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고추.
오늘 내가 할 이야기는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고, 100% 사실이다.
「100%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꼭 지어낸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짐하지만
이 이야기는 100% 사실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글을 써도 의심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에이~ 이건 뻥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강봄이 만화 스토리 작가 출신이잖아.
그러니까 요 인간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려고
만화 스토리 쓰듯 창작을 한 거야.』
이렇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책에서만 읽은 게 아니고,
이 일이 있고 한 10년 후쯤 TV에도 소개가 된 적이 있어서
내 글을 읽으면 『아, 그거? 나도 봤어!』
하실 분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
어느 젊은 스님 한 사람이 볼일 때문에 서울에 왔다가 육교를 건너고 있는데
저 앞에서 수녀님 세 분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녀님들을 지나치는 순간,
이 스님이 수녀님 세 분 중 한 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뭐랄까, 그냥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쨍! 하고 전율이 오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가슴이 사정없이 뛰고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면서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는 것.
그래서 수녀님들에게 달려가서 아까 눈을 마주친 수녀님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수녀님! 수녀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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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에는
대번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거봐! 뻥이잖아!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냐?
코미디 중에도 이런 코미디는 없어!
강봄이 지금 우리한테 사기 치고 있는 거라니까!』
이러시겠지만, 다시 한번 굳게 맹세하겠다!
이 이야기는 99%가 아니라, 100% 사실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빡빡머리 스님한테서,
벌건 대낮에 길을 가다가 그런 말을 들은 수녀님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멍~ 하게 서있는 수녀님들에게 스님은
자세한 건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자며
수녀님들에게 다방으로 가자고 재촉하였다.
그때서야 정신을 가다듬은 수녀님들은 스님을 잘 타일렀다.
이러지 마시라고, 젊잖은 스님이 길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얼른 갈 길이나 가시라고.
그래도 이 스님은 갈 길을 가기는커녕
찰거머리처럼 찰싹 붙어서 끝까지 따라오더라는 것.
그래서 할 수 없어 수녀님들은 파출소, 지금의 지구대로 들어가서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요즘 같으면 이런 게 심각한 문제가 되겠지만
당시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들은 경찰은 스님에게 간곡히 말씀드렸다.
우리가 봐도 스님께서 잘못하신 거니까, 더 이상 따라가지 마시고
그냥 갈 길 가시라고.
그랬더니 스님이 한 풀 꺾이면서, 좋다, 더 이상 따라가지 않겠다. 그 대신
저 수녀님이 계신 곳 주소만 좀 알려 달라. 분명히 약속하지만
절대로 찾아가지 않겠다. 나는 다만, 수녀님께 편지나 한 통 드리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결찰 앞에서 찾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
수녀님이 근무하는 성당 주소를 가르쳐 준 뒤
스님과 수녀님들은 헤어졌다.
열 통!
열 통이 뭐냐고? 편지 열 통!
수녀님들과 헤어져서 절로 돌아온 스님은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열 통씩 수녀님께 편지를 보냈다.
지금이야 전국의 모든 절에 수도, 전기 들어가고 기름보일러 놓고
프로판 가스 시켜서 쓰고 해서 스님들이 할 일이 없어 살만 피둥피둥 찌지만
40여 년 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나무 해야 되고, 군불 때야 되고, 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 스님 직책이 주지 스님이라도 된다면 하루에 편지 열 통 쓸 수 있다.
그런데 그 스님은 그 절에서 막내였고 그래서 온갖 잡일을 혼자 다 해야 하는
아주 고달픈 입장이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밤을 낮같이 새워가며 장장 1년을 하루에 열 통씩
편지를 보냈고, 지성이면 감천이고,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고,
드디어 수녀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며칟날 서울 어디에서 만나자고!
그렇게 해서 정식으로 첫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수녀님이 스님에게 편지지를 한 장 내밀면서 하는 말이
여기 적힌 열 가지 조건을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면 결혼하겠다고 하더라는 것.
책에 소개된 그 열 가지 조건을 나도 읽었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두 가지만 생각이 난다.
하나는, 상대방의 종교활동에 간섭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섹스는 한 달에 한 번, 매월 셋째 토요일에만 한다.
(뻥 같지? 사실이다!)
열 가지 조건을 다 철저히 지키겠노라는 스님의 다짐을 듣고는
드디어 두 사람은 결혼을 했는데, 그로부터 한 10년 후,
내가 여행 중에 어느 고속버스 터미널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앞에 설치된 TV에서 그 두 사람이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뒷자리에 앉아 있어서 자세한 내용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그 부부는 그 스님과 수녀님이 100% 확실했고,
옆에 아이들이 셋이나 있었다.
