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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梓潼帝君垂訓에 曰 妙藥도 難醫寃債病이요 橫財도 不富命窮人이라 生
(재동제군수훈 왈 묘약 난의원채병 횡재 불부명궁인 생
事事生을 君莫怨하고 害人人害를 汝休嗔하라 天地自然皆有報하니 遠在兒孫近
사사생 군막원 해인인해 여휴진 천지자연개유보 원재아손근
在身이니라
재신)
재동제군의 수훈에서 말하길 “신묘한 약이라도 원한의 병은 고치기 어렵고, 뜻밖에 생기는 재물도 운수가 궁한 사람은 부자가 되게 하지 못한다. 일이 생기게 하고 나서 일이 생기는 것을 그대는 원망하지 말고, 남을 해치고 나서 남이 해치는 것을 너는 성내지 말라. 하늘과 땅이 스스로 다 보답함이 있나니, 멀면 자손에게 있고 가까우면 자신의 몸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 梓潼帝君(재동제군) : 도가(道家)에서 문창부(文昌府)의 일 및 인간의 녹적(祿籍)의 일을 맡은 신.
⋇ 難醫(난의) : 고치기 어려움.
⋇ 寃債病(원통할 원. 채병) : 원한으로 생긴 병.
⋇ 命窮人(명궁인) : 운명이 궁한 사람.
⋇ 君(그대 군. 임금 군) : 그대. 자네.
(해설)
이 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 십인십색의 다양한 입맛과 욕구를 어찌 맞출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진실과 겸허함 그리고 약속의 철저한 이행과 배려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품위와 행동은 남을 감격하게 만들고 친밀감을 갖게 하는 최상의 무기가 된다. 노력과 수신을 강조하고 있다. 우연이 아닌 필연은 스스로가 만들고, 어떻게 처신하였는가의 결과물이 된다. 작은 티끌들이 모여서 태산을 이루듯이 작은 선행이 모여 커다란 행운을 만들어 가고, 작은 악행들이 모여서 최악의 결과를 선물한다.
작은 물이 흘러가면서 모이면 냇물을 만들고 그 냇물이 모여 강을 만드는 이치와 같다. 시작은 미미할지 몰라도 거대한 결과물을 만들듯이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는 노년의 시기인 인생말년이 되어 나타나게 된다. 비록 그러하지 않다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 조그만 양심의 거리낌은 늘 자신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뒤늦은 후회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끝까지 덮어 버린 보자기를 벗지 못하는 우매함으로 똘똘 뭉쳐진 고집불통인 사람도 있다. 독선적이건 지독한 아집의 산물이건 자신이 쳐놓은 굴레를 허물지 못하는 불쌍하고 용기 없는 자화상을 연출한다. 남들 앞에서 강철 같은 의지와 굳셈을 나타내 보이지만 홀로일 때에는 한없이 나약한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무언가 잘 안 풀리고 좌절을 겪을 때면 남에게 그 잘못의 화살을 돌리는데 탓이란 말을 많이 한다. 잘되고 못되고 모두가 자신에게 있음을 잘 알면서도 면피성으로 입에 담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흔한 예가 매우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외는 말이 “어머니 살려주세요.” “하나님” “조상”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신적 존재를 거론하게 되며, 그 순간이 지나가면 언제 그러했는가 하고 까맣게 잊어버린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인생의 전부라고 가정하면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와 상황 그리고 생각에 따라 변하는 모든 일들이 자신에게 득이냐 실이냐를 따지면 실보다는 득을 선택하게 되는데 과연 그 선택이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보았다면 곧 후회할 결과로 다가올 것이다. 이익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믿음과 배려와 존중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감정을 따라 가다 보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아쉬움과 순간을 참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고려 말기의 유명한 최영장군이 한 말이고 또한 대장부라는 말 속에도 숨어 있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은 쉽게 동요되고 포로가 되기 쉬운 것이 바로 황금의 유혹이 아닐까. “돈은 귀신도 부린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근면함으로 이룬다.”했는데 노력과 절약의 근검은 실천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행운만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그런 무리에 속하지 아니한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아니라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다면.
生水(생수)
舌枰(설평)이란 말이 있다. 혓바닥 저울이란 뜻이다. 생수를 마시면서 그 물이 重水(중수)냐 輕水(경수)냐의 무게를 감식해서 가려 마신데서 비롯된 말이다.
물에 輕重(경중)이 있을 리 없겠지만 감각으로 그것을 느꼈다는 것은 대단한 감식력이 아닐 수 없다. 栗谷(율곡) 李珥(이이)의 설평도 대단했던지 가벼운 물은 德心(덕심)을 해친다 하여 무거운 물만 마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둥근 물도 있고, 모난 물도 있어 둥근 물은 술 빚는데 좋고 모난 물은 약 달이는데 좋다 하여, 모나고 둥글다는 소문난 집의 샘물을 길어다 술을 빚고 약을 달이기도 했던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물의 분자구조가 육각형으로 모났을 때 抗癌(항암)효과가 크다고 했는데 분자이론도 없던 시절에 모난 물을 감식했다는 것이 된다. ※ 枰(바둑판 평), 珥(귀고리 이), 癌(암 암).
