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영험록 모음 2
6 아내의 기사회생과 관음기도
(일타스님 글)
일제시대 평양에 살았던 유제규(劉濟奎)거사는 평양교당(平壤敎堂)에 다니다가 젊은 법사인 정지월(鄭指月)스님으로부터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문득 신심이 샘솟는 것을 느낀 유제규는 보문품을 배껴 부부가 날마다 보문품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보문품을 외우기를 몇 달, 1928년 12월 18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9시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매일의 일과대로 보문품을 세번 독송하고, '관세음보살' 3천념(三千念)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약 30분정도 숙면을 취하였을까? 비몽사몽간에 흰옷 입은 노부인(老夫人)이 나타나서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잠만 자고 있느냐!"
그는 정신을 차리려 하였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노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흰옷 입은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 누워 자고 있던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눈이 까뒤집힌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일그러진 표정만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버럭 소리를 쳐서 집안 식구들로 하여금 의사를 부르도록 하였고, 자신은 아내의 몸을 주무르고 코밑을 비벼 주고 인공호홉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숨소리는 점점 더 가늘어졌고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온 의사도 진찰을 해보더니, 이미 숨을 거두어 어쩔 수 없다면서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의사에게 주사라도 한번 놓아줄 것을 간청하였지만, 심장마비라고 하면서 돌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비통하게 울다가, 문득 보문품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衆生被因厄 중생들이 곤란과 액난을 당해 無量苦逼身 한량없는 고통이 다다를지라도 觀音妙智力 관세음보살의 묘한 지혜와 힘은 能救世間苦 능히 세간의 모든 고통을 구해 주시도다 具足神通力 신통력 모두 갖추시고 廣修智方便 지혜와 방편 널리 닦으사 十方諸國土 시방의 모든 국토에 無刹不現身 몸을 나투지 않은 곳 없으시도다
그는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아내의 기사회생(起死回生)을 기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관세음보살께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약 30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죽어 있었던 아내가 가늘게 호흡을 시작하더니, 정신이 드는듯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 앉았습니다.
절망과 근심에 빠져 있다가 환호하는 가족들에게 유제규 거사의 부인은 말했습니다. "사경을 헤매다가 숨이 끊어지자 혼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더구나. 너희들은 모두 슬피 울고 있고, 네 아버지는 나를 살려 달라며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더구나.
나도 엉겁결에 관세음보살을 따라 불렀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부인이 나에게 약물을 한 종지 주셨단다. 그 약물을 받아 마시자 내 혼이 다시 몸 속으로 들어가면서 숨이 통하지 않겠느냐."
유제규 처사 부부는 이토록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체엄을 한다음 불교를 더욱 열심히 믿었으며, 이런 사실이 평양 바닥에만 알려지는 것이 애석하여 1929년 2월의 <불교> 잡지 제 56호에 투고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불보살의 가피력! 그러나 지극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불보살의 가피가 끊임없이 미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극하게만 해보십시오. '나'도 충분히 가피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계(法界)에는 불보살의 자비와 묘지력(妙智力)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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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개속의 관음상
중국의 당나라 문종(文宗)황제 때 일이니까 지금부터 1천 3백여년 전 일이라 할수있다. 문종황제는 불도에 귀의한 신심이 남달리 돈독한 불교 신자였다. 그는 바쁜 정사 가운데도 전국의 명찰을 순례하며 참배도 하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또 내전에 불당을 차려놓고 거기에 관음상을 모시고 있었다.
당시 종남산(終南山)에는 유정(惟政)선사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황제는 그를 몹시 존경하고 좋아했다. 특히 그를 왕사처럼 모시고 자주 초대하거나 또는 찾아가서 그의 지도를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황제는 국가에 대사가 있을 때에는 예외 없이 먼저 궁전에 모신 관세음보살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했다.
또 그럴 때마다 그는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현몽을 얻게 되었다. 황제는 그 현몽대로 일을 처리했다. 그러면 무슨 일이나 어려움없이 순조롭게 풀리고 또 성취가 되었다. 문종황제는 불교에 귀의한 뒤로부터는 일체 고기를 먹지 않았다. 육물이건 해물이건 입에 대지를 아니 하고 멀리 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조개만은 끊지를 못 했다.
