에 신의 다른 창조물들이 있다 없다를
논하면 되겠니!.
지금은 사람이 직접 탐험을 하고 찾고 기록하고
사진을 찍고 하면서 수동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창조 때는 아담 머리에 아예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다 알아버리는 것으로써 완전자동 관리이다.
아담과 하와의 지혜스러움과 지식과 총명이라는
것은 창조주와 버금갈 정도이다.
(창세기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것의 특징이나 성격이나
모든 것을 디테일하다못해 완벽하게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러면 창조주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든지,
프로그램으로 입력해 놓으지 않으셨는데도
아담이 독학하고 외우고 해서, 그냥 똑똑해서
다 알아버린 것인가?
아니다. 창조주께서 다 입력하신 것이다.
◆ 인간과 컴퓨터의 다른점
우리가 로봇을 만들거나 컴퓨터를 만들 때
인간의 지혜가 총체적으로 동원된다.
창조주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것을 다
총동원 하셨다. 자신의 형상대로 자신의 모습대로.
하지만 사람보다 로봇이나 컴퓨터가 더 똑똑한 것은,
로봇이나 컴퓨터는 기억된 것을 삭제시키지 않는 한,
컴퓨터나 로봇이 망가지지 않는 한 자료들이 지워지거나
기억이 퇴색되거나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치매에
걸리거나 하지 않는다.
인간은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뇌를 다 쓰지 못한다.
원래 뇌의 기능을 다 쓸 수 있다면 아마도 창조주 신과 같이
살 때의 기능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간은 늙어가면서 뇌의 기능이 점점 상실된다.
기억이 퇴색된다. 충격을 받으면 기억상실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제는 치매라는 것으로 고통스럽기도 하다.
◆ 인생 '업데이트'
컴퓨터를 사용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하는 요즘
시대에 와서야 '업데이트' 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소프트웨어가 더 나아지기 위한 '업데이트'.
신께서는 인간의 세계에도 '업데이트'를 하신다.
나도 컴퓨터로 일하고 있고, 컴퓨터에 대해서
약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느날 사람이 자고
일어나는 것이 재부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약간 피곤하고 아프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지기도 한다. 잠이 보약이다.
인생은 법도 바뀌고 삶도 점점 살기 좋아진다.
굽은 길이 곧아지고, 높고 낮음이 없어지고
전쟁이 점점 그치고 평탄하게 되는 삶으로,
자동기계를 쓰는 삶으로.
구약이 신약으로 업데이트 됐다.
구약을 마감치고 신약시대로 접어든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말씀이 '업데이트' 된 것 뿐이다.
제물을 죽여서 불태워서 제사지내는 법에서
그냥 신을 알게 하고 노래로 찬양도 하고
일어났다 앉았다 엎드렸다 하면서 기도하는 정도로.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70번씩 7번이라도 용서로.
육체적인 간음에서 생각으로 간음했을지라도.
살인한 자와 미워한 자의 값이 같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창조주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로 계산하시겠다.
네 몸을 불사르게 내줬을지라도 사랑 없이 한 것은
말짱 다 헛것이다 못해 마이너스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사심의 '두렵건대' 마이너스 점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을 돌려대라.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주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줘라 등 내용들이
더 고상해지고 수준이 높아지고 디테일해졌다.
◆ 인생 수준 '업데이트'
그 것은 지금부터는 그러시겠다도 있지만
창세기부터 그래왔지만 더 자세하게 알려주신다도 있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중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과 유학가서 배우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더 디테일하고 수준이 높은 것과
같다.
인간 배움의 수준을 높여 주신 것이다.
영의세계에서는 선악과 사건의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신의 판결문이 '예수'라는 육체로 태어나게 됐다.
예수가 죽고 인생이 초고속으로 '업데이트' 됐다.
그래서 인생도 자동시스템의 삶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육의세계의 법이 바뀔 때는 무언가 사건이 생기고
나서 고쳐야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 바뀌게 된다.
창조주께서는 그냥 알려주시고 그냥 바꾸시고 하시지
않는다. 시청각 교육을 시키신다.
그래서 육의세계는 먼저 소를 잃어봐야 외양간을
고치게 된다.
지금도 계속적으로 법을 터시고 바꾸시고 있다.
"이러면 안돼 저러면 안돼!" 속박에서 많이 자류롭게
하시는 것이다.
(누가복음 3: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창조주신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 자동과 영원의 삶
창조주와 같이 살 때인 창세기 1장과 2장 시절에는
지금처럼 집도 지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전쟁도 치뤄야 하고, 밥을 해먹고, 돈도 벌어야 하고,
땀을 흘리고 수고를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가르치기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창세기 2: 5) "창조주 신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아멘
먹기 위해 수고하지 않는 즐거운 삶이었을 것이다.
(창세기 2:29) "창조주 신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아멘.
정말 과일과 채소와 열매만 먹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살았었다.
(창세기 3: 22) "창조주 신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아멘.
창조주는 동산에 사과나무 생명나무 몇그루 심어놓고
동산을 거니시는 할아버지가 아니시다.
에스겔서 1장에 나오시는 창조주 신은 우리가
UFO나 외계물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거대한
'단쇠생물'을 타고 다니신다.
◆ 수많은 내용이 성경에 없다
그 끝도 없는 우주 공간에 지구라는 별에 사람들만이
창조물이라고 고집하면 안 된다.
더 이상의 창조물은 없다고 단정지으면 안 된다.
태양계가 있는 은하계와 그와 같은 은하계가
끝도 없이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 큰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신께서 사람만해서
별에서 별까지 은하계에서 은하계까지 우리와
비슷한 빛의 속도나 로켓 속도로 달리실까?
우리는 겨우 달에 갔다 왔다느니, 화성이 어쩌구 저쩌구 해도
지구밖에 모르는데 그것도 다 모른다. 지구 하나만 해도
얼마나 광활한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문명이 발달해서 조금 알게 됐을 뿐이다.
물론 다른 창조물이 있는지는 모른다.
성경에 없다고?
우리는 그런 것이 성경에 있냐 없냐를 따지는데
많은 내용들이 성경에 없다.
성경책은 딱 인간세상에 관련된 육의세계 모습과
영의세계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일 뿐이다.
그것도 외경들 빼고 간략하게 66권으로 조성됐다.
하지만 인간세상의 문명발달을 위해 '찬조'가 있었다.
(창세기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아멘.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아멘.
아담과 하와 창조시에는 남자아담과 여자아담의
관계였지만 육의세계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이들도
부부의 관계로 바뀌고 자녀라는 것을 낳게 되고,
그들은 '아들'과 '딸'과 부모의 관계로 조성됐다.
(창세기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
이었더라" 아멘.
◆ 하나님의 아들과 네피림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의 아들들이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른다.
(창세기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있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창조주신의 회의석상에 참석했던 자들도
창조주신의 아들들이라고 그랬다.
(욥기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아멘.
(욥기 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아멘.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아멘.
(마태복음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아멘.
(갈라디아서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아멘.
하나님의 아들은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딸들을 아내로 맞아 자녀를
낳은 것이 '네피림'이라는데, 그들은 당대에 이름을
떨치도록 무언가를 했던 사람들이다.
명성을 떨쳤다.
그들은 그 시대에 리더자였던 것이다.
리더자가 포악했다고 해서 무조건 마귀라고 하면
안된다. 신께서 허락하셨던 리더자들은 무서웠다.
그들의 키는 사람이 메뚜기처럼 보일 만큼 무척 크고
장골이었다.
창세기 6장 네피림 거론 이후로 창조주께서는
대 홍수를 일으키셔서 노아가정 빼고 다 멸망
시켜버리셨다.
인생 재부팅이라고나 할까.
컴퓨터도 한참 쓰다보면 잘 못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이 것 깔고 저 것 깔고 한 것들이 너무
많아 지저분하고, 한개씩 지우고 처리하기
힘들 때는 한 번에 밀고 다시 깔아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저래서 그런지 창조주 신께서도
인생들 싹 밀고 노아시스템으로 다시 깔았다.
(창세기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아멘.
(창세기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아멘.
(창세기 6: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아멘.
