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묘청을 역사의 스타로 등극시킨 이가 역사학자 신채호이다. 하지만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가면 묘청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그가 묘청을 평가하면서 자주 등장 하는 단어가 ‘광망(狂妄)’이다. 즉 ‘미친놈처럼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났다’ 라는 뜻이다. 묘청은 어떤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풍수지리와 관상을 이야기하는 도사였던 것 같다. 대부분의 도사들이 그러하듯 약간의 사기성이 있었던듯하다. 묘청이 당시에도 의심을 받았던 풍수설을 이용하거나 대동강에 떡을 가라앉혀 여론을 조작하려는 것은 신채호도 말했듯 별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이런 신화조작은 역사서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믿거나 말거나 수준에 일이었다. 고려의 지식인들이 묘청을 지지한 이유가 그의 이론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은 아니었던듯하다. 물론 그를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한 정지상은 풍수나 도참에 관심이 있었던듯하지만 그도 근본적으로 유학자라 상식을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묘청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 했다는 것이 옳다. 묘청은 선동에 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유명한 신흥종교교주나 목사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관찰하면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면이 많다. 혼란한 세상 인간은 믿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싶어하고, 찾았다 싶으면 옳다고 믿고 싶은 경향이 강하다. 안 믿는 것 보다 믿는 것이 세상살기에는 편안하다. 세상은 불확실하다. 교주의 카리스마와 매력이 불확실한 세상에 정답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매력이 강하다.
묘청의 뒤에는 지식인 그룹이 있었다. 정지상의 입장에서 묘청은 서경지식인 그룹의 진짜 이야기를 위한 예고편 이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바람잡이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 증거로 묘청일파가 서경에 행차한 인종에게 요청한 개혁안 15개 조항을 보면 실상 풍수지리에 관한 것은 1개항 뿐이었다. 관리들의 비리척결이나 인재선발에 관한 것이 4개 항, 백성들을 위한 제도 개선에 관련된 것들이 10개 항이다. 인종이 이를 채택하여 ‘유신지교’를 내렸던 것은 왕권을 회복하고 정치기강을 바로 세워 민생을 구제할 수 있는 정책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묘청의 도사로써의 기행을 가지고 본질적인 내용을 축소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풍수지리는 둘째 치고 당시 개경의 궁들은 이자겸과 척준경의 난으로 많이 불타고 없어졌기에 서경천도는 어느정도 합리적이었다. 묘청이 풍수지리를 이용한 혹세무민을 했을 지는 몰라도, 그 당시 분위기에서는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과학이 득세하는 현대에 와서도 종교나 미신을 이용해서 공공연하게 사기를 치는 것을 본다면, 과학이 덜 발달한 당시에 묘청의 행동은 큰 문제될것이 없었을 것이다. 필자의 판단에 묘청은 서경의 지식인들이 만든 일종에 CF모델 정도 였을 것이다. 문제는 처음에는 모델역활만 충실히 했던 묘청이 점점 자신이 진짜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뿌리가 약한 선동가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1135년(인종 13년) 묘청, 정지상, 백수한 등 이른바 서경 세력이 난을 일으킨다. 묘청의 난이 내분으로 붕괴되는 것을 본다면 당시의 난은 완전한 합합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묘청의 독단에 의한 난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준비되지 못한 신념으로만 뭉친 서경세력은 내분으로 주저 앉는다. "전쟁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나폴레옹의 말이다 고려내부에 있던 모순은 전쟁으로 정당화 된다. 모순을 현실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김부식은 이를 평정하는 원수로서 삼군을 지휘했다. 반란군을 진압한 공로로 그는 공신이 되어 고려3대 명문가가 된다. 승승장구하던 김부식은 묘청의 난에서 함께 활약한 윤언이와 갈등을 빚으며 결국 사직하게 된다. 유명한 윤관의 아들이며 왕의 장인에 처조카인 윤언이는 당시 김부식과 비교될 정도로 학문과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김부식은 자신의 부관으로 출정했던 윤언이를 묘청의 천도운동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탄핵한다. 결국 인종은 김부식의 위압에 윤언이를 귀양보내지만 3년 뒤 김부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면령을 내린다. 결국 사면된 윤언이가 중앙정계로 복귀하는 날 정계은퇴를 한다. 이후 김부식은 유명한 역사서 삼국사기를 편찬한다.
첫댓글 지난번에 김부식 이야기에서 이번에는 묘청으로 같은 사건을 서로반대편의 인물들의 이야기로 글을 써
주시니 역사의 깊이를 더 알수 있고 사건의 흐름의 내용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볼수 있어서 너무 재미 있습니다.
좋은글 적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