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월 12일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이른바 `애치슨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워싱턴 내셔널클럽에서 행한 `아시아의 위기`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선에서 제외한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으로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산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발표했다./연설을 접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정부에 선언취소를 강력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흔히 `애치슨 라인`이라 불리우는 이 동아시아 방위선 설정으로 애치슨은 6.25를 발발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선언이 6.25 발발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통주의자들은 이 연설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예측하지 못한 미국의 결정적 실책이라고 보는 한편 일부 학자들은 이 연설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음모라고 해석하기도 한다./애치슨은 이 지탄이 평생 마음에 걸린 탓인지 1971년 타계하며 "불행한 한국에 `불안한 침묵`이 퍼져 가고 있으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 [1976년] 여류추리작가 애거서 크리스티 사망 /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1976년 1월 12일 사망했다. 86세였다. 생전에 단편소설 147편, 희곡 15편, 장편소설 90편 등 많은 작품을 남긴 크리스티의 소설은 전세계 50여개국 언어로 20억부가 넘게 팔려 `성경(Bible)` 다음으로 독자수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그의 작품 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열개의 인디언 인형`) `쥐덫` `나일강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은 우리나라 독자들로부터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명탐정 셜록 홈스를 낳은 작가 코넌 도일의 작풍에 실증주의와 심미주의를 결합시킨 것으로 평가받았다. 행동보다는 추리를 더 좋아했던 그의 작품 주인공 에르퀼 푸아로가 1975년작 `커튼`에서 죽자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그 해 6월 1일자 1면에 이 탐정의 부음 기사를 실었고, 뜨개질을 좋아하는 그녀의 또다른 주인공인 독신 노처녀 제인 마플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시카의 추리극장`의 제시카 플레처를 비롯해 그 뒤에 창조된 여성 탐정들의 모델이 됐다./애거서는 외도가 심했던 첫 남편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이혼하고 14살 연하의 고고학자 맥스 맬로언과 재혼한 얼마 뒤 한 기자로부터 "왜 하필 고고학자와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때 크리스티가 한 대답은 이랬다. "고고학자 남편은 내가 늙어갈수록 나를 더 사랑할 테니까요." /애거서 크리스티/데임 애거서 메리 클러리서 밀러 크리스티 맬로원
출생 1890년 출생지 잉글랜드 데번 사망 1976년 직업 작가 배우자 아치벌드 크리스티/맥스 맬로원 자녀 로절린드 힉스매튜 프리처드(손자) /애거서 크리스티 /데임 애거서 메리 클러리서 밀러 크리스티 맬로원( 영어: Dame 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 1890년 - 1976년 )은 영국의 추리 소설 작가이다. 영국의 기사 작위를 받아 데임 칭호를 받았다. 메리 웨스트매컷( 영어: Mary Westmacott)이란 필명으로 연애소설을 집필하기도 하였으나 80여편의 추리소설의 필명인 애거서 크리스티란 필명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녀가 창조해 낸 에르퀼 푸아로, 제인 마플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그녀는 추리소설 장르에서 주목받는 작가로서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린다./그녀의 작품은 영어권에서 10억부 이상 팔렸으며 103개의 언어로 번역된 다른 언어판 역시 10억부 이상 판매되어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1] 이와 같은 기록은 세익스피어와 견줄만 한 것이다. 또한 그녀의 희곡 《쥐덫》은 1955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2007년 현재까지 공연 중이다.
●이응로 李應魯1904년 1월 12일 태어남 / 1989년 1월 10일 죽음
이응로 "나는 우리가 쓰는 말과 문자, 흰 옷을 입는 기상 등 깨끗하고 고상하고 착한 우리 민족성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응로, 1989
이응로는 주로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동양화에 서양 추상회화의 기법을 도입한 화가이다. 호는 고암(顧庵)·죽사(竹士)이다. 그는 19세 때에 김규진 문하에서 서예와 사군자 등 문인화를 배웠다. 이듬해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묵죽 墨竹>으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1945년까지 여러 차례 입상했다. 1935~43년 그는 일본에 유학해 서양화 기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에는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을 조직해 새로운 민족미술 발전에 힘썼다. 1958년에 파리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해오다가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명예상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이해부터 파리에 동양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묵화·서예 등을 가르쳤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재독(在獨) 작곡가 윤이상 등과 함께 옥고를 치렀고, 1977년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배우 윤정희 부부 납치음모사건에 연루되는 파란을 겪기도 했다.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1923. 1. 12
1923년 1월 신채호가 집필한 의열단 강령인 <조선혁명선언> 초판 원문 1923년 1월 12일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1910년 김상옥은 경성영어학교에 입학해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동시에 물산장려운동과 야학운동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암담한 국내 현실과 맞섰다. 1919년 4월 그는 비밀결사단체 혁신단을 조직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8월 일본 총독 사이토 및 수뇌부 암살을 계획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의열단에 가입한 뒤 여러 차례 국내로 들어와, 임시정부 의연금·독립자금 등을 모금하여 상하이로 전달했다.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은 주요 관청 파괴 임무를 띠고 국내에 잠입했다. 그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 형사부장을 사살하는 성과를 올렸다. 탈주에 성공한 그는 중으로 변장하여 숨어 있었다. 그러나 곧 은신처에서 발각되어 일본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던 중 마지막 남은 총탄으로 자결했다
●미국, 애치슨 라인 공표 1950. 1. 12
1950년 1월 12일 미국 국무장관 D. G. 애치슨이 극동에서의 방위선 구축을 내용으로 하는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등을 제외하고 일본과 필리핀을 연결하는 도서(島嶼) 지역을 중심으로 방위선을 구축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애치슨 라인에서 배제된 남한은 국제연합(UN)의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 아래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전쟁과 분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애치슨 연설은 한국정치사에서 6·25전쟁과 관련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학계의 전통주의자들은 6·25전쟁 발발 직전에 행해진 이 연설이 북한의 남침을 예측하지 못한 미국의 결정적 실책이라고 본다. 반면 일부 학자들은 애치슨 연설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음모라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