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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57.2m봉, 그 뒤는 적근산(赤根山, 1,073m)
나는 문자 그대로 정상에 쓰러지듯이 올라서서 찾아보았다.
사람의 발자취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초등반인 것이다.
다시없는 즐거움!
--- 장 코스트, 「알피니스트의 마음」
▶ 산행일시 : 2010년 9월 25일(토), 맑음, 아주 맑음
▶ 산행인원 : 12명(영희언니, 버들, 숙이, 드류, 동산, 감악산, 대간거사, 조프로, 한메,
메아리, 해마, 신가이버)
▶ 산행시간 : 9시간 22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5.1㎞
▶ 교 통 편 :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랜덤도엽 기준)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30 - 화천군 화천읍 신읍리(新邑里) 율대(栗岱), 산행시작
09 : 43 - 643.3m봉, 주능선 진입
11 : 03 - 헬기장
11 : 25 - ╋자 갈림길 안부, 안부는 군사도로가 지나고 왼쪽은 솔골로 내린다.
11 : 35 ~ 12 : 05 - 헬기장, 점심식사(30분 소요)
12 : 43 - 헬기장, 수리봉(△921.9m)
13 : 13 - 1,005m봉
13 : 49 - 1,035m봉, 헬기장
14 : 31 - 천연동굴 벙커
14 : 45 - △1,057.2m봉, 헬기장
15 : 59 - △730.3m봉
17 : 29 - △562.9m봉
17 : 52 - 사구마을, 왕자포병 부대 앞, 산행종료
21 : 50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춘천 가는 길, 고속도로 위에서
▶ 수리봉(△921.9m)
춘천 가는 고속도로는 안개 끼는 날이 잦다. 굽이굽이 북한강 물안개가 안개 지피는 불쏘시게
라는 생각이 든다. 강줄기 따라 안개가 더욱 짙기 때문이다. 안개 자욱한 춘천휴게소는 초동
만추로 옷깃 여미게 쌀쌀하다. 춘천IC를 빠져나와 외곽도로에서 바라보는 봉의산(鳳儀山,
301.5m)이 어엿한 준봉이다. 언제나 그렇듯 소양2교 아래에서 치맛자락 펄럭이는 소양강 처
녀가 오늘은 퍽 추워 보인다.
신촌 삼거리에서 풍산리(豊山里) ‘평화의 댐’은 오른쪽으로 가고 우리는 신읍천 거슬러 쭈욱
올라간다. 율대(栗岱). 옛날에 밤나무가 많이 있던 부락이라고 한다. 지금은 폐교한 율대초등
학교 뒤에서 멈춘다. 차안에서 산행준비는 다 마쳤고 내리자마자 산행 시작한다. 대천인 신읍
천 건너기가 마땅하지 않다. 200m쯤 더 가면 건너 농가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다.
신읍천변 논두렁에 안내판 붙은 보호수가 있어 보러간다. 물푸레나무다. 이렇게 거목인 물푸
레나무는 내 생전 처음 본다. 수령 300년, 수고 20m, 나무둘레 5.5m. 보호수 지정일자
1982.11.13. 옛날 한 농부가 논에 모를 심기 위하여 소로 논갈이 하다 잠시 쉬면서 소몰이 회
초리를 논둑에 꽂아 놓은 것이 신기하게 잘 자라 고목이 되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 거목인 우리나라 물푸레나무의 현황을 조사해보았다. 이 물푸레나무가 수령으로
는 연천 남계리 물푸레나무와 공동 3위다. 1위는 화성 해창리 물푸레나무로 수령 400년이고,
2위는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로 수령 350년이다. 그러나 수고나 가슴둘레로 보면 이 물푸레
나무가 으뜸이다. 파주 무건리(수령 150년)와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수고 20m, 가슴둘레
4.68m)는 각각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이 물푸레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밭일 하는 아주머니가 1열종대 등산복 차림인 우리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수리봉 간다고 우
리의 산행일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아주머니도 수리봉을 알고 있다. 그 먼 데를 가느냐고
걱정한다. 고추밭 사이로 간다. 밭두렁 위 벌들이 부산한 토종 벌통을 멀찍이 돌아 산기슭 덮
은 칡넝쿨 숲을 뚫는다.
수직사면이 나온다. 비스듬히 비켜 오른다. 내가 맨 뒤로 가면서 일행들의 진행방향을 쫓는데
바로 앞에서 숙이 님이 낙하하는 돌덩이에 맞는 것을 본다. 제법 큰 돌이다. 돌이 떨어지는 줄
도 모르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숙이 님이 그 충격으로 주저앉는다. 어깻죽지에 된통 맞
았다. 이나마 다행이다. 이제부터라도 앞선 일행과 어긋나게 오른다. 숙이 님은 감악산 님의
알뜰한 부축과 일행 모두의 성원으로 완주하였다.