창주주신께서 정말 창조하시고 나서 후회하시고
뉘우치시고 한탄하신다면 그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냥 '1인자'가 실험 중이며 연구 중이라고 해야 한다.
성경에서 인간을 징계하시는 사건에서 보면
창조주께서 때리시는 정도의 양이 다 찼을 때
"후회하신다" "뉘우치신다" 그러신다.
10대 맞을짓 한 자녀 10대 다 때렸다는 것이다.
어떤 다른 일을 하시기 위한 때가 됐다는 것이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아멘.
(사무엘하 24: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아멘.
◆ 시스템 포멧과 '노아시스템'
네피림으로서의 인류 문명 발달에 한 축을 세웠다.
창조주 신의 뜻을 어찌 알랴만은 이 기존시스템을
다 포멧시키고 노아 시스템으로 다시 시작하셨다.
창조주 신은 동산에서 나무 몇그루 심어놓으시고
거니시고 바람을 쐬시는 어떤 머털도사 같은 분이고,
인간은 스스로 전기밥솥, 세탁기, 빨래건조기,
냉장고, 김치냉장고, TV, 로봇청소기, 비행기,
기차, 배, 총, 대포를 사용하느니,
복제품을 만드느니 최고사양의 컴퓨터를
다루느니, 스마트폰을 사용하느니,
달나라에 로켓을 쏘아 올리느니,
별처럼 인공위성을 띄우느니,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줄 알면
정말 인생 오산 중 최고 오산이다.
창조주께서 인생을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세상의 문명 발달도 없고, 과학자도 없고,
발명가도 없고, 컴퓨터는 더더욱 모르고,
자동시스템도 없고, 돌맹이로 농사짓는
정도에 그친다.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그러신다.
◆ 네피림 혼혈아 '노아'
(민수기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아멘.
홍수 당시 노아가정 빼고 네피림이든 뭐든 전인류가
다 죽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홍수 이후 민수기시대에 가나안 땅에
네피림 후손인 아낙자손들이 살고 있었다.
홍수 이후에도 계속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땅의
딸들을 아내로 삼아 네피림을 낳았나?
아니면 아낙자손의 선배가 있다.
셈 함 야벳 중 하나이지 않나.
(창세기 9: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아멘.
'가나안'은 함의 아들, 노아의 손자였다.
노아의 다른 손주들도 많았을 것인데 성경은
구태여 '가나안'을 거론한다.
아낙자손의 선배이기 때문이다.
노아도 네피림의 피가 섞인 후손이라는 얘기이다.
홍수사건이 전 인류적이고 전 세계적이라면
노아가 네피림혼혈아가 맞고,
그 지역만의 대홍수라면 노아는 네피림혼혈아가
아닐 수 있으며, 노아가 네피림혼혈아가 아니면서
전인류적 세계적 대홍수가 맞다면 홍수 이후에도
창조주의 아들들의 찬조가 있었어야 한다.
대홍수 사건을 농사로 말하자면 좋은 개량종씨
하나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려버린 것이다.
성경은 거의 농사로 표현한다.
(마태복음 13:39) "둘 다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아멘.
(요한계시록 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아멘.
◆ 개량종 '니므롯 용사'
좋은 개량종이라고 해서 무조건 순둥이라고
오해 하면 안 된다. 술도 먹을줄 알고, 취할 줄도
알고, 몹시 취하면 옷을 벗고 잘 줄도 알고,
그 예쁘다고 하는 손주가 자기 흉을 봤다고
노발대발 "형제의 종의 종이 되라!"고 저주도
할 줄 안다.
노아는 100년 가까이 누가 흉을 보던 말든
사위들이 믿든 말든 방주를 지어대기만
한 오기있는 리더자였다.
그런데 이런 것도 창조주께서 그렇게 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이지 노아가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붙드시면 시키시는 대로
그렇게 할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길은 없다.
씨앗이 농부가 심는대로 심겨지는 수밖에.
욥도 그 시대의 리더자였던 것처럼
노아도 그 시대의 러더자였다.
역사가 왕사기록이듯이 성경도 족장부터 시작된
왕사기록이다.
홍수 사건 이후 네피림의 피가 흐르던 노아의 후손 중
구스에게서 '니므롯'이라고 하는 첫 용사가 등장한다.
이때 당시 용사는 부족을 이끌었던 '리더자'인 것이다.
(창세기 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아멘.
'여호와 앞에서'라는 것은 창조주 신 앞에서.
당당하게 세상을 이끌어간다.
◆ 창조주 신의 교육
성경의 기록은 창조주신 본체에 관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삶에 관한 기록인데, 창조주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영의세계법으로 기록 되어 있다.
인간을 교육시키시고 선의 값과 악의 값을
계산하셔서 복도 주시고 징계도 하시는
전능하신 선생님으로서의 등장이시다.
창조주 신의 전능하심은 다 기록하지 못한다.
무법시대나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법이나,
사회법이나 지역법이나 가정법이나, 남자의
주권법이나, 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책들이나
세계사나 역사나 격언이나 속담이나 수많은
구전이나 다 창조주 신의 말씀이시다.
그것도 '인간들의 삶'에 관련해서만이다.
무법시대의 다른 부족을 치고 당하고 치고 당하고
했던 그 수많은 전쟁도 다 신의 뜻으로 되어진
상황이다.
죄의 값이 찬 이 부족을 치기 위해 이웃 부족이
들고 일어나고, 저 부족의 죄의 값이 찼기 때문에
이 부족이 들고 일어나고 서로 그러고 사는 것이다.
◆ 포악한 리더자? … 신의 명령
그 일어나서 치는 부족이 타 부족의 젖 먹이를
죽이면서까지 씨를 말리는 것도 창조주신의
명령이시다.
이 신의 명령을 실행하려면 인정사정 없고
포악해야 할 수 있다.
왕이 직접 국문하고 곤장 100대를 치라했는데
대충 때리면 때리는 자가 대신 죽는다.
폭발하려고 하는 왕의 성질이 다 풀리도록
인정사정 없이 포악하게 때려야 한다.
성경은 나라 대 나라의 전쟁이야기이다.
(사무엘상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아멘.
(예레미야 2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에스겔 24~25) "그들이 무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싸리라 내가 재판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들의 법대로 너를 재판하리라
내가 너를 향하여 '질투하리니' 그들이 분내어 네
코와 귀를 깎아버리고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뜨리며
네 자녀를 빼앗고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아멘.
설령 천국을 보고왔다느니 지옥을 보고왔다느니
해도 그것도 이 땅의 인간 삶의 '복'과 '징계' 값에
대해서다.
창조주 신은 절대적으로 완전 죽어야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죽으면 자동으로 알게 된다.
창조주 신의 모든 것을 성경에서 찾으면 안 된다.
너무 광범위해서 기록할 수가 없다.
신께서 창조시 아담에게 하셨듯이 완전자동으로
그냥 쓱 알려주셔야 알 수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창조시 아담의 능력과 지혜였다.
완전자동시스템.
◆ '남자아담'과 '여자아담'
무한의 별을 우주에 흩어놓으신 창조주신께서 생각의
속도든 무슨 속도든 별들을 왕래하지 못하실까?
우리는 창조주 신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못한다.
먼지만한 '점' 하나 정도 밖에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그 광대하심은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 분이 창조하신 존재가 '사람'이다.
그것도 성경에 써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그것도 성경을 안 믿으면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첫번째는 아담(남자)이고 두번째도 아담(여자)이다.
먼저 남자아담을 만드시고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와를 만드셨다.
현재 사람은 심적으로 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고
혼자라고 느낄 때 우울할 수도 있고 자살할 수도 있다.
하와를 아담과 다른 재료로 만든 것이 아니라
아담의 것으로 만들었는데 더 재질이 좋았는지
지금의 여자들을 보면 남자들보다 더 부드럽고
섬세하고 질이 좋아보인다. 예쁘고.
아담이 "이는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르겠다" 그랬다.
이것은 육의세계처럼 동성이니 이성이니
차이가 아니라 그냥 한 몸인데 둘로 나뉜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두 종류가 아니라
한 종류인데 복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인간들도 보면 무언가의 복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 창조주 신의 형상과 모습대로
창조주 신은 사람을 만들 때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창조주의 모습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창세기 1:27) "창조주 신이 자기 형상 곧 창조주 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아멘.