옛사람들은 한강물 가운데 웃물도 아니요, 아랫물도 아니며 또 좌우의 가에 치우쳐 흐르는 물도 아닌 江心(강심)에 흐르는 물을 길어다 식수로 삼았는데 이를 牛重水(우중수)라 했다.
仁旺山(인왕산)에서 흐르는 개울물을 白虎水(백호수), 삼청동 뒷산에서 흐르는 개울물을 靑龍水(청룡수),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朱雀水(주작수)라 불렀다. 그리하여 명문집안에서는 장 담그는데는 청룡수, 머리 감는데는 주작수, 술 빚는데는 백호수 하는 식으로 물을 가려 썼던 것이다. 이 물을 성안 사람에게 배달하는 시스템이 물 都家(도가)다. 배달 이권이 대단하여 王家(왕가)나 勢道家(세도가)와 연줄 없이는 도가의 이권을 차지할 수 없었다. 지역별 도가가 있고 청룡수 도가니 백호수 도가니 하여 물의 품질을 가려 단골집에 배달하는 용도별 도가가 있었다. 한양 도가 가운데 가장 광역을 차지하고 파워가 강했던 것이 北靑(북청)도가였다. 북청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이 도가에서는 고향사람들의 숙식을 제공하고 장학사업 까지 했다. 李儁(이준)열사도 상경해서 이 북청도가에서 기식했던 장학생이요, 한말에 황실재산을 주물렀던 李容翊(이용익)대감도 바로 도가의 물 꾼 출신이었다. ※ 儁(준걸 준).
김옥균을 암살한 프랑스 유학생 洪鐘宇(홍종우)도 남대문 물도가 소속의 물 꾼 출신이다. 페놀공포에 이어 수돗물 불신으로 그동안 억제돼 왔던 생수시판이 불가피하게 되어 허용할 방침이 보도되었다. 곧 물 꾼 도가에 의한 생수배달이 부활되는 셈이다. 문명이 발달하는 것인지, 역행하는 것인지 아리송하게 하는 생수부활이 아닐 수 없다.(이규태 코너 1991년)
外製生水(외제생수)
한양 북촌에서 행세하고 사는 집에는 장독대 말고 물독대라는 것이 따로 있었다. 수질이 다른 물을 따로따로 보관해 두고 쓰기 위해서이다. 백호수, 청룡수, 주작수에 따라 그 물을 받아 두고 쓰는 물독도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입춘날 받아 두고 立春水(입춘수)는 아이를 갖고 싶은 부부가 잠들기 직전에 일 배씩 하면 효험이 있다는 사랑의 묘약이요, 立冬(입동)후 小雪(소설)전에 내린 빗물을 液雨水(액우수)라 하여 그 물로 약을 달이면 갑절의 효력이 난다 하여 받아 두고 썼다. 또 臘日(납일)에 내린 눈 녹인 물인 臘雪水(납설수)는 약도 달이고 장도 담그며 볍씨를 이 물에 담갔다 뿌리면 병충해가 생기지 않으며 여름에 이 물을 뿌리면 파리가 꾀지 않는다는 등 다용도였다.
꽃이슬을 털어 모은 물로 연지를 개어 화장을 했고 가을이슬을 털어 모은 물로 秋露酒(추로주)를 담가 마셨으며 살아 있는 대 끝을 잘라 그 대통 속에 괸 물을 半天河水(반천하수)라 하여 보약을 달여 먹었다.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이보다 더한 用水文化(용수문화)가 발달했던 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 한반도에서 솟는 생수의 질이 다양하고 양질이었기에 가능한 문화랄 것이다. 그래선지 우리 한국 사람만큼 맹물을 가까이 두고 많이 마시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유럽의 스튜어디스 교육에서 비행기 안에서 찬물을 찾는 동양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 단정해도 대과가 없다고 가르칠 정도다. 유럽에서는 석회성분 때문에 맹물과는 거리가 멀고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사람들도 차를 끓여 마실 뿐 맹물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 한국 사람은 피하조직의 무게가 체중의 24%를 차지하는데 유럽 사람은 17%에 불과하며 한국 사람은 비뇨기계통이 0.8%인데 유럽 사람은 0.2%에 불과하다는 평균치 조사 결과가 있는데 이 모두 수분 함축량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생리적 유전적으로 물과 친근해 있는 한국인인 것이다.
