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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아래의 사진은 ACRS 사무실이 있는 건물 1층과 2층의 층계 사이에
많은 그릇들을 노인들이 함께 만들어 장식으로 세워둔것이다.
ACRS는 (Asian Counseling and Referral Service) 워싱톤주 킹카운티게 거주하는
동양계 저소득자,이민자, 피난민이나 동양계 미국인들에게
상담과 도움을 주는 기관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그릇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의식하지 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루3끼 음식을 먹을 때 혹은 나가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을 때
수많은 그릇을 대하면서도
그릇의 고마움을 잊고 살 때가 많았습니다.
옛날 석기 시대에는 돌로 그릇을 만들어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철기 시대에는 쇠붙이로 그릇을 만들어 먹다가
놋그릇, 스텐레스 그릇, 사기그릇 인스턴트 종이 그릇 등 수없이 그릇은 변천되어 왔습니다.
그릇의 발달 과정이 인류문화의 발달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나무로 된 그릇, 우리가 어렸을 때는 놋그릇이 귀중했고 스탠리스 그릇, 사기그릇
그 모양도 가지각색 모양으로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전에도 보면 금으로 만든 그릇이 있었고,
은으로 만든 그릇이 있었으며,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릇은 여러 가지 가정의 역사와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 그릇을 사람에 비유해서 말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넓고 포부가 크며 이해심이 많은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릇은 사람의 경험을 비유하기도 하는데
군대에 가면 먹는 밥그릇을 가지고 상관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한국에 선교사로 다녀온 미국인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일이 있는데
리빙룸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있는 진열장에 요강을 갖다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옛날 한국에서 사용하던 실내 화장실이라고 대답하면서 그러나 이것은
한 번도 사용한 일이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곡선과 무니가 아름다워 갖다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캔디가 수북이 들어 있는데 꺼내 주면서 먹으라고 합니다.
그릇은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집니다.
비록 요강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은 캔디 볼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 그릇도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합니다.
거기다가 미움, 질투, 시기, 이기심으로 가득 채우면 좋은 것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그릇이라는 단어가 132회 정도 나오는데 여호수아6장에 보면
금 그릇, 은 그릇, 철 그릇, 놋그릇, 오지그릇, 옹기그릇, 질그릇이 다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릇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그릇은 음식만 담는 그릇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보면 기름을 담는 그릇도 있고
불을 옮기는데 사용하는 그릇도 있었습니다.
구약에서는 그릇은 무엇을 담는 용기로만 표현되어 있는데
신약에 와서는 놀랍게도
이 그릇을 가지고 사람에 비유한 것이 많이 나옵니다.
1.(행 9:15)에 보면 바울을 가리켜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자기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쓰임 받는 일군이 되었습니다.
그릇은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2.(롬 9:21)에 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시면서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3.(고후 4:7)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었을 때
우리가 복음을 마음에 간직한 것을 표현하기를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벧전 3:7) 에는 남편들에게 말하기를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니 아내와 동거하고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욥바에 내려가서 피장이 시몬의 집에 유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 하였습니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어 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먹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으로 나오는 것이 더 더럽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마 15: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의 교인들과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각자 맡은 직분이 있다는 것을
그릇의 비유를 통하여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딤후2:20-21절에는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각자 맡은바 직분이 있는데
아무리 높은 지위와 직분을 얻었다 해도
올바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 지위를 상실당하고 말 것이며,
아무리 낮은 직분이라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게 되면
귀히 쓰임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귀한 그릇이란 자기의 일에 충실한 꼭 쓸모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며,
천한 그릇이란 자기의 임무를 망각하고 소홀히 여겨서 성실하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1. 기왕이면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먼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릇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깨끗하지 못하면 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큰집에는 금과 은과 나무와 질그릇이 다양하게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각각의 목적에 따라서 각각 다른 재료로 그릇을 만드는 것이 지요.
금과 은그릇은 귀한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에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그 그릇 들을 사용합니다.
나무나 질그릇은 평범한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보통 가정에서 일상적인 일을 할 때에 그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여러 가지 다양한 그릇이 있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도
다양한 재능과 은사를 따라서 각각 다른 일군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찬양을 잘하는 분은 성가대에서 봉사를 하구요,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분은 교회학교에서 교사로서 일을 합니다.
성도들을 잘 위로하고 돌보는 은사를 받은 분은 구역의 일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 다른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릇이 각각 다른 재료로, 각각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그러나 어떤 재료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던지 간에,
그릇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오물이 잔뜩 묻어 있으면 그 그릇은 귀하게 쓰임 받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심령이 세상의 더러운 죄악으로 더럽혀 있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여도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회개하여 예수님의 보혈로서 깨끗하게 죄를 사 함 받고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릇에 담겨 있는 내용물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그릇에 보배가 가득 담겨 있으면
그릇까지 보배가 되어 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더럽고 추한 오물을 담아 놓으면 그릇도 더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근사한 옷을 입은 멋쟁이 신사 숙녀인데,
하는 행위를 보면 아주 몹쓸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더러운 것들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것들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 있는 사람들은
결코 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가롯 유다는 처음에는 주님에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에 사탄 마귀가 더러운 것을 가져다 넣었습니다.
결국 가롯 유다는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얼굴에 무엇이 묻으면 거울을 봐야 더러운 것을 알 수 있듯이
성경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봐야
우리의 마음 그릇이 무엇으로 차서 더러워졌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이 더러우면 Dishwasher에 집어넣고 씻을 수가 있지만
마음의 그릇은 꺼내서 세탁기에 집어넣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 그릇에 묻은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라는 세제만이 씻을 수가 있습니다.