우리도 인형을 만들거나 마네킹을 만들 때
우리의 모습으로 만든다.
(창세기 1:28) "창조주 신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창조주 신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아멘.
창조주의 명령은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고
정복하라고 하시고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이 때 아담과 하와가 지금의 남자와 여자처럼
짝짓기를 하면서 자녀를 낳고 살았는지 아니면
둘만 살았는지는 모른다.
짐승이든 새든 곤충이든 물고기든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해야 생육하고 번성할 수가 있는데
말이다.
모르는 것을 논할 필요는 없다.
쓸데없는데 시간 낭비하고 늙어죽는다.
◆ '파라다이스'가 지루한가?
창세기 3장에서 창조주 신께 들켜서 형벌을
받으면서 인생의 삶으로 전락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에덴동산 전자동시스템에서 창조주
신의 삶만큼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고 밥을 해먹고
그런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를 먹고 살면서
영원히 살 수 있었다.
현재 인간이 꿈꾸는 삶, 땀흘려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고, 먹거리로 인해 서로 다투고
뺏고 뺏기지 않아도 되고, 아프지 않아 병원도
필요 없고, 외우고 시험보고 공부하고 붙고
떨어지고 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것을 저절로
알고, 1등을 향해 달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등 떠밀지 않아도 되고,
더 예쁘게 되려고 성형수술하지 않아도 되고,
더 살빼려고 다이어트 하지 않아도 되고,
현재 인간으로 살면서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워서
기술의 힘을 빌려 뜯어 고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삶, '파라다이스'였다.
그런 곳에서 살아도 욕심이 생기는게 인간인가?.
할게 없어서 심심한가? 지루한가?
놀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더 필요한가?
하긴 평탄하게 하던 일 계속 하고 다람쥐 체바퀴
돌 듯이 살면 지루하긴 지루하다.
그렇다고 똥구멍이 찢어지게 평생을 살면 인생이
비참하고 지겹다못해 죽고 싶다.
에덴동산에서 과일 먹고 푸른 채소 먹고,
생명나무 먹고 살았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르니까 하와선배를 욕할 수는 없다.
내가 하와였어도 그랬을 것이니까.
갸가 나고 내가 갸다.
◆ 1개 빼고 창조주와 동일
그런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와 같이 살 때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행복한 삶'도 아니다. '부자'도 아니다.
'건강함'도 아니다. '오래사는 것'도 아니다.
'권력'도 아니다.
더 멋있고 더 예쁘고 더 날씬하고?
그들은 부족한 것이 없었다.
다른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딱 한가지!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있었는데
창조주의 마지막 권한인 '전지전능의 지혜'이다.
창조주와 대면하고 살았던 사람은 '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악'을 사용하지 못하는 존재였는데,
이 욕심으로 선악과를 먹을 시는
'악'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와는 하와의 지혜성품 하나만 발휘되게 됐다.
갸만 설치게 된 것이다. 다른 것은 부족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욕심이 일어날 것이 없었다.
◆ 나와 나의 성격과 대화
뱀이 나와서 하와에게 어쩌구 저쩌구 한 것은
창조주 신과 대항할 수 있는 루시퍼 사탄 어쩌구가
아니라 영의세계의 모습에서 하와의 지혜스런
성품형상이다.
이때 하와가 하와의 지혜성품과 맞대어 이야기를
할 정도이면 이것은 영의세계의 모습이다.
'뱀'이라고 쓴 것은 이제 성경을 쓰면서 결과물로
그렇게 썼을 뿐이지, 원래 창세기 시절로 가면
하와의 지혜 성품이다.
이때 아담이나 하와는 창조주와 비교해서
전지전능의 지혜(악)만 부족했다.
(창세기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창조주 신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창조주 신이 아심이니라" 아멘.
지식적이었고 지혜스럽고 총명하기가
창조주 같았던 하와의 지혜성품은
창조주 신의 능력을 아는 것이다.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그러면 하와 육체는 그런 것을 모르고
하와의 지혜 성품만 안다는 것이 아니다.
갸가 갸기 때문에 하와 자체도 다 아는
것인데 영의세계에서는 이렇게 분할해서
대화도 한다.
나는 2011년 8월 29일부터 기드온용사훈련이라는
것을 6개월 동안 창조주신께 직접 받으면서 이런
영의세계를 경험했다.
내가 나의의지와 생각과 정신과 마음과 영과 혼과
육체가 영의세계에 존재하면서 서로 이야기도 하고
명령하기도 하는 그런 경험이 있었다.
'나의 의지'로 모든 것을 다스려야 한다.
나 자신이 나의 '생각'을 너무 존중하게 되면
영의세계에서 나의 생각이 마구 까불게 된다.
그러면 나의 의지도 나의 생각을 다스리기가
힘들게 된다.
나의 생각이 '의지'의 말을 안 듣는다.
◆ '본능'과 '교육'
"내 생각이 옳다"가 강하면 나를 바꾸기 힘들다.
동물이나 새나 물고기나 나무나 꽃이나 바다나
산이나 강이나 우주나 등 일반 피조물들은
본능으로 살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
똑똑함의 차이가 조금씩은 있다.
사람도 본능은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 하지만
도덕적인 것들이나 삶의 기능적인 것들은 교육으로
되어지는데, 태어날 땐 아무 생각이 없다.
아는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부모의 가르침,
학교에서의 가르침, 친구의 가르침, 선배의 가르침,
사회의 가르침, 나라의 가르침 등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가르침 등으로 '나의 의지'가 달라진다.
'생각'은 그동안 들은 것도 있고 배운 것도 있고
느낀 것도 있고, 깨달은 것도 있고 하지만
영의세계에서 아무 것이나 두가지로 올 수가 있다.
"이 것이냐 저 것이냐".
이럴 때 그동안 내가 제대로 잘 배운 것으로
'나의 의지'를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생각이나 판치게 된다.
개념없는 사람, 어이없는 사람. 안하무인.
비도덕적인 사람이 된다.
'생각'이 판치는데 오히려 생각없는 사람이 된다.
창조주 신께서도 인생들에게 문명 발달 등에
관련 된 어떤 것들은 그냥 아무나에게 지혜와
슬기를 주시면서 관리하시는데 이런 것들은
기술 교육을 통해 전수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바른생활적이고 도덕적인 어떤 것들은
시청각 교육을 시키시면서 관리하신다.
물론 이런 것들도 일반적인 교육을 통해 알 수
있지만 대부분 잘 모른다. 잘 써먹질 못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죄값으로 신께 혼나도 잘 모른다.
종교생활을 잘 못해서 신께 혼난다고 교육되어져서
더 잘 모르게 되기도 했다.
장본인이 혼나도 모르고, 가정이 혼나도 모르고,
지역이 혼나도 모르고, 국가가 혼나도 잘 모른다.
그냥 재수없는 일이 터졌다.
"이놈의 인생 재수 더럽게 없다"
"이놈의 사회 재수 더럽게 없다"
◆ 자동의 삶과 수동의 삶
복제품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원본하고 다른 것이
있어야 하는데 원본이 복제품을 죽일 수 있는
'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복제품이니 내 뜻을 따르겠지" 했다가는 복제품이
원본을 죽일 수도 있다. 워낙 지식이나 능력이
똑 같기 때문이다. 둘이 죽을 때까지 싸워봐야 안다.
그래서 창조주 신 만큼의 지혜나 능력을 넘보게 되면
'형벌'을 받게 설정해 놓으셨다. 아예.
그것이 '전지전능' 이시다.
창조주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키'를 걸어놓으신 것이
'선악과' 사건인데, 창세기 3장에 '악'을 알 수 있게
되는 사건이 생겼다.
창조될 때부터 창조주같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선택의 권한도 있었다. 두 길이 있었다.
1. 선악과를 안 먹고 그냥 살면 계속 '자동'의 삶을 살고,
(악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몰라도
창조주께서 직접 관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악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
2. 선악과를 먹으면 고통스런 '수동'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동으로 살았던 모든 삶을 수동으로 살아야 하고,
사람이 자신에게서 발휘되는 '악' 이라는 것들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데, 목숨을 걸고 까불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라는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면 내가 망하는 길로 들어선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먹을 것이냐 먹지 않을 것이냐.
