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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사건재판을 재판한다
KAL기 사건을 둘러싼 의문점들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김현희에 대한 재판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문과 형량을 전혀 낮출의지가 없어 보이는 변호인들, 게다가 사형선고를 받은 김현희는 시쳇말로 "자고 일어나보니"사면돼 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부호로 뒤덮힌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다.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일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다.
그 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오직"진실"만이 유가족의 회한어린 세월을 조금이나마 보상해줄 수 있으며,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을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현준희 전 감사원직원
불구대천이란 말이 있다.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뜻이다.
복수는 원시시대 이래 면면히 이어져온 "피의 도덕"이자 의무로, 원수를 죽이지 않는 한 살아남은 자로서는 오욕이었다. 그러나 근대국가 성립이후, 개별적 복수는 금지되고 국가가
대신 복수해주는 국가 형벌권이 나타난다. 그만큼 국가는 공정하고도 준엄한 법집행을 해야할 터이다.
KAL858기 사건 피해가족에게 있어, 김현희는 불구대천의 원수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5공(6공포함)세력들은 김현희를 감방 한번 안 보내고
옥이야 금이야 호텔급 안가에서 고이 모시다, 사면한 후 스타로 띄워 사건 자체를 실종시켜 버렸다. 아니, 115명이나 희생시킨 마녀를 그냥 살려두다니 이 나라는 법도 없단 말인가, 아니다. 정식재판을 거쳐 사형을 내렸고 합법적 사면을 했다.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꼼수지만, 필자는 사면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엉터리 재판을 파헤치려는 것이다. 김현희의 1심재판은 1989년 3월부터 개시됐고, 이 재판의 대상이 되는 검찰기소는 동년 2월에 있었다. 언론에 공개된 공소장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김현희 아버지는 앙골라주재 외교관 김원석
- 김정일의 친필지령에 의해 범행
- 남북조절위원회 참석 장기영대표에게 꽃을 준 화동이 김현희
- 콤포지션4 시한폭탄과 액체폭약을 장치하여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
그러나 사실로 확인된것은 3가지 뿐이다.
첫째, 중동에서 서울로 순항중인 KAL858기가 실종됐다.
둘째, 일본여권을 소지한 두 남녀가 비행기가 사라지기 전 내렸다.
셋째, 두 남녀는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자살을 시도하여 남자는 즉사하고 여자는 미수에 그쳤다. 북한이 폭파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 (안기부, 검찰, 재판부)는
위 3가지에다 김현희의 거짓말을 적당히 섞어 북한테러로 규정했다.
6하원칙을 무시한 엉터리 공소장과 판결문
검사의 공소장이나 판사의 판결문은 6하원칙에 의해 작성돼야 하는 것이 철칙이다.
6하원칙에 비추어 이 사건을 뜯어보면 엉터리도 이렇게 엉터리일수 없다.
맨 먼저 언제(when).어디서(where)이다. 1988년 1월15일 안기부는 KAL858기가 1987년 11월29일 오후 2시경 미얀마령 안다만 해역 어디스상공에서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아사히 신문)에서 현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어디스가 아니라 토리스 상공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침묵했다. 따라서 (아사히)의 확인이 틀렸다는 증거가 없는 한 판결문
상의 사고일시와 장소는 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 엉터리 재판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누가 (who)범인인가"이다. 정부발표는 김정일의 친필에 따라 김현희가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필은 없고 말뿐이다. 증거없이 자백만 가지고 발표하는 것이 안기부의 주특기라지만 김정일의 친필은 너무했다. 한번 생각해 보라. 김정일은 5년짜리 한국 대통령과 비교도 안될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런그가 걸렸다 하면 치명적인 테러에 굳이 물적증거까지 남기면서 지시한다?
헌법상,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은 자백은 무죄다. 지금이라도 김현희가 "나 범인 아니야, 증거있으면 대봐"라고 배짱으로 나오면 속수무책이다. 아무래도 찜찜한 안기부는 그럴싸한 물증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장기영에게 꽃을 준 소녀가 평양의 김현희라는 사진이다.
1989년 3월2차 공판에서 김현희는 "(평양의)집에도 똑같은 사진이 있다"고 진술까지 했다.
서로 입을 맞추었지만 화동의 귀와 김현희의 귀는 달랐다. 귀 모습은 지문과 같이 평생 불변이다. 따라서 김현희는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럴싸"가 "아뿔사"로 변해버린 치명적인 실수다.
그러면 무엇(what)이 사고당한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KAL858기다.
다섯번째는 사건의 동기와 배경이 되는 왜(why)이다. 정부발표는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사고 당시에는 남북한 공동개최를 전제로 북한에서도 경기장, 선수촌, 공항 등을 건설 중이었다. 진정 올림픽방해라면 사마란치 등 체육계 인사나 정치적 거물이 탄 비행기를 테러하련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무슨 영양가가 있다고 노동자를 죽이겠는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how)이다. 정부는 기내에 시한폭탄을 장치하여 폭파했다고 한다.