헌데 우리 생수시장이 개방됨을 계기로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 스위스, 영국, 독일 등의 생수가 쏟아져 들어와 群雄割據(군웅할거)할 것이라 한다. 어쩌다 세계적인 양질의 식수 고문명지대에서 이런 꼴이 벌어져야 했는지 통탄스럽기만 하다. 이 모두 역사에 죄짓는 일인 것이다.(이규태 코너 1995년)
11-52. 花落花開開又落하고 錦衣布衣更換着이라 豪家未必常富貴요 貧家未必長
(화락화개개우락 금의포의갱환착 호가미필상부귀 빈가미필장
寂寞이라 扶人未必常靑霄요 推人未必塡邱壑이라 勸君凡事에 莫怨天하여 天意
적막 부인미필상청소 추인미필진구학 권군범사 막원천 천의
於人에 無厚薄이니라
어인 무후박)
꽃은 지고 꽃은 피고 피고 또 지고 비단옷도 베옷도 다시 바꿔 입느니라. 호화로운 집이라고 해서 언제나 부귀한 것이 아니요, 가난한 집이라 해서 반드시 오래 적막하지는 않으리라. 사람을 붙잡아 올려도 반드시 푸른 하늘에 올라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을 밀어도 반드시 깊은 구렁에 떨어지지는 않느니라. 그대에게 권고하니, 모든 일에 하늘을 원망하지 말라. 하늘의 뜻은 사람에게 후하고 박함이 없다.
⋇ 布衣(포의) : 베옷. 무명옷.
⋇ 更換着(갱환착) : 다시 갈아입음.
⋇ 未必(미필) : 반드시 ~한 것은 아님.
⋇ 靑霄(청. 하늘 소) : 푸른 하늘.
⋇ 塡邱壑(진정할 진. 언덕 구. 산골짜기 학) : 깊은 구렁텅이에 빠짐.
(해설)
자연은 그대로 있지 아니하고 순환하다고 한다. 사람의 일생 또한 그와 같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고, 고생 끝에 낙이 오며, 실패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성공이란 탄탄대로가 펼쳐진다.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며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가기도 하고 병에 걸려 고생하면서 건강해야지 다짐도 하지만 망각이란 선물은 작심삼일을 반복하게 만든다. 요약해서 生老病死(생노병사)에 喜怒哀樂(희노애락)이요, 苦盡甘來(고진감래)에 七顚八起(칠전팔기)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고 나도 부족한 것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일생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계속되는 시련과 좌절 속에 낙심천만으로 기가 팍 죽어 비실거릴 때도 있고, 꿈과 희망이란 열매를 위해 열심히 전진과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누구나 성공하고 싶고, 잘 살고 싶고, 호화로우며 존경 받기를 원한다. 어려서는 위원전이니 영웅전이니 하는 전기물을 읽으면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하지만 세상의 벽은 높고 높아 그리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정신 그리고 창조적인 발상과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거침없이 달리는 실천만이 보장한다. 작은 영웅과 작은 위인들이 많아질수록 건강하고 밝으며 깨끗한 선진사회가 이룩된다고 하는데 봉사와 기부 그리고 질서가 지켜지는 사회가.
아무리 호화롭고 으리으리한 집에 산다 하더라도 남에게 많은 잘못과 죄를 지어 마음이 불안하고 전전긍긍한다면 쓰러져 가는 낡은 초가집에서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없어 허허롭게 웃으며 사는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된 사회의 가치기준은 이를 거부하며 오로지 부야 말로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척도라 믿어 사람으로서 범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어서 즉 자신의 양심과 도덕성까지 몰수하고 그 길을 간다. 도덕불감증은 더 큰 잘못을 잉태시키는 요인이 되는데 먹이사슬처럼 연결된 연결고리가 쉽게 잘라 내는 것을 거부하고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용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이다. 자본주의가 활성화되면서 돈에 대한 맹신적 추종이 새로운 형태로 사회 모든 분야에 촉수를 뻗으니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되고 말았지만 왕성한 식욕은 그칠 줄 모른다.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빈부격차는 물론 빈부가 후손들에게도 대물림되고 정경유착이니 재벌가끼리의 전략적 결혼은 물론 각종 비리가 대중매체를 장식한다.
모두가 평등하여 권리와 의무를 다하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개개인이 누리는 자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등 세상을 살아가면서 구속받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최대한의 보장을 받는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받지 않고 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원하는 모든 것들을 정당한 사례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 가난하건 부자이건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건 여자냐 남자냐를 떠나 공평한 기회와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 어떠한 이유와 핑계로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전문적인 분야라든가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나 현대사회는 점차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기에 고급 혹은 높은 수준의 교육과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아지고 있어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자원입니다.
錦(비단 금)은 금(金)실과 색실로 짠 비단(帛)으로 줄무늬를 넣어 짠 아름다운 비단.
換(바꿀 환)은 필요한 것을 찾아서(奐: 밝을 환) 손(扌)으로 주고받다. 바꾸다.
寞(쓸쓸 할 막)은 찾는 사람이 안 보이는(莫) 집(宀)으로 외롭고 쓸쓸한 것.
너지(Nudge)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자화장실 소변기에는 파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 소변기 덕분에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줄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너지”.
“너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소변기 앞에 “튀지 않게 조심하시오.”라는 문구가 붙어 있을 때의 기분은 어떠한가요? “튀지 않게 조심 하시오.”는 강한 메시지를 주지만 그다지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면에 “한발 더 가까이”는 왠지 들어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소변기에 파리 한 마리 그려 넣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파리를 겨누어 조준하려고 변기 가까이에 다가가서 일을 보게 된 것이죠.