욕심을 낼 것이냐 내지 않을 것이냐.
순종할 것이냐 불순종할 것이냐.
◆ 리더자 남자아담 "먹으면 죽는다!"
창조주께서는 이 "하지마라!" "안된다!" 시스템도
아담과 하와를 동시에 불러 놓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을 먼저 창조하시고 먹지말라고 명령하셨다.
하와는 나중에 창조되면서 아담에게서 전달받았다.
남자아담에게 먼저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아담(남자)이
하와(여자)보다 더 리더자 위치에 있었다.
지금도 보면 명령 하달이 피라미드식으로 내려간다.
창조주께서 "아담아!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엔
정녕 죽는다!" 라고 아담에게 말씀하셨는데,
아담이 하와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
"창조주신께서 이 선악과를 먹지 말래.
먹으면 죽을 수도 있대" 라고 알게 됐다.
하와는 "죽을까 싶다" 정도이다.
지금도 보면 직접 명령을 받은 사람과
2차로 전달 받은 사람과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 여자아담 "설마 죽을라고"
그래서 그런지 창세기 3장에 와서 마음가짐이
약한 하와가 창조주 신의 지혜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신의 뜻을 약하게 전달받았기 때문에
긴가 민가 한다.
이 때의 욕심이라는 것은 "내가 창조주보다
더 높아지겠다!" "내가 창조주를 이겨먹으리라"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호기심' 정도인데 너무너무 궁금하다.
하지만 영의세계법으로 보면 그것은 창조주를
이겨먹겠다는 값으로 계산된다.
(이사야 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아멘.
이사야서 14장의 바벨론 왕의 죽음에서
그는 그냥 많은 땅을 정복하고 성읍을 폐허로
만들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볼모로 잡아가고
했던 왕중의 왕이었을 뿐인데,
영의세계에서는 "네가 하늘꼭대기에 자리를
까는구나!" "네가 창조주와 같아지려고 하는구나!"
"오히려 땅에 곤두박칠 칠 것이다!" 라고 하신다.
이 땅에서는 값의 크기가 '개미' 정도인데
영의세계에서는 '사람' 정도의 크기로 비춰진다.
창조주와 아담과의 차이점은 '1가지'인데
도대체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떨쳐버릴 수 없는 강한 호기심.
◆ 죽긴 뭐가 죽어, 먹어봐!
창조주 신의 지혜에 대한 욕심이 생기자
그동안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무감각으로 살았던
'선악과'가 어느날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클로즈업 됐다.
그날은 '선악과'를 보면서 얼마나 먹고 싶고,
얼마나 보기도 좋고, 얼마나 지혜스럽게 할 만큼
탐스러운지 너무 너무 강한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설마 죽을라고 하면서
먹어버린다.
혼자만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하와가 먹어보니 죽지도 않고 좋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아담에게도 먹어보라고 강추한다.
하와가 비실비실했거나 병이라도 걸렸으면
남자아담도 안 먹었을 것이다.
"창조주께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네가 먹었으니
네가 그렇게 됐지!" 하면서 화를 냈을 것이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멘.
그런데 하와는 아주 멀쩡했다.
창조주의 말씀이 거짓말 같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시간부터 아담에게
강추하면서 먹인 시간 텀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창세기에서 '몇년 후' 라는 것은 계산할 수 없다.
남자아담도 먹으면 죽는다고 겁을 줬는데 하와가
실제 먹어보니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먹었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도 보면 내가 먹어봐서 좋거나,
병이 나았거나 하면 내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이웃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하고 제품까지
건네주기도 한다.
몹쓸 것은 먹지말라고, 먹으면 몸에 해롭고
죽을 수도 있다고 또 강력하게 막는다.
◆ 인생 '개고생'
선악과가 열매냐? 사과냐 복숭아냐 배냐
천도복숭아냐?를 논할 필요는 정말 없다.
시간낭비다.
아니면 선악과가 성적 행위냐?
그런 것을 논하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늙어 죽는다.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하와가 '선악과'를 먹어버렸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 선배들이 힘들게 살았고
우리도 힘들게 살고 우리 후배들도 힘들게
살다 죽는다.
나는 불교에서 "불쌍한 중생들. 불쌍한 중생들"
할 때 이해를 못 했었다. "우리가 하나님아버지를
믿고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데 불쌍하냐!" 했는데
이제 인생을 깨닫고 보니 정말 불쌍한 인생들일
뿐이다.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어린 자나 젋은 자나 늙은 자나 못 생긴 자나
잘 생긴 자나 다 불쌍하기 그지없다.
빨리 이 인생을 접고 창조주께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전 인류적으로 형벌이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60평생 많이 살았고 늙어 죽을 것이지만,
나의 후손들은 이 험한 세상을 또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이다.
그들도 나처럼 "나는 늙어 죽을 것이지만
나의 후손들은 어쩔꼬" 하면서 죽을 것이다.
◆ 당신이 그렇게 만드셨자나요!
(창세기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멘.
(창세기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멘.
아담과 하와는 잘못된 상황을 창조주께서 그런 존재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다고 한다.
나의 의지가 사람을 죽여놓고
"내 안에 있는 악령이 그를 죽이게 했다''
라는 것과 같다.
그 악령이라는 것은 나의 분노의 성품,
폭력의 성품, 죽이려고 하는 미움의 성품인데,
허무맹랑한 루시퍼 악령이라고 하면 안 된다.
어떤 과학자가 "시키는 대로 청소하겠다"와
"청소하기 싫으니 안 하겠다"라고 할 수 있는
자율적인 청소기 로봇을 만들어 놓고
"너는 항상 시키는대로 청소만 해라!,
안 한다고 할 때는 부숴버리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청소기가 "당신이 내가 청소를 거부할 수도 있게
프로그램 해놓고 청소를 안 한다고 거부하니까
나를 부순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무조건 청소만 하는
로봇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라는 것이다.
아담은 "당신이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 존재를 만들어 나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라는 것.
하와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조성해 주신 나의 성품들이
그렇게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을 다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께서 그렇게 나를 조성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먹어보니 아담은 죽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죽지 않던데요?" 라는 것이다.
과학자가 자율적인 대단한 청소기를 만들어놓고
"청소를 안하겠다" "지금은 하기 싫으니 이따가
하겠다"고 했다고 그 청소기를 바로 산산히 부숴
버린다면 그 과학자는 최대로 멍청한 과학자이다.
그래도 그냥 쓰고 싶으면 그대로 두면 되는 것이고,
무조건 청소만 하게 하고 싶으면 무조건 청소만 하게
프로그램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 운명과 성품
창조주의 뜻을 어찌 알랴마는 지금 우리 인생은 나에게
발생되는 악하고 나쁜 프로그램을 스스로 짓누르면서
발휘되지 못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청소기 로봇은 프로그램을 과학자가 바꾸는 것이지만,
인생 성품 프로그램은 '내가' 바꿔야 한다.
누구든지
어느 때에, 어느 나라에, 어느 지역에, 어느 가정에,
어느 종교에, 어느 부잣집에, 어느 가난한 집에, 남자로,
여자로 태어나서 무엇을 하면서 살게 되는 '운명프로그램'은
창조주께서 아예 조성하셨지만,
'성격이나 성품 프로그램'은 나 스스로 바꾸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 것을 바른생활과 도덕공부를 통해 실천에 옮기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것을 가정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배우고
사회에서 배운다.
"내가 원래 태어난 성품과 성격이니 누구든 나를 어쩔 수 없다!,
나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떠들면 안 된다.
나의 원수인 나쁜 성품이나 나쁜 성격들에게
"넌 참 괜찮은 것이야 ^^" 라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들이 천방지축으로 들까분다.
◆ 운명의 장난(?)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운명은 창조주신께서 정하신 것이다.
1987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 신인연기상,
대상 수상을 한 '생인손'이라는 명장극장에서 보면
딸을 낳은 하녀가 자신의 간난아기손이 생인손을 앓고
있는 것을 마음아파하며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모셨던
새댁 아씨의 딸과 '천륜'을 어기고 바꿔치기 한다.
