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와 중국을 경악케 한 요하문명의 실체
2009년 8월 29일(토 오후8시) KBS역사스폐셜제작팀은 중국 요서지역의 '요하문명'의 주역이 한민족이라는 내용으로 국민에게 방영했다. 1963년에 발견된 요하문명이 뒤늦게나마 이렇게 방송을 타면서 국민에게 우리 민족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할 것이며, 남북한 사학계가 민족공동체 차원에서 공동연구를 통하여 요하문명의 주역은 명백히 한민족임을 세계에 알려야 할 것이다.
BC 6000년, 만주 요하 지역에서 찬란한 문명이 꽃피기 시작했다.황하문명보다 천년이나 앞선 고대문명.특히, BC 3500년경 꽃 핀 홍산문화에서는 대규모 적석총, 제단, 신전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이 지역에 이미 초기 국가 단계에 진입한 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문명은 인류의 4대 문명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요하문명으로 인해 세계사는 다시 쓰여져야만 한다. 요하문명은 이들 4대문명보다 시기적으로 1000년 이상 빠르다.
요하유역을 무대로 문명의 새벽을 연 이들은 누구일까? 발굴 결과, 요하문명은 중국 중원과는 확연히 구별되며 오히려 우리 민족의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홍산문화 우하량의 여신묘에서 곰의 턱뼈와 진흙으로 만든 곰의 발도 함께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제사장으로 보이는 인골은 곰의 얼굴을 형상화한 옥룡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이는 홍산인들이 여신과 함께 곰을 숭배하는 곰 토템족이었다는 증거다. 우리 민족의 기원 신화인 단군 신화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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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묘에서 발견된 진흙으로 만든 곰발 소조상 |
중국인들은 오랑캐들이 사는 만리장성 이북은 문명자체가 없다고 생각하고 화하족의 발원지 황하강의 황하문명만이 중국문명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1963년 요하지역에서 황하문명의 뿌리가 되는 요하문명이 발견되어 중국사학계가 발깍 뒤집혀 졌다.
서양문명의 시원이 되는 중동지역의 슈메르문화(뿌리=요하문명)와 같은 여신전.여신.곰토템.빗살무늬토기.비파청동검 등 그야말로 한국인들의 문명이였던 것입이다. 그리고 거대한 뱀 돌무더기도 발견되어 중국인들이 숭배한 '용' 토템문화도 역시 한국인들의 문화였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러자, 중국사학계는 <중국문명의 시원지는 다양하다..요하문명의 주역은 황제헌원이다>라는 궤변논리를 늘어 놓으며 중국화하족의 문명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화하족의 우두머리가 된 동이족 출신 황제헌원세력은 만리장성 이북에서 활동한 적이 없는 황하강지역의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하강지역의 화하족은 동북방에서 이주해 온 신시배달족인 태호복희.염제신농.황제헌원의 동북방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하족이 염제신농.황제헌원을 자신들의 시조로 삼는 것이다.
요하문명의 주역은 한마디로 모계사회국가였던 곰족,즉 한반도에서 북상한 마고족의 문명이라 할 수 있다. 마고문명을 계승하여 바이칼 호수 동쪽지역인 송화강 지역에 12한국을 개국한 한인족이 토템으로 삼았다는 뱀이라는 것도 마고문명의 중심지 서해가 바다가 되기 전에 황하.압록강.한강.영산강 등이 합류하여 흐르는 거대한 아리수의 모양(뱀)을 잊지 않기 위해서 삼은 마고족의 기억의 산물이라 추정할 수 있다.
KBS역사스폐셜(요하문명)은 그 동안 요하문명을 중국문명으로 착각하고 있을 수 많은 국민들의 골을 때린 방송이였다고 생각한다.역사를 상실하면 얼빠진 민족과 국민이 되고 말며, 정체성도 상실하고 미래도 보장될 수 없다. 국사과목을 민족주체사관으로 개정하고 필수과목으로 선정하여 민족사를 바르게 교육시켜야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얼빠진 사대조공세력은 절대로 할 수 없는 문제다. 오로지 민족주의 세력만이 할 수 있다. 한국민족주의에 대해 혹자들은 '국수주의'로 매도하는데, <모든 인류가 널리 이롭게 살자>는 홍익인간이념을 모태로 삼는 한국민족주의는 결코 국수주의라고 매도될 수 없고, 세계보편적가치라는 점에서 '세계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표어는<민족도 하나!인류도 하나!민족의 완전한 자주주권실현만이 인류평화를 앞당긴다>가 되야 하는 것이다.