그것만은 먹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개만은 그냥 수랏상에 올라오도록 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그 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관세음보살 전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돌아와 수랏상을 받았다. 역시 수랏상에는 거의가 채소반찬이었으나 유독 해물로는 조개 한 접시가 올라와 있었다. 황제는 역시 조개에 먼저 손이 갔다.
벌어진 조개를 하나하나 까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까먹어 가다보니 그 가운데 껍데기가 벌려있지 않은 놈이 하나 있었다. 황제는 젓가락으로 조개를 벌리려 했으나 잘 벌려지지를 아니 했다. 그래서 할수없이 손으로 조개를 집어들고 힘을 주어 쪼갰다. 그랬더니 이게 웬 일인가. 벌어진 조개안의 조갯살이 금방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황제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관음상이었다.관음상은 서서히 광명까지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는 처음 보는 일이라 놀랍기고 하고 또 알수없는 일이라서 종남산에 있는 유정선사를 불렀다. 달려온 유정선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황제는 그 조개의 속을 그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선사님, 이 조개 속을 좀 보십시오. 짐이 아침 수라를 들다가 조개를 먹는데 그 중에 입을 벌리지 아니 하고 오무리고 있는 놈이 있기에 벌려 보았더니 이 속에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있지 않겠습니까. 조개속에 진주가 들어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처럼 보살님이 들어있는 것은 처음 보는 일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요” 유정선사도 기이한 듯 그 관음상을 드려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것은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조개로 응화하신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인 것 같사옵니다.” 황제가 이에 대답을 했다.
“저도 경전에서 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화현을 하신다 하더라도 불신 아니면 보살신 또는 벽지불이라든가 장군신, 비구신, 비구니신, 부녀신, 동남동녀신, 팔부금강신 같은 몸으로 화현하는 경우는 있어도 조개로 화현한 조개신에 대해서는 경전 어디에서도 읽은 기억이 없고 또 일찍이 들은 바도 없습니다.”유정선사가 다시 말을 했다.
“부처님 말씀에 불보살은 백억화신을 나투신다고 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백억화신 가운데 어찌 조개로 나타나는 조개화신인들 없겠사옵니까. 있을수 있는 일이옵나이다”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이 조개신은 누구를 제도하러 이렇게 내 수라상에 올라와 있을까. 그래서 황제가 선사에게 다시 물었다.
“선사님, 그렇다면 이 조개신, 즉 이 관음보살은 누구를 제도하기 위하여 오늘 이처럼 짐의 수랏상에 올라온 것입니까. 그것이 매우 궁금합니다.”선사가 말했다. “폐하, 그것이 그리도 궁금하시옵니까. 관음보살은 자비로써 모든 중생을 제도하시옵나이다. 어느 특별한 생명 하나만을 제도하시고자 화현하시는 것은 아니옵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제도의 대상이 다를수도 있사옵나이다.”
황제가 선사의 말을 끊고 이렇게 물었다. “그 말씀은 또 무슨 뜻입니까.” 선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소승이 이 관세음보살을 보고 접하게 되면 보살님께서 소승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렇게 화현을 나투시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수가 있사옵나이다. 그렇게 되면 소승이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과거의 모든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운 신심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옵나이다.
또 이 관세음보살님을 폐하께서 보실 때 폐하께서 바로 짐을 제도하기 위해서 관세음보살님이 짐이 드시는 조개속에 화현하셨구나 생각하신다면...” 황제는 다시 선사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리고 자기가 말을 했다. “알았습니다. 지금 관세음보살님께서 여기 이렇게 화현하신 것은 짐으로 하여금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좀더 선행을 하고 자비심을 베풀고 백성을 위해 더욱 봉사하라는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뜻을 잘 받들어 더욱 정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사가 감탄하여 말했다. “폐하께서는 과연 훌륭한 부처님의 제자이시옵니다. 폐하께서는 관세음보살님의 설법을 아주 잘 듣고 계시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폐하께 바로 그러한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오늘 이렇게 수랏상의 조개속에 그 몸을 나투셨는지도 알수가 없사옵나이다.