성경이 없던 시절 어떻게 '천륜'이라는 말을 했을까.
둘은 같은 날 아기를 낳게 되는데 둘 다 딸을 낳았다.
아씨 딸은 따뜻한 곳에서 채색옷을 입고 있지만
자신은 아기를 돌볼 수 없이 바쁜 하녀에 불과했다.
자신의 아기는 찬바닥에서 아무거나 입고 젖도 제대로
얻어먹질 못해 울면서 뒹굴고 있었다.
어느날 아기가 '생인손'을 앓고 있는 것을 보고
아기가 생인손이 낳을 때까지만이라도,
하루만이라도 따뜻하고 편한 곳에 있기를 바래서
주인댁 높은 사람들이 다 외출한 틈을 타 아씨 딸과
바꿔치기 했지만 영원히 다시 바꾸질 못했다.
이후로 바꿈을 당한 하녀딸은 주인 노릇을 하고 살고,
정작 아씨 딸은 하녀 같이 고생하며 산다.
일제개화기를 맞아 하녀 딸(실제 아씨 딸)이
어떻게 하다가 천주교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게 되고
신문화를 접하게 됐는데 대감댁 마님한테 머리끄댕이를
잡히고 가문의 망신을 시킨다고 쫓겨난다.
그 후로 그 하녀 딸은 신식공부를 하게 된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도 더하게 된다.
나이가 중년이 됐을 때는 조선으로 다시 들어와
대학총장이 된다.
아씨 딸(실제 하녀 딸)은 그 대학총장의 집에
식모로 들어오게 되고, 그 대학총장이 누군지
알게 됐을 때 비참한 마음으로 그 집을 나간다.
이 부분을 아무리 자신이나 자식의 운명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원래 운명대로 돌아온다고 볼 수도 있고,
그 아씨 딸이 대학총장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었다면,
그 대감댁 할머니가 워낙 봉건적이라 그 집에 있다가는
신식학교의 대학총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바꿔치기
당하고, 고생하다 신문학을 접하게 되고 쫓겨나서
천주교 신부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결국은 본국으로 돌아와 대학총장이 된다로 볼 수 있다.
이 것이 운명의 장난 같지만 창조주 신의 뜻이기
때문에 한편의 드라마가 생성되는 것이다.
성경인물 중 요셉도 그렇다.
요셉이 그냥 야곱 아버지 품에 있었으면 대충 채색옷
입고 꿈자랑질로 형들한테 미움 정도 받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르고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대한 잘 된다 해도 그 나라에서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요셉이 해외 에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창조주신의
뜻으로 '운명'이었다면, 그가 그 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딱히 나올 이유가 없다.
야곱아버지가 애지중지하기 때문에 더더욱 해외로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 '꿈자랑질'을 하다가 시기를
심하게 얻어 형들에게 죽임을 당하려다가 팔림을 당하고,
해외 장사꾼들에 의해 에굽나라 보디발 가정까지 가게
된다.
창조주신께 '꿈 해몽'의 은혜를 입은 요셉이 우여곡절
끝에 에굽왕의 꿈 해몽을 하는 자리까지 가게 되고,
꿈 해몽은 물론 뒷처리까지 잘하는 바람에 애굽의
총리까지 된다.
그리고 극적으로 형제와 아버지를 만난다.
이 것이 운명의 장난 같지만 창조주 신의 뜻이기
때문에 한편의 드라마가 생성되는 것이다.
◆ "다음생에 만나자"
우리가 노래에 역사가 있고 뜻도 있고 경험도 있고
자기의 삶도 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가수는 노래대로 된다고도 한다.
'인연'이라는 노래.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수가 없죠
내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모습이다)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테죠
먼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생에 못다한 사랑 이생에 못한 인연
먼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말아요"
라는 애틋한 가사가 있다.
인생은 내가 또 다른 나를 만나 나를 낳고,
그 자식으로 태어난 내가 장성하고,
또 다른 나를 만나 결혼하고,
원래 나는 죽고, 하는 계주인생 시스템이다.
갸가 나지 다른 놈이 아니다.
손주 증손주 먼손주 등 갸가 나다.
배우자와 인생과 얼굴과 성격이 섞여서
나랑 얼굴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각자 흩어져서 살아서 삶도 다르고,
그냥 자식같고 손주같고 남 같고해서
'내가 아니다' 라고 굳게 믿을 뿐이다.
긴 세월 지나 내가 그 이생에서 못한 사랑 찾아
그 사랑을 만났다고 치자, 그 때는 얼굴도 훨씬
모르게 변해있고, 환경도 변해있고 하면서
만난 사랑? 내 사랑 아니라고, 나는 콩깍지가
씌여서 어떻게 결혼까지 했지만 저 배우자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셩격이 안 맞는다고
해가면서 싸우고 별거하고 이혼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토록 생을 이어가면서 만난 사랑,
내 사랑 아니라고 외친다.
◆ 신의 선택
나는 신의 선택을 받았다. 너는 신의 선택을 받았다.
그는 신의 선택을 받았다. 누구는 신의 선택을 받았다.
누구만 신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다.
개나 소나 누구든 신의 선택을 받았다.
그 선택된 종류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에
'우월성'과 '열등성'이 있을 뿐이다.
누구 위에 누가 있고 그 누구 위에 또 누가 있다.
인생 시스템에서는 최고의 누구는 없다.
그 최고 위에 또 최고가 항상 있다.
어떤 영화를 찍기 위해 이 종류 저종류가 필요했을 뿐이다.
최고로 선택 받았다가 땅바닥으로 꼬나박기도 하시고.
땅 속 지하에 있다가 갑자기 꼭대기로 갈 수도 있다.
성경시대 욥과 우리나라 이조시대 강화도령 철종이 그렇다.
간장종지부터 시작해서, 아니 요강부터 시작해서
최고가의 도자기까지 값이 무한적으로 있을 때
나는 그 중의 어떤 값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인생 삶에서 비교 했을 때는 기분은 나쁘다.
니가 왜 왕이고 내가 왜 신하야?
니가 왜 양반 아씨고 내가 왜 하녀야?
나도 왕이고 싶고 나도 왕비이고 싶고
나도 양반이고 싶고 나도 상위 3프로의 부자이고 싶다.
나도 잘배운 학자이고 싶다. 나도 천재이고 싶다.
최하층에 태어나고 최하층에 있고 싶은 자가 누가 있냐?
태어나 보니 여긴대. 가난하고 온몸이 새까맣고.
뛰쳐나가고 싶어도 가족으로 묶여 있고
가장의 법에 묶여 있고, 사회의 법에 묶여 있고,
나라의 법에 묶여있다.
법에 묶여서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고,
하고싶어도 환경이 안 따라주고, 머리도 안 따라줘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내 자리에서 살 뿐이다.
소수점까지 사용해서 1~100까지 있을때
나는 100이었고 나는 99였고 나는 1이었고 나는 55였고
누구든 어느 숫자에 들어가 있었을 뿐이다.
그 값을 절대자 신이 주셨기 때문에 꼼짝마라다.
이 '법'을 쥐고 계신 분이 창조주 신이시다.
이 '법'은 사람의 '목숨'을 관장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목구멍이 포도청' 이라는 법대로
살고 들 있다. 높은 자는 높은 자대로, 낮은 자는
낮은 자대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하지만 신의 뜻에 의해 100에서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고
1에서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이런 것은 현시대, 성경 신약시대에 와서나, 예수를 믿으면
운명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있기전, 예수를
알기 전 과거에도 항상 있어왔다.
누구든 운명은 신의 뜻에 의해 바뀔 수 있다.
'반정' 으로 왕의 자리가 바뀌기도 했고,
왕족에서 강등돼 노비도 됐고.
노비에서 왕의 승은을 입어 후궁도 됐다가
중전도 됐고 평민도 됐다.
천민으로 살았던 벌래같은 존재들도 어떻게든
궁궐로 들어가 살길을 찾아보려 노력했고.
남성을 버리면서까지 궐에 들어가 살기도 했다.
벼슬을 사서라도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진 않았다.
문명이 바뀌어 학문으로 노력하고 기술로 노력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걸로 노력하고
대기업에서 높은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고
사업장의 사주가 되기위해 노력하면서 계속
공부하고 있다.
