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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그가 나타났을 때 치열하게 격전을 벌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놓고 그만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죽여야 할 적이 있었지만 남자의 존
재는 그들의 신경을 밑바닥부터 긁고 있었다.
위험하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이 그들의 심장을 지배했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을 떼었다가는 전신이 난도질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호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역시 자신의 부하들에게 퍼
진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개인이 일류고수를 상회하는 만
큼 곧 자신을 추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는 나타난 남자를
노려봤다.
누군지 모르고 본다면 바로 옆을 지나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특징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청호문은 남자를 알고 있었다.
"도...마, 아니 적무강이라고 해야 하나?"
그의 말에 남자 적무강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분명 수천리 밖 청해성에 있던 적무강이었다. 그의 피풍의에
는 눈과 함께 뿌연 먼지가 앉아 있었다. 상처를 치유하자마자 청해성
에서 수천 리 떨어진 이곳을 향해 그야말로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
온 흔적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잠은 한숨도 자지 않았다. 피로가 몰려오면
말 위에서 운공으로 해결했고, 현을 지날 때마다 말을 바꿔 탔다. 그
렇게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단 며칠로 단축했다. 그리고 안휘
성에 들어선 이후에는 말조차 버리고 경공을 펼쳐 전속력으로 정도
련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초토
화 된 이후였다.
적무강은 싸늘하게 식어 가는 홍수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비록
예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애증 따위는 없었다. 하지
만 그녀가 죽은 모습에 화가 났다. 가슴 밑바닥부터 끓어오른 열화
는 이미 그의 뇌리를 분노로 물들이고 있었다.
"흑기대주, 청호문...."
"호~! 날 알고 있었던 거냐?"
"너의 창..... 거둬들이겠다."
"뭐?"
그러나 적무강은 대답이 없었다.
흑기대의 모든 창은 자신과 하가철방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
들어 준 것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준 창이 아직 저들의 손에 있다는
것은 하가철방에 대한 모욕이었다.
청호문이 적무강을 보면서 이를 뿌득 갈았다.
"하잘것 없는 철방의 장인 놈이 겨우 무공 몇수 익혔다고 겁대가
리를 상실했구나. 네가 어떻게 천왕성의 영역에서 살아 나왔는지 모
르지만 내 손에서는 절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청호문은 적무강이 천왕성에서 결전을 벌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
지 않았다. 단지 그 언저리에서 맴돌다가 돌아왔다고만 생각했다. 그
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이곳에 올 수는 없다
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크하하! 어쨌거나 너는 너무 늦게 왔다. 이미 정도련은 무너졌고
잔당들 또한 무상께서 소탕하고 계시니까."
적무강의 눈에 한 줄기 홍선이 떠올랐다. 그러자 이제까지 그의
뒤에서 조용히 서 있던 용추가 등 뒤에 메고 있던 대감도를 꺼내며
앞으로 나섰다.
"흐흐! 조무래기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주군."
어느새 그의 몸에는 금빛 광채가 은은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
미 그는 자신의 주군인 적무강의 성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와 동화되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는 그런 자신이 결코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꺼웠다. 적무강
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모두들 죽었다고 복창해라!"
용추가 광오한 외침을 토하며 흑기대 사이로 뛰어들었다. 일체의
방어를 무시한 채 달려드는 용추의 모습에 흑기대의 얼구에 살기가
떠올랐다.
"이런 곰 같은 새끼가!"
"죽엇!"
챙! 챙! 챙!
용추의 난입을 기점으로 처절한 혈전이 벌어졌다. 이제까지 손을
놓고 있던 흑기대뿐만 아니라 무비와 소림승들까지 엮이면서 혈투는
걷잡을 수 없이 치열해져 갔다.
"도마라는 허명, 내가 벗겨 주겠다."
쉬익!
순간 청호문이 크게 외치며 비전의 창식인 광룡십팔식(狂龍十八式)
을 펼쳐 냈다. 검은 차이 분열을 거듭하며 아홉 개까지 늘어나 적무
강의 전신 요혈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무서운 창기가 바로 코앞
까지 다가왔음에도 적무강은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흐흐! 역시 별거 아닌 것이 허명만 날리고 있었군.'
청호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는 적무강이란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다. 상대는 한때 십
자성의 철방에서 일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무기를 만들어서 납품했던
하찮은 장인이었다. 자신들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던. 그가
비록 훌륭한 장인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훌륭한 장인이 훌륭한 무인
은 아닌 것이다. 그것이 청호문의 생각이었다.
퍼버벅!
청호문의 창기가 적무강의 전신을 관통했다. 청호문의 입가에 어
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의 얼
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재밌는가?'
등 뒤에서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 어느새 적무강은 그의 눈을 속
이고 뒤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공격한 상대
가 적무강의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등
뒤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스르릉!
등 뒤에서 도를 뽑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려왔다.
그 순간 청호문은 쏜살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며 몸을 회전했다.
그리고 창을 뻗었다.
"이놈!"
"뭐?"
"......"