부디 불보살과 같은 지혜를 발휘하시고 또한 불보살과 같은 자비를 온 백성과 중생에게 골고루 베푸셔서 창생이 환희하고 나라가 번성하는 태평성대를 누리시옵소서. 모든 백성이 폐하의 덕을 기리고 찬탄하며 존경하는 성제가 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황제는 그 뒤부터는 조개까지도 먹지를 아니 했다. 따라서 수랏상에도 조개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조개 속에서 나온 관세음보살상을 산관음이라 하여 원불로 모셨다. 또한 항상 몸에 모시고 다니는 호신불을 삼기도 했다. 이와 같이 누구나 불보살을 진심으로 깊이 믿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불보살이 그에게 화신으로 나타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영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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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반야심경 독송의 가피력/진각스님
만약 불자님들의 가정에 한 가족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어느 병원에서도 소생할수 없다는 의사의 판명이 나온다면 당장 불자님이 무엇을 할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 때는 의지가 최대한 약해 지는 시기 인지라 모두가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크리스챤은 성모마리아님에게 불자님들은 각 사찰의 불보살님에게 그리고 설령 종교가 없던 사람 마저도 어느 한 종교에 매달릴 겁니다.
【 살려 주십사 】 하고 말이죠. 그 어떤 대상을 선택하여 기적의 의지를 갈구 하려는 것이 우리 중생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어떻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우리는 흔히들불보살님들에게 무아의 기도를 통하여 기적같은 가피를 입어 그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불안하고, 평상심을 잃을 때 혹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 그때 사람들은 기도를 할 겁니다.
다시말해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때는 기도 하려는 마음들이 없다가 본인이나 가족이 급한 경우에는 매달리려 한다는 것 입니다.
기도 정진은 불교에서는 가장 신성한 종교의례 입니다. 기도의 가피는 불보살님의 법력을 얻자는 것인데 그런 급한 경우가 아닌 매일 매일 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써 내려 가려는 이야기도 평상시에 반야심경과 108 배를 게을리 하지않던 어느 법우의 이야기 입니다.
【 묘법연화경 】 【 보문품 】에 " 선남자야, 만약에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가지의 고뇌를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백천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이제 그 가피력을 입은 법우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1991 년 6 월 3 일 오후 2 시에 서울 잠수교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김 준환이라는 학생이 (당시 고대 3 학년) 구입한지 5 개월이 되는 현대 스쿠프 승용차를 운전하여 강북쪽으로 가던 중 잠수교 타널 안에서 옆의 차를 피하려다가 앞에 가던 유조차 뒷 부분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가 옆의 옹벽에 부딪치며 전복되어 차가 엎어진채로 20 여 M 데굴데굴 굴러 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는 순간 큰 사고가 났음을 알고 정지 하였으며, 사고차는 유조차 앞으로 미끌어져 나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가 내리려는 순간, 그는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다름이 아닌 전복된 사고차가 안보일 정도로 하얀 모습의 커다란 부처님 형상이 차를 덮고 있는게 아닙니까?
순간, 그 유조차 운전자는 섬뜩함을 느꼈으며, 잠시후 그 부처님 형상이 없어지자 그는 차에서 내려 사고가 난 차에 가보니 차는 폐차 직전으로 찌그러져 버렸고 이상하게도 사고차의 운전자가 보이질 않는 것 이었습니다.
당시 51 세의 유조차 운전자는 운전 경력이 많은 사람이었고, 믿는 종교는 크리스챤이라고 했었습니다.
분명 이런 정도의 사고라면 운전자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운전자는 보이질 않고 옹벽 옆에서 한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조차 운전기사가 그 학생에게 다가가 " 학생 ! 혹시 저 차 운전하던 운전자 못 보았는가? "
그러자 그 사고차를 운전하던 김 준환 학생이 " 제가 저 차를 운전했는데요 "
유조차 운전기사는 믿기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물어 보았었습니다.