신의 뜻에 의해 이렇게라도 평등한 세월이
온 것에 대해 신을 모를지라도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자.
◆ 그 곳의 법? …신의 법
우리가 애완동물을 키워도 알 수가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우리집 법대로 키운다.
동물이라도 금쪽같이 사랑하는 집은 호화찬란하게
키우고, 동물이 감히 사람보다 높을소냐 하고 키우면
또 그렇게 키운다. 나의 법대로 키운다.
창조주 신께서도 마찬가지다. 주께서 만드신 인간,
주의 법대로 다스리신다. 그것이 믿어지든 믿어지지
않든 아무 상관 없다.
애완동물이 그 주인집의 법대로 키워져도 그것을
전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몰래카메라 보듯이 보시기 때문에 인간들은
전혀 알길이 없다.
그래도 대충 알게 해주신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나라법에 적용되면서 살고 있다.
정작 그 법전은 어디있는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땅의 법도 있는데, 그 땅에서는 그 생산물이 나고
이 땅에서는 이것이 나고 천차만별로 다 다르다.
지역법도 있는데 그냥 구전으로 전해진다.
가정법도 있는데 그냥 그 집 아버지의 법안에서,
그 남편의 법안에서 누군 그래도 되고
누군 그러면 매맞고 해가면서 지내게 된다.
직장법도 있는데 누군 연봉이 많고, 누군 연봉이
적고, 누군 그것도 없어서 입에 풀칠하고 살고.
하늘법도 있는데 그러면 천벌 받고, 그러면 복을
받고 구전으로 내려오면서 살고들 있다.
창조주 신께서 정해주신 '운명' 이라는 것이 없고
'상'과 '벌'도 없다면 인생은 로봇같이 한 일만 해야
한다. 한가지로만 살 수가 있다.
무한한 다양성은 없다.
누군 왕이고 누군 졸개고.
누군 양반이고 누군 쌍놈이고.
누군 남자고 누군 여자고.
누군 부잣집이고 누군 가난뱅이고.
누군 연예인이고 누군 박수나 치고.
누군 이걸 잘하고 누군 저걸 잘하고.
누군 예쁘고 누군 못생기고 해가면서
다양할수가 절대로 없다.
내가 미쳤냐? 쌍놈하게! 양반하지!
내가 미쳤냐? 연예인하지 박수나치게!
내가 미쳤냐? 절세미인하지 호박하냐?
내가 미쳤냐? 제일 좋은 것 골라잡지!!
◆ 나의의지 vs 나쁜성품 … '원수지간'
어느 때에 어느 곳에 어느 집에 남자로 여자로 태어나는
것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지만, 일단 태어난 곳에서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관건이다. 이 일로 '상'과 '벌'이 온다.
이 놈의 나의 성격하고 내가 싸워야 한다.
나쁜 성격하고는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 한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멘.
"너의 그 '지혜 성품'이라는 것과 '의지'라는 것은 원수지간이
될 것이다" "너 하와의지라는 것은, 저주를 받아 나쁜 꾀를 내는
'지혜성품(뱀)' 머리통을 밟아버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지혜성품(뱀)은 너를 발꿈치 정도 상하게 할 것이다"
신의 저주로 발생된 상황이다.
인생에서 보면 상대가 나랑 조금만 달라도 다투기도 하고,
조금만 미워도 싸우기도 하고 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다.
이 화를 내게 하고, 큰 소리치고 싶고, 미워하게 하고,
용서 못하게 하고, 자랑하고 싶고, 잘난척 하고 싶고,
건방지고 싶고, 때리고 싶고, 죽이고 싶고 하는 모든
나쁜 것들을 억제해야 하는데,
영의세계에서 보면 나에게 발휘되는 나쁜 뱀을
머리통을 밟아 죽여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영의세계에서는 죽지 않는다.
주춤하다 일어나고 주춤하다 또 일어나고 한다.
한번 화를 안냈다고 한번 용서했다고 한번 죽일 것을 참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을 때까지 다스려야 한다.
인생들이 이 땅에서 살아있는 동안이다.
신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목숨을 버려서까지 사랑한다고 외치는
종교인들조차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
"용서하게 해달라" "긍휼히 여기게 해달라" "사랑하게 해달라"고
아무리 기도한들 되어지지 않는다.
'나의 의지로 해결'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도하면 오히려 "나를 테스트하나?" 하는
오해스러운 상황들이 펼쳐진다.
평탄하게 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풍랑이 일어난다.
"오늘도 기도했는데 또 화를 냈어. 또 미워했어.
또 싸웠어, 또 때렸어"라는 상황이 펼쳐진다. 망했다!.
내가 나쁜 성품을 발휘하는 육의모습을 영의세계에서
보면 나의 나쁜 뱀이 엄청 무서운 모습으로 날뛰는 것이다.
이런 영의세계를 보고 온다면
그 뱀은 자기 성품 같지 않고 루시퍼 악령 같다.
◆ 창조주신 크기나 사람 크기나
육의세계에서는
창조주신(무한한 우주) : 사람(세포 한개)의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람인 주제에
어찌 감히 신에게 대항할수 있겠냐고 하지만
인생들의 모습이 영의세계에서 볼 때는
창조주신과 사람의 크기 모습은 비슷하다.
(이사야 14: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아멘.
사람의 크기가 창조주신과 대등해 보일 정도의
모습인 이유는 사람이 창조될 때 창조주의 형상대로
창조주의 모습대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값이 한개 빼고 비슷하다고 느낄 정도다.
그래서 '자기 죄값' 형상일 뿐인데 영의세계에서 보면
창조주신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무섭고 힘도
셀 것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그게 자기 값 같지 않고 창조주신과 싸울 수 있는
다른 어떤 신의 존재같이ㅡ사탄·마귀·귀신ㅡ느껴진다.
욥기의 천상회의에 나오는 '사탄'이라는 존재는
'욥의 삶의 죄 값'으로 형성된 존재일 뿐이다.
이 욥의 죄값인 '사탄'이 창조주 신을 그냥 이유없이,
막무가내식으로 충동질시키니 창조주신이 귀찮아서
할 수 없이 욥을 때릴 정도의 능력을 가진 것 같아
창조주신과 대등한 어떤 다른 신 적인 존재라고 알고
있지만, 그 '사탄'은 욥의 삶의 죄 값일 뿐이다.
이 나의 삶의 죄값일 뿐인 '사탄'도 영의세계의 존재들이
볼 때는 그냥 사람의 모습이고, 인자의 모습이고, 사람같은
모습들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습이다.
육의세계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비슷한 것과 같다.
의인이든 선인이든 악인이든 비슷한 것처럼.
하지만 육의세계에서 살고 있는 눈으로 영의세계의
자기 죄값을 볼 때는 괴물같은 모습이다. 거대하고
음흉하고, 흉칙하고, 비대칭이고, 사납고, 더럽고,
무시무시하고. 창조주 신도 이길 것 같은 그런 모습.
인생들편에서는 그렇게 무서워 보이는 신들이 무지
많은거 같아서 니네신, 우리신, 나의신, 좋은신, 나쁜신,
귀신, 사탄, 마귀 등을 만들어 냈지만
그것은 영의세계를 보고 온 자들이 다들 다르게
느꼈을 뿐이며, 수다로 간증으로 소문들을 냈지만
정작 신이라고 불리워야 하는 존재는 딱 한 분으로
'창조주 신'이라고 부른다.
'창조주 신'과 대등할 다른 어떤 신은 절대적으로
없다. 無. 인간들이 만들어 냈을 뿐이다.
◆ 이름이 다른 창조주 신
기독교에서는 '한 분 뿐이신 신'이라고 해서
'하나님' 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루시퍼사탄'도 하나님과 싸울 정도의
신이라고 믿고 있다.
천주교나 일반적으로는 하늘의 신 이라고 해서
'하느님' 이라고 부른다. 애국가도 '하느님'이다.
욥이나 느혜미야나 에스라나 에스더나 다니엘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욥기 38:33)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아멘.
(에스라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아멘.
(느헤미야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신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아멘.