(2) 견고하여 깨지지 않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귀한 청자, 백자 그릇이라도 깨지면 개밥그릇으로 전락을 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보니 개를 판다는 표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 옆에는 개 밥그릇이 놓여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주 귀중한 골동품이 었습니다.
이 사람은 생각하기를 개 주인이 저 그릇이 얼마나 귀중하고
값이 비싼 골동품인줄 모르고 개 밥그릇으로 사용하고 있구나.
내가 개를 사면서 저 그릇도 달라고 하면 진가를 모르는 주인이 줄 것이라
생각을 하고 개를 비싼 값에 샀습니다. 계산을 다 하고 나 후에 개 주인에게
내가 개를 샀으니 저 개밥그릇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개 주인이 하는 말이
내가 저 개밥그릇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개를 팔았는지 아시오?
어림 없습니다. 하더랍니다.
그런데 아무리 값이 비싼 그릇이라도 깨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고려시대에 만든 청자라든가 이조 백자 같은 도자기는 값이 많이 나갑니다.
그런데 그 비싼 도자기도 깨지지 말아야지 깨지면 값이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깨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①육체적으로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육체가 병들면 아무리 충성심이 강하다고 해도 충성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건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바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②그리고 인격적으로도 깨지지 말아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깨진다는 것은 큰 범죄를 한다거나
실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감이 무너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자신의 인격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그 직분에 따라서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목사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장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권사나 집사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장로가 장로로서의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집회 출석이라든가 헌금생활이라던가 신앙적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전도하고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교인들로부터 신뢰감이 무너집니다.
따르지 않는 봉사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훈련되지 않은 말은 주인을 등에서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앞발질, 뒷발질하면서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견고하게 하려면 훈련에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옛날에 받은 교육 가지고 안 됩니다.
사람은 계속해서 훈련받지 않으면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아무리 훌륭하고 과거에 훈련을 많이 받았더라도
시합을 앞두고 다시 훈련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평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은 키도 크고 용모도 준수하여 좋은 그릇이었으나
거짓말과 탐욕으로 채워졌을 때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그릇을 버립니다.
그러나 목동 출신의 보잘것없는 다윗은
어릴 때부터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하는 신앙과
그가 죄를 지었을 때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의 마음 그릇을 깨끗하게 비울 때
하나님은 다윗이라는 그릇을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도 처음 애굽 궁중에서 40년을 지나는 동안에
많은 학문과 무술과 경험 때문에
그 마음의 그릇이 교만으로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쓰시지 않았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쫓겨가서 40년 동안 교만으로 더럽혀진 그릇을 겸손으로 씻은 후
비로서 하나님이 불러 쓰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③신앙과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 마귀는 우리들을 넘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벧전5:8) 우리들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또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믿음이 깨진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깨어진 그릇은 어떤 사람입니까? 낙심한자들입니다.
그리고 불평과 불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봉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깨진 그릇이 버림을 받듯이
주님으로부터 장차 마지막 심판 때에 버림을 받게 됩니다.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기 전에
항상 깨지지 않는 믿음을 유지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기
도와 경건의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7년전 연말에 써 두었던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를 여기 소개 합니다.)
그릇
인간은 그릇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이 그릇과 멀어지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
토기 시대에는 흙으로, 목기시대에는 나무로, 석기시대에는 돌로
철기시대에는 쇠로, 놋그릇, 사기그릇, 옹기그릇, 등
그릇으로도 시대의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
금 그릇 은 그릇처럼 장식용 아름다운 그릇이 있는가 하면
한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종이그릇까지 인스턴트 그릇도 있다
군대에서는 밥그릇을 가지고 고참 노릇을 하기도 하고
사회에서도 때로는 밥그릇이 관록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한국에 살았던 미국인 집에 초대 되어 갔더니
응접실 진열장 제일 돋보이는 곳에 요강이 얹혀 있었다.
열어보니 캔디가 담겨 있었다.
물론 그는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양이 너무 예뻐 캔디 그릇으로 사용 한단다
그릇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천덕꾸러기도 될 수 있고
주인의 사랑받는 귀중품이 될 수도 있음을…….
흔히들 인간의 마음을 그릇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그릇은 주로 크다 작다 로 비유를 한다.
마음이 넓고 큰 사람을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옹졸하고 시샘을 잘 하는 사람을 작은 그릇에 비유 한다
그릇이 큰 사람은 얼마든지 담을 수 있기에 수용하는 자세이고
그릇이 작은 사람은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배타적 사람이 되나보다
그러나 그릇이 크다고 아무거나 담다간 마음이 상한다.
그릇이 작아도 재질이 단단하면 귀하게 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우리의 마음 그릇은 겉은 화려한데
너무나 약하게 만들어져 조금만 건드려도 깨지기 쉽다
그래서 쉽게 금이 가고 쉽게 깨진다.
그래서 그릇을 다루기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형용사 한마디에 깨지는 그릇
농담 한마디에도 깨지는 그릇
요즘은 그릇에 조금만 금이 가도 이가 빠져도 쉽게 버린다.
그래서 마음 그릇도 금이 생기면 쉽게 버리는 것일까
소중하고 값진 것은 금이 가도 버리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그토록 중요한 것이기에 버릴 수 없고
인격이 새겨진 최고의 작품이기에
금이 간 마음 그릇을 더욱 더 쓰다듬어
그 안에 사랑을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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