정말 운전자라면 이렇게 살아 있을수가 없으며, 더구나 온 몸에 상처도 없이 서 있을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조차 기사는 그 학생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사고처리를 해 주고는 그 학생의 아버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김 준환 학생의 사고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학생의 아버님에게 유조차 기사가 혹시 종교가 있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의 아버지는 종교는 불교 집안 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제서야 유조차 운전자는 자기가 본 형상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학생의 아버지에게 그 때 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난 뒤 유조차 기사가 김 준환 학생에게 다가가 그 사고 당시의 일이 궁금하여 물어 보니
" 사고 순간 차가 부딪히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자기를 감싸 안는 느낌을 받고 보니 차가 거꾸로 있는데 옆 유리창이 보이므로 안전벨트를 풀고책가방을 지자 누군가가 안아서 차에서 내려주었습니다 " ....그랬습니다.
자 !, 한번 생각 해 봅시다. 자동차 유리창 부분은 작습니다. 그 부분을 빠져 나오려면 멀쩡한 상태에서도 쉽게 빠져 나올수 없는 것 입니다.
당시 김 준환 법우도 회상을 할 때 " 저 창문으로 내가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모릅니다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마 이러한 일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시죠?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가피력입니다.
그 차는 결국 대파되어 폐차를 시키고 키가 181 Cm 였던 김 준환 법우는 그런 대형사고를 당하고도 큰 상처하나 없이 무사히 그 구멍으로 온 것 그것이 바로 불보살님의 가피력 입니다.
그의 가정을 잠시 소개해 보면, 그 법우는 2 대 독자로 그의 어머니 김월맹심 보살은 20 년 전 부터 시부모님의 영정을 처음 백련사로 모실때 그 인연으로 불교와 인연이 되어 불교에 귀의를 했고 백련사에서 정진하며 전국 어느 사찰이든 【 우란분절 백중 기도 천도제 】가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동참하며 하루도 정진을 게을리 않고 매주 토요일이면 철야정진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1995 년 쯤으로 기억) 백련사 재무로 일했으며 사고가 나기 2 년 전부터 아들 (김 준환 학생)에게 매일 아침마다 【 반야심경 】을 독송하라고 하면서 절을 최하 50 번 조금 더 하면 108 배를 시켰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 법당도 아니고 부처님도 안 계신데 어디에 절을 하냐 " 고 하자 김월맹심보살님은 " 지금 네가 앉은 자리가 법당이니 그냥 열심히 해 봐라 " 고 대답 했었답니다.
아들이 성품이 착하여 어머니 말씀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기도를 하고 난 뒤에 학교를 다녔다는 것입니다.
사고후 월맹심보살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집안은 늘 부유하고 걱정은 없었으며 백련사에서 기도 할 때는 특별히 원을 세운 것은 없으나 기도 중에는 '원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그저 좋은 인연이 맺어지기'를 바랐으며 사고 후 기도의 공덕을 부처님의 가피지묘력을 확신하고 기도드린 정성보다 너무 큰 가피를 입었다고 하면서 더 정진을 했었습니다.
불자 여러분.! 이와같이 기도는 어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이 기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이 불자의 집안처럼 앞으로 닥쳐오는 불행을 불보살님의 가피지묘력으로 미리 피할수 있다는 것 입니다.
모든 열매는 열매가 맺기 까지의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도 없이 나무한 그루 탁 심어 놓고 느닷없이 열매 맺기를 바라는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마시고 그 나무를 정성스레 가꾸며 결실을 기다리는 현명한 사람처럼 늘 쉬지않고 기도정신 수행을 하시면 불보살님이 감응하시와 가피를 주실 겁니다.
즉,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은 어느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운데 계신 불보살님에게 가피를 청하는 기도를 타력이라고 하겠습니까? 기도로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비워 버리면, 바로 그 마음 속으로 부처님이 자리를 하시는 겁니다.
본래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나 그 마음이 탐진치 삼독의 때가 끼어 볼수가 없는 것이죠.