(시편 136:26) "하늘의 신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하늘의 신'이나 '한분 뿐이신 신' 이나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값(창조주신)이 같지만,
육의세계에서 신을 섬기는 느낌들은 다르다.
니네신, 우리신, 참신, 악신, 사탄, 마귀, 귀신 등
다양하다. 지어놓은 이름들도 수를 셀수 없이 많다.
한 분 뿐이신 '창조주 신'의 이름들을 놓고
인생들은 싸우고 전쟁을 하고 죽이고 죽고
난리가 났다.
이름이 다르다고, 신을 섬기는 법이 다르다고,
신을 느끼는 법이 다르다고, 신의 관리법이
다르다고, 내가 보고 온 영의세계가 맞고
너는 틀리다고.
◆ 창조주신의 '저주'대로
창조주께서 하와에게 발휘되었던
뱀(지혜의 성품)에게 저주를 내리신다.
(창세기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아멘.
원래 뱀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녔었는데 저주를 받아
추악하게 변했다고 설교하는 것을 들었다.
창조주신의 지혜를 닮은 그 모습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지혜 성품도 최고로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것은 영의세계의 모습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창조주신의 저주로 배로 기어다니는 형벌을 받아
추악한 모습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내가 직접 보지 않은 것을 본 것처럼
꼭 그렇다고 단정지으면 안 된다.
서서 다녔던 지혜의 성품은 정상적인 지혜였고,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는 지혜의 성품은 비정상적이며
나쁜 꾀를 내는 성품으로 변질됐다.
그래서 머리가 좋은 사람이 머리 안 좋은 사람보다 더
나쁜 꾀를 내고 불법을 행하고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걷는 놈(의인) 위에 뛰는 놈(악인) 있고,
뛰는 놈(의인) 위에 나는 놈(악인) 있고,
나는 놈(의인) 위에 붙어가는 놈(악인)이 있다.
그런데 이런 악인이라고 불리는 사람 조차도 누군가를
혼내기 위해 창조주께서 사용하시는 방편도 있으시다.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으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아멘.
나나 내 주변 사람의 관계성은 창조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도 있지만 나에게 징계를 행하시기 위함도
있는데, 징계용으로 사용될 때 나는 그를 '악인'이라고
칭한다.
사람이 서서 다니니까 멋있지 만약 기어다닌다면?
아예 처음부터 기어다녔다면 다 그러니까 그게 또
멋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엔 서서 다녔는데
누군가 기어다닌다면 모습이 달라보이겠다.
눈 두 개와 한 개의 차이점.
이런 것은 영의세계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육의세계에서의 뱀은 정말 배로 다닌다.
무섭고 징그럽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보이기만 하면 죽여버리려고 한다. 뱀주를 담던지.
인간의 영의세계와 육의세계는 값이 똑같지만 보여지는
형상은 다르다. 육의세계는 별거 아닌데 영의세계는 거대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개미:인간' 정도이든지, 개미: 우주이던지
그 이상이든지.
육의세계는 뱀이 그저 혐오스럽다 보기싫다 마주치기 싫다
정도인데 영의세계는 그렇게 거대하고 비대칭이고
흉칙하고 더럽고 무시무시하고 창조주께 대항할 정도
같은 거대한 흉물의 모습이다.
마귀는 최고로 더럽고 보기싫고 흉칙스럽고 거대하고
비대칭으로 무섭게 그리면 된다고 설교들을 한다.
정말 그렇게 그리면 되는데 그게 자기의
나쁜 성품 영의세계의 모습이다.
그리고 자기 죄의 모습이기도 하다.
뱀(지혜의성품)에게 영의세계에서 너는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으라고 창조주 신의 저주가 내려졌다.
지혜의 성품에 저주가 내려지면서 변질된
지혜의 성품은 흙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흙을 잡아먹어라.
그 변질된 지혜 때문에 인간이 죽을수도 있다.
육의세계에서의 뱀은 육식동물이다.
흙으로 조성된 피조물들 중 고기를 먹고 산다.
◆ 신의 욕심과 나의 욕심
누구든지 '욕심의 유혹'을 다스려라.
최고의 지혜를 갖고 있었던 하와의지도 이 욕심을
다스리는데 실패했다.
지금 현재 상위 1%로 살든 3%로 살든 갑부로
사는 것이 내가 잘라서가 아니라 창조주 신의
계산된 값으로 산다고 깨달으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의 욕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잘라서 한 것이고 나의 성과로 이뤄진
'부' 라고 생각하면 더 욕심을 부리게 된다.
창조주 신의 뜻에 의한 욕심이 있고, 창조주 신은
그만하면 됐다는데도 나의 생각에 욕심이 일어나는
것이 있다. 잘 구별해야 한다.
"이만하면 됐는데" 라는 생각을 하는데도 자꾸 현실은
더 높아지게 되고 더 잘 살게 되는 상황도 있다.
이것은 창조주 신께서 더 높여주시는 것이다.
"이게 뭐야!,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세상은 참 불공평해" "쉽게 돈 버는 일이 없을까?"
라는 불만과 불평이 일어나면서 욕심을 부릴 때는
조심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영의세계의
계산법에는 창조주 신이 잘못했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악한 열매가 맺히게 된다. 자동이다.
◆ 욕심의 열매
'유혹'이라는 것은 어떤 사탄이나 마귀나 귀신이
와서 괜히 충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격 중에서
그래도 제일 잘 난 것이 설치는 것이다.
아예 모자라면 욕심도 없다.
있는 자가 더 있어지고 싶다.
지혜스러운 자는 더 지혜스럽고 싶고,
예쁜 사람은 더 예뻐지고 싶고,
권력이 있는 사람은 더 권력을 쥐고 싶고,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돈이 많았으면 좋겠고,
날씬한 사람은 더 날씬해지고 싶고,
무언가 갖게 된 사람은 더 가지고 싶게 되고
내가 많이 갖고 있는 것들이 더 욕심을 부리게 된다.
영의세계서 이 잘난 성격이 설쳐댄다.
더 높아지고 더 잘나지고 더 예뻐지고
더 날씬해지고, 더 똑똑해지고 싶고
더 갖고 싶어서.
그러면 영의세계에서는 나의 욕심에 대한
열매가 맺히게 된다. 나의 의지가 이 욕심을
발로 밟아버리지 않고 계속 안고 가면 그 열매를
먹게 되는 날이 온다. 그리고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그렇게 해대고 더 망가지고,
날씬하다 못해 거식증도 걸리고, 더 못생겨지고
더 욕심부리다가 낭떨어지로 떨어지게 된다.
◆ 현재 그만하면 됐다
내가 조금 더 잘나지면 그 잘남에 대한 성격이
영의세계에서 설쳐대게 되는데 이때 조심해야 한다.
패망의 선봉인 교만은 나도 모르게 온다.
주변에서 나를 위해주고 나를 높여주고 존대해주고
할 때 나는 스스로 교만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 때 조심해야 한다.
창조주 신께서 "너는 현재 그만큼이면 됐다"
하시는데도 좀더 권력을 얻고 싶고, 좀더 큰소리
치고 싶고, 좀더 똑똑해지고 싶고, 좀더 잘나지고
싶고, 좀더 부자로 살고 싶고, 좀더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좀더 힘 안들이고 돈 벌고 싶고,
좀더 날씬해지고 싶고, 좀더 예뻐지고 싶고,
좀더 상석에 앉았으면 좋겠고,
떡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 먼저 먹고 싶고
할 때 조심해야 한다.
영의세계에서 '패망'이 선봉자가 되어
내 앞으로 달려온다.
(데살로니가전서 5:1~3)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아멘.
◆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성경에서 인생의 이야기기 나오는 장면은
육의세계의 모습이고, 창조주 신이 거론되는
장면은 영의세계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 곳이 죽어서 가는
천국 본체의 세계는 아니다.
인생을 관리하시는 모습의 영의세계이다.
이 땅에도 청와대가 따로 있고 헌법재판소가
따로 있듯이.
지금 현재는 헌법재판소의 모습이다.
완전 죽으면 청와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사람에게 '인생' 이라는 형벌을 내리신 후
다스림의 법을 알려주시려고 쓰게 하셨다.