우리나라의 경우를 볼까요? 주차장에 “전면주차”라는 문구 대신에 주차장 바닥에 올바른 방향으로 주차한 자동차 모습을 그려 놓고 실험해 봤더니 거의 100%가 전면주차를 했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은 역시 “강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이랍니다.
(출처 공무원연금지)
행복한 가정에 있어야 할 10가지
1.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지구상에서 용서 받을 곳이 없게 됩니다.
2.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짐승들과 살 수밖에 없습니다.
3. 대화의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말동무를 찾지 못하면 전화방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4. 골방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만의 공간(수납장, 옷장, 공부방, 화장실 등)이 많을수록 인품이 유순해 집니다.
5. 안식이 있어야 합니다.
피곤에 지친 몸을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환경이 가정에 없으면 밖으로 나갑니다.
6. 認定(인정)을 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바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7. 유머가 있어야 합니다.
유머는 가족 간의 정감을 넘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8.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연장자가 아니라 언행에 모범을 보이는 어른이 계셔야 합니다.
9.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꾸짖고 잘한 것을 칭찬해 주는 양면성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10.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더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면 가정의 가치는 더욱 높아집니다.
(출처 공무원연금지)
11-53. 堪歎人心毒似蛇라 誰知天眼轉如車요 去年妄取東隣物터니 今日還歸北舍
(감탄인심독사사 수지천안전여차 거년망취동린물 금일환귀북사
家라 無義錢財湯潑雪이오 儻來田地水推沙니라 若將狡譎爲生計면 恰似朝開暮落
가 무의전재탕발설 당래전지수추사 약장교휼위생계 흡사조개모락
花라
화)
사람의 마음이 독하기가 뱀 같음을 한탄하여 마지않는다. 누가 하늘의 눈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음을 알랴. 지난해에 망령되게 동녘 이웃의 물건을 가져왔더니 오늘은 도로 북녘 집으로 돌아갔구나. 의가 아니게 취한 돈과 재물은 끓는 물에 뿌려진 눈이요, 뜻밖에 얻어진 전답(田畓)은 물에 밀려온 모래이니라. 만약 교활한 꾀로 생활하는 방법을 삼으려 한다면 그것은 흡사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꽃과 같을 것이다.
⋇ 堪歎(견딜 감. 읊을 탄) : 탄식하여 마지않음.
⋇ 誰知(수지) : 누가 알리오.
⋇ 轉如車(전여차) : 수레바퀴처럼 돌아 감.
⋇ 妄取(망취) : 망령되게 취함.
⋇ 湯潑雪(탕. 뿌릴 발. 설) : 끓는 물에 뿌려진 눈.
⋇ 儻來(갑자기, 빼어날, 만일 당. 래) : 뜻밖에 자기 수중으로 들어옴.
⋇ 狡譎(교활할 교. 속일 휼) : 교활한 것.
⋇ 水推沙(수추사) : 물에 밀려 온 모래.
⋇ 將(장차 장. 장수 장) : 장차. 앞으로.
⋇ 恰似(마치, 꼭, 흡사 흡. 같을 사) : 꼭 ~와 같음.
(해설)
因果(인과)는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하여야 하는 운명과 같다. 허나 현실에서는 가끔은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으나 세월은 다시 원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위인과 영웅의 차이처럼 과정과 결과는 천양지차를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뿌린 대로 거두고 베푼 만큼 돌려받게 된다. 선행과 악행의 차이도 결과는 극명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발현인가 아닌가 하는 순수한 마음과 이익에 연연한 즉 보상을 염두에 둔 행동의 발로인가에 따라 구분 되어 진다. 흔히 말하는 출세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모든 행위들이 어떤 마음으로 행하였는가? 진정 피땀 어린 노력과 백절불굴의 의지로 이루어 냈느냐, 아니면 기회주의적이고 남을 모함하고 세류에 편승하여 얻었는가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험난하고 괴로운 고통과 인내의 길보다는 편하고 쉬운 지름길을 택하려 한다. 달콤함과 안락을 탐닉하고 즐거움과 재미에 빠져들기 쉽다. 자기를 합리화하고 쉽게 용서하면서도 남에게는 무자비하고 용서할 줄 모른다. 앞길을 막는 방애자이고 자신의 몫을 적게 만드는 적으로 간주하기에 그러하다. 만약에 정의가 사라지고 악의가 창궐하였다면 이 세상은 벌써 암흑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정의가 사라지지 않고 늘 평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잠시의 암흑기는 있지만 광명의 날이 더 길고, 불법이 승리한 것 같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순리대로 되돌아온다. 아무리 밤이 길고 길다 해도 새벽이 오듯이. 눈을 가리고 감언이설로 현혹시켜도 올바르지 않다면 잠깐은 속일 수 있지만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진실이 담기지 않고 임시방편의 수단으로 위기를 넘길 수는 있어도 그에 대한 대가는 오래도록 지속되고 그를 만회하는 대는 많은 수고와 노력을 들여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이 허락하지 않아 주춤거릴 때도 많다. 남을 속이고 현혹시키며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하더라도 가슴에 한 올 남아있는 양심은 늘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누른다. 그마저도 없다면 악마에 혼을 판 자신의 의지와 사고는 전혀 없는 꼭두각시 신세일 뿐이다. 어느 것이 악이고 선인지를 인지 못한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셈이 되고 만다. 얼마만큼 악랄하고 무자비하며 독살스러워야 할까? 그 끝은 어디일까?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관념을 깨고 현실에서 자행되는 여러 불가사의한 일들을 미쳐서 그랬다고 치부해 버리기는 찜찜한 무언가가 앙금처럼 남는다.