이 역시 증거라곤 없다. 안다만에서 회수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의뢰한 1백50여종의 증거물에서도 폭파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 얼마나 황당한 사건인가.
6하원칙 중 사실로 확인된 것은 무엇(what)하나 뿐이다. 김현희가 북한 여성인지도 불분명한 실체없는 유령사건인 것이다.
김현희 사건 담당검사와 판사의 "화려한 "이력
정부에선 북한테러로 밀어부쳤으나 일부어론은 미스테리 사건으로 규정했다.형법학자인 일본대학 이타쿠라 교수는 "한국에선 김현희의 자백과 상황증거만 가지고 공소유지가 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렇게 큰 사건에 물증이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이라면 도저히 공소유지 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일사천리로 공소유지가 됐다. 순진한 일본인 교수는 한국의 5공정권을 몰랐던 것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 단군이래 가장 썩었다는 5공은 사법부까지 완전 장악하여 군사정권 수호에 철저히 동원했다.
문민정부 초기인 1993년, 사법개혁의 대대적인 바람이 불었는데 그 핵심은 5공정권에 부역한 정치판사의 청산이었다. 당시 대한변협에서는 정치판사를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법관으로서 숭고한 책무를 저버리고 정치권력과 영합,납득할 수 없는 재판을 하거나 시국사건의 재판을 조정, 통제했던 인사"로 규정했다. 이 같은 규정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직위중 하나는 시국사건을 도맡아 처리했던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이 자리에 임명되려면 안기부나 보안사 검증을 거쳐야 할 만큼 대법관등의 출세코스로 통해온 요직이었다. 사법부의 "공안부장"이라는 별칭답게 판사업무를 감시하고 권력기관의 로비창구 역할을 해온 자리이기도 했다.
따라서 특정지역 출신은 단 한명도 없었다. 형사재판은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가운데 판사의 판결로 이뤄진다.
KAL858기 사건의 경우 검사는 서울지검 이상형(현 나라법무법인 대표),국선변호사는 정재헌과 안동일이었으며, 1심재판은 서울 형사지법 수석판사인 정상학(현 우일법무법인 대표)이 맡았다.
전통적으로 인치가 법치보다 우선하는 이 나라에서 그것도 노골적인 5공이기에 상기 법률가들의 캐릭터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상형 검사는 5공시절 대표적 공안통으로 "이와 잇몸"사이라 할 안기부 정형근이 "토스"한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 김대중 외환수수사건을 직접 조사한 장본인이다. 정재헌 변호사는 변협회장 시절 김대중정권의 "법치주의 후퇴"를 비난하여 변호사 단체간의 내홍을 야기한 정통 보수인사로 분류된다.
안동일 변호사는 4.19사월회 회장을 역임했고,통일.환경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인권변호사로 인식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 정상학 판사,그는 5공 시절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을 처리한 운동권의 "숙적"이다.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이라든가 임종석(현 열린우리당 의원)전대협 의장 사건도 다 그의 손을 거쳐 갔다. 1993년 사법개혁 바람때 부동산 투기 의혹도 받았으며 그해 대구지법원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정 판사의 경우는 변호사 경력도 이채롭다.
퇴임후 그가 수임한 사건인물(피고인)들은 안현태 전 경호실장, 성용욱 전 국세청장,서상목 전 의원 등 하나같이 "5공 퇴물"내지 구 민정당 계열인사들이었다. 김현희 재판을 거친 그는 최근 노태우의 사위인 SK최태원 회장의 분식회계 관련 변호사로 인연을 맺고 있는 점에서
5공 민정당의 "평생동지"이념을 끝까지 지켜가는 "의리의 사나이"로 보인다.
김현희의 말만 믿고 작성된 "엽기 판결문"
이제부터 김현희KAL기 재판결과를 재판하기로 한다. 우리나라 재판제도는 3심제지만 1심이 중요하다. 1심은 사건 전반을 다루지만 2심,3심은 하급심의 불복사항만을 다루기 때문에 1심에서 그리치면 회복되기 어렵다. 특힌 안기부에서 넘어온 시국사건일 경우 1심판결 그대로 확정되는 게 관행이다. 국가보안법에 정통한 한 인권변호사는 재판이란 글자에서 삐침 하나를 떼내면 "개판"이 된다며 "5공 시국사건의 재판은 개판"이었다고 회고한다.
김현희는 1989년 4월25일 1심에서 사형선고됐다. 동 판결문은 15년째 비공개 중이나 필자는 2002년 초 어렵사리 구할 수 있었다. 총 85쪽에 이르지만 확인불능한 북한 사정만 잔뜩 늘어 놓은 글이다. 판결문은 사실과 증거에 기초하여 작성돼야 한다. 그러나 무리한 사건을 억지로 꿰맞추려다 보니 엉망이다. 예컨대 판결문 23쪽에는 1984년 김현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베토벤 생가를 방문했다는데 베토벤 생가는 본에 있다. 이렇게 틀리든 맞든 김현희가 말하면 그대로 옮겨놓은 "엽기판결문"이었다.