「매월 셋째 토요일에 한 번만!」이런 내용으로 미루어
이 수녀님은 연애나 성관계가 한 번도 없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숫처녀 임이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는, 성에 대하여 이렇게 무지할 수는 없다. 그게 아니라면
모르는 체, 순수한 체 내숭을 떨었던가. 둘 중 하나가 분명하다.
그러면, 지금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스님과 수녀님의 결혼 이야기는
오늘의 본론인 《간장 고추》이야기를 위한 서론이었다.
신맛· 단맛· 쓴맛· 짠맛,·매운맛.
사람의 혀는 이렇게 다섯 가지 맛을 감지하는데,
이 다섯 가지 맛 중 세 가지, 단맛· 짠맛· 매운맛은
대부분의 음식에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맛에 신맛 하나가 더 들어간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간장 고추.
맛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고, 그 맛이 잘 어우러져
사람의 입맛에도 좋아야 하는데, 단맛· 짠맛· 매운맛에 신맛이
더해졌을 때 조화가 잘 이루어져 사람의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또한
간장 고추다.
이 간장고추의 가장 큰 장점은 만들기가 쉽다는 것!
기본적인 재료와 양념, 정해져 있는 양을 잘 맞추어 담그면
나 같은 사람이 만든 간장고추와
유서 깊은 어느 종가집 맏며느리가 담근 간장고추의 맛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간장고추는 또 관리에 신경을 좀 써주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단순하고 소박하고 우직한 그 맛 때문에 쉬이 질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간장고추는 내가 자주 해먹던 반찬이었는데
지난 4년 동안은 한 번도 해먹지 못한 이유는 술!
4년 전 술을 끊었다.
내가 술을 끊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잘 믿기지가 않는다.
그렇게 끊긴 끊었는데, 언제 다시 입에 댈지 몰라서
계속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술 생각에 쩍쩍 갈라진 논처럼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술 마시는 꿈을 계속 꾸고,
라면을 사러 마트에 갔다가 얼결에 술병을 보면
어린아이 경기하듯 깜짝깜짝 놀란다.
술은,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되었다.
그러니,
간장 고추를 담글 땐 간장· 설탕· 식초 이외에 술이 들어가는데
간장 고추를 담기 위해 술을 사 왔을 때
내가 술을 먹지 않을 자신이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마시지 않을 자신이!
그러면, 술을 넣지 말고 담그면 되지 않느냐고?
맞다. 유튜브에 보니 술을 넣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소주를 넣어왔기 때문에
술을 넣지 않은 간장 고추는 왠지 앙꼬 없는 찐빵 같아서
차라리 담그지 않은 만 못하였다.
그러다가 작년 늦가을, 텃밭의 고추가 많이 남았다.
그해 봄에 고추를 세 판 심었고, 여기저기 따서 나누어주다가
그래도 많이 남아서 고민에 빠졌다.
간장 고추는 먹고 싶은데,
간장 고추를 담기 위해 소주를 사 왔을 때
내가 과연 그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무사히 간장 고추만을 담글 수가 과연 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거듭 생각해보아도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한 잔이 문제였다.
간장 고추를 담다가 한 잔만 마셔도
이제까지 쌓아 올린 둑은 무너지고
나는 걷잡을 수 없이, 과거보다 더한 알콜 중독자로 전락할 것은 뻔한 일.
그러던 어느날 저녁, 그냥 사 왔다.
간장· 설탕· 식초와 함께 빨간 뚜껑의 4홉 소주 한 병을.
내일 간장고추를 담기 위해 오늘 사온 소주를 부엌에 두고 잠을 자는데
불현듯 그들이 떠올랐다.
결혼식을 올린 첫날밤,
섹스는 매월 셋째 토요일에 한 번만 하자고 굳게 맹세하고
한 이불속에서 손만 잡고 그냥 자는 그 스님과 수녀님이!
부엌에 술을 두고 잠을 청하는 내가
옆에 수녀님을 두고 잠을 청하는 그 스님의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간장 고추는 4리터짜리 통으로 다섯 통을 담갔는데
참 맛있게 됐고,
지난겨울에 네 통 반을 먹어서
이제 반통 남았다.
올해 또 담글 수 있으려나?
2019년. 4월. 10일.
민중혁명이 온다. 강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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