피땀을 흘린 노력의 대가로 얻은 결과물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소중하고 보람을 느끼게 할 것이다. 티끌 같은 욕심은 늘 과용과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치밀한 계산 하에 일을 진행시켜도 어느 순간에 허점이 들어나며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록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생명은 길지 못하고 단명하거나 악순환으로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복수는 자신과 상대방 모두 파멸이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기에 용서와 포옹이란 평화적인 수단이 강구되지만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그 양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砂上樓閣(사상누각)이 되지 않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하는데 모든 일은 그 행함에 정정당당해야 하고 바르며 사적 욕심이 배제되어 누구라도 옳다고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어야 한다. 거창한 계획과 사업을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같다. 오히려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게 한다. 목적을 위한 수단과 방법의 차이가 결과물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결정한다.
자원입니다.
隣(이웃 린)은 언덕(阝) 저편에 불빛이 어른거리는(粦 : 도깨비불 린) 이웃. 린(粦)은 염(炎)과 천(舛)의 합자로 염(炎)이 미(米)로 바뀜.
潑(물 뿌릴 발)은 수(氵)와 발(發)의 합자. 發은 발(癶)과 수(殳 : 몽둥이 수)는 팔(八 :쇠뇌의 방아쇠 잡은 손)과 치(夂 : 손)의 합자 그리고 궁(弓)의 합자.
跳板結婚(도판결혼)
개방과 개혁정책을 진행하고 있는 중국의 결혼, 이혼풍속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두드러진 현상으로 다양한 이혼문화의 표출을 들 수 있다. 명·청나라시대부터 중국은 결혼난이라는 인식이 있어 왔지만 지금은 관습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자유사상이 가세해 적령을 넘긴 미혼 인구가 늘고 그 연령폭도 증폭하고 있다 한다.
적령기를 넘겨 결혼을 못하거나 결혼 안한 남녀를 大男(대남), 大女(대녀)라 하는데 1990년대 들어 30∼44세의 대남 대녀가 700∼8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농촌에서 결혼 난을 해소하고자 성행해 온 것이 包辦婚(포판혼)이다. 성이 다른 네 집이 돌아가며 딸 하나씩을 여의는 대신 며느리 한씩을 들이는 강제결혼이다. 이를 속칭 “和衣而睡(화의이수)”라 하는데 그런 부부가 늘 수밖에 없다. 옷을 입은 채 몇 년이고 같이 살되 공방으로 지낸 부부를 그렇게 일컫는다.
北京(북경) 什刹海(십찰해) 부근에 離婚餐聽(이혼찬청)이라는 이색 음식점이 있다고 하는데 신세대들은 이곳에 와서 이혼메뉴로 마지막 식사를 함으로써 갈라서는 이혼 편의점이랄 수 있다. 그 이혼메뉴가 “棒打鴛鴦(봉타원앙)”이다. 부부사랑의 상징인 원앙새를 몽둥이질 한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문명이란 말은 다양하게 쓰이는데 원만하고 매너 좋다는 뜻으로 쓰여 이처럼 합의에 의한 이혼을 “文明離婚(문명이혼)”이라고 한다. 이혼을 했어도 성생활만 배제한 채 동거생활을 계속하는 “離婚不離家(이혼불리가)”도 성행한다.
이혼은 했어도 새로운 짝을 못 구하고 빌어먹고 살기 힘들며 살 집도 없는 동안의 인간적 배려라 할 수 있다. 연간 이혼건수가 100만 명에 21%가 동거를 하는데, 놀라운 것은 그 기간이 5년 이상도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중국인다운 두터운 신경변수가 아니고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중국에서는 널판 뛰기란 뜻인 跳板(도판)결혼도 고질이다. 널판 뛰어 담을 넘듯 한 수단을 이용하는 결혼이다. 중국 농촌에 사는 사람은 도시 호적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며 도시에서 취업할 수도 없다. 그래서 도시로 진출하는 수단으로 도시의 총각과 결혼해 도시호적에 올리고 적당한 때 이혼한다. 그동안 애가 생겨도 남편 몫이기에 여성으로선 외형상 결격이 생기지 않는다. 중국인의 국내 취업 등을 위한 도판결혼이 국경을 넘어 우리나라에 번져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이에 당국에서는 도판결혼을 억제하고자 중국인과의 결혼절차를 새로이 정해 시행하기로 했다고 한다.(이규태 코너 1996년)
晩秋(만추) - 黃玹(황현) -
松下柴門相向開(송하시문상향개) 소나무 아래 사립문 마주 보고 열렸는데
秋陽終日在蒼苔(추양종일재창태) 가을볕 하루 내 푸른 이끼 비춘다.