너희는 이렇게 창조된 존재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형벌을 받게 됐는지, 그래서 그런 인생을
살게 됐다고 간략하게 기록하시고,
사람답게 살면서 '악'이라는 것은 모냥이라도
버리고 사용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 중에서도 매를 맞게 된다고.
◆ 죽기 위한 육체 세포의 옷
아담과 하와가 모든 수고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벌과, 해산의 고통을 더하시는 벌과
죽어야 하는 벌을 내리시면서 육체의 옷을
입히신다.
(창세기 3:21) "창조주 신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멘.
그러면서 이런 육의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이것은 세포피부를 입히신 것이지 동물을 죽여서
지금처럼 소가죽, 악어가죽, 밍크털, 토기털,
양가죽옷 세마포옷 에봇 등을 해입히셨다는
것이 아니다.
원래 사람이 창조됐을 때는 창조주 신의 형상대로
창조주 신의 모습대로였다.
불순종의 죄를 짓고 나서 세포를 덧입게 됐다.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살다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장성한 존재로 창조됐지만
그의 후손들은 세포와 세포가 만나서 배가분열해서
10개월 동안 뱃속에 있으면서 사람의 형상으로 조성이
된 후에 세상으로 태어나게 된다.
(욥기 10: 10~12)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아멘.
장성한 사람을 보면 거대하고 멋있지만
결국은 세포 한개에 불과한 존재다.
세포로 조성된 이 육신은 신경이 온 몸에 퍼져 있어,
육체의 원본이 훼손되게 되면 그 고통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원본 훼손의 고통을 심하게 당하고 살수록
창조주 신께 심하게 혼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24시간
계속 받는 것일 거라고.
◆ 뇌도 10%대로 사용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후로는
창조주 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창조주 신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창조주 신을 알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
능력과 지혜와 존귀와 총명이 원시인처럼 됐다.
무화과 나무잎 걸치던지 벗든지 하며 살게됐다.
사람들 중 일부는 창조주 신의 뜻에 의해
영의세계를 체험하기도 하고 보기도 한다.
(창세기 4: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창조주신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멘.
이때 쯤 창조주 신께서 일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려주셨다.
인간은 창조주 신과 같이 살았던 삶의 기억이
지워지고, 능력과 지혜와 지식과 총명도 한자리
수로 감해져버렸다.
뇌를 10%대 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이것도 인간들이 설정해 놓은 퍼센트 이다.
정답은 오직 창조주 신께서만 아신다.
http://blog.daum.net/cleannature/193
(창세기 3:23) "창조주 신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아멘.
원시인이 되어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거두고,
물을 찾아 이리 저리 돌아다니게 되고,
살 곳을 찾아야 하고, 비가 오길 기다리다
기우제도 드리고,
창조주 신의 능력으로 창조된 우주 만물과
지구 땅덩어리 기운들이 무서워서 신이라고
절하고 섬기고 하면서.
◆ 수동의 삶을 위한 '결혼제도'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창조주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약간의 신을
경험할 수도 있다.
신의 존재를 경험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종교인이라고 하는 것은 친구따라
강남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생명나무를 먹고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시스템에서 내가 나를
낳고 죽고, 내가 나를 낳고 죽고 하면서
바턴을 넘겨주는 릴레이 경주 삶 시스템으로
바뀐다.
아담과 하와가 해산의 고통을 크게 당하면서
자녀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부부시스템으로
설정된다.
인간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결혼제도를 세우시고 중매도 서시고
딴딴딴따~ 해가면서 결혼시켜 주시고
창조주 신은 뒷방 노인네처럼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형벌의 내용을 알면 결혼을 안할 것이다.
자녀를 낳지 않고 혼자 죽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수동의 삶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결혼하고 싶고 가정을 꾸리고 애기를 낳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주신 것이다.
◆ 형벌은 '죽음'…마음은 '영원'
형벌은 죽게 하셔놓고 마음은 영원을 사모하게
하셨다. 살고 싶지 함부로 죽고 싶지 않게.
(전도서 3:11) "창조주 신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창조주신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아멘.
많은 영화에서도 보면 우주전쟁이나 지구전쟁
소재가 많다. 외계인이 지구를 쳐들어와서 인류가
위태롭다. 그러면 그냥 다 죽으면 어짜피 창조주
신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다 죽어도 된다.
하지만 창조주 신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죽기 싫은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살려고 발버둥치고, 온 나라가 힘을 합쳐서
지구를 살려내는 것으로 끝난다.
지구를 살리는 영웅도 탄생된다.
그냥은 못 죽고 안 죽는다.
끝까지 살아볼 때까지 살려고 한다.
이것이 인생 시스템이라서 그렇다.
◆ 선배의 값+나의 값=자녀 값
자녀라는 것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는
귀한 존재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와의 삶의
값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낳아놓고 키우다 나는 죽고
내가 살고 하는 그런 시스템일 뿐이다.
생명나무를 먹고 자동으로 살았던 시스템에서
낳고 죽고 낳고 죽고 하는 수동의 시스템으로
비뀌었다.
부자가 부유를 넘겨 주고 죽었다 해도
어느 자녀 대에 가서 망할 수도 있고,
가난한 자가 가난을 넘겨 주고 죽었다 해도
어느 자녀 대에 가서 흥할 수도 있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인생값과 현재
인생들의 삶의 값이 합산되어 복과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주 신께서 신에 대한 기억을
지우셨기 때문에 사람이 신을 찾을 수가
절대로 없다.
오직 창조주 신께서 일부 사람 중 아무나
택하시고 부르셔서, 창조주 신께서 계신다.
너희들을 보고 계신다. 너희들의 선과 악의
삶의 값을 계산하시고 복도 주시고 징계도
내리신다. 그것을 알라 하신다.
◆ 알겠니? 사람답게 잘 살아!
일부를 골라서 창조주 신의 존재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그들만 천국에 데려간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신의 존재를 알게 하신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창조주 신의 존재를
알려라 이시다.
그렇게 계산되어 살고 있으니 너도 근신하고
조심하고 다른 사람도 근신하고 조심스럽게
살게 하라이시다.
정직하고 바르게 착하게 진실되게 속과 겉이 같게
험담 이간질 하지 말고 속이지 말고 뺏지말고
나눠먹고 도와주고 살아라.
사심없이 살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해줬으니까 이렇게 해주겠지
하면 안 되고.
사업도 서로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닌 나 혼자의
욕심을 챙기다가는 밑바닥을 볼 수도 있고.
의료도 환자를 고쳐주기 위함 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더 크면 밑바닥을 볼 수도 있고.
정치인들은 국민과 나라를 잘 살게 하고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 자기 권력이나 부나 욕망을 앞세우면
밑바닥을 볼 수도 있고.
연예인들이나,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인 들은
팬들의 엔돌핀을 위한, 대중의 엔돌핀을 위한 삶인데
자신의 인기나 욕망이나 돈이나 다른 어떤 것이
'팬'보다 '대중'보다 위에 있으면 밑바닥을 볼 수도 있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잘 되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자기 성격대로 다룬다던지, 인격모독을 준다든지
하면 밑바닥을 볼 수도 있고.
건강이나 인생의 삶에 대해 강의하고 다니는 자들도
자기의 삶이 그와 같지 않으면 밑바닥을 볼 수도 있고.
속과 겉이 같지 않으면 느끼하다 못해 토해내짐을
당할 수도 있고. 종류들은 아주 다양하게 많다.
◆ '목적' 대로 살아라
인생에는 자기의 위치에 대한 목적이 있는데
목적(이루려 하는 일)과 상반된 삶을 살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부모의 목적, 자식의 목적, 교사의 목적, 학생의 목적,
친구의 목적, 사업가의 목적, 직원의 목적,
정치인의 목적, 연예인의 목적, 스포츠인의 목적,
미술인의 목적, 음악인의 목적, 상인의 목적,
농업인의 목적, 어업인의 목적, 직업의 목적.
다이아몬드의 목적, 금의 목적, 은의 목적,
옥의 목적 등이 있는데 우리가 보석이라고
부르는 것의 목적은 여자들 치장하는 목적이
아니다.
목적과 다를 때 범죄도 일어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도 일어난다.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창조주 신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창조주 신은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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