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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24
마태복음 5:27-32
간음과 이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살인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간음에 대한 문제도 단순히 행동으로 옮겼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음욕을 품은 것 자체를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으로 말씀하심으로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대한 문제로 말씀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 선생들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간음을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눅 18:11)이 의로움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리새인이 아닌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 세리가 의롭다고 하셨다(눅 18:14).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간음과 이혼을 말씀하심으로 율법에서 말씀하고자 한 본질을 밝히신다.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7-28절). “음욕”이란 ‘에피뒤메오’는 ‘욕구하다, 갈망하다, 원하다, 탐내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에피’(~ 위에)와 ‘뒤모스’(욕정, 격노, 진노)의 합성어인데 ‘뒤모스’는 ‘뒤오’(제사하다, 제물을 바치다)에서 온 말이다. “간음”이란 말의 ‘모이큐오’는 ‘간음하다, ~에 불순물을 섞다’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나아프’나 ‘자눈’의 역어로 쓰인다. 출애굽기 20:14, 신명기 5:18의 말씀인데 율법에서 본질은 우상숭배에 대한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이스라엘의 음란함이고 간음이라고 선지자들은 선포하였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자눈)이니라 하시니(호 1:2)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나아프)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자나)을 내가 보았노라(렘 3:8)
이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님이 남자로 오셨기 때문에 남자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여자는 이 말씀이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욕을 품고 남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는 적용되고 누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본문을 확대해석하여 남자만 아니라 여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고 더 나아가 정상적인 부부관계에 대한 말씀이기에 동성애도 금지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단순히 남자의 입장에서 말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생물학적인 남녀 부부관계에 대해 말씀이 아니다.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문자적으로 보면 아내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또는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간음”이다. 그러나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여자는 교회로 비유되어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내인 교회에 대한 비밀의 말씀이라면 교회가 복음이라는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다른 남편으로 여기고 하나 된 상태를 가리킨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행위나 영의 일을 육의 일로 취하는 종교 행위가 간음이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간음한 여인들아”라는 표현은 세상을 남편으로 여긴 교회를 지칭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세상과 하나 되고 복음을 율법으로 취하는 자들을 음녀라고 표현하였다.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4-5)
그리고 예수님은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29-30절).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실행한다고 해서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눈을 빼고 손을 잘라낸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를 짓는 눈을 빼고 죄를 짓는 손을 잘라버린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죄의 권세에 매여 있기에 늘 죄를 짓는 죄인으로 산다. 그러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우리는 스스로 갖출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폭로하신 것이다.
“실족”의 ‘스칸달리조’는 ‘걸려 넘어지다, 함정에 들다, 죄를 범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갑자기 “눈”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는 “여자를 보는 자마다”라고 ‘보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오른 눈”(헬, ‘덱시오스 옵달모스’)이란 ‘진리를 보도록 주신 눈’이라는 뜻이고, “손”이 상징하는 것은 ‘행위, 능력’인데 “오른손”이란 진리를 넘겨주어야 하는 손이라는 의미이다. “지옥”(헬, ‘게엔나’)은 불의 상태(약 3:6)로 곧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막 9:4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가 된 교회는 자신의 오른 눈을 빼내고 오른손이 잘려 나간 자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복음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되었다. 본래 음녀였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교회가 되어 씨 가진 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아들을 낳는 존재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란 진리를 바로 보는 오른 눈을 가졌고 복음을 넘겨줄 수 있는 오른손을 가진 먼저 된 자이다.
그런데 교회가 나중 된 자들, 곧 교회가 될 자들에게 진리를 바로 보고 넘겨주는 것이 아닌 음욕을 품고 바라보면서 사람의 계명과 교훈을 넘겨준다면 그것이 지옥에 던져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일이 관심사가 되었다. 명분은 많은 사람을 모아 놓은 곳에 그만큼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진리가 없어 복음을 넘겨주지 못하니 그저 율법적 행위로 사람의 의만 충만할 뿐이다(롬 10:3).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간음하지 말라는 이 말씀이나 눈을 빼거나 손을 잘라버리라는 말씀이 단순히 명령이요 또 다른 계명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으로 들려지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오른 눈을 빼내고 오른손을 잘라내는 것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죽음으로 경험하며, 간음도 행하지 않는 은혜의 상태가 된 것이다.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31-32절). 32절 전반부까지는 이해가 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다음에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라는 말씀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맞아 자식을 낳으라고 말씀하셨던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서 오히려 버림받은 여자를 맞이하여 장가를 가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신명기에서 말씀하는 것을 직접 살펴보아야 한다.
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2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4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신 24:1-4)
“수치 되는”의 ‘에르바’는 ‘벌거벗음, 수치, 더러움, 부끄러움’이라는 뜻이고, “수치되는 일”이라고 번역한 “일”은 ‘다바르’로 ‘말, 말씀’이라는 뜻이다. 즉 여자가 남편에 대하여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에 산다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러내는 존재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가 수치 되는 말을 전한다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버려진 여자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라는 이유는 언약이 땅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심판 가운데 그대로 두신다는 의미이다(렘 3:1-3).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렘 3:14-18)
율법의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재해석하자면 교회가 율법을 다 이루신 남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수치스러운 말로 전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에게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에 그런 자들과 결코 더 이상 하나 될 수 없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신 은혜 안에 있기에 사람이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롬 8:38-39).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 19:4-6)
(20241002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