욕설을 내뱉으려던 청호문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느새 그
의 코앞에 적무강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전력을 다해 달렸음에도 불
구하고 적무강은 마치 그림자처럼 그의 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코끝
에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의 무심한 눈동자에 경악한 자신의 얼
굴 모습이 투영되고 있었다.
푸확!
그와 함께 그의 오른팔에서 피가 치솟아 올랐다. 미처 통증을 느
낄 사이도 없이 창을 든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재밌는가?"
다시 한 번 적무강이 물었다. 그제야 청호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다.
푸ㅡ욱!
적무강이 청호문의 창으로 그의 입을 관통시켰다.
"끄으으!"
청호문의 눈이 고통으로 부릅떠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입
에 틀어박힌 창 때문에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바닥에 눕고 싶었으나
관통한 창이 등 뒤의 나무에 박혀 있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저들도 그런 고통을 느끼며 죽어 갔다."
적무강의 무심한 목소리가 청호문의 귓가에 울렸다.
입으로 들어간 창이 목을 뚫고 나와 커다란 나무에 박혔으나 청호
문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적무강이 일부러 요혈을 피해 박
은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단지 조금 늦
춰졌을 뿐이다. 그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고문이었다.
흑기대가 동요했다.
자신들의 수장이 미처 반항할 틈도 없이 단 일 초 만에 죽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흐트
러지자 손발 역시 흐트러졌다. 더구나 용추는 그런 안이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카가강!
용추의 전신에 닿은 창이 마치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금강불괴?"
"설마?"
흑기대원들 사이에 큰 동요가 일어났다. 분명 그들의 창에는 매서
운 창기가 맺혀 있었다. 일반 도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창기다. 그런데 커다란 바위에도 어린아이 머리 크기
만한 구멍을 손쉽게 뚫을 수 있는 그들의 창기가 눈앞의 괴물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창이 괴물의 몸에 닿기 무
섭게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퍼버버벅!
"크악!"
"컥!"
용추는 들고 있는 대감도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흑기대원들을 후려
쳤다. 특별히 날을 세운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초식을 펼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의 대감도에 부딪친 무기는 썩은 무처럼 부서졌고, 사
람은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신위였다.
도검이 통하지 않고 압도적인 공력으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
니 그의 앞에 두 다리로 서 있는 흑기대원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이런..."
"아미타불!"
소림의 승려들은 눈앞에서 픽픽 쓰러져 가는 흑기대원들을 보고
얼이 빠져 있었다. 이제까지 자신들을 그토록 괴롭히던 흑기대원들
이 용추 앞에서는 어른 앞의 아이처럼 힘도 제대로 못 써 보고 쓰러
져 나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덕에 그들은 한숨을 돌
릴 수 있었다. 흑기대원들이 모두 용추에게 몰렸기 때문이다.
"사....매!"
무비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홍수희를 향해
비칠거리며 다가갔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무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홍수희의 시신을 부
둥켜안고 연신 불호를 외웠다. 제아무리 살인을 허락받은 철혈나한
이었지만 혈육이나 다름없던 홍수희의 죽음 앞에서는 그 역시 무너
지고 말았다.
"크흑! 사부님을 어떻게 뵈라고 이리된 것이냐? 말 좀 해 보거라,
사매."
그의 흐느낌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혈전 끝에 살아남은 소림사의
승려들이 무비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미타불!"
살아남았으되 살아남은 것을 순수하게 기뻐하기에는 이번 전투에
서 죽어 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적무강은 그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가산에 있던 흑기대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다. 자신이 참여할
것도 없이 용추 혼자만의 개입으로 말이다.
사실 제아무리 용추가 단단한 몸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검강이나
도강을 마음대로 발출할 수 있는 초절정고수들을 만나게 된다면 위
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검기나 도기에는 끄떡없기에 절정에 달한
무인들과의 싸움에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검강 정도의 위력
을 가진 초식에 당하기 전에는 상처조차 나지 않기에 이런 난전은
그야말로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있소? 설마 모두 당한 것이오?"
적무강의 말에 소림승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미타불! 적 대협의 도움에 감사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비상
통로를 이용해 탈출하고 있을 겁니다."
"그곳은 어디로 이어지고 있소?"
"아미타불! 비상 통로가 지하의 천연 동굴을 통해서 장강의 줄기
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아마 소택(昭澤) 어딘가로 통한다고 하는
것을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택이라...."
적무강의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빨리 따라가십시오. 십자성의 무상 사무독은 위험한 자입니다.
그런 자가 추적을 한다면 도망친 사람들도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무
사하시다면 서 소저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택으로 향했을 겁니다."
말을 하던 소림승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아직도 사무독의
무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당의 청송진인을 힘들이지 않고 쓰러트
리던 악마 같은 모습을 말이다.
"고맙소!"
적무강은 잠시 그와 무비를 바라보다 소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용추, 정리가 끝나는 대로 소택으로 와라."
"알겠습니다, 주군."
"나 먼저 가겠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점으로 변하며 정도련의 성벽을 넘어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빨리 가봐야 하겠는데 서문아가 위험할수 있다!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