殘蟬葉冷抱抱鳴(잔선엽냉포포명) 풀죽은 매미 잎이 차서 안으며 안으며 울고
一鳥庭空啄啄來(일조정공탁탁래) 한 마리 새는 빈 마당에 쪼으며 쪼으며 다가오네.
粉甘葛笋咬爲筆(분감갈순교위필) 달디 단 칡 순은 씹어서 붓을 만들며
核爛榴房剖作杯(핵란류방부작배) 익어 터진 석류는 절개서 잔을 만들고
朱柿天林隣舍富(주시천림인사부) 빨갛게 익은 감나무 숲 이웃집은 부자가 됐네.
悔徙初寓未曾栽(회사초우미증재) 처음 이사 올 때 우리도 심을 것을
※ 啄(쫄 탁), 芛(죽순 순), 咬(씹을 교), 寓(붙어 살 우).
11-54. 無藥可醫卿相壽로되 有錢難買子孫賢이니라
(무약가의경상수 유전난매자손현)
약이 없어도 경상의 목숨은 구할 수 있되, 돈이 있어도 자손의 어진 것은 살 수가 없다.
⋇ 可醫(가의) : 치료할 수 있다.
⋇ 卿相(경상) : 재상(宰相). 대신.
⋇ 難買(난매) : 사기 어렵다.
(해설)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고, 기쁨보다는 슬픈 일이 더 많으며, 평탄함 보다는 험난하고 고난이 더 많은 것이 인생사이다. 그러나 이를 의지와 지혜로 극복하고 헤쳐 나아가는 용기가 있기에 보람과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부유하고, 명예가 높고, 지고무상의 권력이 있다 해도 막을 수 없고, 살 수 없으며, 얻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후회란 말이 사용된다.
늘 곁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떨어져 보이지 아니할 때 그리워지고, 흐르는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잡거나 멈추게 할 수 없다. 재물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잡는 것은 어렵다. 정작 필요로 할 때 주위를 둘러보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손발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신의와 존경 그리고 인간적인 면에 스스로 감복하여 따르기를 결심하지 않고 시세에 따라 따르는 척하였기에 기대 할 것이 없어지면 매정하게 등을 돌리게 된다. 속담에 “정승 집 강아지가 죽으면 문상객이 많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적어 진다.”라 하지 않습니까?
자식농사라는 말을 하지요. 부모가 계획하고 되어주길 바라는 이상대로 따라주는 것이 바람직 하지만 대개의 경우 청개구리식의 성향을 보입니다. 전혀 도움 되지 않는 간섭이요, 자신의 꿈과 희망은 아니며, 자신의 인생을 부모가 살아주지는 못하는 것이라 말을 합니다. 특히, 성공한 부모를 둔 자식들의 경우 그 후광에 짓눌려 그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에 구속되고 마는 예를 많이 목격하고 듣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선진국이 되어 모든 것이 안정적인 체계로 들어서면 젊은 청소년들에 이상과 희망의 폭이 좁아져서 성공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땀 흘려 노력하기 보다는 일시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유흥과 오락 등을 탐닉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올라가고 정복할 대상이 없어지며 반대로 늘어난 인구로 경쟁자는 더 많아 지다 보니 지레 포기하고 일찍 꿈을 접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타락하게 만드는 대상도 확대되어 도처에 커다란 함정을 파놓고 걸려들기를 호시탐탐 노리니 감수성이 예민하고 반항적 성향을 갖게 되는 사춘기를 맞은 세대들로는 자칫 한 발작 잘못디디면 벗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마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장 가까운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 가장 미워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평생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든데 유전적인 것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어려서 보고 듣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기준이 바로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나이 들어 어느 날 문득 자신의 행동과 말들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 그토록 싫어하고 닮지 말자 했던 부모의 모든 것을 답습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습관과 환경은 그만큼 영향력이 강합니다. 말보다는 행동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깨달게 하는 것이 시간은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걷을 수 있습니다.
자원입니다.
壽(목숨 수)는 선비(士)의 한(一)마디(口) 뜻 깊은 교훈과 장인이 한(一)치(寸)를 다투어 만든 작품(工)은 그 수명이 길다.
漢江渡江料(한강도강료)
“明宗實錄(명종실록)”11년 4월 기사에 한강 仍火島(잉화도)의 풍습에 대해 언급해 놓고 있는데 그중 남녀가 서로 안거나 등에 업고 강을 건너는 품이 야하기 그지없다는 대목이 나온다. 잉화도는 현재의 여의도다.