산행 후 진지한 반성이 있었다. 이렇게 낙석위험을 무릅쓴 지 한두 번이 아닌데 그 때마다 자
구책으로 스스로의 운에 맡겨왔다. 가급적 낙석지대가 아닌 곳이 소망스럽겠지만 불가피하
다면 구간단위로 한 사람씩 통과하든지, 낙석이 아예 힘 받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일행이 바
짝 붙어 가든지, 산개한 횡대대열로 오르든지 할 일이다.
지능선 모양 갖추자 가파름 수그러들고 교통호와 함께 오른다. 참호를 수시로 지난다. 확실히
초장 끗발 개끗발이 맞다. 우연히 한 무리 능이버섯을 보았기로 작정하고 좌우사면을 종횡하
여 누볐으나 별무소득이다. 버석버석 낙엽 밟으며 잡목 숲 헤집자니 내가 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잊었다. 더덕이나 능이버섯이나 표고버섯을 눈앞에 들이대도 무엇인지 알아
보지 못할 지경이다.
주능선인 △643.3m봉에 올라선다. 벙커가 있다.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이 능선
의 끝자락인 신촌에서 시작하는 군인의 길, 곧 주로 군인들만이 지나는 길이 탄탄하게 뚫렸
다. 마루금 옆으로는 교통호 지나고 참호 또한 부지기수. 참호는 6.25 전사자 유해 발굴지와
섞여있다. 더러 금줄을 둘렀다. 등로 주변 활짝 핀 하얀 산구절초 꽃은 조화(弔花)다.
가도 가도 등로에는 군인들이 버린 음료수 빈 깡통과 국방색 비닐색 등이 널려있다. 오지에서
근무한다는 화풀이로 읽혀져 안타깝다. 길게 올라 헬기장. 조망 좋다. 가리산, 용화산, 대성
산, 적근산이 하늘금이다. 헬기장 벗어나 뚝뚝 떨어지다 직진은 절개지 낭떠러지다. 밧줄로
가드레일 쳤다. 왼쪽 사면으로 길이 나 있다.
안부는 군사도로가 지난다. 왼쪽은 솔골로 내린다. 고갯마루에 올라 건너편 일산 한 번 바라
보고 맞은편 절개지 왼쪽 사면을 돈다. 가팔라 밧줄이 달렸다. 한참 씩씩거려 오른 헬기장에
는 추색이 가득하다. 헬기장 가장자리에 삼각점이 있다. 화천 422, 2007 재설. 아마 저 앞 수
리봉에 있어야 할 삼각점을 착오하여 여기에다 설치하였을 것.
헬기장 한가운데 빙 둘러앉아 이른 점심밥 먹는다. 탁주 두 순배 돌고도 휴식 겸한 식사시간
이 30분이면 넉넉하다. 등 뒤로 쬐는 햇볕이 어느덧 따스하다. 숲속에 들면 걷기 알맞게 선선
하다. 수리봉 정점은 사방 나무숲이 울창하여 아무 조망 없지만 정점 비킨 헬기장은 조망 좋
은 화원이다. 적근산이 가깝다.
3. 코스모스, 춘천휴게소에서
4. 춘천시내, 가운데는 봉의산(鳳儀山, 301.5m)
5. 율대마을 물푸레나무
6. 산기슭 밭의 조
▶ 1,057.2m봉, 헬기장
1,005m봉 정상은 서너 평 되는 공터다. 바윗길 지난다. 왼쪽은 절벽. 주변 나무 베어내 조망
좋다. 가야할 능선이 첨봉의 연속이다. (그런데 등로는 마루금 벗어나 있어 적이 아쉬웠다.).
봉봉마다 헬기장이다. ┬자 능선 분기하는 1,035m봉도 헬기장이다. 헬기장에서 수류탄 잔해
를 보았던 터라 얌전히 등로 따라 간다. 여러 봉우리를 돌아 넘는다.
주등로 벗어나 소로가 보여 △1,057.2m봉 전위봉을 오른다. 천연동굴인 벙커 옆을 지나 오르
면 역시 벙커다. 선두는 벌써 △1,057.2m봉을 올랐다. 오른 길로 되돌아가서 주등로 따른다.
너른 헬기장 2개가 있는 △1,057.2m봉이다. 삼각점은 찾지 못했다. 오늘 산행 최고의 경점이
다. 배낭 벗어놓고 뭇 산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름 맞춘다. 이도 일이다. 향로봉 옆으로 아스라
한 연봉은 북녘 금강산이리라.
건너 수동령 넘은 앞산은 흰바우산(백암산 白岩山)이다. 가곡 ‘비목’의 지리적 배경이라고 한
다. 우리가 그 내력을 알기로는 이렇다. 1964년 저 흰바우산 비무장지대 양지바른 산모퉁이
에서 청년 장교인 한명희 소위(당시 26세, 전 시립대 음대 교수)가 이름 모를 용사의 녹슨 철
모와 이끼가 낀 채 허물어져 있는 돌무덤을 발견하고, 한명희 소위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
렀다고 한다.