용맹정진하는 수행 속에서 몸과 마음의 때를 벗기어 내는 청소를 하는 수단으로 통하여 각자의 마음이 청정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가피를 입을수 있는 것 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를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이 없이는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대 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보통 어떤 기도를 하면 한 번 기도를 시작하고 보면 늘 수많은 장애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장애가 생길 때 반드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재가불자 여러분 그리고 법우 여러분 ! 사람에게는 누구나 소망과 희망 이라는 것이 잇습니다.
소박하고 작은 것에서 부터 크고 위대한 온갖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발심하시어 우리들의 원을 실현키 위한 기도를 오늘 다시 정하여 쉼없는 용맹정진을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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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음기도로 불치의 병이 사라짐
(진각스님 글)
언젠가 광명사 신도회 총무 장상원 거사님은 당시 주소가 충북 청원시 석교동 육거리에 있는 뉴~코리아나 관광여행사이다.
몇 년 전부터 청원군 미원면 운교리에서 정미소를 하고 인삼 재배도 하며, 동네 이장도 보면서 시골에서 살고 있었으나, 얼마전 까지만 해도 청주에 나와 살았었다.
지금으로 부터 10 여년 전 장 상원씨가 간경화로 지라까지 붓고 아파서 수술도 못할 상태였다.
좋다는 약만 구해서 먹다가 병이 악화되어 다들 위험하다고 했는데 그의 형 두분이 서울에 잇으면서, 특별히 의사에게 부탁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부터는 절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큰 아들 정 현태군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와서 집안 일을 도왔다. 겨울방학이 되자 경운기로 볏짚도 실어나르고 벼짝을 메어 나르며 장정 부럽잖게 일을 하였는데 봄이 되자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허리 척추뼈가 3 개가 튀어나와 학교에 못 다니게 되었다.
청주의료원에서 디스크 병으로 진찰이 나와 고치려고 두 달이 넘도록 치료를 하였으나 병은 낫지를 않았다.
대전 대학병원으로 서류를 넘겻으나 그만두고, 스님의 권유로 휴학계를 내고 약도 썼다.
여름방학이 되어 구인사로 가서 한달 기도를 하였어도 병은 낫지를 않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닥쳐왔다.
스님은 또 권유를 하여 태현군을 구인사로 한 달 기도하도록 보내고 부친은 가까운 절에서 한 달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장 상원씨는 동네 이장도 보고 인삼포며 방앗간 때문에 낮에는 기도를 못하고 밤에 열두시가 넘어서야 기도를 할수가 있었다.
오랜 질병에 지쳤는지 하루는 스님 보고 "나는 내년 4 월을 못 넘길 것 같다" 는 마음 약한 소리를 하더라는 것이다.
스님은 몸이 달아서 장 상원 처사님을 데리고 구인사로 가서 태현군을 만나 "너는 병을 못 고치면, 병신의 몸으로 가정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너의 부친은 본인의 아픈 것에 대한 기도는 하지 않고 네 병이 낳기만 바라며 밤 12 시가 넘어서도 밤마다 절에와 너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 어젯 밤에는 내게 하는 말이 내년 4 월 까지를 못 넘길 것 같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게 급하니 네가 한달이 넘도록 기도를 하여야만이 병이 나아 너의 아버지가 너를 보고 신심이 생겨나 기도를 할 것이고 그래야 병이 나을 것이다." 라고 강조를 하였다.
장 상원씨는 아들을 보고 "병이 낫지 않으면 병신 자식 보기 싫으니 영춘강에 빠져 죽든지 집에는 오지도 말라" 고 하고서 왔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이 낳았다. 태현군은 반가움과 두려움에 스님에게 달려 왔다. 태현군이 병은 나았지만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밤이 되어 부모와 함께 절에 온 태현군이 스님께 인사를 하니 스님은 게속 기도를 해야 한다며 다시 기도를 시켰다.
그런데 태현군이 관세음보살을 몇 번 부르더니 ':쯔쯔 쫘쫘 쯔쯔 떠떠.........'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부모는 같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다 말고 "스님 얘가 집에서도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스님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그런 소리를 할수도 있다' 라고 말씀 하셨다. 교회에서는 이런 경우를 방언이라고 하고 절에서는 이런 경우를 변음이라고 하는데 자꾸 기도를 하다보면 과거의 업장이 들어나 없어지면서 그런말이 나오게 된다' 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스님이 태현군이 언제 부터 그랬냐고 물으니까 태현군이 말하기를........ "스님이 다녀 가신 뒤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낮에도 부르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힘껏 뺨을 때리잖아요. 그래서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아무도 안 때렸다는 거예요.