필자는 1심판결문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왜곡되고 은폐되었는가 상세히 알수 있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으니 지면 사정상 몇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먼저 김현희의 신원이다. 앞서 말했듯이 화동사진에서 김현희가 "장기영에게 꽃을 준 소녀"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김현희는 "(평양의)집에도 똑같은 사진이 있다"는 , 사건을 송두리째 뒤엎을 만한 결정적인 증거였는데 정작 판결문에 빠진 것이다.
입증되지도 않은 사건을 언론에 뻥튀긴 후, 기소단계에서 빼거나 공소장을 변경케 하는 것은 안기부의 고전적 수법이다. 그러나 남죽 간 엄청난 상처를 남긴 사건인 만큼 , 재판장은 이를 엄격히 추궁하여 김현희에게 무죄를 내렸어야 했다.
"동정론"만 펼친 변호인들
또한 안기부 수사발표와 공소장에 명기된 콤포지션4와 액체폭약도 판결문에서 실종됐다.
사형 판결문에 범행수단이 언급되지 아니한 경우도 있는가? 두 변호사들은 상고이유서에서 나름대로 김현희를 "방어"했다고 적었다.
"본 변호인들은 1989년 2월11일 제1심법원에서 국선변호인들로 선임되어 1989년 9월12일 본 상고이유서를 제출할 때까지 만 7개월간 피고인을 접견장소와 법정에서 10여회에 걸쳐 만날 기회를 가졌습니다.변호인들이 처음 피고인을 접견하기 시작할 때에는 세간에서 풍미하던 온갖 의문점을 파헤쳐 피고인이 대한민국 공안당국이 조작한 인물이라면 피고인을 무죄방면 시켜주는 것이 법조인의 양시에 부합한다는 소신을 갖고 온갖 의문점들에 관하여
하루 7~8시간에 걸쳐 상세한 질문을 하면서 피고인에게 변호인들의 위와 같은 소신을 밝혔으나 피고인은 장시간에 걸친 질문에 대하여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답변을 하면서 북한 공산집단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본건 범행에 이르기까지의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내용의 답변을 거듭 하였습니다."
변호인들은 "법조인의 양심"에 관해 이야기하고 았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그들이 왜 충분히 가능한 변호방법을 채택하지 않았는지 이해할수가 없다.
이 사건은 13대 대선(노태우 당선) 18일전에 일어난 사건인 만큼 사고 당시부터 "북풍의혹"
이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1심 개시 두달전 (의혹속에 KAL기 폭파사건)이라는 단행본이 나와 담당 변호사라면 당연 읽어봤을 것이다. 안 봤다면 무능하거나 무성의했다고 밖에 볼수 없다.책을 보면 김현희의 귀, 앙골라 아버지 등 의혹들이 모두 나와 있다 이것만 가지고도 법정에서 "김현희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데, 씨알고 안 먹힐 동정론으로 사건을 실종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 유가족만 피눈물
어차피 김현희는 사면이 결정된 상황이라 1심재판은 국민감정을 달래고 국제협약에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에 불과했다. 그럼 누가 따고 누가 잃었을까?
-검찰 : 말도 안되는 사건을 송치한 안기부가 원망스러웠겠지만 김현희의 귀, 앙골라 아버지, 폭약등 위태위태한 고비를 넘겨 공소를 유지했으니 땄다. 안기부와 건배라도 할 만하다.
-재판부:검찰공소가 엉터리 투성이였고 칼귀 김현희가 범인이 될수 없으나 검찰에서 공소장 변경등으로 알아서 빼줬으니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고맙게도 김현희가 한사코 범인이라고 우기는데다 변호사도 일찌감치 꼬리를 내려 부담없이 사형선고를 내렸다.
3심 대법원에서 "대쪽 판사"이회창도 그냥 통과시켰다. 평소 사법적극주의를 주장해온 그였지만 상식적인 증거를 외면한 채 김현희를 "처녀귀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쨌거나 재판부도 땄다.
-변호인:쓸데없는 동정론으로 패소했지만 , 김현희가 사면 받았으니 잃지는 않았다.
노름판이라 딴 사람이 있으면 잃은 사람도 있는 법, 피해자 유족들만 "피박"을 쓴 것이다.
국가가 이 원수를 처벌해 줄거라 믿었더니 시종 싸고 돌아 그대로 사기 당한 것이다.
시신도 못찾아 구천을 헤매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데 이렇게 당하니 피눈물이 날 지결이다. 그러나 힘이 없다. 노동자는 살아서도 고생,죽어서도 고생이다.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 1등공신 김현희는 대법원 사형선고를 보름만에 사면받았다. 그 닷새뒤 가정파괴범 등 9명의 사형수가 집행됐다. 김현희와 9명의 사형수, 사형폐지를 지지하는 필자로선 착잡하다. 대체 국가형벌권의 기준은 무엇인가,무릇 한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는데 한 사람의 삶은 반기면서 다른 아홉의 죽음을 수긍하는 우리의 법 감정은 어디까지 옳은것일까? 해답은 앞으로 공개되어야 할 KAL기 사건 재판기록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