그로부터 4년 뒤 당시 동양방송 PD로 있는 한명희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작곡가 장일남(한양
대 음대 명예교수, 2006.9. 작고)이가 가곡에 쓸 가사 하나를 써달라고 부탁하였는데, 흰바우
산의 그 돌무덤과 비목(碑木. 굳이 맞춤법을 따지자면 木碑가 맞다)의 잔상이 가슴 속에 맺혀
있던 한명희는 즉시 펜을 들고 가사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碑木)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다음은 경향신문 1976.4.17. ‘명시 명곡을 찾아서’ 기사다. 한명희는 ROTC로 임관하여 비무
장지대에서 2년간 근무했다고 한다. “하루는 순찰을 하다가 풀숲에 가려진 돌무덤을 발견했
어요. ┼자 만든 외로운 나무만 한 개 서있을 뿐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이곳에 묻혔는지 아무
설명이 없더군요. 너무나 슬프고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느라고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했지
요.”
제대 후 우연하게 이것을 작곡가 장일남에게 보였다. 장일남의 말, “이 시를 보는 순간 이상
한 감흥을 느꼈습니다. 음악을 만들 때는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흘러나오는 악상을 정리할 때
와 건축가가 집을 짓는 것처럼 골격을 완성해 놓고 곡을 짓는 방법이 있지요. 비목은 한 번 읽
고 바로 멜로디가 튀어나왔어요.” 장일남은 휴전 직전 전투경찰로 철원 근처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동창회나 회사동료들과 회식하는 자리에 분위기 무르익어 노래자랑(?) 할 때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감정에 겨워 이 노래를 부르는 놈이 꼭 있다. 아주 초를 친다. 좌중은 급속히 숙연해지
고 그만 술 깨고 만다.
7. 멀리는 용화산(龍華山, 878.3m)
8. 적근산(赤根山, 1,073m)
9. 구절초
10. 일산(日山, 1,190m)
11. 멀리 왼쪽은 대성산(大成山, 1,175m)
12. 암릉에서 해마 님과 메아리 님(오른쪽)
13. 멀리 오른쪽은 화악산(華岳山, 1,468.3m)
14. 저 산 뒤가 수동령이고 그 뒤에는 흰바우산(백암산)이 있다
▶ 솔골 입구, 왕자포병 부대 앞
△1,057.2m봉 정상도 벙커다. 조프로 님이 벙커환기통을 우산꽂이처럼 얕은 줄 알고 스틱을
넣었다가 깊이 빠져 건져내느라 애 먹었다. 주변은 꽃향유, 산구절초, 쑥부쟁이 어우른 산상
화원이다. △1,057.2m봉 정상 내리면 능선은 군사도로다. 걸핏하면 산속으로 든다. 지뢰매설
표시는 없고 군인들 드나드는 길이어서 안심한다.
안부에서 군사도로 휘어드는 데는 깊은 낭떠러지인 절개지다. 미리 오른쪽 사면으로 지쳐 내
린다. 줄기차게 떨어지다가 멈칫한 △739.5m봉도 정상은 벙커다.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남았다. 또한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왼쪽으로 가야한다. 너른 헬기장 지나고 ┤자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한다. 670m봉 정점은 함몰되었다. 벙커를 만들려다 말았나보다.
군사도로가 훈련장이다. 발목지뢰와 대전차지뢰를 매설하고 제거하는 훈련장이다. 곳곳에
모형지뢰가 묻혀있다. △564.1m봉은 나와 신가이버 님이 대표로 다니러간다. 도로 따라 올랐
으면 바로 옆이 △564.1m봉 정상인데 마루금을 유지한답시고 잡목과 가시덤불 헤친다. 이곳
삼각점도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하산. 군인의 길 버리고 비로소 우리의 길 간다. 어린 낙엽송 간벌한 옅은 능선 잡는다. 잠시
소로는 성묫길이다. 무덤 벗어나자 인적 없는 빽빽한 잡목 숲, 허우적거린다. 발로 더듬어 내
리자니 나무뿌리 잘못 밟아 자주 미끄러진다. 지계곡 넘고 도로로 떨어진다. 사구마을, 왕자
포병 부대 앞이다. 호계동(虎溪洞)에 올라가 있는 두메 님(첩첩 두메산골도 잘 찾아가는 김병
우 기사님의 별칭이다) 부른다.
15. 흰바우산(백암산, 1,179.2m)
16. 오른쪽이 흰바우산
17. 가운데 멀리가 적근산
18. 멀리는 대성산
19. 1,057.2m봉 주변의 꽃향유
20. 1,057.2m봉
첫댓글 후회막급! 전날 상경하여 산행 준비 다 마치고, 새벽에 눈을 떴으나 피곤함에 다시 자빠졌음!! ㅋㅋ
모두들 중추명절 잘 지내셨지요? 달진 형님의 그림은 이젠 감동입니다. 구라빨 또한 여전하시고... 두메님도 보고싶고... 올 연말 망년 모임에 초 한번 치겠습니다.
"초연이....맺혔네"
빛나는 하늘 산 사람, 비 바람 하늘 산 사람. 다 멋있네요................
헉 정말로 저 나무가 물푸레나무 맞나요? 놀랍네요.