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타난 성령님
사 63;7-11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비유: 아버지-자녀, 왕-백성, (남편-아내)
10,11: 이스라엘 백성 안에 성령(성신)이 거하심 (10,11: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학 2:5 말-성경, 신- 성령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제가 바빠서 원어를 지금 대지 못하나 다 찾아보았습니다(라마드 글)
시 51 다윗 "하나님의 신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자기 안에 성령의 존재를 자각함.
요7:39: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임하시지 않음을 말함.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구속사적인 작용. 성육신, 성령이 오심, 재림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성령과 로고스는 그 이전에도 사람 가운데에서 활동하심.
그 이전에도 중생, 성화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가운데서 계시다가 이제는 교회공동체에 계심.
성령님의 역사. 삼중적 은혜.
1) 일반 은총: 모든 일반 사람들에게 역사. 성령님의 힘으로 살지만, 구원과 관계는 없다.
문제: 어떤 이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죄를 짓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다.
2) 직임적 임재: 특별 사역. 구원과 관련 없음, 은사로 나타날 수 있음. 사역자로서 사울왕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셨다가 후에 떠나심.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 고레스왕: 나의 종.
3) 구원적 임재: 하나님 참백성에게 영원히 함께 하신다.
문제: 성령님께 순종하지 하고 근심을 많이 끼쳤을 경우;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임재가 아니다
이적 신앙: 성령님의 직임적 임재. 구원과 관계가 없다. 성령을 받지 않고 은사를 받을 수 있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의 문제점: 주제 넘음, 잘못된 확신
진짜 하나님 백성은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리라”
구속사 사건 1) 성육신 2) 십자가 3) 부활 4) 성령 5) 예수 재림(완성 조건)
* 구약시대는 준비단계로 볼 수 있음.
구약시대에는 민족적 특별은총particularism으로 이스라엘 백성만 택하셔서(특정적) 성령님이 역사하셨으나,
신약시대이후로는 믿음이 있는 모든 자들에게(보편적)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두 시대 사이의 성령님 역사의 강도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없다.
구속사의 역사 주인공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이시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활동이 있었지만 구속사적인 면에는 없었다. 구속사적인 임재는 단회적이다.
첫댓글 구약에서도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지만 성령님이 내주하신 것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이승구 교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지만 원문자체도 그렇게 해석할수 있습니다.
제가 강의를 들었을때 직접 히브리어 본문을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관련된 동영상 강의는 최근에 직접들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민족적 특별은총particularism으로 이스라엘 백성만 택하셔서(특정적) 성령님이 역사하셨으나,
신약시대이후로는 믿음이 있는 모든 자들에게(보편적)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요7:39: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임하시지 않음을 말함.
라마드님 이미 위의 사항은 2007년에 논쟁시에 다 다루었던 내용들입니다. 영혼의 의사 게시판에서 성령의 내주 혹 성령세례 라고 검색해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백성들 안에 있었다고 하지, 각 사람안에 내주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하나 같이 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의 내주가 없었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내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신학자가 있다면 그는 개혁주의 신학자가 아닙니다.
성령의 내주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성육신-십자가 죽으심-부활>이 지상사역을 완성하셔야지만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이사야 42장~44장참고)
만약 주님의 지상사역 이전에 성령의 내주가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기존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성경해석을 죄다 부인하고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셔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와 각 사람 안에 내주하시고, 영원히 거하시는 것이 신약교회의 특징이라면..
성령의 외주와 단체적으로 임하시고, 성령이 떠나기도 하고 다시 오시기도 하는 것이 구약교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구약 성도들의 중생은 단일한 제3위 성령의 사역이므로 모두 동일하게 중생이 되어진 것입니다.
(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자기 속에 계신" 그리도
---> 구약총론을 쓴 아처의 글입니다.
벧전 1:10-11/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께서
"구약 성경의 저자들 안에" 계셨으며,
비록 인간 저자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지도하신 이 모든 말씀들이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 분이 그들을 통하여 무호한 말씀을 쓰도록 인도하셨다는 뜻이다.
이와같은 말씀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 말씀들을 인간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연구할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한) 하나님의 의도, 즉 이 말씀들을 수록하도록 인도하신 분의 의도를 파악해야한다.
혹시 이승구 교수가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내주가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는 기억이나 그런 글을 본적 있다면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대대적으로 큰 논란이 일어날 일이기 떄문이지요..
http://cafe.daum.net/HeidelbergChurch/KTvy/11?docid=19Y4A|KTvy|11|20081006054751&q=%C1%B6%C1%F7%BD%C5%C7%D0+I
===> 강의안의 여기서 찾아보세요. 관련 싸이트에 대하여는 자료만 찾았을 뿐입니다.
http://hapdong-cyber.kr/index.php
97 [조직신학] 하나님에 관한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동영상 강의는 여기서 들었습니다.
혹시 이승구 교수가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내주가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는 기억이나 그런 글을 본적 있다면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대대적으로 큰 논란이 일어날 일이기 떄문이지요.
===> 그리고 이런 말은 자체해주세요. 논란 될지 안되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겁니다.
로빈슨크로소님, 이 문제는 지나치게 나가실 것이 없습니다. 연속적 중생론을 다루고 나서 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오히려 토론의 논점을 흐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대응을 미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그것이 낫겠습니다~ ^ ^
네. 답변하다가 여기까지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