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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같은 인생 7080년 산업전사라는 익숙한 슬러건은 시골 어려운 청소년 인력으로 신발공장 합섬공장 인형가발공장등 수출납기에 맞추느라 밤낮없이 분주하게 산업은 돌아갔다. 그 속에서 나의 인생은 잔디의 그루터기를 만들어 가는 고난의 연속인 청소년기를 보내야했다 금형공장에서 밤새 쇠를 가는 연마 가는 일로 지치고 피곤할 때 잠시 옥상에 가서 고향 잔디밭에서 보던 별들과 달을 보면서 자유로운 농사일 돕는 것이 훨씬 편하게생각했지만 빈곤의 산은 복된 생각을 허용하지않았다. 공장 기숙사는 공동으로 사용하지만 지식습득을 위해 밤잠안자고 지식습득할려면 불꺼라는 욕지거리로 봉변도 여러번 당하기도했지만 타향객지 서을에서 보금자리를 보듬고 지식을 습듭하려고 굴하지않고 포기하지않고 끈임없이 노력했다...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월세에서 전세 잔디뿌리가 흙을 조금씩 조금씩 보듬어 새순을 내고 줄기를 뻗듯이 동생들도 나의 보금자리에서 대학을 다니면 그루터기는 가꾸어졌고 한떼장씩 떠낸 잔디가 그렇게 그루터기를 이루듯 가난한 형재들은 그렇게 흩어져 새로운 가정을 가꾸며 렬심히 살아가는 그루터기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잔디같은 이력 어린시절 양지바른 개간 밭이랑이 나의 놀이터 초등학교 졸업후 객지 생활을 시작했었다. 콘크리트 위에서도 잔디는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그 암담하고 어둠의 청소년기 공장을 전전하며 쉬는시간 옥상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생각했었다.시골 빈농의 생활이 훨씬 자유롭다는 것을 그러나 고향집 화재가 나고부터 6남매는 아버지따라 강원도 탄광으로 할머니와 고향에서 그리고 형은 소도시 자취생으로 나는 홀홀단신 서울에서 뿌리내리기도 어려워 부초와 같았다.잔디는 뿌리가 뽑혀있어도 죽은 것이아니었다.비 한방울 이슬한방울만 젖혀져도 연명하며 기력를 축척할 수 있는 강인함이 있었다. 그루터기가 생겼다 그것은 단칸방 시골 형제들은 이곳으로 모이고 줄기는 뻗어나가며 뿌리를 내리며 자생했다. 시시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거움이 있으랴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는 다기능을 나는 일찍 몸에 베었다.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집 마당에 잔디를 키운다..손바닥만한 떼잔디가 얼마나 영토 확장을 잘하는지 푸른 초원위에서 그림같은 집을 짓고 여유로움과 수고로움을 안식할 수있는 금 잔디밭을 열심히 가꾸리라 그리고 자생력을 배워야 겠다..그래서 인생의 넓은 금잔디밭에서 인생을 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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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잔디의 특징은 왕성하게 생육하고 번식한다.뿌리는 끈임없이 흙을 보듬어 안고 옆으로 퍼지는 포복경(stolon)과 직립 생장하는 지하경(rhizome) 그리고 옆으로 번식하는 외부돌출형(extravaginal)으로 뿌리(root)와 새순(shoot) 그리고 씨앗(seed)으로 번식하는 다기능(multi player)식물이고 자연 그대로 거름을 주지않아도 자생하고 가을에는 황금색깔로 마음을 푸근하게하는 고효율 식물이다. 새마을 운동 이전 시대는 농사짓는 사람들은 등으로 져나르는 지게가 농사의 이동 도구였고 소 꼴(잔디잎)을 베러 산 기슭 오솔길 사이와 밭두렁이나 논두렁 사이 떼(잔디)들은 발길에 밟히고 밟혀도 끈임없이 줄기를 뻗고 기어나와 뿌리를 내리고 자양분을 흡수하려 줄기는 뻗어 발길질을 당하기도 했었다. 나무 한구루없는 경사지 밭둑도 논두렁도 잔디가 많이 심어진 둔덕들은 여름 장마를 견디며 자신이 맡은황토 흙을 잘도 지키고 뭉개지지 않았다. 