한강에 물길이 얕아지면 사람을 업어 도강시키는 직업적인 삽수꾼이 있었다. 물을 건네준다는 뜻인 涉水(섭수)에서 비롯된 말 일 것이다. 잉화도에서 삽수꾼이 도강하는 것을 보고 성안에 사는 소수의 양반들 눈에 야하게 비쳤음 직 하다. 한강 도강료는 이 삽수꾼까지 소급된다 할 것이다.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던 1902년의 일이다. 내탕금에 굶주리던 황실에서는 한강을 건너는 모든 사람에게 나룻배 삯 말고도 渡津稅(도진세)라는 미명의 도강료를 얹어 받았던 것이다. 나룻배의 발착장에 가가를 지어 놓고 도강료를 받았는데 불만이 비등하던 차에 드디어 폭발, 반란으로 번지고 말았다. 동기는 도강료를 받는 관리가 아이 밴 부인으로 부터는 도강료를 태중 아기 몫으로 반값을 더 요구했기 때문이다. 관리란 예나 지금이나 명분만 있으면 民怨(민원)과는 아랑곳없이 거두고 보는 것이 생리인가 보다. 이에 성난 나룻배의 승객과 인근 주민이 합세하여 도강료 받는 가가를 불 지르고 소동을 벌렸던 것이다.
한강에 사설 다리를 놓고 도강료를 받은 사실도 있다. 1910년 우에다 라는 일본 상인이 마포에서 여의도까지 배다리(舟橋 : 주교)를 놓고 마포 쪽에서는 우에다 자신이, 여의도 쪽에서는 우에다 부인이 거적 깔고 앉아 도강료를 받았던 것이다.
배다리란 나룻배를 줄줄이 연결시켜 그 위에다 상판을 깔아 건너다니게 하는 임시가교다. 한번 건너는데 현금일 경우 8전, 현물인 경우 쌀 반 되 값이었다 하니 착취에 가까운 도강료였다 할 수 있다. 이 배다리 도강료에도 민원이 맥락 되어 폭동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배다리로 생업을 잃은 것이 마포 서강의 삽수꾼과 나루꾼들이었다. 이들과 망국의 울분을 못 가누던 나루 백성이 합세하여 이들을 저지하는 일본 무장군과 도강료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바로 강제 병탄 당하던 해 5월의 일이었다.
이처럼 民怨(민원)에 그 뭣보다 민감한 한강도강료요, 그래서 피로 얼룩진 역사가 깔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당의 정책으로 2인 미만으로 한강을 건널 때는 1천 원씩 과적 도강료를 물리기로 입안되었다던데 한강도강료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민원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발상이다. 돈 천원이 별스럽지 않은 상류층에 교통난을 덜어 주기 위해 별스런 서민층이 희생하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이규태 코너 1994년)
金剛山(금강산) - 宋時烈(송시열) -
山與雲俱白(산여운구백) 산과 구름이 모두 희니
雲山不辨客(운산불변객) 구름 덥힌 산은 모습을 분별하지 못하겠다.
雲歸山獨立(운귀산독립) 구름이 걷히고 산만 홀로 서니
一萬二千峯(일만이천봉) 일만 이 천개의 봉우리라
11-55. 一日淸閑이면 一日仙이니라
(일일청한 일일선)
하루라도 마음이 깨끗하고 한가하면 그 하루는 신선이 된다.
(해설)
신선이라 함은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모든 것을 초월한 즉 세속의 잡다한 일과 욕망 등으로 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움을 누리는 존재이다. 마음이 가는대로 하며, 어디에 억매이지 않고 또한 그것을 제지하거나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들도 없는 천상의 세계 혹은 유토피아의 세계에 사는 이상향의 인물을 말한다.
사람이기에 생각하는 좋은 선물을 받았지만 그 선물이 자유로울 수 있는 행동과 처신에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생각할 줄 알기에 선과 악을 분별하며, 좋고 나쁨과 사랑과 미움, 증오와 혐오 그리고 쾌락과 유희 등을 알게 된다. 의지는 천차만별이라 굳셈의 정도에 따라 지옥과 천당을 좌우한다. 또한 성공과 실패 그리고 타락과 부정적 행동을 막아주는 방패역할도 한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또한 마음에 달렸다.” 말한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꼬인 시각을 가진다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주위에 사람들 까지도 무척 피곤하게 만들기에 왕따가 되어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될 것이다. 반대로 긍정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활기를 불어 넣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며 따를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타고 난 것이 아니라 노력과 열정 그리고 어떠한 역경과 곤경에도 좌절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자신의 길을 굽히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이 마음을 어떻게 잡고 바르고 깨끗하며 올바르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공부라 부르지 않는가? 일생을 바쳐 해도 모자라고 잡지 못하는 것이요, 잠시라도 방치하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잡념들이 욕망을 자극하여 엉뚱한 길로 가게 자신의 의지를 방해한다. 늘 한시각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전쟁보다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이기느냐 지느냐 즉 내 의지대로 가느냐 아니냐의 지루하고 끝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처럼 끊임없이 벌어지는 갈등과 모순 그리고 욕망의 굴레에 포박되거나 쾌락에 몸을 던지게 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울까.
法句經(법구경) 心意品(심의품)에 “念無適止(염무적지) 不絶無邊(불절무변)이라 福能遏惡(복능갈악)이면 覺者爲賢(각자위현)이니라” - 생각은 적당히 멈추지 않으면 끊이지 아니하여 끝이 없다. 능히 악을 끊어 복되게 하면 깨달은 자는 현명하게 된다. - 라 하였으며, 또한 “心豫造處(심예조처)는 往來無端(왕래무단)이니 念多邪僻(염다사벽)하면 自爲招惡(자위초악)이니라.” - 마음에 미리 만들어 내는 곳은 왕래가 끝없다. 생각이 사악과 편벽됨이 많으면 스스로 악을 부른다. - 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자기와의 끝없는 싸움이 되겠지요. 지느냐 이기느냐의.
