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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의 메밀꽃밭
다시 아들과 손자와 함께 삼대가 서울에서 노닐다가 평창으로 떠났다. 대낮에도 달빛처럼 온통 하이얀 봉평의 메밀꽃밭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행사요원도 나오지 않았다. 냇가에서 섶다리를 슬금슬금 건너본다. 나무를 얽고 소나무가지를 얹은 다음 황토를 덮어 다리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 섶다리의 특성을 느끼기에는 오히려 부족함이 있다. 물이 많아 징검다리는 물속으로 잠겼다. 그래도 물은 맑다. 둑에 오르니 메밀꽃밭이 펼쳐진다. 전에 없던 입장료를 받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냥 들락거린다. 고불고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며 메밀꽃에 취한다. 메밀은 한 그루씩 보면 꽃이 줄기 끝에 듬성듬성 있어 볼품없다.
비록 그루에 몇 개 안 되는 작은 꽃송이지만, 하나의 모래가 모여 모래밭을 일구듯 하얀 꽃밭으로 출렁출렁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혼자가 아닌 다수의 힘이다. 함께 어우러져 화합으로 결집된 대중의 힘이다. 여기저기에 포토존을 설치하고 작은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직은 만개한 모습이 아니어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대로 한 바퀴 휘휘 돌아보았다. 달밤 아닌 아침녘이지만 아름다운 자태는 나무랄 데 없다.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을 재음미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여건이다. 비록 달빛대신 햇살이지만 봉평장, 허생원, 동이, 물레방앗간, 나귀, 메밀꽃이 준비되어 있다. 소설의 배경지가 그대로 살아나 눈으로 읽었다.
이효석의 생가지로 간다. 가는 길목에 코스모스꽃밭이 있고 때마침 해바라기가 샛노랗게 꽃밭을 이루었다. 관객을 배려한 하나의 특별서비스다. 해바라기보다도 더 싱글벙글 사진으로 추억 만들기에 발길들이 바쁘다. 생가지는 700m쯤 저쪽에서 옮겨 우선 복원하였다. 100년 전의 두메산골 촌집으로는 상당한 집안으로 여겨질 만큼 규모며 짜임새가 있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순례자처럼 찾아와서 잠시 머물다 썰물처럼 빠진다. 이웃한 동산에 문학관을 찾았다. 한눈에 주위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좋은 전망이면서 한가한 곳에 꾸며졌다. 문학관을 두루두루 돌아보았다. 손자는 보물찾기에 더 분주하게 오가다 끝내 목적을 달성하며 환호성이다.
체험행사장서 양쪽 손바닥을 기념탁본으로 찍어본다. 손자는 나귀를 타고 싶어 한다. 작달막한 나귀는 어수룩하여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몹시 듣고 싶은가 보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발걸음이 힘겨워 비척거린다. 해가 중천에 올랐다. 아주 따가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며 무더워진다. 냇가로 가서 뗏목타기를 한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노를 젓는다. 손자가 뒤에서 장대를 잡고 허우적거린다. 그래 해보고 싶은 것, 체험장이다. 장터에서는 마당극이 한참 벌어지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식당은 이미 북적거린다. 봉평까지 왔는데 메밀전병이나 메밀막국수를 그냥 몰라라 할 수는 없다. 두루두루 보는 재미도 있지만 먹는 맛은 더 좋았다.
한 때는 흉년에 먹을 것 없어 허기진 배 움켜잡던 시절 구황식물
한 때는 입맛 따라 이것저것 배불러 허리띠 풀던 시절 기호식품
버려졌던 한해살이 들풀인데 건강에 좋다 챙기는 시절 웰빙식품.
듬성듬성 볼품없는 꽃까지도 분위기에 젖어드는 인기 이효석의 대명사 평창에 거듭난 밥줄. - 메밀
메밀의 줄기는 곧고 붉은빛을 띠며 속이 비어 있는 한해살이 마디풀로 잎은 길쭉하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 흰빛에 불그스름한 기가 감도는 꽃이 초가을에 핀다. 흉년에 구황식물로서 역할을 톡톡하게 해냈다. 열매에 전분이 많아 가루를 내어 국수나 묵을 만들어 먹었다. 생활에 다소 여유가 생기면서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일종에 기호식품이 되었다. 이제 생활이 넉넉해지자 건강을 챙기며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가산 이효석은 고향인 봉평에서 어려운 살림에 연명하기 위해 척박한 땅에 재배하던 메밀밭을 배경으로 단편소설「메밀꽃 필 무렵」을 창작해내면서 봉평이 메밀꽃의 대명사가 될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효석은 평창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고 메밀은 먹을거리뿐만이 아니라 볼거리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보잘것없던 메밀이 이효석이란 작가에 의해 평창군민을 먹여 살릴 만큼 지역경제에 막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 2014.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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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메밀밭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