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두 번째 임금이 된 것입니다. 그 전의 임금들인 사울이나 다윗이 왕이 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안정된 국가와 왕권을 물려받은 행운의 임금이었습니다. 사울이나 다윗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거나 혹은 외교적인 노력으로 왕국의 외부를 공공히 하고, 내적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분열과 쿠데타의 위험을 제압하면서 늘 노심초사했지만, 솔로몬은 그런 위험 없이 국가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금수저 임금이었던 것이지요.
그런 솔로몬이 왕이 되면서 하느님께 청한 은총의 선물은 지혜였습니다. 솔로몬이 원한 지혜는 무엇이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가 말한 지혜는 치국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국가를 잘 다스리기 위한 지혜였지요.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적으로 보면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린 시대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경제적으로 최고의 전성기가 바로 이 솔로몬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는 경제구조를 이전의 농업 중심에서 상업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획기적으로 변환합니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중간이 있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따라서 무역을 위한 허브로 개발한다면 많은 경제적 이익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외국의 입장에서 쉬운 무역을 위한 항구도 개발하고 이스라엘 내에 자유 무역 지구와 비슷한 것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솔로몬이 많은 부를 축적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런 지혜를 “선과 악을 분별하기 위한 듣는 마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지혜의 원천입니다.
미리 솔로몬의 이후의 삶을 말씀드립니다. 그는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강력한 군주가 됩니다. 그런데 그 뒤의 그림자가 너무 큽니다. 왕정의 폐단으로 지적된 “백성의 노예화”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강한 국가가 되었지만, 그 나라 안에서 부가 재분배되지 않고 솔로몬과 가신들만 부자가 되는 부익부빈익빈이 가속화됩니다. 국가를 시장통으로 만든 결과로 이민족과 외국 사람들이 들어와서 사는데, 그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신정국가, 즉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통치되는 국가인데, 이민족의 신이 이스라엘에 들어오고 그들의 신전이 거룩한 땅에 세워집니다. 솔로몬 자신도 그런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기도 하여 그들의 환심도 사고, 이국인 후궁들을 많이 맞아들여 국가의 정통성을 흐리기도 합니다. 결국 재화가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고, 국가의 구성원들을 분열시킨 것이지요. 그 결과 솔로몬 사후 국가가 둘로 나뉘어, 북쪽에는 이스라엘이, 남쪽에는 유다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지혜는 무엇일까요? 참 지혜는 무엇일까요? 솔로몬의 번뜩이는 지혜의 예를 우리는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친모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의 재판 이야기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 3장 16절 이하에 있는 이 놀라운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참 지혜는 하느님께서 보시듯이 사람의 일을 보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진실과 공정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차지하는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의 중요성에 비해 그에 관한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총 22장 가운데 절반 정도 외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사후에 분열된 국가 왕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가 뿌린 분열의 씨앗으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두 국가가 겪는지, 왕들이 어떻게 탈선하고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금수저로 자란 그에게 국가와 국민은 무엇이고, 어떤 원리로 나라를 운영해야 맞는지는 숙제였습니다. 그는 초심으로 하느님과 정의를 선택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노력도 했겠지만,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유혹들과 타협하였고, 심지어 정당화했습니다. 식별이 안되었던 것이지요.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지를 구별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인간의 욕심이 끼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1열왕 3,11-12)
(비전동성당 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