요하문명을 단순히 홍산문명의 시원문명이라고 단정하거나 한민족 문명이라고만 규정짓고 말 것인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KBS역사스폐셜에서 힌트를 주었다. 즉, 고고학적으로 빗살무늬토기.암각화 등 요하문명은 한반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신묘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여신의 얼굴, 눈동자에 푸른옥이 박혀있다
예컨대, 요하문명의 특징인 <옥>의 산출지도 바로 고대 중국인들이 '삼족오신화'와 관련하여 천제<준>이 산다는 '대황'으로 기록된 압록강지역이고, 빗살무늬토기도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암각화도 고대 마고족의 후예들이 산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마한'지역에 속했던 한반도 남부 경상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1천년 앞선 요하지역의 대형 피라미드...그리고 집안지역의 태왕릉(중국정부는 광개토태왕능이라고 속이고 있으나, 사실은 요하지역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래된 피라미드로 추정된다)과 압록강변 집안지역의 1만 5천기의 작은 피라미드들은 바로 요하지역의 적석총 문화의 발원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된 세계 검들의 원형도 한반도 서남부지역이다. 세계 고인돌의 시원지도 한반도다. 등하불명이다. 한반도에는 1만년을 전후로 하는 현인류문명의 흔적이 다 있다.
▲우하량 적석총
국내 사학자들은 사고전환을 해야 한다. 중국 요하문명은 1만년 전 육지였던 서해지역의 마고문명을 계승한 한반도 문명이 북상하여 건설한 문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즉, 기후이 점점 따뜻해진 관계로 북상한 한반도인들에 의해서 건설된 문명이다. 루트를 추정하면 1만년 전후 서해(마고)=>한반도=>백두산지역(압록강.집안)=>요서.송화강=>유라시아.아메리카이라 할 수 있다. 서해 마고문명지역과 가까운 제주도 토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라고 인식되어온 송화강 지역의 토기보다 더 오래되었고, 세계 개들의 조상은 유전학상 동북아시아 개들인데, 서해문명의 중심지로 추정될 수 있는 진도의 진돗개는 동북아시아 개들의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집안.요서지역의 적석총(피라미드)는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남방식 고인돌양식(땅을 파고 석판을 4각으로 세우고 시체를 묻은 후에 둘레로 돌을 쌓은 양식)에서 발전한 양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농경문화에 기반한 모계사회로써 곰족의 곰토템 신앙과 유목수렵문화에 기반한 부계사회로써 한웅족의 하늘신앙제단인 원형제단이 발견된 요하문명은 곰족과 한웅족이 융합하여 탄생한 단군한검천황과 단군한국의 개국신화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단군신화]의 역사적 진실을 그대로 증언해 주는 고고학적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단군한검천황은 태백산(백두산)에서 제사를 지낸 후에 외할아버지 나라가 있던 단허국 지역의 조양(아사달=평양/박지원 열하일기/한반도 세형동검이전의 비파청동검이 무수히 출토되는 지역)을 첫 도읍으로 삼고 <단군한국>을 일으켜 천황에 추대되었다. 단군조선이라는 국호는 22대 색불루 단군천황때 바꾼 것이니 단군한검천황이 나라를 열 때 국호를 조선이라 하면 안 된다. 단군한국이다. 그리고 숙신=조선=쥬신입니다. 단군한국은 22대 색불루 단군천황때 '조선'으로 국호를 변경했다. 국호가 바뀌는 배경은 권력변화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BC 2000년 경, 홍산문화는 하가점 하층문화로 이어진다.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발견되는 치를 갖춘 석성(고구려성의 특징), 비파형 동검 등이 발견되는데 이는 중원지역의 것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것은 요하문명의 주도 세력이 화하족이 아닌 우리 배달민족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치를 갖춘 석성은 고구려 성의 특징을 보여주며, 비파형 동검도 그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요하유역과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하가점 하층문화는 완전한 국가단계라고 평가되는데, 기원전 2,000년 경 요하유역에 있을 수 있는 국가는 무엇일까? 모든 사서를 뒤져봐도 그것은 단군조선 외에는 없다.그래서 단군한검천황이 첫 도읍지를 삼은 지역이 비파청동검이 무수히 출토되는 요서지역이여야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2.고대 동방과 서방패권을 장악했던 단군한검천황의 후예들
1960년대에 북한을 방문했던 중국의 지성인이면서 중국혁명의 지도자 주은래가 말했다."동북방 만주족의 나라 청나라가 중국의 영토를 크게 넓혀 준 점에 대해 감사한다."고
▲주은래가 고마와 한 동북방 만주족 청나라 영 토
100년전까지 중국대륙은 백두산지역에서 일어난 청나라가 지배한 나라였다. 청나라는 금(김씨 나라)를 계승한 나라다. 몽골에 멸망당한 금나라 시조는 아골타다. 아골타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태자 마의태자의 아들 김행의 6대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金]의 개국시조을 기록하고 있는 [금사]에는 금나라 시조 아골타는 신라인으로 마의태자의 6대손 즉 마의태자로부터 7대째가 되는 인물이며 성이 김씨이기 때문에 국호를 김(금)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나라를 계승한 청나라 황실의 성씨가 애신각라라는 배경은 신라를 잊지말자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배경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때 청나라가 부모국 조선을 구해겠다며 구원병을 보내겠다고 선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를 묵살하고 계속 명나라를 섬기고 청나라를 오랑캐취급해서 결국 청나라 세력이 명나라를 무너뜨릴 정도로 막강해진 인조 때 조선을 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씨 조선이라는 나라의 소중화 사대주의가 불러온 하늘의 재앙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과 개방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단고기]기록에 따르면 BC1200년경에 22대 소태 단군천황은 수유족(흉노) 출신이면서 단군천황을 보좌하는 좌현왕 서우여(선우.수유)에게 단군천황자리를 승계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천황 승계는 5가 만장일치 추대방식이 전제가 되야 했다. 그래서 고구려 시조 고등의 손자이면서 단군천황을 보좌하는 우현왕 색불루가 취소하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소태 단군천황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분노한 색불루가 백악산 아사달(장춘)에서 쿠테타를 일으켜 단군천황에 오르고 이제 저항한 서우여세력을 무너뜨리고 서우여를 번조선 왕으로 임명했다. 이 때 난하강 서북쪽 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번조선 제후국 수유족이 색불루의 단군천황직위에 반대하며 단군조선의 직접 통치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이주하여 세력을 키운 후에 일부는 BC800년경에 유럽으로 진출하고, 일부는 아시아 초원지역에 남아 중국을 위협하니 바로 스키타이 흉노라 할 것이다. 서방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백인들과의 혼인으로 혼혈족(투르크족=돌궐=터키족=위그르족)이 형성되기도 했다.
