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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이 즐겨 찾은 보령시 오천항 특산물 전복을 아시나요?
아래의 영조실록 내용으로 보아 보령시 오천항은 우리나라 전복 주생산지로 제주도 전복과 함께 임금께서 즐겨 찾았던 특산물로 임금께 진상할 전복을 충청수영 영보정 앞 바다에서 채집하였다.
임금의 어명(御名)으로 전복 캐는 장면과 함께 영보정 모습을 그려서 바치라는 실록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오천항 전복은 품질이 좋아 명성이 높았으나 현재는 키조개의 생산량이 많아 오천항 전복의 명성은 아쉽게도 잊혀지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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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2권, 영조 45년 6월 25일 을해 1번째기사 1769년 청 건륭(乾隆) 34년) - 충청수사 서명응을 동지 정사로 삼고, 영보정 등을 그려 바치게 하다
충청 수사 서명응(徐命膺)을 승진시켜 동지 정사(冬至正使)로 삼도록 명하였다.
이때에 정사 한광회(韓光會)가 탄핵(彈劾)을 받아 기꺼이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영상 홍봉한(洪鳳漢)이 말하기를, "당품(當品) 가운데 갈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서명응을 특별히 정사로 삼도록 명하였다. 대개 서명응이 평소 문형(文衡)과 전조(銓曹)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탄핵을 입었으므로, 상소하여 휴치(休致)하기를 원하여 오랫동안 출사(出仕)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임금이 노하여 비록 외임(外任)에 보직(補職)하였으나, 그를 임용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므로, 이런 명이 있었던 것이다. 인하여 하교하기를,
"옛사람이 유민(流民)을 그려서 바친 자가 있었다. 일찍이 탐라 어사(眈羅御史) 심성희(沈聖希)가 전복[鰒] 캐는 모양을 그려서 바친 것을 보고 그 캐기 어려운 것을 알았다.
지난번에 듣건대 내국에서 바친 것도 또한 이 정자 앞에서 캤다고 하니, 전 충청 수사로 하여금 영보정(永保亭)을 그리고, 겸하여 전복을 캐는 모양을 그려서 바치게 하라." 하였다.
※ 보령산 전복은 수분함량이 많고 지방함량이 적으며 미네랄이 풍부하여 옛날부터 산모의 젖이 나오지 않을 때 닳여 먹었다고 하며, 간장보호, 피로회복, 피부미용, 시력보호에 효과 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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