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영흥도에서 종일 일하면서 전기과전류 건으로 망가진 것들 복구에 바빴는데요, 오늘은 동쪽 끝 강원도 고성에 와있습니다. 태균이 아주 아기일 때, 그야말로 전국으로 태균이와 함께 무수히 돌아다닐 때 동쪽 끝 통일전망대 김일성 별장 근처 막 건축되던 콘도에 반해 회원권 하나 사놓은 게 있었습니다. 이름도 금강산콘도, 6.25전쟁 통에 남하한 북한 출신 부친을 통해 귀가 닳도록 들었던 망향가가 제 마음에도 있었나봅니다.
근래 거의 10년간 이용한 적이 없지만 예전 금강산콘도는 제 마음이 산란스럽거나 고민의 급수가 위험단계일 때 등등 세상을 등진 듯 떠나와서 며칠 묵어가는 친정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동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해변 산책길과 콘도와 이어진 작은섬이 매력적인 금강산 콘도는 태균이 나이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명절 연휴 때 집에만 있어야 하는 준이에게 여행을 선물하고 싶었고, 수요일마다 용인에서 버티며 식도락의 날로 삼으려는 태균이에게 요일강박도 한번 뒤흔들어주고 싶었고, 그리고 그나마 오늘 내일이 명절연휴를 앞두고 왠지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요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후에 대충 일을 마쳐놓고 내쳐달려 이 먼 곳 동쪽 끝 고성까지 왔습니다.
많이 바뀐 듯, 그렇지 않은 듯, 강산이 한번 또 변한 세월인데 고성까지 닿는 길은 예전의 분위기가 훨씬 대세입니다. 분명한 건 건물 내부시설들을 많이 개선시켜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 같습니다. 단체로 몰려온 유소년 축구단 아이들이 해변에서 벌리는 불꽃놀이도 볼만 합니다. 이제는 세월도 좋아져서 예전의 폭죽의 조잡함은 멋진 불꽃쇼로 진화된 듯 합니다. 끝물에 찍은 사진이라 보잘 것 없지만 여러 개가 터질 때는 꽤 볼만했습니다.
높은 층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야 하는 시각처리가 아직도 숙제인 준이는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게 공포입니다. 그래도 내가 손을 잡아주니 조금은 버팁니다. 불꽃놀이를 지켜볼 때는 마치 박쥐처럼 내 등 뒤에서 찰싹 붙어 불안을 덜어냅니다. 시각적 문제에 대한 대비가 좀더 일렀으면 훨씬 더 좋은 쪽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는 준이가 그래서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여행은 태균이를 늘 춤추게 합니다. 그저 싱글벙글, 간만에 오게된 동쪽 끝 콘도에서의 시간이 즐겁기만 합니다. 과거에 태균이에게 여행을 가고싶어요!의 상징단어글은 바로 금강산콘도이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고성으로 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제 마음을 자꾸 읽게됩니다. 아무 연고없는 서쪽으로 굳이 삶의 터전을 정해서 이사를 한 내면에는 고향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형제들과도 연락을 단절하고 그들로부터 생활반경의 거리와 마음의 거리를 멀리 둔 것은 단순하게 그 이유를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사연들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명절을 앞두고 수구초심하는 것처럼 강원도에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저는 강원도를 달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간만에 동해에 오니 집과 달리 몸은 편합니다. 집에 있으면 정리를 위해 부산히 움직여야 한다는 괜한 부담감이 짓누르지만 여기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그냥 하루 이틀 휴식이라 생각하고 쉬어보려고 합니다. 내일은 운동시킨다 생각하고 설악산을 올라도 좋고, 통일전망대를 가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도 여행을 왔으니 뭔가 특별한 게 먹고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글자로 써대는 태균이의 표현은 안 사줄 수가 없는 배꼽잡는 수준이었습니다. 콘도 벽에 붙어있는 다양한 식당들의 광고를 쭉 훑어보더니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것이었습니다. 구글검색을 엄청 해대는 엄마의 아들답게 요즘은 구글검색을 제멋대로 잘 써먹고 있습니다. 고성의 금강산콘도, 전설의 치킨을 기어코 맛보고야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