색불루 단군천황을 기점으로 동방패권은 고씨족(부여.고구려.백제.대진국.일본)이 장악했고, 유라시아 서방패권은 스키타이 흉노(유목세력)가 장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소수가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15년간 중국을 지배하다 다시 한족에게 멸망당하고 한반도남부지역으로 망명해 온 흉노 휴도왕 아들 김일제 후예인 가야와 신라다. 단군조선의 제후국 흉노는 유목족이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제훅국 선비족(당나라)와 혈통적으로 가까울 수 밖에 없다. 이들 흉노시조는 단군천황의 신하였던 색정이고, 선비족의 군장(대인)은 단군천황의 동생이 임명되기도 했다.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고 동방의 패자였던 고씨족(고구려.백제)를 무너뜨린 배경이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망명하여 일본으로 다시 태어난 백제황실(일본왕실)이 한반도침략을 버리지 못한 역사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올라가다 보면 결국 모두 단군의 후예들이였다. 이제 하나로 힘을 합쳐 한반도에 갇혀 살지 말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고)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족비젼이며 유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민족사 교훈은 합의와 원칙을 위반한 행위가 얼마나 큰 분열과 상처를 주고 결과적으로 대립과 전쟁을 낳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한 통일문제도 그래서 결국 합의존중과 합의이행밖에 없다.
3.고대 중국지역에서 옥황상제는 천상에 해당하는 동북방지역의 한웅.한검천제
서이.북이.동이는 화하족이 살던 황하강지역을 중심으로 화하족이 설정한 기준에 불과하다. 화하족의 거주지였던 중원이라는 황하강지역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동이.서이.북이.남이지역이 어디인지 나온다.
▲빨간공간이 화하족의 중원지역(동이=산동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북이=북방 한국인들)
지들이 사는 좁다란 황하강지역을 배경으로 중국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고대 한국인들을 가르는 용어입니다. 중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용어자체를 우리가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늣입니다. 예컨대, 중국인들이 구분해서 지칭한 흉노.몽골.거란.돌궐이 서로 다른 민족인양 착각할 수 있는데, 사실 혈통적으로 같은 유목한국인들입니다. 우리 [한단고기]에는 흉노가 번조선 제후국인 수유족(선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황하 앙소문화 유적지의 삼족오-동북방지역에서 이주해 온 한국인들의 문화흔적이다
고대 중국지역과 화하족은 모두 신시배달과 단군조선의 작은 제후국에 불과했다. 유약한 어린아이들 같아서 태호복희.염제신농.황제헌원 등 동방의 한국인들이 문화의 젖을 주면서 길렀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서 자신을 양육해 준 부모를 업신여기고 살해하는 역사왜곡을 해 왔으니 배은망덕한 민족인 것이다.
은나라.주나라 등 고대 중국왕들이 산동지역 태산에서 제사지내는 행위는 단군한국의 천제(천황)을 옥황상제로 생각하고 드리는 지상의 제사였다. 당시 단군한국의 땅은 천상지역이다. 즉 하늘나라다. 중국지역은 천하지역이다.
▲산해관 만리장성 입구에'천하제일문'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중국지역으로 들어가는 산해관 만리장성입구의 문이름이 천하제일문이다. 즉 중국지역은 지상이요, 인류문명의 꽃을 피운 단군한국의 지역은 천상이라는 의미다. 단군천제를 옥황상제로 생각했다면 단군천제들이 얼마나 완전한 성인군자수준의 인물들이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