그 많큼 자생력이 강하고 수분 흡수력이 강하여 자신의 자리를 잘도 지켰다...잔디는 또 시골 마을 어른이 돌아가시면 무덤에 덮을 떼를 떠서 듬성 듬성 심어놓으면 재생력이 강한 잔디는 푸른 양탄자를 만들어 조상을 섬기는 성지가 되게했고 양지 바른 언덕배기 금잔디 위에서는 연놀이와 장난 꾸러기들의 총싸움 놀이터의 공원이 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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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민족 백성과도 닯았다. 청일전쟁,일제강점기,독재시대등 짓밟힌 유린과 수난의 역사를 슬기롭게 끈덕지게 인내하며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지켜온 백의 민족을 민초라고 비유한다.강대국 틈에서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다. 7080년 산업화 주역인 산업전사라는 익숙한 슬러건은 시골 어려운 청소년 인력으로 신발공장 합섬공장 인형가발공장등 수출납기에 맞추느라 밤낮없이 분주하게 공장은 돌아갔고 밤에는 야간 중고등 학교 개설 운영하는 업체도 많았다. 주경야독하며 근면 성실하게 배우고 익힌 잔디같은 악착같은 헝거리 정신의 토대위에 산업화는 다져졌고 청출어람이라 했던가...90년대부터는 정보 통신 산업을 바탕으로 지금은 세계속에 한국이라는 it강국이 되었다...인터넷 클릭 시대 속에 잔디의 새로운 순들이 끊임없이 발아하고 있다.
잔디도 산업이다 깨어있는 민초(국민)들 덕분에 정치도 발전하여 독재화에서 자유 민주 제도로 이제는 세계화 되어 선진 국민의 대열에 접어들었다. 논두렁 밭두렁 산기슭 오솔길에만 있었던 잔디들은 도시의 고급 정원에 그리고 열광하는관중들 이 있는 종합 운동장을 덮었다..그리고 잔디 연구하는 학과와 연구소들도 많이 생겼고 잔디밭을 일구어 먹고사는 골프장이 2005년 현재 대략 180개정도 18홀 평균 30만평의 잔디밭이 필요하니까 짐작이 가리라생각한다..그 잔디밭에서 일하는 그린키퍼.캐디.코스관리등 수많은 직종이 생겼고 잔디밭이 배출한 세계적인 골프선수들(박세리.최경주.박은희.김미현등..)국위를 선양하고 있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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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같은 이력 어린시절 양지바른 개간 밭이랑이 나의 놀이터 초등학교 졸업후 객지 생활을 시작했었다. 콘크리트 위에서도 잔디는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그 암담하고 어둠의 청소년기 공장을 전전하며 쉬는시간 옥상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생각했었다.시골 빈농의 생활이 훨씬 자유롭다는 것을 그러나 고향집 화재가 나고부터 6남매는 아버지따라 강원도 탄광으로 할머니와 고향에서 그리고 형은 소도시 자취생으로 나는 홀홀단신 서울에서 뿌리내리기도 어려워 부초와 같았다.잔디는 뿌리가 뽑혀있어도 죽은 것이아니었다.비 한방울 이슬한방울만 젖혀져도 연명하며 기력를 축척할 수 있는 강인함이 있었다. 그루터기가 생겼다 그것은 단칸방 시골 형제들은 이곳으로 모이고 줄기는 뻗어나가며 뿌리를 내리며 자생했다. 시시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거움이 있으랴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는 다기능을 나는 일찍 몸에 베었다.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집 마당에 잔디를 키운다..손바닥만한 떼잔디가 얼마나 영토 확장을 잘하는지 푸른 초원위에서 그림같은 집을 짓고 여유로움과 수고로움을 안식할 수있는 금 잔디밭을 열심히 가꾸리라 그리고 자생력을 배워야 겠다..그래서 인생의 넓은 금잔디밭에서 인생을 논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