豹死留皮人死留名(표사유피인사유명)
-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
당나라 哀帝(애제) 4년, 절도사 朱全忠(주전충)은 황제를 협박하여 禪位(선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국호를 梁(양)이라 하였다. 이 양나라에 王彦章(왕언장)이라는 용장이 있어 각각 이백 근씩이나 되는 한 쌍의 철장을 들고 늘 주전충을 따라다녔다. 한편, 그 당시 山西(산서)지방에 할거하던 晉王(진왕) 李存勗(이존욱)의 세력이 가장 강대하여 양나라도 여러 번 패한 적이 있었다. 그 후에 주전충은 아들에게 피살되고, 그 아들은 다시 동생에게 피살되었으며, 이존욱은 황제가 되어 국호를 唐(당)이라 하였다. 이리하여 양나라와 당나라는 대치하게 되었다. 이때 왕언장은 招討使(초토사)가 되어 싸우다 패하여 일시 파면되었으나, 당나라 황제가 대군으로 공격해 오므로 다시 등용되어 싸우다가 부상당해 사로잡혔다. 당나라 황제는 그의 무용을 아껴서 자기편으로 오라고 권하였으나 왕언장은 “아침에 양나라를, 저녁에 당나라를 받들 수는 없다.”하며 거절하고 61세로 誅殺(주살)당하였다. 그의 사후에 양나라도 곧 멸망하였다. 그는 생전에 거의 문자를 몰랐으나 항상 속담을 인용하여 말했는데, 이 “豹死留皮人死留名(표사유피인사유명)”은 그의 좌우명이었다고 함.
(출전 五代史). ※ 勗(힘쓸 욱).
外人部隊(외인부대)
신라 진평왕 43년에 설계두란 신라 청년은 망망대해에 一葉舟(일엽주) 띄어 당나라에 간다고 떠나갔었다. “도대체 신라 사람들은 骨品(골품)이나 논하고 문족門族)만 따지며 뛰어난 傑功(걸공)을 보지 못하니 답답해 못 견디겠다. 나는 멀리 西遊(서유) 중국에 가서 비범한 공을 세우고 영달의 길을 걸어 항상 神劍(신검)을 차고 天子(천자) 옆에서 천하를 호령하고 싶다.” 모험심이 왕성한 대단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당나라에 표착하자 법대로 외인부대인 左武衛(좌무위)에 소속시켰고 그곳에서 확실히 무공을 쌓아 영관급인 果毅(과의) 벼슬에 올랐으며 일등공을 세우고 전사하자 당태종이 어의를 벗어 덮어주고 있다.
이처럼 표류민이나 포로나 귀화인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과정으로 일당 외인부대에 소속시킨 것이 국제적인 관례가 돼 있었다. 그 유명했던 당나라의 高仙芝(고선지)도 고구려가 망하자 유민으로 흘러들어 외인부대에서 출세한 명장이다.
元史(원사) 兵志(병지)에 보면 몽골의 외인부대인 親軍萬號府(친군만호부)에 전쟁에서 납치해 온 러시아-여진-고려 군인이 소속돼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援軍(원군)사령관으로 조선 땅에 와 싸웠던 李如松(이여송)은 평안도에서 죄짓고 명나라로 도망가 외인부대에서 출세한 李成樑(이성량)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원병 왔던 邢价(형개)장군 휘하에 “佛郞國海鬼(불랑국해귀)”-곧 외인부대인-포르투갈 해군 특공대 4명이 참전했던 사실이 天朝將士錢別圖(천조장사전별도)에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 毅(굳셀 의), 樑(들보 량), 邢(나라이름 형), 价(착할 개).
우리나라에도 표류해 오거나 투항한 외국인을 일정기간 訓練都監(훈련도감)의 외인부대에 소속시켰다가 영주시키고 있다. 인조 5년(1627년)에 경주 해안에 표류했다가 잡힌 3명의 和蘭人(화란인)은 외인부대로서 병자호란에 참전, 두 사람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웨테플레는 훈련도감 휘하의 중국인-일본인-서양인의 혼성 외인부대의 부대장으로 조선 땅에서 조선각시 얻어 아들 딸 낳고 살다 죽고 있다.
하멜 등 30여명의 화란 선원들도 제주도에 표류하여 서울에 연행되자 관례대로 훈련도감의 외인부대 砲兵科(포병과)인 砲手(포수)로 배속 받고 있다.
지금 먹고 사는데 절망을 한 러시아 사람들이 프랑스 국경을 넘어 걷잡을 수 없이 넘어들고 있다 한다. 인구 격감으로 허덕이는 프랑스에서 이들을 외인부대원으로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 살기보다 3년6개월만 근무하면 프랑스 국적을 준다는데 더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 한다. 어쩌다 그 강대 소련이 그렇게까지 타락하고 말았는지 무상하기만 하다.
(이규태 코너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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