볼을 만져보니 분명 손가락 자욱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말이예요.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방에서 나와 대조사스님 묘소에 올라 갔더니 보살님들이 많기에 나는 한 쪽에 조용한데 가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데 또 누가 뺨을 너무 아프게 때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두 이상해서 묘소 지키는 스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스님은 웃으시면서 '너 기도 열심히 하라'고 신장님이 때리시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후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는데 누가 '학생 공양하러 가지' 하는 소리는 들리는데,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소리가 잘 되다가 ':쯔쯔 쫘쫘 쯔쯔 떠떠.........' 그러면서 아무리 관세음보살을 부르려해도 자꾸만 이상하게 변음이 나왔어요.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기도를 하였는데 언제 부터인가 다리가 안 아팠어요.
이말을 들은 부친도 "나도 이제 부터 기도를 열심히 해야겟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신심이 생겨나 남마다 잠들기 전에 꼭 관세음보살을 정진하고 낮에는 길에 다니면서도 불럿는데 하루는 꿈에 혜만스님이 :차차 괞찮아 질거요"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차도가 점 점 좋아져 농사일을 그만두고 그 뉴~코리아 관광여행사를 하고 잇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믿지 못할 이야기 같지만 관세음보살 부르다가 우는 사람, 귀신하고 싸우는 사람, 변음이 나오는 사람,들도 왕 왕 있다.
정성이 지극하면 그만큼 사람마다 다르게 신기한 일들을 경험 할수 있다.
여기서 나의 얼마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추가해 보고자 한다. 나는 이 곳 보성의 움막에 처음 올때만 해도 컴퓨터를 전혀 몰랐다. 크고 켜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인데 얼떨곁에 컴퓨터 한 대를 보시 받고 나서 10 년 동안 비어있던 이 폐가로 들어와 홀로 책을 구입하여 보면서 컴퓨터를 공부했다.
그러다 5 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우연히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인터넷으로 인하여 사이버사찰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나의 신기한 가피는 이때 부터 일어났다.
오늘 처음 글을 남기는데 아마 가피를 입어 보질 못한 사람들은 지금 부터 내가 적는 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고 설마...설마...할 것이다.
하지만 원력을 입었거나 가피를 입은 재가불자들은 당연 하리라 생각을 한다.
내가 컴을 혼자 배운지 5 개월이 넘으면서 부터 홈 페이지 제작에 들어 갔다.
가피는 그 때 부터 일어나기 시작 했다.
홈 페이지를 주무르다가 분명 컴퓨터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분명 이렇게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왜 안 되지.....? 하면서 그날 밤 끙 끙 앓으며 헤메다가 잠이 들면 꿈 속에서 얼굴도 볼수없는 하얀 가사장삼을 수한 사람이 나타나 정확하게 홈 페이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소스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럼 그 꿈을 꾸자마자 당장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그 생생한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보면 과히 아니 놀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가피를 무려 1 년이 넘는 동안 매일 꿈 속에서 그렇게 배워 오면서 사실 지금의 인터넷 사찰의 기본 틀이 짜여 졌다고 보면 된다.
기도란.......... 죽음의 직전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 마냥 약에 의존하지 않고 돈에 의존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나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고 오직 마지막으로 부처님에게만 의지하지 않으면 않되겠다고 생각 할 때 그 때야 말로 참다운 기도정진이 된 다는 것이 보통 스님들의 한결 같은 말씀들이다.
다른 잡된 생각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한 생각 관세음보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보살님을 불렀을 때 관세음보살은 그 사람을 도와 주는 가피를 내리는 것이다.
그런 기도정진을 함으로써 불자들은 어려운 난관을 미리막고,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수가 있는 준비가 되는 것이다.
모두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야 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닌 진실로 나는 하나의 원을 세우고 그 원에 대한 끊임없는 수행정진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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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금오선사의 기도 성취
현대의 대선사 금오(金烏, 1896-1968) 스님이 젊었을 때인 1920년대 초기,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인 수월(水月)스님을 뵙고 지도를 받기 위해 만주 봉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선 땅과 만주 땅과 러시아 땅이 합해지는 회령 지방을 조금 지나 막 러시아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적 떼들이 어느 부잣집을 털다가 반항하는 주인을 죽인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부잣집 안 주인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러시아 경찰들은 불심검문을 하다가 장비처럼 생긴 금오스님을 체포하여 그 부인에게 보였다.
"이 사람이 그 마적 떼요?" "그런 것 같아요, 마적 떼 대장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정신이 반쯤 나간 그 부인의 말 한마디에 금오스님은 완전히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고문을 당하면서 자백을 강요받았다. "나는 수도하는 승려이지 마적 떼가 아닙니다." 그러나 러시아 경찰은 믿지 않고 밤낮없이 고문을 계속하였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나자 고문을 중단하고 감옥에만 가두어 놓는 것이었다. '웬일일까? 고문도 그만두고 감옥에만 가두어 두다니..'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한국인 한 명이 그 감방에 들어왔다. 학교 선생인 그는 산골짜기에 아편을 심었다가 발각되어 잡혀 온 것이라고 하면서 물었다. "스님이 살인 강도의 누명을 쓰고 들어온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스님, 범인은 이미 잡혔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석방시켜 주지 않는 거요?" "아마, 이 감옥에서 나가기가 어려울 걸요?" "왜요?" "우선 조선 사람은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힘을 써 주지 않습니다. 설사 러시아 쪽에서 풀어 준다고 하더라도, 조선 사람이 러시아 감방에서 죄없이 갇혀 있었다는 것을 구실로 일본은 러시아에 보상을 요구합니다. 러시아로서는 공연한 말썽거리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차라리 감옥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보복을 두려워한 그 부잣집 안주인이 돈을 써서 스님을 풀어 주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큰일났구나. 이 감옥에서 살다가 죽어야 하다니! 이토록 난감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필경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탈출을 하는 수밖에는 딴 도리가 없겠구나.' 금오스님은 감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참선도 화두도 그만두고 오로지 관세음보살의 구원만을 갈구하며 부지런히 염불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밤, 어떤 사람이 철창 바깥에 나타나 감방 안을 들여다보며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쇠창살 두 개를 잡고 쑥 뽑아 올리자, 쇠창살이 그대로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뽑힌 쇠창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스님을 향해 '씩 -' 웃고는, 다시 쇠창살을 꼿아 놓고 사라졌다. 비몽사몽간에 이 일을 접한 금오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 쇠창살 두 개를 뽑아 보았다. 이상하게도 쇠창살이 쏙 뽑히는 것이었다. 스님은 감방을 빠져나와 형무소 문 쪽으로 다가갔고, 때마침 문지기들이 졸고 있어 몰래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형무소를 탈출하여 달려가다가 다리가 아파 수수밭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탄 간수들이 나타나 탈옥수를 찾는 수색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다시 안전한 곳을 찾아 피해 가는데, 한 간수가 말을 몰아 쫓아오더니 잡으려고는 하지 않고 묻기만 하는 것이었다. "탈옥수 한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소?" "보지 못했는데요." "이상하다. 어디로 사라졌지?"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가피로구나.' 스님은 불보살님의 은혜에 크게 감격하면서, 만주 봉천의 깊은 산림 속 토굴에 계신 수월스님을 찾아가, 1년 동안 모시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금오스님은 후일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그때의 일을 자주 들려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참선하는 수좌도 가끔은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이 금오스님의 말씀처럼 참선 수행자도 장애가 있으면 한바탕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도를 하면서 원(願)을 새롭게 가꾸고, 가피를 입을 일이 있으면 가피를 받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도심(道心)에 걸림이 없을 때까지 거듭거듭 행하여야 한다. 누구든지 갈등이 있으면 기도하라. 장애가 많고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기도를 통하여 거듭거듭 발심하라. 불보살님께서는 틀림없이 큰 힘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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